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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온 백년의 예배, 다가올 새 천년의 예배
조 기 연 (서울신학대학교 전임강사)
(이 글은 월간 "기독교 사상" 제 491호 (1999:11월) P. 26-37에 게재된 논문입니다. 각주가 필요하신 분은 위 책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들어가는 말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 온 지 벌써 110년이 넘었다. 처음 선교사들이 복음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에는 그 시작이 아주 미약했었지만, 100년의 세월을 거쳐오면서 한국교회는 놀랄만하게 성장하였고, 그 신속한 성장에 세계의 교회들이 감탄해 마지않고 있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북미의 선교사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들이 복음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서 사람을 전도하고 그들에게 예배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에 의해 예배가 형성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긍정적인 면)
열심있는 예배- 예배 회수가 많다. 청교도적 유산 엄격한.
헌신있는 예배- 예배를 위해 시간을 내고, 헌금을 많이 한다.
경건을 강조하는 예배.
1. 전도집회식 예배
선교 초기의 선교상황을 고려한 것. 물론 이는 당시 미국의 상황이기도 하였다. 목사가 없이. 선교사의 수는 한정됨. 평신도 지도자가 예배를 인도하는 상황을 상정한 예배형식을 취함. 1891의 규범집(김경진 77)은 미국 개척자 예배 시대와 비슷. 설교는 복음을 설명하는 시간.
모펫(H.A. Moffet)은 1895년에 {위 원입교인 규조}(Manual for Catechumens)라는 것을 출판했는데, 이는 미국의 {구도자 교본}(Manual for Enquirers)를 직접 번역한 것이었다. 이 책은 여러모로 한국교회의 예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나오는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찬송-기도-성경봉독-회중의 기도(회중 중에서 한 두 사람이 기도함)-찬송-성경으로부터의 교훈- 기도-봉헌 찬송. 이 예배형식은 선교사 없이 지교회의 평신도 지도자가 소규모의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상정하여 만들어진 예배형식이었으나 이후 모든 지교회 예배 형식의 표준이 되었다. 성경으로부터의 교훈은 목사가 없으므로 설교를 대치한 것이며, 축도 역시 생략되고 찬송으로 끝맺는다.
클라크 목사가 제시한 '주일 대예배'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예배에의 부름-고백(시51편등)-찬송-성경봉독(연속적으로 읽는 본문)-신앙고백-찬송-성경봉독(설교를 위한 본문)- 공중기도-찬송-봉헌 및 기도-광고-찬송-설교-설교후 기도-찬송(송영)-축도-묵상.
순회전도. 노방에서 설교를 하고 그것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형식. 그러므로 예배의 형식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설교 시간에 심지어 질문도 가능했다. 즉석설교. 특히 저녁예배는, 말이 예배이지, 그것은 주로 흥미를 갖고 온 초신자들에게 신앙의 기초에 대해 성경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초기 선교사들의 언어의 제한성은 한국교회의 예배가 단순하고 비공식적(informal)인 예배로 형성되게 한 또 하나의 원인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같은 예배유산을 받았고, 같은 상황(북미)에서 왔다. 당시 북미의 "개척자 예배"(Frontier Worship)라는 것도 18세기 대 각성운동(Great Awakening)과 부흥운동(Revival Movements)을 통해서 도출된 것으로서 초교파적인 천막집회를 통해 형성되었다.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예배에 "개척자 예배"를 도입하였다.
또한 한국 땅에 도착해서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배는 단순함과 비공식성에 있어서 공통적이었다.
네비우스의 내규 section A Chapter VII를 보자. "주일날 지교회에 정식 설교가 없을 때에는 지교회 지도자 혹은 장로가 진행하거나 혹은 자격이 있는 사람을 초빙하여 예배를 진행한다. 예배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성경봉독, 기도, 짧은 권면, 그리고 특별히 선교사에 의해서 미리 지정된 성경본문을 가르칠 것."
특히 한국 장로교회는 1922년에 {예배규범}을 출판하였는데, 이는 미국 남장로교회의 예배규범(Directory of worship)을 그대로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는 대단히 '비 예전적인 전통'(non-liturgical tradition)에 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것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예배의 원리를 따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며, 이것이야말로 극단적 예전주의와 부흥운동(극단적 비예전주의) 사이의 중도적 입장이라고 생각되었다.
