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교회 어떻게 볼 것인가?
- 고려신학대학원 학술 대회(2007.11.1) 발제 논문에 대한 비판적 고찰 -
I. 서론
현재 한국 교회 가운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정 교회'는 많은 교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 "가정교회 어떻게 볼 것인가?", (기독교보, 2007. 11. 7.); 김낙춘 외 5인, "패널 토의",『고려신학대학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고려신학대학원, 2007. pp.85ff. 참고.
각 개교회가 가정 교회를 도입할 것인지의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여 이미 도입한 교회도 있고 아직 검토 중인 교회도 있다. 이를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가정 교회가 무엇이며 그것이 추구하는 교회론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 채 담임 목사의 결정에 따르는 현실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머리이신 주님의 뜻대로 잘 세워져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회에 속한 성도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한 마땅한 일이다. 특별히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늘 교회를 잘 살펴야 할 직분자와 공교회의 신학자들이 침묵하고 무관심한 가운데 가정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론이 전통적 교회론을 밀어내고 한국 교회 가운데 점점 더 크게 자리잡았고, 이제 문제가 되어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를 놓고 뒤늦게 논란이 한창이다.
이러한 형편 가운데 지난 2007년 11월 1일, 고려신학대학원에서는 예장고신 교단(총회장 김성천 목사)의 주최로 "가정 교회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학술 대회가 열렸다.
) 예장고신 교단은 한국 교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정 교회'에 대해 신학적 검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57차 총회를 통해 이 문제를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6개월간 세밀하게 연구하여 보고하도록 결의하였다. "가정교회 어떻게 볼 것인가?", (기독교보, 2007. 11. 7.).
이날 대회에서 발제를 맡은 4명의 교수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가정 교회를 진단했는데
) 고려신학대학원의 변종길 교수는 성경신학 입장에서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라는 제목으로 발제하였고 유해무 교수는 교의학 입장에서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 김순성 교수는 실천신학 입장에서 「가정교회 소그룹 구조와 기능의 실천신학적 의의」, 고신대학교의 이상규 교수는 역사신학 입장에서 「교회사에서 본 가정교회」라는 제목으로 발제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신 교단의 신학자들이 가정 교회에 대해 올바른 해석과 정당한 평가를 내렸는지 살펴보고, 가정 교회 문제에 대한 해답과 더불어 공교회적인 차원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성도가 신학자의 논문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현실과 침묵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풍토 속에서 잠잠히 머무르지 않고 옳고 그름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에 속한 성도라면 누구나 건전한 비판으로 교회를 세우고 돌아보는데 잘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을 통해 함께 우리 시대 교회의 형편을 돌아보고 이러한 의무에 잘 참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어지러운 한국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그 의미와 참된 교회의 모습을 잘 견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II. 본론
1. 가정 교회란?
먼저,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가정 교회'가 무엇이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자.
가정 교회라는 용어는 오늘날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 변종길,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고려신학대학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고려신학대학원, 2007. p.6. 참고.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의미 가운데, 미국 휴스턴에 소재한 서울침례교회의 최영기 목사가 주장하여 국내에 소개된 '제도적 가정 교회'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국내외의 여러 교회에서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제도적 가정 교회는 대부분 최영기 목사의 가정 교회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 최영기 목사가 사역원장으로 있는 '가정교회 사역원'(http://www.housechurchministries.com)의 가정교회 주소록에 의하면 2008년 4월 20일 기준으로 국내 56개 교회, 국외 59개 교회로 총 115개의 국내외 교회들이 최영기 목사의 가정 교회 체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최영기 목사에 따르면, 가정 교회란 "평신도가 지도자가 되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로서 신약 시대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목회 형태가 평신도 중심이었다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 최영기, "가정 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교회", (서울: 두란노, 2007), pp.39-40.
또한, 가정 교회는 '교회 안의 교회'로서 여러 가정 교회가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데
) 최영기 목사는 신약 시대의 초대 교회도 이와 같은 구조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 안에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영기, 앞의 책, p.41.
그 형태상 기존 교회의 구역 모임이나 순 모임등의 소그룹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최영기 목사는 개개의 가정 교회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교회이며 기존 교회의 소그룹 모임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 "구역의 목적은 아무래도 친교입니다. 그러나 가정 교회는 예배, 교육, 친교, 전도, 선교 등,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사역을 포괄적으로 다 합니다." 최영기, 앞의 책, p.69.
가정 교회의 구성을 살펴보면 모임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인 '목자'와 성경 공부 시간에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모임의 구성원인 '목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렇게 구성된 하나의 가정 교회를 '목장'이라 부른다.
