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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기독교의 역사

에반젤(복음) 2021. 7. 14. 02:27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기독교의 역사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된 후에 기독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이동되었습니다. 콘스탄틴(272-337) 대제의 기독교 공인에 따라 로마제국의 격투사와 같은 ‘비기독교적인’ 관행이 종적을 감추게 되었고, 잔인했던 십자가 사형제도도 폐지 되었으며, 일요일은 교회가 정한 안식일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2세기 중반까지 초대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기독교 경전은 구약성경 뿐이었습니다. 일부 교부들이나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이 언급하기 시작한 바울 서신과 복음서의 단편적인 내용은, 구체적인 필사본에 근거한 것이기보다는 주로 구전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인용하였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폴리캅(서머나 교회), 저스틴, 이레네우스가 있었으며, 2세기가 마감되어 가던 시기에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클레멘트 (Clement)가 있었다고 합니다. 3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탁월한 사상가 오리겐(Origen)이 있었다고 합니다.

2세기 중반 파피아스(사도 요한의 제자)와 폴리캅의 시대에 이단자 마르시온의 도전으로 신약성경의 정경화 채택이 불가피해졌다고 합니다. 363년 초대교회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 정경채택을 위한 회의가 라오디게아 교회(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중에 하나)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 시릴의 영향을 받아 요한계시록을 뺀 지금의 신약성경 26권이 교회의 정경으로 채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363년의 결정은 4년 후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절기에 대한 정확한 날자를 통보하기 위한 아타나시우스의 편지가 367년 이집트의 교회로 우송되었는데, 이 편지의 내용 가운데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지금의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공식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약 300년 동안 진행되던 경전화의 과정이 일단락되고 기독교의 경전인 신구약 성경 66권이 최종적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66권으로 구성된 신구약 성경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착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아타나시우스의 공헌이 크지만, 이를 정착시킨 것은 히포(북아프리카)의 대주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St.Augustinus,354-430)(영어로 Augustine)의 후원과 384년 제롬(라틴 교부)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볼게이트 성서가 중세교회에서 공식성경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93년 히포에서 열린 종교회의와 397년 칼타고(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 위치), 그리고 419년에 다시 열린 칼타고 종교회의에서 어거스틴(Augustine)의 후원 아래 27권의 신약성경이 다시 정경으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삼위일체설’ 교리는 니케아(현재 터키의 이즈니크)와 콘스탄티노풀(현재의 이스탄불) 공의회의 신조에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이 삼위일체설을 위시한 니케아 신조의 채택에 있어, 콘스탄틴 대제의 국가권력이 개입됨으로써 신앙외적인 정치적 요소가 기독교 신앙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제 410년에는 고트족(게르만족의 한 민족)이 영원한 도시 로마를 함락시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로마의 멸망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로마는 기독교를 공인하였고 로마의 공식종교로 탈바꿈했습니다. 우상의 나라였던 로마는 명실상부한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국가의 신으로 모시면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다라는 기대를 깨고 로마는 그들이 멸시했던 미개인들에 의해 처절하리만큼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멸망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교도들은 입을 모아 기독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재난을 피해 도피길에 올랐던 수많은 이탈리아 교회의 지도자들은 재난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 함구하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도피길에 오른 로마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퇴각로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배를 타고 시실리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피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던 기독교는 역사에 대해 올바른 성경적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기독교를 이끌고 있던 히포의 주교 성 어거스틴은 로마인들의 원망과 기독교 교인들의 자책감에 대해 명확한 성경적 신학적 답변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주교들이 로마의 함락에 대해 침묵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은 이탈리아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이여, 상심하지 맙시다. 이 지상의 모든 왕국은 언젠가는 끝이 오기 마련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아마도 그 마지막이 아직 오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하여 볼 때, 그 마지막이 오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어거스틴은 당시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상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다 라는 잘못된 국가관을 바로 잡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들이 속해야 할 곳은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한다 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1). 이스라엘엔 성전신학이란 게 있습니다. 성전신학을 달리 예루살렘 신학이라고도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나쁜 짓을 범했어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외세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해서 초토화되어 전세계로 추방당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내 말을 바르게 지키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내가 실로에 행한 것처럼 (여기서 실로는 하나님의 성소가 있었던 곳 즉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일 중심지를 말합니다) 내가 에브라임에 행한 것처럼 (여기서 에브라임은 북쪽 10지파 나라를 말합니다) 너희들도 내칠 것이다. 이게 예레미야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2). 로마의 사람들도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에 교회를 많이 짓고 기독교만 믿으면 하나님이 로마를 지켜주실 것으로 믿었군요. 그러나 로마제국도 귀족들의 불법과 문란으로 인하여 476년에 고트족에 의해서 멸망당하였습니다.

(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였습니다. 주님보다 6개월 먼저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도 제일성이 회개하라 였습니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마음이 패역해서 회개가 안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공부를 안해서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성경말씀을 읽고 고민하고 자꾸 읽어서 거기서 죄가 깨달아지는 것이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4). 본인의 체험으로는 로마서를 100독 하는 중에 로마서가 죄에 대해서 얼마나 논리적인지 어느날 서서히 내면으로부터 마음 속으로부터 죄가 깨달아지고 한동안 얼굴이 부끄러워져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악기를 동원하고 광적으로 소리를 크게 지르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손뼉을 치고 인위적으로 흥분하고 감정을 유발하여 억지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경 알기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하는 짓이기 때문이지요. 2014.10.10에 한국 최초의 해외선교사 방지일 목사님은 103세로 소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중국 선교 20년만에 돌아오셔서 한국교회들의 부흥회를 보시고 소감을 피력하셨다고 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진지한 성경공부를 통하여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