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시간/가정을 위한 글

자녀의 체벌에 관한 개혁주의적 견해

에반젤(복음) 2021. 6. 15. 04:37

자녀의 체벌에 관한 개혁주의적 견해

 

신원균 교수(분당한마음개혁교회,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회장,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이 주제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1. 징계라는 이유로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 하는 것--가정, 학교, 교회에서 아이들을 폭행하는 것, 가정폭력으로 자녀들이 죽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2. 인권이라는 이유로 어떤 훈계와 징계(체벌)도 거부하는 것--자유주의, 인권주의가 방임과 방종으로 치닫게 하는 현실의 위험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3. 개혁주의는 어떻게 할 것인가?--개혁주의는 5계명에서 부모와 자녀의 의무를 이해해야 하고, 일반은총 안에서 국가와 사회의 보편적인 체벌 인식 수준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 때 기독교 안에 “(잠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잠23:14)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안찰’ 기도나 죄에 대한 억압으로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 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종교적인 폭력으로 신체적 장애를 겪기도 하고 급기야 생명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폭력을 정당화 하는 문화는 한국의 유교문화와 군대문화(상명하복)와 겹치면서 국가와 사회적으로도 무분별하게 적용됐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초등학교 때 특공대 나온 담임 선생님께 머리박기 처벌을 단체로 받은 기억도 있고, 중고등학교 내내 대부분의 학생이 맞으면서 학교생활을 한 기억은 매우 힘들고 아픈 기억입니다.

반대로 최근에는 진보정부와 목사들이 인권정책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모든 부모의 체벌권을 금지하는 형태로 나가고 있습니다. 양극단 모두 성경을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의 정당한 체벌과 훈계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런 징계원리는 국가로 확대되어 사형제도와 전쟁 수행권을 위정자에 허락하기도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권을 적용하여 사형과 전쟁, 자녀훈계를 제거하는 것은 개혁주의적 입장이 아닙니다.

종교폭력과 방종적 극단적 인권 개념은 모두 위험합니다. 개혁주의는 우선적으로 5계명 안에서 체벌원리를 이해합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지만 부모에게 허락된 징계권과 체벌권은 자녀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억압하고 강제하는 폭력적인 훈육이 아닙니다. 이 체벌권은 반드시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는 5계명 원리 안에서 적용돼야 합니다. 즉 징계권은 부모에게 허락하되 철저하게 제한하고, 억제된 형태로 진행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화의 방식은 5계명에 대한 대요리문답 설명 129문에서 “잘못하는 자들을 바로 잡고, 책망하고, 징계하며”라고 하여 징계권을 허락하지만 130문에서는 “그들을 부당하게 징계함이며, -- 그들을 노하도록 격동시키는 것이며, 혹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들을 욕되게 하거나, 불공평, 무분별, 가혹”하게 행동하는 부모의 잘못된 체벌과 훈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요리문답이 사용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잠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벧전2: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벧전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웨스트민스터 총회원이었던 윌리엄 구지(William Gouge; 1575년 - 1653년)는 이 조화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불쾌한 얼굴을 하는 것, 말로 위협하고, 욕을 하는 것, 손찌검이 지나치게 심한 것, 징계가 너무 과도한 것,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 필요한 물건을 지나치게 제하하는 것과 같은 일로 너무 엄격하고 가혹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Gouge, Demestical Duties)

대요리문답의 5계명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 129. 아랫사람들에 대하여 윗사람들에게 명령된 것은 무엇인가?

답: 윗사람들에게 명령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그들이 서 있는 인륜관계에 따라서 그들의 아랫사람들을 사랑하고,(1)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2) 축복하며,(3) 그들을 가르치고,(4) 권고하고, 훈계하며,(5) 잘하는 자들을 격려하고,(6) 칭찬하고,(7) 포상하며,(8) 잘못하는 자들을 바로 잡고,(9) 책망하고, 징계하며,(10) 그들을 보호하고 영혼과(11) 몸에(12)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13) 것이며, 그리고 정중하고, 지혜롭고, 거룩하고, 모범적인 태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14) 스스로를 명예롭게 함으로써,(15)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권위를 보존하는 것이다.(16)

(1) 골 3:19 (2) 삼상 12:23; 욥 1:5 (3) 왕상 8:55, 56; 히 7:7; 창 49:28 (4) 신 6:6, 7 (5) 엡 6:4 (6) 벧전 3:7 (7) 벧전 2:14; 롬 13:3 (8) 에 6:3 (9) 롬 13:3, 4 (10) 잠 29:15; 벧전 2:14 (11) 엡 6:4 (12) 딤전 5:8 (13) 욥 29:12-17; 사 1:10, 17 (14) 딤전 4:12; 딛 2:3-5 (15) 왕상 3:28 (16) 딛 2:15

문 130. 윗사람들의 죄들은 무엇인가?