목자 및 교사의 선출은 교인들의 추천과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며 인선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전체 교회에서 정식으로 임명한다.
) 최영기, 앞의 책, p.95.
목원의 목장 편성도 교인들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이를 통해 비슷한 사람들이 한 목장을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
) 최영기 목사는 비슷한 사람들이 한 목장을 이루면 삶의 상황이 비슷하므로 삶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서로 쉽게 친숙해질 수 있고 전도에도 효과적인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최영기, 앞의 책, p.73.
이렇게 모인 목장 모임은 모여서 식사를 함께 하며, 찬양과 성경 공부 시간을 가지고 모임의 핵심인 나눔의 시간을 거쳐 중보 기도와 선교 도전 시간을 차례로 가진다. 최영기 목사는 목장 모임의 핵심인 '나눔의 시간'을 통해 목원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나누면서 자연스러운 내적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 최영기, 앞의 책, pp.75-80, 86.
이러한 목장 모임 구성의 특징은 현대인의 자기 표현의 욕구를 채워주고 목원들에게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모임의 참석률이 높다는 점인데, 매주 모여야 하는 가정 교회의 부담스러움이 매주 모일만한 재미를 제공함으로 해소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일이면 아무리 바빠도 사람들이 시간을 내듯, 가정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영기 목사는 목장 모임을 재미있게 운영할 것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을 쉽게 초청하여 전도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 최영기, 앞의 책, p.86.
전도를 통해 목원의 숫자가 12명이 넘으면 분가를 해서 목장을 둘로 나누게 되는데, 이를 위해 목장에서 '예비 목자'를 추천하게 된다. 추천을 받은 예비 목자는 교회의 임명을 받아 몇몇 목원들을 데리고 나가 새로운 목장을 개척한다. 이렇게 해서 점점 목장의 수를 늘여 나가는 것이 가정 교회의 주된 구조이다.
) 최영기, 앞의 책, pp.91-94.
이상에서 살펴본 가정 교회의 구성과 구조적 특징을 두고 최영기 목사는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役事)를 제한하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와는 달리 성령의 힘을 제한하지 않는 초대 교회의 구조"를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초대 교회 당시도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 안에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는데, 이러한 구조가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교회의 구조이며 여기서 신약 교회의 폭발적인 능력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서울: 나침반 출판사, 2006), p.30.의 것을 변종길,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 p.7.에서 재인용.
즉, 최영기 목사에게 있어서 기존의 전통적 교회 구조는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를 제한하는 비효율적인 교회 구조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한 가정 교회가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한 교회의 모델이라는 것이 최영기 목사의 주장이다.
) 최영기, 앞의 책, p.230.
2. 가정 교회에 대한 발제자의 평가와 해석
지금까지 살펴 본 최영기 목사의 가정 교회론에 대해 고신 교단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서론에서 밝힌 고려신학대학원 학술 대회의 발제 논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정 교회를 진단하는 발제자들의 관점과 신학적 입장이 다른 만큼 다양한 견해들이 발의 되었는데, 이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유익을 얻고자 한다.
(1) 가정 교회의 등장 배경에 대한 해석
먼저 오늘날 가정 교회의 등장과 여러 교회에서 이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발제자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가정 교회의 등장 배경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발제자 모두가 가정 교회의 등장 배경에는 기존 교회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전통 교회 구조에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정 교회가 적절한가에 대한 평가가 발제 논문의 공통된 내용이므로 그 배경이 되는 '전통 교회의 구조적 문제'가 무엇이며 이에 대한 평가가 정당한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하겠다.
) 가정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바로 '전통 교회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다. 전통 교회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가정 교회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전통 교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가정 교회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가정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다도 전통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바르게 진단하는 것이 먼저 요구된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진단해야 그에 따른 대안의 옳고 그름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규 교수는 한국의 전통 교회가 수적 성장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배경에서 형성되어 진정한 교제의 상실 또는 약화를 불러일으켰고, 전도나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구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교회 구조에 대한 요구가 표출 되었는데 그러한 현상의 결과로 가정 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 이상규, "교회사에서 본 가정교회",『고려신학대학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고려신학대학원, 2007. p.47.
변종길 교수는 교회 내의 소그룹 모임이 신앙생활과 교회 성장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 소그룹 모임의 중요성에 대해 변종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그룹 모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 성도는 소그룹 모임을 통해 교제와 사랑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고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소그룹 모임을 통한 교제가 없으면 신앙생활에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나아가서 소그룹 모임은 교회 성장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설교와 뜨거운 기도가 있다 하더라도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 되지 않으면 교회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변종길, 앞의 논문, p.5.
