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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한의 한국 기독교 역사

에반젤(복음) 2021. 8. 21. 05:54
북한의 한국 기독교 역사

[모퉁이돌선교회/모퉁이돌생각] 북한의 한국 기독교사 이해

 
분단 이후 남한 사회는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적인 힘으로 기독교를 이해하여 왔다면, 북한 사회는 민중의 자주성을 마비시키고 사회주의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으로 기독교를 이해해 왔다.

이렇게 남․북한이 기독교에 대한 이질화가 극명하게 나타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가? 북한의 부정적 종교이해는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종교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역사적 배경에 근거하고 있다.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 들어선 소련 군정과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정권은 북한 지역에서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였던 기독교가 종교적 관점에서 반공주의 행태로 정치적인 충돌을 일으켰다. 그러자 북한 정권은 기독교 세력을 포함한 종교들에 대하여 "반동적" "반혁명적" "반민족적" 세력으로 간주하여 종교 탄압, 말살로 도식화되어지는 종교 탄압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종교 탄압 정책의 실례로 기독교 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1950년 3월 30일 당시 기독교도연맹 총회가 북한의 모든 교회들을 기독교연맹에 가입시킬 것을 결의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 장소가 놀랍게도 1938년 9월 제 27차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정했던 평양 서문 밖 교회이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미 제국주의와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북한 역사학계가 한국기독교사에 관련된 부분을 서술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북한 문헌《근대조선역사》를 살펴보면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땅에서 순교한 첫 선교사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목사의 행적이다. 그가 타고 온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호 소각 및 선원 몰살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의 원인이 되었으며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명한 사건이다. ) 북한 문헌은 이 사건을 '영국 신교목사 로버트 토마스를 비롯한 세 놈의 침략자들이 육지로 기어 나와 부녀자들을 폭행하자 이에 격분한 평양 군민과 김일성의 증조부 김 응우가 창발적인 전법을 발기하여 제너럴셔먼호를 격침시켰다'고 꾸며 김일성 일가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근거로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북한이 이 사건을 통해 기독교를 '제국주의의 침략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해외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한 후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권서인(權書人 : ‘권서’란 책을 사서 읽도록 권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경책이나 전도 책자를 파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단순히 성경만 판매한 것이 아니라 전도자, 교사, 설교자의 역할을 감당하므로 초기 기독교회를 창건한 주역이 되었다.)들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는 성경 번역과 발행 및 배달(전파) 사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수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을 일찍이 우리말로 번역해 냄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복음을 수용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사학계는 이러한 성경번역과 배달 및 문서선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조선에 기어든 구미자본주의 침략자들은 종교의《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여 퍼뜨리고 우리말의 독자적 기원과 그 형성의 단일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날뛰었으며…… ”

한국인에 의하여 성경을 번역한 사실조차 삭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마치 성경번역이 한글의 단일성을 말살시키려 한 것처럼 평가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 문서선교가 오히려 한글 보급에 앞장섰으며, 일반 지식 보급 및 개화사상 보급, 민족주의 사상을 심어주는 데에도 지대한 공을 남겼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중 하나인 의료 및 교육 사업에 대하여 북한의 역사학계는 이러한 의료 및 교육 활동에 대하여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근대조선역사》는 '민족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숭미 사상을 퍼뜨려 앞으로 조선 강점의 사회적 기반을 닦으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심지어 지방의 기독교 병원에서 선교사들이 의료사업을 빙자하여 조선 사람들을 '실험과 실습'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조작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 역사학계는 선교사들의 의료와 교육 사업에 대해 그 긍정적인 활동과 공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지나친 역사왜곡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