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시간/- 믿음의 글

혀의 권세

에반젤(복음) 2019. 6. 29. 23:53


혀의 권세(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1)

성경에는 말에 관한 비밀이 있다.
말은 영적인 것이며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36-37)

하나님께서 인류를 지으실 때
우리가 우리말을 선택하고 원하는 때에
그 말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넣어 주셨다.
인간이 모든 다른 피조물, 심지어 천사들과도 다른 점이 바로 이 능력에 있다.
천사들도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만 하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만 행동할 수 있다.

말을 선택하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은 인류 문명이 발달하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


말의 창조적 능력

시간이 존재한 이후로 말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말을 사용하셨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히브리서 11:3)

창세기 1장에서 증명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심으로 세상을 존재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3)
히브리 원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Light be; and light was."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이 세상 자연계와 물질계의 모든 능력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를 내라 하시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라고 하는 표현이 10번 등장한다.
육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너무 지루한 반복으로 들리겠지만,
영적으로 보면 성령께서 창조사역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렇게 쓰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의 믿음,
곧 그의 말을 이루어지게 하는 창조의 능력을 내보내신다.
그는 모든 것을 말씀의 능력으로 창조하셨고,
히브리서 1장 3절에 따르면 지금도 그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그가 일하시는 방법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가 일단 말씀하시면 그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그대로 되니라."라고 한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능력이 나가고 물질들이 움직인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 26절 말씀을 하시자 곧 사람이 생명을 얻었다.
사람은 믿음이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곧 능력과 주권과 생명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주권과 권세 거하는 곳, 즉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지구를 다스리는 모든 능력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주어졌다.
인간은 그 능력으로 지어졌다.

아담은 하나님의 등급으로 창조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지어졌으므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다."
축복이란 "그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say something good about)을 의미한다.
그는 그들을 축복하시고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는 인간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인간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인간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시고
그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셨다.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다스리는 신으로서의 절대적 권세를 가졌으며,
그는 말을 사용하여 다스리도록 되어있다.
그가 창조될 때부터 그의 마음에 넣어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기름 부음은
그의 말을 통하여 나타나도록 되어있다.


왜곡된 능력

사탄이 들어오자 말의 능력이 왜곡되어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게 되었다.

사탄은 신(god)이 아니다.
그는 타락한 천사이며 하나님의 등급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내부에는 창조적인 능력이 없다.

하나님의 천사인 사탄(혹은 루시퍼)은 스스로 행동을 선택할 권리가 없으나,
자신을 높여 하나님 위에 두려고 결심했다.
그는 말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이사야 14:13,14)

자신의 말을 선택함으로써 사탄은 영적인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법을 어겼다.
그는 자신의 권세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기로 했다.
그는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나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은 곳에 두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14:15)

쌍방의 말이 충돌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
곧 자유의 영, 권세의 영의 말씀이 천사의 말을 지배하였다.
그 즉시 사탄은 하늘에서 추방되었다.

간교한 꾀와 속임수를 사용하여 사탄은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하였다.
창세기 3장을 보면 그가 그들의 믿음과 순종에 도전하려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미묘하게 사용하였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6-17)
그러나 사탄은 뱀의 모양으로 다가와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말라 하시더냐?",
혹은 "하나님이 진정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냐?"(창세기 3:1)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 여자는 사탄의 꾐에 넘어갔으나
남자는 꾐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아담은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빤히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지된 열매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탄이 이 세상 권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인간의 신, 혹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부르듯이 "이 세상 신"이 되었다.

비록 그는 스스로 창조하는 능력은 없으나,
사람의 말에 있는 창조력을 이용하여 상황을 조종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진짜를 모조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창조해 놓으신 것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조한다.



혀의 권세 (2)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

하나님께서는 말에 큰 중요성을 두신다.
창세기 1장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먼저 말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는다.