문제는, 이러한 소그룹 모임이 상당 부분 형식화되고 제도화 되었다는데 있으며, 이에 따른 새로운 소그룹 모임의 요구에 대한 대안으로서 가정 교회가 등장하였다고 진단한다. 즉 가정 교회 등장의 배경이 소그룹(구역) 구조가 취약한 전통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5.
유해무 교수는 랄프 네이버의 말을 인용하여 전통 교회가 불신자를 구원하는 데에는 점점 힘을 잃어 가면서 사역의 초점을 주로 믿는 자들에게만 맞추는 것과,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되는 교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 유해무,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고려신학대학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고려신학대학원, 2007. pp.63, 66.
특히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성장 일변도의 목회 방법론에 많은 문제점과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그에 따른 새로운 목회 방법론의 하나로서 가정 교회가 등장하였다고 진단한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65.
김순성 교수는 가정 교회 운동이 새삼 이 시대에 대두되고 있는 이유가 전통 목회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 시대의 교회가 구조적으로 당면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안 내지 새로운 목회 전략으로 가정 교회가 대두 되었다는 진단이다.
) 김순성, "가정교회 소그룹 구조와 기능의 실천신학적 의의",『고려신학대학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고려신학대학원, 2007. pp.74-78.
이상에서 언급한 발제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모두 가정 교회가 등장한 배경에 전통 교회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강조점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전통 교회의 구조가 취약하며 그에 따라 새로운 교회 구조 혹은 목회 방법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정 교회가 등장하였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발제자들의 이러한 해석이 정당한 것인가? 전통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한계로 인해 오늘날 새로운 교회 구조나 목회 방법론이 필요한 것인가?
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제자들이 말하는 '교회의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발제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교회의 구조는 주로 개교회가 필요에 의해서 만든 기관과 모임들이다. 이러한 기관이나 모임에서 나타나는 현상적인 결과들에 기초하여 전통 교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기관과 모임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이에 가정 교회를 적절한 대안의 하나로서 검토의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논자는 교회 구조에 대한 발제자들의 이러한 진단이 매우 단편적이고 비근원적인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단편적인 진단의 문제는 오늘날 교회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회개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를 살피고 진단하는 일에 신학자들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문제의 근원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논자는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적인 문제들이 전통 교회의 구조 자체에서 기인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전통 교회의 구조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발제자들이 언급하는 기존 교회의 여러 문제들은 직분의 올바른 수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직분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므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교회의 구조를 고치거나 새로운 목회 방법론의 도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발제자들의 논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가정 교회에 대한 발제자들의 접근 방식과 그에 따른 평가가 정당하고 올바른 것인지를 자세히 진단해 보도록 하겠다.
(2) 가정 교회에 대한 발제자의 평가
먼저, 역사 신학 입장에서 발제한 이상규 교수의 "교회사에서 본 가정교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상규 교수는 가정 교회 문제를 다루면서 "근본적으로 교회구조, 목회형태는 불변적인 어떤 고정된 구조나 체제는 아니다"라고 전제한다. 그 근거로 목회 형태가 "바울이나 사도시대의 순회(巡廻) 혹은 순행(巡行)목회에서 잠정적인 기간을 거쳐 오늘의 정착목회로 변화를 겪어 온 것"을 제시하고 있다.
) 이상규, 앞의 논문, p.47.
따라서, 가정 교회는 여러 목회 방식 중의 하나로서 일종의 목회 프로그램이며, 변화된 환경에 대한 반영
) 이상규 교수는 변화된 환경이 새로운 목회 방식을 요구 하는데, 가정 교회는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며 한 시대의 유행일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상규, 앞의 논문, p.48.
으로서 "우리 시대 교회에, 특히 성도간의 교제의 회복, 불신자 전도, 전도기능의 회복 등 초대교회적 교회관을 회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 이상규, 앞의 논문, p.49.
또한,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신학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고 발전적으로 보완해 가면서 장로교 제도안의 가정 교회로 건실하게 발전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 이상규, 앞의 논문, p.49.
즉, 발전적인 보완을 통해 긍정적으로 수용이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논자는 이러한 이상규 교수의 주장에 대해 매우 염려스럽다. 특히 우리 시대의 교회 구조, 목회 형태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의 근거로 사도 시대의 교회를 예로 드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는 사도 시대와 우리 시대를 단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는 사도교회 시대를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신 AD 30년경부터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AD 70년경까지의 사도교회 시대 40년은 역사상 존재했던 일반 시기와 다른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광호, "신약신학의 구속사적 이해",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6), p.261.