답: 윗사람들의 죄들은 명령된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일 외에,(1) 자기 자신들의(2) 명예,(3) 안일, 유익, 혹은 기쁨을(4) 과도히 추구함과 불법한 일이나,(5) 아랫사람들에게 힘에 지나친 일을 하라고 명령함이며,(6) 악한 일을 권하고,(7) 격려하거나,(8) 찬성함이며,(9) 선한 일을 못하게 말리며, 낙심시키거나 반대함이며,(10) 그들을 부당하게 징계함이며,(11) 잘못된 일과 유혹과 위험에 그들을 부주의하게 노출시키고, 방치하며,(12) 그들을 노하도록 격동시키는 것이며,(13) 혹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들을 욕되게 하거나, 불공평, 무분별, 가혹, 혹은 태만한 행동으로 그들의 권위를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14)

(1) 겔 34:2-4 (2) 빌 2:21 (3) 요 5:44, 7:18 (4) 사 56:10, 11; 신 17:17 (5) 단 3:4-6; 행 4:17, 18 (6) 출 5:10-18; 마 23:2, 4 (7) 마 14:8; 막 6:24 (8) 삼하 13:28 (9) 삼상 3:13 (10) 요 7:46-49; 골 3:21; 출 5:17 (11) 벧전 2:18-20; 히 12:10; 신 25:3 (12) 창 38:11, 26; 행 18:17 (13) 엡 6:4 (14) 창 9:21; 왕상 12:13-16, 1:6; 삼상 2:29-31

결론적으로 말해서 개혁파는 5계명 안에서 국가에게 사형과 전쟁권을 허락하는 것처럼 부모에게 일정한 범위의 징계권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그 징계는 단순히 잠언서를 극단적인 문자로 적용하여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무모한 폭력이 아니며, 반대로 아이의 죄악된 본성이 방종과 방임에 이르도록 자유를 허락하는 무분별한 인권도 아닙니다.

체벌이 징계의 한 방식으로 허용되려면 반드시 부모의 폭력성이 억제된 상태에서 제한된 형태로만 허락될 수 있고, 그것도 일반은총을 고려하여 자녀의 연령을 충분히 헤아려야 합니다. 즉 아주 어린 유아를 때리는 것은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는 6계명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그리고 20세가 넘은 청년을 때리는 것은 자칫 가정 폭력과 싸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의 체벌에 저항할 수 있는 체력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벌을 수용하지 않으면 자칫 쌍방 폭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자녀가 부모의 권위 아래서 체벌을 감당할 수 있는 연령 안에서 아주 제한 된 형태로 허용됩니다. 그리고 이 방식조차도 사회가 체벌에 대한 인권인식이 높아가면 교회도 일반은총 아래서 신중히 고려하여 정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기독교적 윤리의 양심은 각 사회의 도덕적 양심과 완전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마치 과거에는 교회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남녀가 안아주고 스킨십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미투운동으로 사회적 성인식이 높아진 현재 상태에서는 교회 어른들이나 목사, 강도사, 전도사들은 주일학교, 중고등부 여학생들을 함부로 만지고 안고 스킨십 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기독교적 훈계와 징계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체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적절한 선에서 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합의가 법으로 확립되면 기독교인들도 그 정도의 법은 존중하며 지켜가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집니다. 과거에는 맞아도 사회적으로 별 탈이 없었지만 지금은 국가, 직장, 가정, 학교 등에서 체벌이 벌어지면 심각한 법적 도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도 사랑의 매를 가장한 ‘폭력’에 대해서 조심해야합니다. 더불어 진보정부가 시도하는 체벌에 대한 무분별한 ‘인권’적용에 대해서는 기독교인들도 바른 저항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