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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살립니다(갈2:20;눅1:26-38)

에반젤(복음) 2021. 8. 22. 10:44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살립니다(220;126-38)
성경본문: 갈라디아2:20;누가복음1:26-38
갈라디아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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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26-38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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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년에 우리에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화를 퍼부어 우리 병사와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해병대 두 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도 3명 발생했습니다.
민가 22채가 소실되고 10곳에 산불이 났습니다.
이 갑작스런 공습으로 연평도 760여 주민은 급하게 대피하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휴전이후 처음 일어난 포격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온 국민이 무릎꿇어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할 때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살상의 역사입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죽음의 세력은 계속해서 인류의 존속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매일 지구는 굶주림으로 2만4천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영약한지 만드는 것이 전쟁무기요 발명하는 것이 고문기술입니다.


20세기는 가장 지성적인 세기이면서 가장 잔인한 세기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아르메니안인>이 150만 학살당하고 1990년대 르완다와 수단에서 300만명이 죽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기근,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 난징 중국인 학살, 소련의 강제수용소,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등으로 20세기는 약 100년간 2억명 이상이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엇인가 강력한 죽음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문화와 인지가 발달할수록 전쟁은 더 많아지며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더 잔인하게 죽습니다.
정말 사람 목숨 하나가 허무합니다. 엊그제 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헛되다”라는 말이 특이합니다.
헛되다”는 히브리어 하벨”은 숨을 쉬다라는 뜻을 가진 헤벨에서 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숨에 달려 있습니다.
숨을 쉬면 살아 있고 숨을 멈추면 죽는 것입니다.
들이쉰 숨을 내쉬지 못하면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숨 하나 간격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적 운명입니다.
과연 인류에게는 이 죽음을 막을 대책이 있는 것입니까?
더 이상 전쟁으로 테러로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이 상황에서 또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갈2:20절입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저는 지난 한 주 이 말씀을 붙잡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말씀이 좋긴 한데 과연 한반도의 위기상황에도 의미를 가질까?
과연 이 말씀이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도 의미를 줄까?
십자가에 죽은 하나님의 아들과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오늘 설교는 그 고민과 기도의 산물입니다.
지난 주부터 우리가 묵상한 키워드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가에 대해서는 지난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세상 종교가 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33년 살다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길도 없고 하나님께 갈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몸을 입고 왔습니다.
그때 몸을 빌려준 사람이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 보통은 성모 마리아라고 합니다.
왜 성모입니까?
거룩한 어머니입니다.
왜 거룩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았습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지나치게 예민합니다만, 보통의 정서로만 보아도 성모 마리아는 주목받아 마땅합니다.


우리가 신사임당을 존경합니다. 훌륭한 아들 율곡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훌륭한 자녀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자녀는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잉태하고 열 달을 품어 고통 끝에 낳습니다.
낳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다해 키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이 존경이 훌륭한 자녀의 경우는 더 합니다.
이순신의 어머니, 세종대왕의 어머니, 대통령의 어머니는 우리가 더 존경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얼마나 존경을 받아야 할까요?
<천주교>에서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천주교> 마리아 테오토코스”,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인 것은 문자적으로 맞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천주교>가 믿는 마리아를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천주교>에 의하면 마리아는 원죄없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소위 “마리아 무염시태설입니다.
마리아는 죄로 물들지 않은 채 깨끗하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뿐아니라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죽지 않고 부활, 승천했다고 말합니다.
1950년 교황 피우스 12가 소위 “마리아 부활 승천교리로 선포했습니다.
마리아는 죽어 무덤속에 내려갔으나 썩지 않고 곧 부활, 승천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성경에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2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기독교나 천주교나 변함없이 마리아에 대하여 믿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났고 그 사람이 마리아였다면 마리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리아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로 이 땅에 오기 위해 마리아에게 태어난 것은 큰 은혜입니다.
마리아에게도 은혜요 우리에게도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자로 택함받았으니 은혜요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때문에 은혜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천사가 처녀인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아는 깜짝 놀랍니다.
눅1:34,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없이 아들이 태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그와 아무 관계없이 아이가 태어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마리아가 하도 놀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천사가 오히려 위로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눅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교회 역사 문헌에도 마리아는 평범한 여자로 나타납니다.
초대 교회 원 야고보서라는 외경을 보면 마리아의 아버지는 요아킴, 어머니는 안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부부에게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엘리아가 기도했던 동굴에 들어가 기도하면 영험해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해서 둘이 40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낳은 딸이 마리아랍니다.