사도 시대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교회와 사도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주어진 시대이며 또 교회를 세우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루어가셨던 시대이다. 사도의 직분이 구속사 가운데 종결되었고,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더 이상 주시지 않는 즉, 계시가 완성되어 어떻게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지를 기록된 말씀을 통해 명확하게 깨닫게 된 오늘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시대인 것이다.
) 이광호, 앞의 책, pp.278, 28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을 사도 시대와 단순 비교하여 교회 구조나 목회 방법론을 교회의 결정이나 편의에 따라 바꾸거나 새롭게 도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특히 가정 교회의 경우, 전통적 교회의 교회론과 직분론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수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평가를 내린데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사도 시대의 목회를 일종의 목회 방법론 혹은 목회 프로그램으로 비하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 역사하심을 인간이 고안해낸 방법과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끌어내리는 일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김홍전 목사는 교회 상속의 의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해 놓은 그 터 위에 서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바로 가르친 것을 받아서 전해야 할 중요한 기관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바를 바로 받아서 바로 전수를 해야지 그릇되게 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I”, (서울: 성약출판사, 2000), p.22.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또 한 가지는, 기존의 전통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고 하여 새로운 목회 방법론을 제시하거나 전통 교회의 구조를 뜯어 고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올바른 접근 방법인가 하는 점이다. 논자는 이러한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당시 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던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새로운 목회 방법론을 제시하거나 전통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교회가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개혁 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전통적 신앙 고백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고 방법론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 시대 교회가 경험하는 여러 문제들은 방법론의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상속 받은 교회의 전통적 신앙 고백에 기초하여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를 진단하고 살펴야할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올바른 자세이다.
두 번째로, 성경 신학 입장에서 발제한 변종길 교수의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변종길 교수는, 가정 교회가 초대 교회의 교회관을 따르고 있다는 최영기 목사의 주장이 성경적인 근거가 없음을 잘 논증하였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p.9ff. 참고.
이를 통해 가정 교회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교회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p.26-27.
이는 바른 지적이다.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교회가 혼란스러워지고 무질서해진다는 평가의 배경에는 참 교회의 표지와 직분의 존재 여부가 기준이 되고 있기에 이는 마땅한 평가이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p.9, 26.
또한, 가정 교회는 일종의 소그룹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그러한 소그룹 모임의 지도자에는 '장로'를 세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지적
) 변종길, 앞의 논문, p.27.
도 장로 교회의 정신에 부합되는 올바른 판단이다. 이는 소그룹이 당회의 영적 지도 아래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교인들을 돌아보는 직무가 장로에게 있기 때문이다.
) 장로의 직무에 대해 언급한 성경 본문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사도행전 20:28; 베드로전서 5:2. 변종길, 앞의 논문, p.27.
소그룹의 인도를 장로가 아닌 당회가 임명한 성도에게 맡길 수도 있겠지만 당회로부터의 영적 지도를 받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하나는 소그룹으로 모이는 것이 공예배를 대신할 수 없으며, 소그룹은 소그룹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29.
이는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교제와 교육, 권면과 상담의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교회에서 소그룹이 꼭 필요하다는 변종길 교수의 주장
) 변종길, 앞의 논문, p.30.
은 원리적인 면에서 다소 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소그룹이 보편 교회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이라면, 사도 교회로부터 이러한 소그룹들이 있어왔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며 성경과 전통적 신앙고백서가 소그룹의 필요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교회에 소그룹이 존재해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대로의 직분 수행과 그를 통해 드러나는 교회의 표지
) The Belgic Confession, 29.;「벨직신앙고백서」29조는 참 교회의 표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님 말씀의 순수한 선포", "성례의 온당한 이행", "권징 사역의 신실한 시행". 이는 모두 올바른 직분 수행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들이다. 즉, 하나님께서 제정하신대로 직분을 올바르게 감당하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로서 표지가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가정 교회는 결코 교회로 볼 수 없으며 교회의 근본을 위협하는 위험한 교회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고 공예배를 중심으로한 신앙 고백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적 측면보다 소그룹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그룹이 없다고 하여 참 교회로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직분 수행으로 교회의 표지가 잘 드러나고 있다면 그 교회는 소그룹이 없어도 참 교회로서 바르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교회 안에 소그룹이 존재한다면 이는 예배에 온전히 잘 참여하기 위한 방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제의 측면을 중요시한다는 미명하에 교회 안에 동호회 수준의 모임을 조직하여 그러한 모임을 예배보다 우선시하거나 더 즐거워한다면 참 교회의 자태를 위협하는 우상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세 번째로, 교의학 입장에서 발제한 유해무 교수의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유해무 교수는 "은혜의 방편론, 직분론과 교회법적으로 볼 때, 가정교회론과 개혁교회론은 서로 다르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62.
