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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사, 조선중기부터 보편화된 제사의식은 민족고유의 미풍양속일 수 없어

에반젤(복음) 2021. 9. 13. 12:35

제사, 조선중기부터 보편화된 제사의식은 민족고유의 미풍양속일 수 없어

 

 

하나님은 귀신과 교제하는 자를 싫어하신다

 


어떤 의식이든 그 의식이 가지는 뜻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의식이 오랫동안 반복될 때 그 형식 자체가 도그마(dogma)화 되면서 그 본래의 뜻은 망각되고 형식과 의식 자체만이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는 예가 허다하다. 그러한 의식이 종국에는 사회와 개인에게 오히려 해악이 되는 의식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이 후대에는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비판 없이 오랫동안 용납되어 오기도 한다. 예전에 고려장과 순장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고려장이란 식량이 부족한 경우, 노동력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부모를 산중에 홀로 남겨두어 굶어 죽거나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했던 의식이며 순장이란 권력자나 재력가가 죽었을 때 생전에 그를 모시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그야말로 산 사람을 생매장하는 관습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것으로 있어서는 안될 악습이었지만, 그것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졌고 그 악습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는 제사마저 버젓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라는 그럴듯한 탈을 쓰고 우상숭배의 주인 행세를 하는가 하면, 기독교 내에서조차 이러한 소리에 동조하고 있어서 매우 한심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조상에 대한 제사는 고려장이나 순장의 악습과는 구별되지만 그릇된 전통이라는 데서는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사를 거부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천주교를 상대로 한 1791년의 신해박해 때 순교한 권상연과 윤지충의 죄목이 바로 조상제사 거부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1939년 교화 피우스12세가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하는 교서를 내리기까지 천주교에서는 이 문제만으로 무려 만 명이라는 순교자를 냈다. 그러나 어떤 전통과 풍습일지라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한 사람의 생명을 대신 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악습이다.

 

 

 



제사는 중국의 유교문화에서 발생, 이조시대에 활짝 꽃피워

 



고조선의 원시 종교였던 무교(巫敎)에는 제사 풍속이 없었다. 무교에는 오히려 천신(天神)을 섬기고 숭배하는 제천의 풍속이 있을 뿐이었다. 고대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조상을 숭배해서 제사했다는 풍습을 전하는 기록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조상 제사의 풍속은 무속적인 천신제와 유교적 색채가 합쳐져서 발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무속신앙에 근거하여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죽은 조상의 혼이 자손들 주위를 배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지정된 장소에 가 있기도 하는데 때때로 자손들을 찾아와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이처럼 극진한 공양을 받는 영혼은 자손들의 액운과 재해를 막아주고 또 큰 복을 내려준다고 믿었다. 이것이 지나쳐서 때로는 '살아있는 늙은 부모는 자손을 돕지 못하고 죽은 부모의 혼백은 자손에게 복을 줄 수 있다'는 엉뚱한 말까지 나오게 되었고, 살아 계신 부모에게는 무심하게 하다가 죽은 후에나 극진한 제사를 드리는 기복적인 성격으로까지 나가게 되었다. 본래 제사란 죽은 이를 계속 공양함으로써 효를 계속 이어나가고자 하는 추양계효(追養繼孝) 행위였는데 이것이 무속신앙과 결합하여 미신적인 제사풍속이 되어버렸다.

 



제사를 지내는 관습은 원래 중국의 공자 이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죽은 임금에게 제사를 하여 그의 공덕을 기렸다. 그 후 제후나 재상들도 자기 조상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제사를 지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평민에게까지 널리 퍼져 들어갔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제사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중국처럼 특별한 왕에게만 했다. 그 이유는 당시에 불교가 성행했다는 것과, 정통 불교에는 제사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절에서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로 불교와 무속의 혼합된 형태였다. 그리고 13세기인 고려말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권세를 가지 사람들이 사당을 짓기 시작했으며, 그곳에다 조상들의 위패나 신주를 모시고 그곳에서만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평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태조가 성리학을 국교로 받아들이면서부터였다. 태조 이성계는 성리학을 적극 장려했고, 양반에서 평민들에게까지 제사제도가 일반화되어 갔다. 제사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큰 덕을 끼친 사람들의 영혼에게 했으므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훌륭한 조상을 두었다는 자부심이기도 했다. 이렇게 태조의 적극적인 교육과 훈련을 힘입은 조상숭배는 이조 500년 동안 화려한 꽃을 피웠다.