공중 기도(회중 대표기도)- 클라크 목사는 예배기도를 설명함에 있어서 다음의 여섯가지 범주를 포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경배- 감사-죄의 고백-사죄와 하나님과의 평화를 구하는 간구-성서적 원리에 따른 간구-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및 간구. 그러면서 그는 덧붙이기를 이 기도는 8분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제시하면서 5분 정도로 제한하라고 권장하였다. 문제는 이 기도가 현대에 이르러서 평신도 대표가 하는 하면서 심지어 '광고'까지 포함하는 '잡탕'기도로 변질되었고, 너무 길게 함으로써 예배를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골의 목사가 없는 작은 교회에서는 평신도가 회중의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성공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제 선교 100년을 맞으면서, 목사는 넘쳐나고 있다. 목사 없는 상황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예배는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2. 회개의 영성을 강조하는 예배
*** 전도집회식 예배의 특징은 회심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개를 강조하게 되었다.
설교 중심의 예배 상황에서 설교의 방향은 언제나 개인적 초청을 유도하는 것이엇고, 이를 위해 '참회자의 좌석'(mourner's seat)을 두었었다.
여러모로 볼 때에 1907년의 대부흥운동은 한국교회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성경공부와 기도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성경공부 모임에 기도회가 접합되면서 한국교회 특유의 사경회가 시작되었다. 당시 부흥회의 모습은 대략 이러하였다: "대개 설교가 시작되면 남자와 여자들이 일어나서 각자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성경의 매 구절들이 사람들의 심령을 쪼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회가 끝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은 심령의 평화를 발견했으며 용서와 깨끗케 됨의 확신으로 즐거워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의 부흥회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공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인데, 특히 이것이 예배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한국의 회중들은 사죄와 깨끗케 됨을 발견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특히 이것 역시 장로교적인 요소로서, 칼빈은 '회개를 통한 중생이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였었다. 한국교회의 예배 형태에 있어서 장로교, 감리교 하는 식의 교파적 특성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클라크가 제안한 예배형식은 처음 부분에 '죄의 고백'을 위치시켰는데, 이는 칼빈이 1540년 스트라스버그 예배의식과 1542년의 제네바 예배의식에 나타났던 형식이다. 장로교 형식.
1893년의 {성경문답}은 "주님의 만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주님의 만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은 어떻게 행합니까?" "쪼개진 빵을 나누고 포도주의 잔을 나눔으로써 행해지며,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찢어진 몸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 주님의 죽으심에 강조점이 있을 뿐, 주님의 만찬이 주님 부활을 경축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 창조에 대한 감사, 천국잔치의 미리 맛봄 등에 대한 개념은 아예 없다.
주일의 개념- 1984년에 채택된 "한국 현지교회를 위한 규율"(Rules for the Native Church in Korea)는 새 신자가 세례 받을 때에 몇 가지 사항에 동의하도록 서약을 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주님의 날은 안식일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날이므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일하지 않겠습니다. 주일날은 생업이라 할지라도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 이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겠으며, 6일 동안에 힘써 일하고 이 날은 엄격하게 지키겠습니다." - 주일의 개념이 안식일에 그치고 있다. 이는 초대교회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기 위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모였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참된 주일 예배의 정신은 바로 그리스도 부활의 경축이다. 안식일이 아닌 것이다. 디다케는 주일을 제 8일이라 하였다. 이는 이 세상에 없는 날이라는 뜻이며, 이는 다시 말하면 "저 세상의 날, 즉 천국의 날"을 뜻한다. 그러므로 주일날의 예배와 교회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서 천국을 사는 것처럼 기쁘고 즐겁고 감격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예배를 계획하고 교회생활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부흥회식 예배
두 전통- 사경회 전통과 부흥회 전통. 예배의 관점에서는 같은 결과를 가져옴.
만주- 성경공부 중심, 국내- 네비우스의 사경회, -모두 청교도 전통의 성경중심 사상이다. 여기에서 예배는 단순화되었다. 그저 찬송, 성경읽기 및 설교, 그리고 기도 등의 순서 정도였다.