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러나 가정 교회론에 비추어 볼때 직분론에 있어서는 개혁 교회에 강한 반성의 기회가 제공된다고 말한다.
) "가정교회론의 배경에 있는 은혜의 방편론과 교회법적 측면은 취할 수가 없지만, 직분론 즉 장로교회의 목사직뿐만 아니라 장로직에 대해서도 강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유해무, 앞의 논문, p.62.
논자는 유해무 교수의 이러한 평가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 개혁 교회와 현저히 다른 직분론을 가진 가정 교회를 통해 무엇을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설사 반성한다고 해도 그것이 제대로 된 반성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개혁 교회의 반성의 계기는 가정 교회와의 비교를 통해 얻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올바른 반성의 계기는 기록된 말씀과 개혁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 고백에 근거하여 제공 되어야 한다. 이를 제쳐두고 개혁 교회론과는 전혀 다른 가정 교회론을 거울삼아 반성하겠다는 것은 교의학 교수로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목회 방법론으로서 가정 교회론의 특성을 참고할 만하다는 평가이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62.
유해무 교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정 교회론의 특성은 '올바른 공예배의 참여를 전제로 공동의 식사, 기도회, 서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고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으로써 이는 '현대병을 치유하는 좋은 방편이며, 교회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이 배경이 침례교나 회중교회론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장로교화하여 도입하고 배울 만한 방법론'임을 주장하며, 가정 교회론의 긍정적 수용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63.
앞서 살펴보았듯이 가정 교회는 그 구조상 올바른 공예배의 참여가 전제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전제할 수 있으면 수용할 수 있다는 논리는 부당하다. 그리고 교회 가운데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는 일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교회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63, 각주, 29) 참조.; 실제로 최근 어느 교회에서 그룹원이 목장 모임에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후, 그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그 교회를 떠난 예가 있었다고 한다. 김순성, 앞의 논문, p.80, 각주, 41) 참고.
또 현대병을 치유하는 것이 교회에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 교회의 표지를 상실한 가정 교회론은 교회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어지럽히는 위험한 교회론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정 교회에 참고할 만한 특성이 있으니, 장로교화하여 도입하고 배울 만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사고라 하겠다. 유해무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가정 교회뿐만 아니라 이단이나 전혀 다른 종교에서도 참고할 만한 특성이 있으면 참고하고 수용하거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이러한 태도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의 방편을 받아들이는 온전한 자세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실천 신학 입장에서 발제한 김순성 교수의 "가정교회 소그룹 구조와 기능의 실천신학적 의의"를 살펴보자.
김순성 교수는 네 가지 관점에서 가정 교회를 평가하는데 첫 번째로, '교회됨의 본질적 구조로서의 공동체적 관점'이다.
김순성 교수는 본 회퍼(D. Bonhoeffer)가 주장한 '기독교 공동체의 실체적 의미'
) 본 회퍼는 기독교 공동체를 '너와 나'의 관계성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경험되며, '너와 나'의 정체성이 발견되면서 인간됨이 형성되는 구조적 형태라고 말한다. 나아가 거룩한 공회(sanctorum communio)로서의 교회는 세상에서 공동 인격 즉,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Dietrich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Eine Domatische Untersuchung zur Soziologie der Kirche , Dietrich Bonhoeffer Werke I, van Soosten J (ed), (Munich: Kaiser, 1986), pp.32, 87.의 것을 김순성, 앞의 논문, p.78.에서 재인용.
를 인용하면서 동일한 관점
) 기독교 공동체란 사회적 실체 즉, 구체적인 상황 속에 존재하는 경험적인 공동체로서 바로 그 공동체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 김순성, 앞의 논문, p.78. 참고.
에서 가정 교회가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환경과 틀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78.
또한 스나이더(H. snyder)가 주장한 '교회 내 소그룹이 가지는 이점'
) 스나이더는 교회 내 소그룹이 가지는 이점을 다음의 8가지로 요약한다; (1) 유연성이 있다, (2) 유동성이 있다, (3) 포괄적이다, (4) 인격적이다, (5) 분할에 의해 성장할 수 있다, (6) 전도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7) 최소한의 전문적인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8) 제도적 교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Howard Snyder,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이강천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2), pp.160-163.의 것을 김순성, 앞의 논문, p.78.에서 재인용.
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공동체적 구조의 발견이 교회됨의 본질과 직결되며 특별히 관계성이 파괴되고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오늘날의 목회 상황에 교회 본질 회복을 향한 큰 도전과 의미를 부여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78.
