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선교의 창

선교사의 일곱 가지 평가

에반젤(복음) 2021. 7. 21. 01:26

선교사의 일곱 가지 평가

 

본국에서나 현장에서나, 연말이 되니 마음이 분주해지고 바빠진다.

그럴수록 자신과 사역에 대한 평가를 해보는 것은 타국에서 현지인들을 가르치며 미래를 살아가는 지도자의 필수 사항이기에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생각해본다.

공적인 평가는 사역에 대한 것이다. 금년 한 해 동안 무엇

을 위하여 세월을 보냈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열심히 행한 일이 자신의 명예와 후원을 위하여 분주하게 활동하지 않았는지, 현지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고 지도자를 양육하는 일이었는지를 정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사적인 평가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인격적인 성장을 이루었는가? 성경은 얼마나 읽고 공부하였는가? 지적 성장을 위하여 한 달, 1주일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 자녀교육과 부부간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얼마나 구체적인 노력을 하였는가? 지도자로서 반드시 평가하여 내일을 준비할 일이다.

 

1. 개인 영성, 영성 훈련은 일반적으로 묵상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습관적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아침에 대략 30분 묵상을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영성 생활을 유지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종교화된 것이고, 신앙생활의 한 방편으로 굳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리라.

영성 생활은 묵상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말씀에 대한 연구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최선의 영성 생활인 것을 필자는 경험한다. 말씀의 깊이와 지식의 넓이에 따라 생각이 변하고 태도가 바뀐다. 아는 만큼 행동이 나오게 된다.

 

영성 생활의 중요한 한 면은 독서이다.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소중한 한 권의 독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지나치게 성경만을 고집하여 영성을 강조한다든지, 지나치게 세속적인 가치관에 영성을 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균형을 이룬 영성 생활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2. 선교 언어, 언어는 생명이다. 특히 해외에서 사역에 임하는 자들에게 언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선택사항이 아니다. 언어는 세월이 갈수록 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연륜으로 따질 때는 오랜 세월을 자랑하고 싶지만, 언어에 관한 질문 시에는 세월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처럼 언어는 늘지 않고, 또한 중년을 넘기면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언어를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역이 시원치 않고, 언어가 부족한 사람들은 사역에 적극적인 것을 보게 되는데,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좀 한다는 사람들을 향해 발음이 이상하다거나 문법이 이상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설교는 통역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를 좀 구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통역설교는 절반도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을 하면서 불가하다고 말한다. 현지 통역자들은 선교사들의 언어를 무시한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노력을 귀하게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언어에 있어서 설교와 강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만 이룬다 하여도 사역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세월이 5년 10년을 지나면서도 통역을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다. 나이 때문에 어떻게 안 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언어에 목숨을 걸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가정과 자녀교육, 마틴 루터는 자녀를 교육하지 않는 부모는 지옥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한다. 가정의 문제는 역시 자녀교육이 가장 중심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대부분 나름대로 고민하며 교육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각 부모의 교육철학과 가치관에 의하여 진행되는 일이기에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구체적인 교육인가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가정예배를 할 수 있다면 신앙적 가정일 것이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구체적인 교육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다. 성경 전체에 대한 교육을 계획적으로 한다든지, 성경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든지, 성경의 인물을 한 해에 20명씩 가르칠 수 있다든지, 책별로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면 목표를 가진 신앙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함께 교육하고 그들을 구체적으로 지도할 만한 시간은 대학을 진학하여 기숙사에 가기 전까지만 기회이다. 대학에 진학하면 자녀들은 그들의 세상을 살아간다. 부모의 손을 이미 떠난 자녀들은 말씀에 의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있을 동안에 실제적인 목표를 가지고 교육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부부간의 문제야 매우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행복하게 부부 생활하면서 사역을 감당하는 가정이 많지 않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현지사회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혹은 개인의 삶의 문제로 또는 인격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가정 속에 보이지 않는 무너짐과 상처가 매우 깊은 것을 곁눈질하게 된다. 모두가 의식을 가지고 서로가 개발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평생의 과제가 아닌가?