믿음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 우주의 근본이 되는 힘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들이 그와 같은 종류를 생산하는 법칙
(나는 그것을 창세기의 법칙이라고 부른다)을 발동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많은 후손을 낳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영원히 살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변하였다.
인간에게 주어진 권세가 갑자기 사탄의 손에 넘어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근원, 곧 그의 말씀으로 돌아가셨다.
땅은 이미 저주를 받았으므로 흙으로 또 다른 인간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믿음으로 가득한 말씀으로 돌아가시는 수밖에 없었다.

즉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가르치며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 사람을 찾기 시작하셨다.
그는 마침내 그 사람을 찾으셨다. 곧 아브람이었다.

그는 아브람과 영원히 지속될 언약을 맺으셨다.
"내가 너와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세기 17:4, 6-7)

일단 이와 같이 언약을 세우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는 이 땅에서 그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날 구원자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을 보내실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람이었다.
그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상대로서 말씀하실 때,
선지자들은 그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하였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영이 거듭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지루한 반복의 과정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훈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의로 여기셨다. (로마서 4:2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말씀을 거듭하셨다.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가?
"그가 오신다."는 예언의 말씀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되었다.

세상적인 상황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함없이 말씀하셨다.
그는 보이는 상황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으셨다.
일단 지구상의 한 사람이 그 말씀을 받는 이상, 그것은 이 세상에 남게 된다.

이사야 55장 11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으시고, 그의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그의 말씀을 계속 내보내신다.

마침내 말씀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이 왔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창세 전에 존재하였던 말씀이 인간이 되어 33년을 이 땅에서 사셨다.
그는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 있는 선지자로 일하셨다.
그리고 자신을 옛 언약의 마지막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
그는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라는 제단 위에 드려졌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고린도전서 15:45) 첫 아담이 실패한 시험을 통과하셨다.
그는 아담이 지은 죄에 대한 처벌과 그의 죄성과 그의 질병과 약함,
그의 고통과 수치를 다 받으셨다.
그는 마치 스스로 하나님께 반역죄를 지은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담당하셨다.

그는 십자가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하시고 땅 속 깊은 곳,
곧 지옥에서 사흘 밤 사흘 낮을 보내심으로 사탄을 멸망시켰다(마태복음 12:40).
사도행전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많은 죽은 자 가운데 첫 열매가 되셨다(골로새서 1:18).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거듭난 첫 사람이었다.
그는 밧모섬에서 요한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한계시록 1:17,18)

예수님은 사탄의 모든 무리가 보는 앞에서 참혹한 전투를 치르고 사탄을 패배시키셨다.
그는 사탄에게서 지옥의 열쇠를 빼앗았다.
그는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서 훔쳐간 모든 권세를 되찾으셨다.
그는 적진으로 들어가 정사와 모든 권세를 제거하셨다(골로새서 2:15).


믿는 자의 권세

거듭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 사탄은 여전히 "세상의 신"(고린도후서 4:4)으로서
권세를 가지고 있으나, 예수를 믿는 그의 몸 된 교회는 이 세상에서
사탄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사탄은 우리의 신이 아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있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8:18,19).

모든 믿는 자들은 사탄을 저항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마가복음 16:15-18).
그리고 그의 힘을 속박하여 그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옮기어졌다(골로새서 1:13).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승리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우리의 점령지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사탄의 왕국에 하나님의 판결을 실행하여야 한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베드로전서 5:8,9)


우리의 전투 무기

예수님께서는 우리, 곧 그를 믿는 자들이 사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를 얻도록
말할 수 없이 큰 값을 치르셨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무기를 받았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린도후서 10:4)

우리의 모든 무기의 기본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에베소서 6:17).
예수님은 살아 있는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사용하도록
기록된 말씀, 곧 복음을 주셨다.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이 나온다.
그는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온 것을 본다.
바로 그 칼, 모든 능력을 가진 강력한 칼은 우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졌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으로 가득하며
그 어떤 양날 선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고 말씀하신다.
(확장번역본)

우리의 무기는 사탄의 무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나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무기의 기능을 잘 알아야 한다.
전투 군인은 필요하다면 어둠 속에서도 그의 장총을 어떻게 분해 조립하는지를
철저하게 훈련받는다. 우리 믿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와 같이 숙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기에 관하여 배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영적 전투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은 싸움을 하려고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 중에도
최후의 위기를 당할 때까지 말씀을 사용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성령님께서 내게 이 분야에 귀중한 교훈을 주셨다.
내가 집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내가 그동안 적이 내 주변을 잔뜩 둘러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투를 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다시 말해서 집회가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이 성공하기를 기도하였다.