다시 말해, 가정 교회의 구조가 소그룹으로서 이러한 공동체적 구조의 발견과 이를 통한 교회의 본질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자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과연 교회내의 소그룹을 통해 교회 본질의 회복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때, 김순성 교수의 주장은 매우 편향되어 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교회 본질의 회복이 소그룹을 통한 공동체적 측면의 강조를 통해 이루어 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우리는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머리되신 분의 뜻이 몸 가운데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즉, 우리가 만들어 낸 방법과 기준이 결코 주님께서 정해놓으신 기준보다 우선시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승구, "교회란 무엇인가", (서울: 여수룬, 1996), p.32.
참된 본질의 회복은 공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성례를 온전히 시행함으로 주님의 몸 된 의미를 확인
) 주님의 몸 된 의미를 확인한다는 것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이 주님의 몸으로서 머리이신 주님께 잘 붙어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의미는 공예배를 통해 확인되는데, 공예배가 교회 본질의 중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공예배를 통해 참된 교회의 표지인 말씀 선포, 온전한 성례, 권징 사역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몸으로서 교회가 드러내야할 참된 본질적 측면이기 때문이다.
하며 머리의 지시를 따라 바르게 기능
) 몸이 머리와 분리되어 있다면 이는 정상적인 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몸도 제대로 된 몸이 아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머리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 기능하지 않는다면 이는 교회의 본질적 측면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이러한 몸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예배와 소그룹 활동은 주님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교회의 본질 회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주님의 몸으로서 교회의 의미와 본질의 회복에 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라. 이광호, "머리 없는 교회, 몸 없는 예배"
하는데 있다. 단순히 소그룹을 통해 공동체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교회의 본질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소그룹이 공예배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또는 성례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면 오히려 교회의 본질과 참 공동체성을 해치는 데 기여하게 될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김순성 교수는 가정 교회가 인간적인 사교 모임 수준에 머물지 않고 역동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단지 외적인 가정 교회 체제를 갖추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가정 교회의 성장 배경에는 최영기 목사의 깊은 영성, 말씀의 깊이와 탁월한 가르침의 은사, 그리고 그의 깊은 기도 생활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79.
이러한 언급은 이미 가정 교회의 구조가 그 자체로서 사교 모임 수준에 머무르기 쉬운 위험한 구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최영기 목사가 깊은 영성과 말씀의 깊이, 탁월한 가르침의 은사 등을 지녔다는 발언은 최영기 목사의 신학과 배치되는 개혁주의 신학을 버리고 최영기 목사의 신학을 배우라고 장려하는 위험한 발언에 다름이 아니다. 이에 대해 김순성 교수는 공교회의 신학 교수로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두 번째는 '실천신학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평가이다.
김순성 교수는 개혁주의 교회론에서 참된 교회가 지녀야할 네 가지 속성으로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 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다니엘 로우(Daniel J. Louw)가 실천적 신앙행위로 교회가 세상 가운데 나타내 보여야할 요소로서 경축(doksa), 증거(marturia), 섬김(diakonia), 친교(koinonia)의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 경축은 예배 감사 찬양 등의 신앙 행위를 말하고, 증거는 말씀 선포, 신앙 고백, 전도와 선교 등의 실천행위를 말하며, 섬김은 긍휼, 사랑 등 제사정적 봉사를 그리고 친교는 성도 상호간 위로와 돌봄의 실천 행위를 의미한다. 김순성, 앞의 논문, p.79.
문제는 가정 교회의 목장 소그룹 모임이 이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이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79.
가정 교회가 지향하는 평신도 목회는 분명히 참된 교회가 지녀야할 네 가지 속성에 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천 신학적 관점에서 네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므로 긍정적이라 평가하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공교회의 교수로서 논리에 맞지 않다.
세 번째는 '교회 성장학적 관점'에서의 평가인데, 김순성 교수는 교회 성장학적 관점에서도 가정 교회 소그룹이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80.
그리고 가정 교회 소그룹 체제를 가진 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훨씬 더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81.
이러한 평가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특히 양적 성장이라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신자들을 교회로 부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그 사역은 하나님의 고유한 뜻과 섭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 The Westminster Confession, X, 1, 2.
또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신자의 수효는 고정적이고 확실하여 인간의 노력이나 활동여하에 따라 더하거나 뺄 수가 없다.
) The Westminster Confession, III, 4.
대부분의 장로 교회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점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양적 성장을 부추기는 것은 이 고백의 뜻을 알지 못하거나 이 고백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질적 성장의 판단 근거로 '질적 지수'를 들고 있는데
) 김순성, 앞의 논문, pp.80-81.
