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

[스크랩] 제3장 마가복음 서론 - 김세윤교수

에반젤(복음) 2021. 4. 27. 07:29

제 3 장 마가복음 서론 - 김세윤교수

 

 

1. 마가복음의 특징

(1) 내적 증거

물론 마가복음 내에서는 이 복음서를 누가 썼는가 하는 내적인 증거는 없다.마태복음도 없고 이 복음서를 누거 썬는가 하는 내적인 증거가 없다.“ΚΑΤΑ ΝΑΡΚΟΝ”.이 마가복음의 제목이 있는데 후에 달린 것이어서 내적인 증거는 없다.

(2) 외적 증거

1)파피아스(Papias)의 증거

외적인 증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외적인 증거로는 파피아스라는 사람(약 60-130년 사이)이 아주 초기의 그리스도인인데 소아시아의 히에라 폴리스의 주교였는데 감독이었는데 일 설에 의하면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이 사람이 요한의 제자다.그런데 이 요한이 어떤 요한인가?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인가? 초데교회에 마리아와 요한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어떤 요한인지가 늘 문제가된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인지 아니면 장로요한인지 아니면 요한문서 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 등이 요한의 이름으로 가는데 그 저서의 저자를 이야기할 때 사도요한 장로요한 계시자 요한등 요한의 아름에 여러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이사람도 요한의 제자이고 폴리갑의 친구라고 그러는데 어떤 요한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사도요한일 가능성이 많다. 연대로 보면 아주 초기의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이 없다 - 의 증언에 의하면 제2복음서는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활동했던 요한 마가가 로마에서 베드로의 설교들을 적었다고 증거한다. 베드로가 보고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적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파피아스에 의하면 마가복음의 내용은 베드로의 설교이다. 그것을 마가가 적었는데, 그러나 자기가 기억나는데로 충실히 적었으나, 꼭 순서대로 적은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또 문체가 잘된 것은 아니다는 그런 말도 덧 붙었다.

그래서 그 이래로 교회전통에서는 요한 마가가 이 복음서의 저자로 되어 있다.

이 요한 마가는 베드로전서 5장13절에 보면 베드로의 조수 노릇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또 골4:10에 보면 바울의 조수로도 나타난다.

사도행전에 보면 마리아의 아들로서 - 어떤 마리아인줄 모르나, 예루살렘에 아마 큰 집을 가지고 잘 살았던 모양이지 초대교회가 그 집에서 자주 모였다. 사도행전 12장12절에 보면, 또 바나바의 친척이다. 아마 바나바의 조카쯤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의 첫 선교여행의 동역자 조수로 따라 갔다가, 어떻게 된 셈인지 마가가 돌아와서 나중에 바나바아 바울이 2차여행을 할 때, 이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갈라서는 일이 있다. 그런 마가이다. 이 사람이 원래 팔레스타인 출신, 예루살렘 출신으로서 바울과 관계가 있고 베드로와도 관계가 있는 초대교회에 상당히 중요한 역활을 했던 사람이다.

 

2) 비판주의 학자들의 견해

 

ㄱ) 양식사가들의 견해

 

베드로의 설교를 마가가 적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최근에 와서는 많은 비판적인 학자들은 마가의 저작설을 많이 회의한다. 그 이유는 주로 양식사가들이 이 복음서가 원래 독립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전승들을 그냥 꿰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베드로의 목격자적 증언을 그래도 어느정도 차례를 갖추어서 적었다고 보고한 것이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ㄴ) Kimmel의 견해

 

또 하나의 이유는 가령 K mel같은 사람이 이유는 마가복음을 자세히 보면 팔레스타인의 지리와 관습을 별로 확실히 잘 아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를 들어서 요한 마가의 저작설을 회의 한다.

그러나 마가복음이 진짜로 마가가 팔레스타인의 지리와 관습을 잘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느냐 그것에 대한 평가가 어긋난다. 그리고 마가가 혹 팔레스타인에서 살았지만 헬라파 유대인에 속했을 가능성도 있고, 또 팔레스타인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아서 가끔 팔레스타인의 지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ㄷ) 헹겔(M. Hengel)의 견해

 

그래서 최근에 튀빙겐대학에 마틴 헹겔(M. Hengel)교수는 파피아스 증언이 옳다고 길게 논증을 했다. 이 사람의 중요한 책 'Studies in the Gospel of Mark' 에서 그는 비판적인 학자들에 대항을 해서 마가복음이 마가에 의한 저작설과 그리고 마가복음이 주로 베드로의 설교를 옮겼음을, 즉 파피아스 증언이 신빙성이 있음을 싱당히 길게 논증을 했다.