오히려 전투 무대를 영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집회가 시작하기 몇 주 전부터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집회가 시작된 후 날마다 사탄과 대결하였다.
사탄이 한 분야를 공격하면 나는 그것에 맞서고,
그러고 나면 그는 또 다른 영역을 공격하였다.
나는 사탄의 공격을 해결하느라 분주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잡다한 지역전만 벌이고 있었다.
내가 집회가 시작하는 날까지 기다리는 동안 사탄은 그의 요새들을 이미 구축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거의 모든 지역전에서 실패하였다.

그때 주님께서는 내가 잊을 수 없는 말씀을 주셨다.
"만일 알카포네(마피아 두목)가 그저 미미한 인물이었을 때 그를 시카고에서 몰아내 버렸다면, 그를 제거하느라 그렇게도 힘겨운 투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요새들을 구축하여 제 일등급 형사범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므로 그를 제거하는 데에 일개 부대가 동원되어야만 했다."

나는 교훈을 얻은 즉시 실행하였다.
이제는 나는 집회를 위하여 몇 주, 혹은 몇 달 전부터 집회를 위하여 기도하기 때문에,
집회가 시작되면 나는 자신 있게,
"아버지, 예수님 이름으로 저는 이 집회의 모든 염려를 넘겨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혀의 권세 (3)


권세를 사용하기

당신이 당신의 영역을 점령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태도에 따라
사탄이 당신에게 도전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그러나 믿는 자로서 당신의 권세를 이해하고 실행하면 당신은 항상 승리할 수 있다.

권세의 예로 경찰관이 매우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는 권세의 표시로 베지를 달고 그 권세를 강행할 수 있도록 무기를 가지고 다닌다.
모든 경찰은 법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범인들은 법의 권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 무기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일 무기를 피할 수 있다면 그는 법의 다스림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사탄도 바로 이와 같이 활동한다.
그는 하나님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다닌다.
왜냐하면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거듭난 신자라면 말씀으로 무장되었다.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원할 때에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영 깊은 곳에 지니고 그것을 담대하게 입으로 선포함으로써
당신의 삶에서 자연적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구상에서 권세를 가지고 계셨으며, 말씀을 사용하여 그 권세를 실행하셨다.
그가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나셨을 때,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강력한 자연현상이 즉시 그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마가복음 4:35-41).
그는 영적인 법칙을 아셨고, 또한 원수에 대하여 알고 계셨다.
그는 그 어느 것도 그의 사역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사람의 혀와 그 능력에 대하여 정신이 번쩍 드는 가르침이 있다.
사도 야고보는 예수님의 이복동생이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자라며 예수님께서 날마다 어떻게 상황에 대처하였는가를 볼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비록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으나,
그는 날마다 믿음으로 사셨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40, 52)

예수님께서는 그의 육체가 자람에 따라 지혜를 얻어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셨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녀는 예수가 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그녀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한복음 2:5)

예수님이 하신 모든 행동이나 모든 말은 한결같이 세상의 방법에 거스른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들은 그의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마가복음 3:21)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이 전적으로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복동생인 야고보마저도 그가 거듭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성령께서 그에게 영적인 것들을 가르쳐주시기 전에는 그의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혀, 작은 지체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을 교회에 보내는 그의 서신에 기록한다.
이 서신은 우리가 혀의 능력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야고보서 3장 전체를 주의를 기울여 읽어보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 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있다.