, 질적 성장의 여부를 설문 조사에 의한 지수로 평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수를 통해 평가하려는 교회 성장학은 교회의 본질적 의미를 왜곡하고 해치는 위험한 학문이다. 교회의 참된 성장은 성도의 개별적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함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유해무, "개혁교의학",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pp.550-551.
마지막으로, '장로교회 정치와 직분론의 관점'에서 가정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 보자.
김순성 교수는 장로교회 정치와 직분론의 관점에서 가정 교회는 치리와 권징이 매우 취약한 구조라고 평가한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82.
그러나 논자는 치리와 권징이 취약한 구조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구조라고 본다. 취약하다고 하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된다. 그러나 가정 교회는 그 구조상 치리와 권징의 보완이 불가능하다. 가정 교회는 평신도 목회를 지향하는 운동이며 직분 중심의 체제가 아니라 철저한 목자 중심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81.
치리와 권징은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Louis Berkhof, "벌코프 조직신학 하", 권수경, 이상원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5), p.835.
는 측면에서, 가정 교회는 많은 문제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김순성 교수를 비롯한 공교회의 신학자들은 이렇듯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는 교회론을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보완하여 억지로 장로 교회에 도입해보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장로 교회는 왜 치리와 권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먼저 연구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3) 가정 교회의 수용과 대안의 필요성에 대한 결론
지금까지 가정 교회가 한국 교회에 등장하여 논란이 된 배경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교회의 문제 그리고 가정 교회론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신학 교수들의 진단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가정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신학 교수들의 결론이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과연 가정 교회는 수용할 수 있는 교회론인지, 또 기존 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일종의 대안이 필요한가의 여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김순성 교수는 가정 교회의 수용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이다. 목회자의 신학적 소양과 리더십만 뒷받침된다면 수용이 가능하며, 나아가 장로교 직제에 부합하는 가정 소그룹 모델을 통해 장로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 시대의 교회 갱신 운동을 선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82.
이에 대한 근거로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첫째는, 가정 교회 소그룹 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오늘날 교회의 본질적 구조의 회복과 직결된다는 점이고 둘째는, 가정 교회 소그룹 목자의 직무가 오늘날 다시 회복되어야 할 장로 교회 장로의 목양 직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김순성, 앞의 논문, p.82.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가정 교회가 추구하는 교회론은 교회의 본질 회복과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교회의 참된 본질적 의미를 훼손시킬 뿐이다. 또한 올바른 직분의 수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를 방법론의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김순성 교수의 주장은 올바른 신학적 사고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며 이를 교회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상규 교수 또한 가정 교회의 수용에 있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정 교회가 가져온 가장 큰 거부감은 사실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행정적인 문제이며 기존 직분자들의 역할과 치리회의 기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보완하면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이상규, 앞의 논문, p.48.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가정 교회의 문제는 행정적인 문제가 아닌 신학적인 문제이다. 많은 신학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교회론을 이상규 교수는 행정적인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 이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다. 또한 가정 교회 체제는 직분 중심의 체제가 아니므로 근본적으로 장로 교회의 직분론과는 맞지 않으며 따라서 치리회의 기능도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도 이미 확인하였다.
유해무 교수는 장로 교회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켜야 하지만 탁월한 목회 방법론을 개발할 책임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66.
그러면서 목자를 선발하는 인선위원회를 당회로 하고, 목자를 안수하여 장로로 세우면 가정 교회론이 지닌 장점도 살리고 가정 교회의 배경인 회중 교회론도 극복할 수 있으므로 도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 유해무, 앞의 논문, pp.64-65.
장로 교회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말과 탁월한 목회 방법론을 개발할 책임이 있다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탁월한 목회 방법론을 개발하는 일은 장로 교회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장로 교회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시류에 따른 목회 방법론의 개발이나 도입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올바른 직분 수행을 통해 역사적 전통적 신앙과 교회론을 잘 상속하여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목회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정당하지 못하다.
) "오늘날 시류를 탄 교회성장이나 방법론이 목회학의 모델이 되어있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형편이다. 목회는 인간의 아이디어를 배경으로 하지 않으며, 목회적 경험이나 축적된 목회전통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것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모든 목회는 성경말씀, 더욱 구체적으로는 목회서신의 가르침과 충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광호, "개혁교회와 개혁주의적 목회",『진리와 학문의 세계』, 통권 5권, (대구: 달구벌기독학술연구회, 2001), p.46.