탈무드에 보면 마리아는 그 직업이 미용사였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입니다.
신이 아니요 천사도 아닙니다.
놀라고 무서워 하고 쉽게 상처받고 약하고 아플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에게 태어난 것은 마리아가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보통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존재요 우리 자신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뜻도 은혜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를 이스라엘식으로 발음하면 미리암입니다. 그 뜻은 은혜입니다.
보통 사람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면 누구에게서도 예수님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2천년전 예수님을 낳은 한 여자가 아니라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면 우리에게서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2천년에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은 오늘 우리에게서도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은혜받으면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습니다.
갈2:20이 이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누구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내가 스스로 못박힌 것이 아니라 은혜로 못박혔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누구나 십자가에 못박히면 예수님이 대신 살고 예수님이 살면 생명이 시작됩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잉태되듯 누구나 예수님 모시면 생명을 얻습니다.
대상의 제한이 없습니다.
대상의 구별도 없고 차별도 없습니다.


필립 얀시가 요즘 또 하나의 좋은 책을 썼습니다.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
이 책에서 그가 좋은 말을 했습니다.
은혜는 물처럼 흘러 가장 밑바닥까지 닿는다”.
물이 흐르는 원리처럼 은혜도 밑으로 흐릅니다.


높은 데로 물이 흐르지 않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강한 자, 깨끗한 자, 문제없는 자, 완벽한 자, 자신만만한 자에게는 흐르지 않습니다.
대신 연약한 자, 병든 자, 문제많은 자, 죄많은 자에게 흘러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 족보에 창녀가 많습니다.
마1장의 족보에 네 사람의 문제있는 여자가 나오는 것을 아십니까?
유다의 며느리 다말, 그는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 그는 여리고에 머물던 군인들을 대상으로 몸을 팔던 여인이었습니다.
보아스의 아내 룻, 그는 모압 사람입니다.
모압은 암몬과 함께 그 아버지가 딸들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 그는 다윗이 남편을 죽이고 범한 여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예수님의 선조들이라는 것입니다.
물은 밑으로 흐르고 하나님의 은혜도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저는 이번 주에 의미있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 나오는 최진영이라는 학생이 가져온 선물입니다.
지금 제가 차고 있는 넥타이입니다.
최진영은 현재 방통고 2학년입니다.
안산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고2때 자퇴를 했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가출하고 사고치던 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도 엄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우리교회에 나오게 되고 새벽기도때 진영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린 진영이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에게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툭하면 가출하여 집을 나가는 아들 때문에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얼마후 그를 찾았고 교회로 데리고 와 억지로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영이를 위해 여름 수련회를 예비하셨습니다.
예배와 찬양을 통해 그가 은혜를 받더니 드디어 뜨겁게 하나님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진영에게 찬양 사역자의 비전까지 허락하셨습니다.
그날 저녁 진영이는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많은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안아주고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나도 고등학교때 그랬다. 그랬어도 목사만 되지 않았느냐? 힘내라. 괜찮아. 너도 할 수 있어”.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햄버거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월급으로 이 넥타이를 사 온 곳입니다.
제가 처음에는 이 넥타를 찰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 이것은 은혜의 넥타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물처럼 흘러 이 넥타이를 적셨다. , 이것은 은혜의 넥타이다”.
그래서 찼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이렇게 됩니다.
지금은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아버지도 교회 잘 나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눅1:28,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은혜받으면 평안해 집니다.
은혜받으면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예수님을 그 안에 모셨습니다.
마리아에게 은혜가 임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태중에 품게 되었습니다.
저는 41절 보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눅1: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44절도 읽겠습니다.
눅1: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여러분, 이 아이가 누군지 아십니까?
예수님입니다.
지금 마리아가 품고 있는 아이는 예수님입니다.
그가 마리아의 태중에서 뛰노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납니까?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혀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예수님이 삽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주객이 바뀝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나는 객이 되고 예수님이 주인이 됩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나를 다스리고 나에게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그 분이 우리 속에 뛰어 놀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마리아의 몸속에 예수님이 뛰노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마리아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안에 사시는 축복, 신비한 축복이요 은혜로운 축복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안에 예수님이 기쁘게 뛰노는 소리가 들립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리가 들립니까?
그 분이 힘있게 말씀합니까?
그 분이 기쁘게 말씀합니까?
때로 힘들 때 위로합니까?
때로 어리석을 때 지혜를 주십니까?
때로 두려울 때 용기를 주십니까?
내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라” 말씀합니까?
예수님을 품고 사는 마리아의 행복이 곧 예수믿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입니다.