 

 

 



제사는 우리민족 고유의 미풍양속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이라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이 조상신 숭배의 제사의식은 본래 우리민족 교육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제사의식은 천신을 숭배하는 제의식이 있을 뿐이다. 조선 중기에 와서야 오늘날과 같은 조상신 숭배의 제사의식이 유학과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민간에 유행되었으므로 사실 이 제사의식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다.

 



우리는 대체로 이 제사의식을 행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미풍양속을 행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내려오는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행할 뿐이며, 또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거나 귀신의 저주를 면해보려는 생각에서 이 의식을 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약 조상에 대한 제사가 효도의 척도라면 조선시대 이전에는 효자가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제사는 명백한 우상숭배 행위

1981년 12월 4일자 한국일보『기독교계에 제사논쟁』에서 한국신학대학의 이장식 교수는, 기독교에서 조상숭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기독교 선교에 커다란 저해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하면서『제사는 돌아가는 분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표시이기 때문에 결코 우상이 아니라는 계몽운동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또 서울대학교 정진홍 교수는 『전통 의례의 제사와 장례를 우상숭배나 조상의 신격화로 설명하는 것은 기독교 신학의 편견이 빚어낸 독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정진홍, 「한국 기독인의 생활문화」,중앙일보, 1982.7.2).

 



공자는 귀(鬼)나 신(神)에 대하여 말하기를 삼갔으나, 제사에 직접 참여하여 신의 흠향을 체험하였을 때, 제사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論語, 금장태. p.227.). 유교에서는 이와 같이 효의 실현인 제사를 통해서만 조상신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명백하게 죽은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의 형태요, 결과적으로 죽은 조상들을 섬기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특히 죽은 사람의 영정과 신주(神主)(위패라고도 부름)를 놓고 거기에 절하며 지방(종이로 만든 신주)에는 현고처사부군신위(顯考處士府君神位)라고 적어 제사 지낸 후 불에 태워버리는데, 이 또한 죽은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의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확언컨대 조상신 제사는 우상숭배로서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가운데 제2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제사는 하나님이 계시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

 



본래 제사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하나님께서 직접 제시해 주셨다. 이 제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전 구약시대에 있었던 것이요(히9:1-7), 또 그 당시의 제사는 오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제사와는 그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의 기원을 인간 편에서 찾을 것이 이니라 하나님 편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성경의 제사는 산 자를 위한 제사이지 죽은 자를 위한 제사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목적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이방인들의 제사는 죽은 자에게 하는 것으로, 그 제사를 받는 대상에 있어서도 전혀 다르다.

 



어쨌거나 율법의 제사제도는 범죄한 인간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절정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그 어떤 계명을 범하는 것보다 더 큰 죄로 취급되었으며, 그에 따른 저주 또한 삼사 대에 이르렀다. 구약의 모세오경이나 역사 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덕적인 죄를 범했을 때는 개인 혹은 그 단체에게 재앙이 임했지만, 우상을 섬겼을 때는 그 민족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거듭 말하지만, 제사는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대로 하나님께만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께만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제사라 했고 신약에서는 예배라 한다.

 



그러므로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해서 화를 면하고 복을 받으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에게 제사를 전해준 중국에는 이미 제사의식이 많이 퇴색외었다. 제사의 본 고향에서도 푸대접받고 이미 사라져가는 의식을 유독 우리민족만이 깊은 애착을 보이며 붙잡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의 전통도 미풍양속도 될 수 없는 제사로 인하여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고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명절이 전쟁 아닌 전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또 하나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다음의 성경말씀을 묵상해보자 :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고전10:20-22)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