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믿음의 창

천로역정 14 - John Bunyan

에반젤(복음) 2020. 11. 5. 05:39


천로역정 14 - John Bunyan 3. 십자가에서 ‘미궁’에 이르러 갑주를 입기까지

다시 돌이켜 본즉 ‘기독도’는 산으로 올라가는데 처음에는 달음박질로(영적으로 뛰어가는 상태) 가다가 후에는 걸어가고 걷다가(육체가 못 따라가는 상태) 나중에는 험한 곳을 당하여 손과 무릎으로 기어올라간다. (휴식정까지는 계속 이 자세(기도)로 가야 합니다.) 거기 산마루에서 한 중턱이나 되는 곳에 좋은 정자가 하나 있으니 이는 그 산의 주인이 피곤한 행인을 위하여 쉬어 가도록 지은 것이다. 그래서 ‘기독도’는 거기까지 가서 앉아 쉬었다. (철저하게 연단 받는 영적 부지런함을 잠깐 쉬는 것) 그리고 품에서 책을 꺼내어 읽고 스스로 위로하며(말씀으로 위로함 받으며) 또는 십자가 곁에 섰을 때에 받은 옷을 다시금 살펴보고 매우 상쾌하여 스스로 즐거워하다가(과거에 주신 은혜도 생각하면 안됨) = 회의와 억겁이 찾아오기에) 마침내 잠이 들어 거의 밤이 되도록 거기서 깊이 자고 있게 되었다. 이렇게 잠든 중에 그의 책이 손에서 떨어졌다. 마침 한 사람이 저에게로 와서 깨우며 말하기를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 있는 자가 되라”(잠 6:6)하였다. 이에 ‘기독도’는 놀라 깨어 일어나서 빨리 길을 걸어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영적인 진보를 쉬는 상태) 저가 이렇게 산꼭대기에 올라갔을 때에 어떤 두 사람이 저를 향하여 급히 달려오니 하나의 이름은 ‘억겁’(臆怯)이요,(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상태) 다른 하나의 이름은 ‘회의’(懷疑)이었다.(번뇌가 가득한 생각) ‘기독도’가 저희에게 말하기를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들이 그른 길을 행하셨구려” 억 겁 - 우리는 ‘시온’성으로 가려 하여 어려운 곳을 지나갔었으나 가면 갈수록 더 위험한 일을 당하겠는고로 몸을 돌이켜 돌아가려 합니다. 하고 회 의 - 네 여기서 멀지 않은 길가에 사자들이 엎드려 있는데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가까이 갔더면 즉시 찢겼을지도 모릅니다.(앞일에 대한 두려운 생각) 기독도 - 당신이나를 두렵게 하는 말이외다. 그러나 내가 어디로 가야 안전함을 얻으리까? 만일 내가 본향으로 돌아간다면 거기는 불과 유황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라 분명코 내가 거기서 망할 것이요 만일 ‘천성’으로 갈 수 있다면 거기서는 확실히 안전할 줄 합니다. 내가 돌아가는 것은 죽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고 앞으로 나아가면 죽음의 두려움이 있으나 그것만 지나면 영생이 있을 것이니 나는 모름지기 앞으로 가기를 힘써야 할 것인즉 그대로 결심합니다.(이러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3차 연단을 통과 할 수가 없음. 이 마음은 성령님께서 강하게 주심) 그리하여 ‘회의’와 ‘억겁’은 산으로 내려가고 ‘기독도’는 앞을 향하여 떠났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을 다시금 생각하며 자기의 책을 읽음으로 안위를 얻고자 하여 품을 더듬어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얻지 못하였다. (잠시 말씀을 잃어버린 상태로서 영적인 지각이 흔들린 과정) 그래서 ‘기독도’가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라한 것은 그것이 있어야 믿음을 안돈시키는데 쓰기도 하고 또는 그것으로 ‘천성’에 들어가는 통행권을 삼기도 함이었다. 그리하여 더욱 번민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생각이 난 것은 자기가 산 중턱에 있는 정자에서 자던 것이다. 이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자기의 우매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고 즉시 책을 찾으려고 도로 갔다. 그 도로 가는 길에서 ‘기독도’의 마음이 얼마큼 번민한 것은 누가 능히 설명할 수 있으랴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 완전에서 완전으로) = (오직 말씀으로만 가는 길) 혹은 탄식하고 혹은 울며 몸의 피곤을 위하여 잠시간 쉬어 가라고 세운 정자에서 어리석게도 자고 있던 것을 인하여 스스로 책망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는 이렇게 도로 가면서 자기여행 중에 몇 번이랄 것 없이 위로가 되어 준 그 책을 다행히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하고 항상 길 이편저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말씀을 찾고자 노력하는 마음) = 예리하게 깨어서 3차 연단 과정을 1초라도 마귀에게 시간을 내어 주지 않으려는 노력. 이 과정에서 1분 실수한 것을 일평생에 회복하기가 어렵다(이성봉목사님) 이렇게 가다가 자기가 앉아서 자던 정자가 다시 눈에 뜨임에 미쳐서 그의 번민이 더 한층 새로워지며 자기의 자던 것이 나쁘다는 생각이 다시금 선명하여진다. 그리하여 가면서 자기의 죄악된 잠을 한탄하여 말하기를 낮에 잔다든지 곤란 중에 잔다는 것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살 5:7-8, 계 2:5) 이 산의 주인께서 행객의 심신을 쉬어 가라고 설립한 곳에서 내가 육신의 평안을 위하여 쉰 것은 육신이 방종함이로다 얼마나 내가 헛길을 걸었는가. 이는 ‘이스라엘’사람이 당한 일과 같으니 저희 죄를 인하여 저희가 도로 ‘홍해’길로 가게 된 것이다. 이 죄악된 잠 때문이 아니었더면 즐겁게 갈 수 있었을 길을 슬픔으로 가게 되었구나. 지금은 내 길을 벌써 얼마나 멀리 갔을 것을 한 번만 걸으면 족한 길을 세 번이나 걷게 되었으며 지금은 또한 날이 거의 다 되었으니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이 되었구나. 아 내가 자지만 아니했더면 좋았을 것을! 그러는 동안에 저는 다시 정자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한참 앉아서 울다가 마침 우연히도 슬픔을 머금고 머리를 숙여 자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기 책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떨면서 급히 그것을 집어 품에 넣었다. 저가 그 책을 다시 얻을 때에 얼마나 기뻤을 것은 누가 능히 말할 수 있으랴. 이는 그 책이 저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될뿐더러(생명의 말씀) 원하는 ‘천성’에 들어갈 허가증이 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