고전1:30이 중요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거룩의 신비는 예수님의 완전함이 나에게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거룩은 점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즉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잘 들으십시오.
거룩은 내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부패한 육체속에 들어와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어느날 은혜로 내게 들어왔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눅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령이 너를 덮으시리니”.
여기에 임한다”, “덮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군대용어로 침략한다. 침투한다. 정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 위에서부터 전격적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배워서 알거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부여받는 것이다. 거룩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거룩은 내가 완전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예수님이 내 속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과 믿음과 겸손입니다.
38절에서 마리아의 자세를 보십시오.
눅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거룩과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은 우리안에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순종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살립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 들어온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우리안에 예수님이 사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안에 가둬놓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해 그 생명을 밖으로 흘러 가게 합니다.
마치 열달 만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자 예수님이 세상에서 능력을 나타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안에 생명 있습니다.
그 생명이 또한 우리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우리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밖으로 흘러가고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세상을 살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어디고 똑같습니다.
2002년에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컸습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앞에는 스탈린이 허물었다는 교회가 아주 크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기독교를 핍박했던 소련 공산당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레닌을 우상으로 숭배하며 세웠던 수많은 레닌 동상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레닌, 스탈린은 그때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교회, 성당의 98%의 문을 닫았고 42,000명의 성직자를 죽였습니다.


큰 성당은 무신론 박물관으로 동네 교회들은 아파트나 헛간으로 개조했으며 어린이들에 대한 종교 교육도 금지시켰고 기도를 시켜도 “스탈린 동무께 기도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끔찍한 소련 공산주의가 75년만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 신앙이 복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긴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국교회를 아십니까?
중국과 예루살렘 사이에 위치한 51개국의 복음화를 꿈꾸며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실크로드를 따라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자 준비중입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중국은 과거에 100만명의 지주를 죽이고 1949년, 7천 명의 외국 선교사, 900개의 기독교 병원과 6천개의 미션스쿨을 하루 아침에 폐쇄하고 추방했습니다.
모택동은 혁명으로 사회주의 신인류라는 새로운 인간이 출현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공산주의자 트로츠키가 이 새로운 인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인간은 무한히 더 강해지고 똑똑해지고 섬세해질 것이다. 몸은 더 조화를 이루고 동작은 더 리듬을 타고 목소리는 더 음악적이 될 것이다. 삶의 형태에 역동적인 신바람이 날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나 괴테나 마르크스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또한 그 등성이 너머로 새로운 봉우리들이 솟아오를 것이다.”.


어떻습니까?
러시아와 중국에 이런 인간이 나타났습니까?
배고프고 굶주린 군중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수 천만, 수억 이상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뿌리가 나무가 낳습니다.
무신론이 무신론자를 낳고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낳습니다.


C.S 루이스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떤 자질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고는 바로 그 자질을 찾느라 늘 아우성이다.
사람들을 냉혈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그들에게서 덕과 바른 정신을 기대한다. 신의를 비웃어 놓고는 배반자가 나온다고 경악한다. 거세해 놓고 그 동물에게 새끼를 요구한다”.
그렇습니다.
유물론은 무신론, 폭력정권, 가난, 굶주림, 영적 기아를 낳다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기고 있습니다.
설령 지금 눈에 띄지 않아도 언젠가 이깁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아들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세계 역사가 한결같이 증언합니다.
중동이 어렵긴 해도 중동도 언젠가 하나님의 아들이 승리할 것입니다.


한 한국목사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십년을 일한 선교사가 그를 선교사의 무덤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서 30년간 일하며서 아프가니스탄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때 개종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바로 옆의 이 선교사가 그를 이었고 자녀들과 함께 여기서 죽었습니다. 그가 25년동안 노력해서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뿌린 씨를 제가 물주고 거름주어 지금은 많은 수확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전 세계적으로 승리하고 있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갇혀 있지 않습니다.
흘러갑니다. 낮은 곳을 흘러갑니다.


북한정권은 어떻게 될까요?
역사에 의지하여 말합니다.
반드시 무너집니다.
공산당이 대단해 보여도 언젠가 소련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썩은 뿌리는 썩은 열매를 맺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공산정권 무너지고 저들의 종주국 러시아처럼 중국처럼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옵소서.
공산정권에 신음하는 내 백성을 건져 주옵소서. 저들은 포탄으로 동족을 쏘았지만 우리는 포탄보다 강한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옵소서.“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평화를 사모해야 합니다.
남북관계를 똑같이 힘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깁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승리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살립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