1. 이 세상에는 사람의 육체까지 포함하여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도 혀로 길들일 수 없는 것은 없다.

2. 모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계 전체와 모든 상황은
바로 자기 자신의 혀로 다스릴 수 있다.

3절~5절에 야고보는 예화를 사용한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말(horse)이 아무리 크고 강하다고 해도 그의 입에 물린 작은 쇳조각에 의하여 길들여진다. 배가 아무리 크고 광풍이 아무리 격심하다고 해도 작은 키에 의하여 조종된다.

말의 재갈과 배의 키를 인간의 혀와 비유한 것은 매우 뛰어난 예화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미미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당신은 말의 재갈을 쥐고 말을 조종하는 기수이다.

당신은 키를 조종하는 배의 선장이다.

당신이 조절하는 도구를 쥐고 있는 한 당신이 권세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혀는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인생의 폭풍이 아무리 심하고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다고 해도
당신의 혀는 그것을 지배할 수 있다.
당신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한 당신이 극복할 수 없는 폭풍은 없다.
당신의 말이 폭풍 중에 당신의 배를 조종할 것이다.


혀는 불이요

5절에서 야고보는 혀를 불을 지피는 불씨에 비유하였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당신의 상황에 있어 불씨와 같고 당신의 상황은 불과 같다.
큰불은 작은 불씨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큰 통나무에 불을 지필 수는 없다. 그것은 불붙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작은 나뭇조각 등을 불씨로 사용해야 한다.
불씨가 지펴지고 나면 통나무를 태울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상황이 돌아가는 원리이다.
사탄은 통나무에 불을 지필 능력이 없다.
그는 작은 불씨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혀가 바로 그가 사용하는 불씨다.

그는 타락한 천사이므로 스스로 창조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가진 능력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작한다.
사람의 혀를 사용하지 않고는 그는 이 세상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혀를 조종하는 한, 그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말은 열쇠

6절에 보면 사탄의 작전을 대적하는 열쇠를 제시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야고보서 3:6)

육의 세계에서 혀는 마치 불과 같이 인생 전체를 살라버린다.
사탄은 혀를 사용하여 삶의 환경을 조종한다.
먼저 그는 우리 혼에 악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심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우리 영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마음 가득한 것에서 입으로 말하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태복음 6:31)
먼저 당신은 염려(생각)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사탄이 당신의 삶에서 움직이는 방법이다.
당신이 한 번 정도 말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말을 의미한다.
말을 할 때마다 그러한 생각이 당신의 영에 저장되어, 마침내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 말들은 믿음이나 두려움, 사랑이나 증오 등 당신이 항상 생각하며 말해온 것들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말을 함으로써 불이 붙는다.
얼른 꺼버리지 않으면 혀로 시작한 작은 불들이
커다란 불을 내어 인생을 다 태우고 파괴할 것이다.

모든 상황, 곧 모든 육의 세계는 혀에서 시작한다.
죽음과 삶이 혀의 권세에 있으며
그것을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가?
선하든 악하든, 축복이든 저주든 간에 당신의 입술의 열매가 당신의 삶에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신다(마태복음 15:11,18).

당신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정적인 말을 하도록 길들어왔다.
당신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무의식적으로 죽음과 병, 가난과 공포, 의심과 불신의 말을 해왔다. "무서워 죽을 뻔했다, 간지러워 죽겠다, 웃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속이 뒤틀린다, 이 문제 때문에 지겨워 환장하겠다,
틀림없이 감기에 걸릴 거야, 그렇게 할 형편이 안된다, 못 믿겠다."

특별히 재정에 관하여는 하나님이 왜 그들을 축복해주시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하나님은 그것이 소원인데도 말이다.
그들 자신의 말로 하나님의 축복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슨 수로 내게 그것을 주시겠는가? 내게 그런 것을 주실 리가 없다.
누가 내게 그런 것을 주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말라기 3:13).