인선위원회를 당회로 하고 목자를 안수하여 장로로 세우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언도 이치에 맞지 않다. 가정 교회는 목자와 목장(구역)을 세우는 일이 교인의 선택과 추천에 달려 있는데 이것을 당회의 일로 넘기게 된다면 가정 교회가 추구하는 목장의 본래적 기능과 구조가 상실되며 엄청난 수의 장로가 필요할 뿐 아니라 장로의 직분을 감당할 만한 성숙된 성도들을 단시간에 배출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재미와 관계 중심의 모임을 추구하는 가정 교회 소그룹은 그 자체가 이미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직분의 의미를 훼손하며 정상적인 치리와 성례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문제가 있다. 즉, 가정 교회는 단점을 보완해서 수용할 수 있는 성질의 교회론이 아니므로 그것을 억지로 고집하여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변종길 교수는 앞에서 살펴 본 긍정적 수용이 가능하다는 입장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 물론 장로의 수를 늘이거나 장로가 몇 개의 소그룹을 관할하자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이는 가정 교회 체제를 도입하여 시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역(소그룹)을 강화하여 장로가 그 구역을 잘 살피자는 취지의 발언이므로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28.
변종길 교수의 결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장로의 적극적인 직분 감당이다. 즉, 장로가 직분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그 기능을 잘 감당하게 되면 가정 교회와 같은 문제점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므로 가정 교회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직분을 올바르게 감당하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 변종길, 앞의 논문, p.30.
논자는 변종길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우리 시대의 개혁 교회는 개혁된 모습을 바르게 회복하고 직분을 그 의미대로 잘 감당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직분과 교회 본질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가정 교회론을 도입하여 자의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세워나가고자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정 교회론을 우리 시대 교회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새로운 목회 방법론이나 대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대로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그를 통해 교회의 표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법인 것이다.
3. 교회의 결정
이제 가정 교회 문제를 공교회적 차원에서 바르게 진단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일이 남았다. 또한 가정 교회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교회를 어떻게 치리할 것이며 앞으로 가정 교회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분명히 하는 일이 요구된다. 이를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공교회성의 회복은 구호에 그칠 것이며, 교회관은 더욱 혼란해지고 교회 본질의 훼손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그러므로 고신 교단은 이제 총회를 앞두고 가정 교회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교단과 교회들이 가정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혁 주의를 표방하는 공교회로서 마땅히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논자는 다음과 같이 가정 교회 문제와 관련하여 중점이 되는 사항을 정리하여 교회의 올바른 결정을 위해 조언을 하고자 한다.
1) 가정 교회를 도입한 교회의 치리 문제.
2) 가정 교회에 대한 신학 교수 상호간의 해석이 다른 문제.
3) 시찰회와 노회가 7년 동안이나 가정 교회 도입을 묵인한 문제.
) 김낙춘 외 5인, "패널 토의",『고려신학대학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고려신학대학원, 2007. p.94. 참고.
4) 교회나 노회의 결정 없이 가정 교회를 도입한 목사의 권징 문제.
5) 가정 교회가 개교회에 도입되기 전에 신학적 해석을 하지 않은 신대원의 문 제.
6) 공교회적으로 이 사안을 긴급히 대처하지 않고 전체 교회에 올바르게 공지 하 지 않은 총회의 문제.
고신 총회가 가정 교회 문제를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연구토록 한 기간이 이미 지났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고신 총회는 교단의 입장을 올바르게 수립하여 전체 교회에 고지하지 않고 있다. 연약한 고신 교회의 성도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새로운 것에 매료되어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매우 심각한 문제들이다. 고신 교단은 이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판단을 내리고 이를 조속히 전체 교회에 고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는 길이며 공교회로서의 올바른 태도이다.
) The Westminster Confession, XXXI, 3.; 이광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7), pp.416-417.
만약 이 문제를 올바른 해석 없이 그냥 넘기거나, 아무런 결정 없이 덮어 버린다면 고신 교회는 공교회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두려운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III. 결론
지금까지 가정 교회의 문제와 그에 대한 신학자들의 해석 그리고 이에 대해 교회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 볼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정 교회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핵심적인 내용들은 충분히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내용들을 바탕으로 가정 교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신학적 검증이 각 공교회를 통해 바르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가 올바른 교회관을 회복하고 교회에 끊임없이 침노하는 세속적 풍조와 위험한 이론들을 잘 방어하게 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님께서 구속사 가운데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인도해 오셨으며 어떻게 교회를 세워야 하는지를 기록된 말씀과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통해 잘 살피게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노력이 있을 때, 우리 시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참된 자태를 견지하며 머리이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교회 가운데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각성이 신학 교수들과 목회자는 물론 각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있기를 촉구한다.
출처: 예장 서울노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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