사경회라는 성경공부 모임에 "기도 주간"이 연계되어 한국교회 특유의 부흥회가 생겨남. 매일 저녁에 성경공부가 진행되는데, 이 때에 복음적이이고 부흥회적인 예배가 열렸다. 당시- 한 도시를 구역을 나누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도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전도를 한다. 오전에는 성경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심방을 한다.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낮에 전도한 사람들이 밤에 모이면 이들을 데리고 또 집회가 열린다. 물론 밤의 집회도 성경공부 형식이지만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불신자들이므로 주로 그들을 회개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물론 저녁에는 이를 위해 적합한 인물을 초빙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은 4일 혹은 10일까지 계속되며, 거의 모든 교회에서 연례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때에 신자들은 자기들의 나이와 신앙경력 그리고 경험 등에 따라서 다양한 반으로 나뉘어 공부에 참여하게 된다. (오전) 3시간의 성경공부, 헌신의 시간, 대규모의 저녁 집회, 그리고 새벽 기도회 등이 주된 프로그램이었다. 사경회는 한국교회 특유의 예배형태가 되었다. 이 모임으로부터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 출현하게 되고, 이 대부흥훈동이 한국교회 예배형태를 결정짓게 된다.
초기 한국교회의 지배적인 예배형식은 공식적인 예배보다는 오히려 성경공부와 기도회였다.
기도회, 기도주간(Week of prayer). 성경공부가 설교를 대치함. 개인의 경험과 인격적 회심을 목적으로 함. 감정적 회심을 유도. 설교의 방향은 개인의 예수영접.
선교초기에 긍정적 역할. 부흥의 원인.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감정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현재 행해지는 부흥회는 초신자나 불신자가 아니라 기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들의 헌신을 제고하는 좀더 심도있는 사경회나 다른 방안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4. 실용주의적 예배
예배학자들의 일치된 예배개념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예배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이다. 전도하기 위한, 회심체험하게 하기 위한, 성장하기 위한. 클라크 목사가 1919년에 출판한 {목사지법}에 의하면 주일 예배의 목적은 사람들을 "형벌과 죄의 더러움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든지 하는 개념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 예배에서 하나님은 없고 인간만이 있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 하는 예배에 관한 논의 및 예배계획도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예배를 바꾸기 위해 전기 기타와 드럼 세트를 강단에 올리느냐 마느냐 하는 것도 단순히 새로운 것이니까, 아니면 현대의 추세니까, 또는 회중이 좋아하니까 하는 식이다. 예배학적으로 그것이 타당한지를 살피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선교 초기부터 나타났다. 클라크 목사가 쓴 {목사지법}에서 찬송 부를 때의 자세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설교 직전에 하는 찬송은 일어서서 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회중들로 하여금 설교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고, 설교 후에 하는 찬송은 서서 부르면 안되고 앉아서 불러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찬송 다음에 축도가 이어질 때 우왕좌왕 함으로써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찬송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서이므로 서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앉아서 해야 된다거나 하는 관점이 아니라, 순전히 그 앞뒤에 오는 순서를 고려하여 편의적으로 자세를 결정하는 것이다. 선교사들로부터 이렇게 예배를 배운 한국교회가 그 후로 예배에 관한 모든 것을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성장에 도움이 된다든가, 하는 식.
5. 인간에게 의존하는 예배, 인간이 중심이 되는 예배
전도집회 형식의 예배에서는
1.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 하나님의 은총이 설교를 통해서 오므로, 설교를 잘 하느냐 아니냐가 은혜를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회중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설교자에 따라서 회중은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사람(목사, 특히 목사의 설교능력)에 의해 차단된다.
출판 기념 예배, 임직 예배, ->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고 오직 인간만이 찬사와 영광을 받는다. 각종 임직 예배 -> 각급 기관의 임원들이 강단 위에 놓인 큰 의자에 앉아서, 저마다 한번씩 나와서 설교와 격려사 등을 한다. 과연 존엄하신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일까? 사람을 위해서 순서를 집어넣는 일은 없는가?
2. 또한 개인의 인격적 결단과 영접을 강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주권은 약화된다. 결국 사람 개개인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가 좌우되고 결정된다.