당신은 이러한 말들을 하고 있는 줄도 깨닫지 못한다.
이런 말을 할 때에 당신은 인생에 부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며 불을 붙이는 것이다.
이제 왜 야고보서 3장 10절~12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혀의 권세 (4)


믿음으로 말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불을 끌 수 있는가? 말씀의 물로 씻어야 한다(에베소서 5:26).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깊이 간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하신다(마태복음 12:24).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면 입을 통하여 나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함으로써 당신의 삶에 작용하고 있는 부정적인 능력을
당신 마음에 쌓아놓은 선한 능력으로 바꿀 수 있다.

당신의 말이 사탄의 능력을 내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말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보낸다.
당신의 말이 당신에게 죽음과 질병을 가져온 것처럼
당신의 말이 당신에게 생명과 치유를 가져올 것이다.
당신의 말이 가난과 궁핍을 생산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번영과 풍요를 생산할 것이다.

마가복음 11장 23절의 영적인 원칙은 거듭난 믿는 자로서 당신의 삶에 기초가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Have faith in God, 11:22),
혹은 각주에 의하면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Have the faith of God)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믿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설명하신다.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과의 밀접한 관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말)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말한 것이) 그대로 되리라"(괄호 안은 영어 성경의 표현을 첨가함)

당신이 구원받은 것도 말을 했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 9절, 10절을 보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6절, 37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당신은 얼마나 금식을 했는가, 몇 시간을 기도했는가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입으로 나오는 말로 당신을 의롭다 하시거나 정죄하실 것이다.
말이 얼마나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말로 사탄을 막는 법

사탄의 제일가는 책략은 당신이 삶의 경험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삶에 일어난 일들을 되새기며 왜 그런지를 분석하게 만든다.
많은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곧 인생의 폭풍은 당신을 가르치기 위하여 왔다고 하는
거짓을 받아들이도록 만들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믿는다면,
사탄은 당신을 그러한 폭풍들 속에 묶어둘 수 있으며
당신은 절대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사탄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실패할 거야."
당신이 그와 동의하면 당신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당신을 막다른 지경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나 사탄을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1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Therefore take no thought....)
우리는 일단 생각한 뒤에 말을 한다.
이 원칙을 사용하여 당신은 사탄을 막을 수 있다.

먼저 생각하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
"사탄아,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너를 지배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네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나는 다시는 너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
나는 네가 내 몸에 질병을 가져다주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겠다.
너는 이제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일단 당신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당신은 기꺼이 당신의 기지를 점령하고 다시는 변하거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당신에게 도전해 올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 얼굴을 직시하며 확고하게 버티어 한 치도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설교한 결과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비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확고한 태도로 그들의 생각을 온통 뒤흔들어 놓아야만
사탄이 얼마나 그들을 파괴하여 왔는지를 깨닫게 할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의 반응은 잔인한 것처럼 들린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녀들의 빵을 가져다가 개에게 던져 줄 수는 없다."
그의 말씀은 단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불신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마태복음 15:22-28)

말은 능력을 전달한다.
말은 생명이나 죽음, 축복이나 저주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말과 합하여 사용하는 비어들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 경험해 보았는가?
하나님이 저주하는 분이라면 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겠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말을 들으면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이 돌아서서 온갖 끔찍한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우리 아기를 잡아갔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를 죽게 했다.
하나님이 토네이도(폭풍)를 보내어 내 곡식과 가축을 파괴하였다."

하나님을 살인자나 파괴자로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주자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는 생명이시다. 그는 좋은 것을 창조하신다.
하나님이 죽음과 멸망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곧 사탄으로 하여금 저주하고 멸망시킬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과 같다.
사탄이 행한 악한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원망을 들으신다.

