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말씀과 오늘의 우리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이승구교수
성경 본문과 우리의 대화는 항상 “그 때 그 곳”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의 구체적 상황에 적용시키는 어려운 작업이다. 더구나 구약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과 상당히 다른 역사적 지평, 심지어 구속사적 상황도 다른 상황 가운데서 주어진 말씀이기에 이 말씀들을 잘 적용하여 간다는 것이 항상 어려운 과제이다. 성경을 정확히 읽어 보려는 노력으로 우리들은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제 2 세대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던 그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게 된다. 이제 가나안을 향해 가아 가야 하는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출애굽과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던 것, 여러 이적들로 애굽 등을 치시던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으로 신신당부(申申當付)하는 모세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들은 신명기(申命記)를 읽게 된다.
요단 건너편,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 숩 맞은편 아라바 광야에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는(신 1:1) 이 모든 말씀으로 백성들을 교훈하기를 마치고 120세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부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묻혔다”(신 34:5). 33장까지의 모세의 말에 신명기 34장을 부가한 이는 이 모세의 사역을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하고 있다: “모세는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모든 큰 권능과 큰 위엄을 행하였다”(신 34:12).
여기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출애굽 제 2 세대의 이스라엘 온 백성을 불러 모으고 대언한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이 있다(신명기). 이 말씀은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 가운데서 이 새로운 정황에 필요한 말씀을 다시 선언하고(신 5장의 십계명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40년 역사 중에서 나타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지적하며(신명기 9장) 그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엄위와 어떠하심을 드러내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어서 차지할 땅, 즉 가나안에 들어가서 행할 일, 즉 중앙 성소를 중심으로 살며(신 12장), 하나님의 말씀의 규례에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것 등을 세세히 말씀하시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하여 주시는 이 말씀은 그 때 그 곳에서 모세의 말씀을 듣는 모든 백성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그야말로 사활적(死活的) 말씀이었으니, 이스라엘이 주신 이 말씀을 듣고 그 대로 하나님의 백성 역할을 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그야 말로 복된 삶이며, 주께서는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게 하시고, 온 세상 앞에서 이들이 복된 백성임을 드러내시어 온 세상으로 하여금 모두 다 이와 같이 복된 삶에 동참해야 할 것을 드러내며, 하나님 알고 그 하나님과 함께 사는 빛을 온 세상에 비추게 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서의 의식을 버려 버리고서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얼마나 있을 수 없는 것이지를 잘 드러내시는 저주를 이스라엘에게 내리시어(29장) 하나님의 언약 백성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아니한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는 앞서 언약을 지켜 가는 이스라엘의 언약 백성다운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이며 세상을 비추어 나가는 것인가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주신 언약에 대해 배약(背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드러내어 주시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이며 동시에 온 세상에 대해서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가운데 있는 것이 얼마나 심중한 의미를 지는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씀에 대해서 그 의도를 잊고서 이런 말씀을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주를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이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저주하리라는 점을 중심으로 이 선언을 하시는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잘 살아 가라고 이 말씀을 주셨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때 그곳에서 이런 말씀을 주신 대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을 세워서 백성들을 지도하셨고(신 18:15), 급기야는 그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정황 가운데 있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야 할 책임감은 그대로 있다. 그 때 그곳의 언약 백성됨과 지금 이곳에서의 언약 백성됨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때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준비하며 예비하던 때였고, 지금은 그 구속 사역이 이루어져서 그 빛에서 언약 백성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구별된 백성 역할을 하며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는 것을(신 14:3-21) 그대로 지켜 행하지는 않을 수 있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어 이런 율법의 의미를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율법을 주셨던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고서 우리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심지어 먹는 문제에 있어서도 구별된 언약 백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종류의 종자를 뿌리는 것이나 소나 나귀를 함께 하여 밭은 가는 것이나, 양털과 베실로 함께 짠 옷을 입지 않는 것 등도(신 22:9-11)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 있은 후에는 그 구속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키지는 않으나, 그렇게 하라고 하신 구별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나타나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도 구별된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어 온 세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어 사는 데로 나아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교회적 사명이다. 마치 그 때 그 곳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민족적 사명을 다해야 했듯이 우리는 지금 여기서 구별된 공동체인 교회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어 온 세상으로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는 데로 나아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부디 우리가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하여 갈 수 있기 바란다.
출처: 예장 서울노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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