 

4. 대인관계, 자기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만남이 대인관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많은 스침을 가지고 산다. 스침만 있어도 인연이라고 불자들은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대인관계는 스침의 관계가 아니다.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어야 한다. 인격의 만남 속에 그리스도가 개입이 되어야 한다. 만남 속에 서로를 격려하고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만남이라고 한다.

 

사역지에서 살다 보면 이러한 만남을 갖기가 쉽고도 어렵다. 일상적인 인사하는 정도로 만남을 갖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한다는 사실은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다 함께 만나고 좋은 교제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치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필자는 MBC 독서클럽을 통하여 가치와 생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주의 뜻을 찾아 고민하는 모임이 있다.

 

선교 현장에서 두세 사람이라도 가치 있는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만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개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인관계를 얼마나 활발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매우 위험하다.

 

5. 사역점검,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이 필요로 하는 사역인가를 먼저 점검하여야 한다. 5년 10년 20년 사역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의 사역이 나의 필요나 한국교회의 필요가 아니라, 현장이 필요로 하는 일인가에 정확한 대답을 하여야 한다. 어느 지역이나 현장이 요구하는 사역이 있다. 오직 선교사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러한 일을 찾아 행하여야 할 것이다. 한 예로, 가정사역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사역인 것을 보게 된다.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사실 이 일에 뛰어드는 이가 적은 것은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마약환자나 알코올 중독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다. 이러한 일에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또한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이 현지인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를 점검하여야 한다. 더러는 현지인이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붙잡고 있을 때가 많다. 많은 경우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지 않고 혼자서 다 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도 역시 선교의 기본 개념이 정립이 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6. 선교신학, 요즘 한국형 선교니 서구형 선교니 하면서 논란이 많다. 많은 선교세미나 속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강의하는 강사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니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학자들의 소임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강의하는 것이 목적인지는 모르겠다. 항상 느끼는 것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닌 것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오늘 나의 사역현장에 도전을 준다든지, 새로운 지식을 나눈다든지, 깨우침을 주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장에서 독서클럽을 통하여 신학서적과 선교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정립해 나간다. 현장의 문제들과 선교단체, 교단선교의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면서 대안을 찾아보고, 좋은 것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모색하면서 사역에 임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방법이 각 선교지에서 활성화될 수 있다면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교의 방법이고 도전이고 비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장을 깊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지도자들이 현장을 논하는 일은 어불성설, 선교는 실제적인 비전을 찾아나간다면 거기에는 신학적인 논의가 진행되게 되어 있다.

 

7. 나는 게으른 종이 아닌가? 선교사역은 자칫 잘못하면 놀고 먹는 일에 익숙해질 수 있다. 한국에서 보면 대단히 열심인 것처럼 보이고, 현장에 사는 것만도 훌륭한 선교라고 위로를 하지만, 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대부분 스스로가 결정하고, 간섭하거나 보는 이가 없는 사역지에서, 매우 게을러지기 쉬운 것은 일반적이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잡다한 일들로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사역에 대한 계획이 분명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자식교육에 집중하다 보면, 연륜으로 인하여 헌신도가 떨어지게 되면, 현장에 대한 적응으로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면, 건강을(?) 이유로 본국을 자주 출입국하다 보면, 여지 없이 밥만 축내는 게으른 종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심히 경계할 일이니 자신을 평가해 볼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반복되는 말이지만, 나의 사역과 삶이 현지교회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현장이 요구하는 사역에 대한 이해와 헌신도가 있는가? 전략적 관점으로 필요한 사역이 무엇인지를 구분하고 여기에 대한 헌신을 하고 있는가를 끊임 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선교사로 헌신하여 수고하다 철수하거나 목회사역으로 본국 귀환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본인이 사역하였던 지역의 동료나 교회에 후원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것은 서로가 깊이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일로 살필 것이 많다. 한국인 사역자들은 평가에 매우 약하다. 그러나 평가란 미래를 준비해가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냉정하게 자기의 부족한 바를 살피고 불필요하고 비본질적인 사역을 구분하는 과정이다. 필자는 상징적으로 대략 일곱 가지로 나누어 보았지만, 각 자가 자신의 생활과 사역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많은 기도와 재정후원을 받으며 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역 자이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항상 여유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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