보험 약관에 보면 화재, 홍수, 지진, 토네이도 등등을 언급할 때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 마을에 지진을 불러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저주자라고 하는 말과 꼭 같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 의식 속에는 "불경스러운, 혹은 신성모독의" 말로 분류된 어휘들이 있다.
그런데 불경(profane)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말씀, 그의 속성, 그의 이름, 그의 능력과 그의 사랑에
반대되는 것은 다 불경스럽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는 질병이나 저주나 파괴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도둑이 온 것은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 10:10)

풍성한 생명은 값없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무지로 인하여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세아 4:6)
일단 이 세상의 모든 체계가 작용하는 원칙을 알고 나면
당신은 사탄이 어떻게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그것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왔는지 알 수 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야고보서 3:6)
이것이 세상에서 작용하는 원칙이다.
사탄은 당신의 혀를 사용하여 자연계가 당신에게 해가 되도록 조종한다.
당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당신의 삶과 주변 환경에 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도록 길들어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당신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을 들어보아라.
당신이 하는 말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말들은 소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들이다.
당신은 그 말들이 당신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환절기가 되면, 감기가 유행한다는 말을 한다.
의사를 찾아가거나 약을 사느라고 돈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들은 두려움의 산물이다.
질병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치유(healing)를 믿으십니까?"라고 물으면 "물론이죠."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다 무효로 해버린다.
잠언 6장 2절에 당신의 입의 말로 당신이 얽어 매였다고 말씀하신다.
(You are snared by the words of your mouth.)

당신이 두려움, 의심, 불신 등의 말을 하는 그때 멸망의 불씨가 붙고
사탄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 불씨에 부채질을 하여 불이 붙도록 할 것이다.
일단 당신 주변에 불을 붙이면 그가 공격을 할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지식을 얻지 못하면, 그 불행이 마치 이유 없이 일어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가장 먼저 당신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마치 답이 없는 질문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답이 있다.
혀가 인생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은 지옥에서 온 불이다.

당신의 혀가 당신의 인생 전체를 제어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당신은 사탄의 술수를 막을 수 있다.
당신의 혀를 제어하는 것을 배우면 사탄을 제어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당신의 삶에 성령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야고보서 3장 7절,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사람은 야생 동물을 길들일 수 있으나 자신의 혀는 길들일 수 없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사람이 혀를 길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야생 동물을 길들일 때 사용하는 자연적 힘으로는 혀를 길들일 수 없다.
영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영적인 힘은 거듭난 신자 모두에게 사용하도록 이미 주어졌다.
"내 말이 영이요"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요한복음 6:63).
기록된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당신의 혀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열쇠는 당신의 마음에 있다.
무엇이든지 당신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올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우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입으로 나올 것이다.
오늘부터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바꾸겠다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사용하여
당신이 과거에 해 온 말의 능력을 제거해야 한다.

당신이 영적 무기로 사용하도록 아래와 같이 선포내용을 만들어 보았다.
그것을 말함으로써 사탄이 당신의 삶에 붙여온 불을 지금 당장 꺼버리기 바란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과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대변자가 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1서 1:9, 2:1)

당신은 어떻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는가?
고백을 하였다.
당신의 죄를 어떻게 당신의 삶에서 제거하는가?
고백해야 한다.
그 죄를 입으로 말하여 당신에게서 제거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그의 능력으로 지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에 담으라.
그리하면 당신의 입으로 나올 것이다.
당신의 입은 선택권이 없다.
무엇이든지 마음에 그득한 대로 말할 것이다.
오늘부터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당신의 혀를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드려라!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이름으로 저는 저의 혀를 제어할 것을 다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모든 말들을 폐기하고 회개합니다.
저는 그 말들의 능력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제 입을 하나님 말씀에 드립니다.
마음 가득한 것이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므로,
저는 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우겠습니다.
그러므로 제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을 하겠습니다.
당신의 자녀로서 저는 나음을 입었으며 당신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만드셨으므로
저는 제 삶의 모든 분야에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저는 다시는 두 마음을 품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든 지혜의 말씀이 제 마음에 풍성히 거하게 하겠습니다.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저는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자료출처 : 사랑의 미니스트리/케네스 코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