3. 회중 기도- 많은 요구사항들로 인해 기도의 핵심이 하나님 찬양과 감사가 아니라 인간의 축복과 풍성한 삶에 있다. 인간본위의 예배로 전락시킴.
4. 기복적 신앙, 샤마니즘적 영향, - 한국교회의 예배에서 '성령'을 강조하는 것은 과연 무슨 동기에서인가? '성령의 능력' '성령충만' 등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성령의 힘으로 '내가 잘 되고,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닌가? 이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와 비교된다.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는 빵을 떼어주시고 잔을 나누어 주심에서 잘 나타나듯이, 그렇게 세상을 위해 당신의 몸을 주신 주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 중심 내용이었다. 나를 한알의 밀알로 여기고, 나를 희생해서 남을 위하는 영성이 바로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이다.
7. 서양식의 예배
한국 땅에서 드려지는 예배이지만 한국의 예배가 아니다. 민족적 요소가 예배에 없다. 기도, 찬양의 Narrative 속에 서양과 이스라엘의 것만 있을 뿐 '우리'의 것이 없다. 우리 민족의 역사, 한국의 역사가 들어가야 한다.
의복- 심지어 '양복'을 예복으로 사용하며,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면 경건한 복장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도 많다. 예복을 입지 않으려면 차라리 '한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차라리 한복의 두루마기를 입고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찬송가 - 한국 교회의 찬송가는 특히 민족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초기에 제작된 찬송가 중의 하나는 1894년 언더우드가 편찬한 {찬송가}인데, 여기에는 주로 18세기와 19세기 영미의 찬송가들이 주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은 전체 117 곡중 7곡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의 찬송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계속할 것)
클라크 목사는 한국사람이 작사하고 한국의 전통 가락에 맞춘 찬송가 도입을 지지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한국 악기 예컨대 거문고 같은 사용을 권장하였지만 역시 통용되지 못했다.
예배당 건축, 등에서도 우리의 것이 거의 없다.
민경배 교수의 말대로, 초기 한국교회에는 민족 교회(national church)와 선교사 교회(missionary church) 이렇게 두 가지 기류가 있었는데, 이 양자 사이에 긴장이 있었으며, 1907년의 대 부흥운동 이후 선교사 교회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민족적 요소 결핍-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조상제사를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1893년에 네비우스가 작성한 {그리스도문답}은 초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교리문답서이다. 여기에는 조상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문 (127):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향을 피워야 합니까?
답: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 (128): 그러면 왜 사람들이 불교 경전을 읽거나 불경을 드릴 때 향을 피웁니까?
답: 그것은 쓸데없는 짓이며, 옳은 일이 아닙니다.
문 (152): 그리스도인이 조상제사를 드리는 일이 옳은 일입니까?
답: 조상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은 쓸모없는 일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납니다.
1893년 같은 해에 작성된 {성경문답}에서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문(56) :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합니까?
답: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꿇고 절해야 합니다.
문(57) : 그리스도인이 죽은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할 수 있습니까?
답: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죽은 자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관습이 한국 개신교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었고 준수되었다. 조상제사는 한국사회에서 큰 이슈이다.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이다. 그런데 초기 선교사가 정한 후로 그대로 따라해 오면서 100년이 흘렀다. 이제는 공개적 논의와 공식적 결정을 해야 한다.
대 부흥훈동이 한국교회의 예배에 도입한 요소들이 많다. 공적인 죄의 고백, 통성기도, 산상기도, 새벽기도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한국의 문화적 산물이다. 새벽기도는 새벽에 일어나 치성을 드리는 무속종교에서, 통성기도는 무당이 굿을 할 때에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바라는 내용을 비는 의식에서, 산상기도는 산속의 큰 바위나 암자 등에 찾아가서 비는 행위 등을 익히 보아 친숙하게 느끼는 한국인의 정서와 결합한 것이었다. 추도예배 또한 한국인의 유교의 조상제사, 그리고 무속종교의 조상과 관련된 의식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공개적인 토론이나 공식적인 결의가 없이 수용되어 퍼지기 시작하였고 한국 기독교 100년의 역사 동안에 그대로 실행되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는 깃점에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것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쳐서 새로운 신앙고백의 토대 위에서 확실하게 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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