그래서 우리로 회의할 것이 없이, 마가복음은 요한 마가에 의해서 저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

초대교회에서 문서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사도가 직접 저술 했다고 주장하는 그런 경향이 강했는데, 이 두번째 복음서는 사도가 적접 지었다고 하지 않고, 가령 베드로가 직접 지었다고 하지 않고, 요한 마가가 지었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요한 마가가 분명히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에는 베드로라는 위대한 권위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요한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를 쓴 것으로 나타낸다. 만약에 제2복음서의 저자가 불분명하고 불확실하고 그러면 교회에서 이 복음서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어떤 큰 이름을 지었다고 가령 베드로가 직접 지었다고 했거나 또 하나의 이름을 들고 그 사람이 지었다고 했을 것이다. 특히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의 그늘아래, 초대교회에서 큰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서를 큰 사도이름에 호소하지 않고 마가가 지었다고 하는 것도 이 복음서의 마가 저작설을 뒷받침하는 한 증거이다.

 

2. 마가복음의 기록연대

 

(1) 내적 증거

 

이 복음서를 언제 썼느냐? 연대에 대해서 외적증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적증거, 즉 마가복음의 내용을 살펴 보아서 혹 그 내용이 연대에 대한 어떠한 시사를 해 주느냐를 살펴봄으로 연대를 생각하게 된다.

1) 가령 마가복음에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다.(8:34, 9:31, 10:33ff, 45, 13:8, 10등) 예수가 핍박받음은 교회도 함께 핍박받은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다.

 

2) 또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에 대한 토론이 많다.(7:17-23, 26ff, 13:10)

그래서 이 두가지를 생각해서 -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고, 또 이방선교의 주제를 다루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들이 언제 심각하게 대두 되었느냐를 살핀다. 1C의 어느 시점에 이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 되었느냐면, AD60-70무렵에 심각하게 대두 되었다.

내용의 이런 점을 볼 때, 복음서가 이 무렵에 쓰여지지 않았나 하고 추정을 한다. 그래서 이 무렵의 문제들을 반영해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나 하고 토론을 한다.

 

3) 또 하나는 13:2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연대 잡은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이 진짜 예언이면, 마가복음이 70년대 이전에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짜 에언이면, 사건자체로 부터 만들어 낸 예언이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면, AD70년에 성전파괴가 일어났다. 그 이후에 교회가 마가복음을 쓰면서 이 예언을 가짜로 만들어 내어 가지고 예수의 입속에 넣어서 마치 성전파괴 사건전에 예수께서 이미 예언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사건 자체로부터 만들어낸 예언이라 한다.

그래서 비판적인 학자들은 대개 이 사건자체로부터 만들어낸 예언으로 보고, 그렇다면 마가복음은 이미 성전파괴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러면 이것은 70년대 이후에 써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이것과 더불어 토론되는 것이 13장은 종말에 올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묵시적으로 쓰고 있다. 13장을 작은 묵시록이라 하는데 종말에 일어날 여러가지 고난과 표적들에 대한 계시형태로 되어 있다. 특히 13장 13-39에 보면 성전의 더렵혀짐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에언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그 중에서 14절에 나오는 성전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것은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말인데 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우상이 세워진다는 소리이다. 즉 성전에 세워질 우상의 상, 제우스 상 이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BC 168년에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제우스의 성전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유대교를 완전히 금했다. 안식일도 못지키게 하고 할례도 못하게 하고 물론 성전에서 제사도 못하게 하고 그랬다. 그래서 메카비 반란이 일어났다. 그 때에 안티오쿠스 4세가 세운 제우스상을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 하는데, 지금 여기서 14절에 그것을 인용하고 있다.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전에 그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면 그것이 종말의 sign 으로 되어 있다.

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다는 이야기가 AD40년에 로마의 미치광이 황제 칼리굴라(Caligula)가 자기를 제우스의 성육신으로 주장을 하면서 자기 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라고 했다. 그래서 아주 엄청난 위기가 왔다. 그래서 만일 제우스 상이 거기에 서면 유대인들은 총반란이 벌어져서 대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을 그 당시 시리아 총독으로 있었던 마룰루스(Marullus)라는 사람이 이 명령의 엄청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간을 조금 끌었다. 그 와중에 41년 칼리굴라가 경호실장에게 암살을 당한다. 그래서 그 위기가 넘어갔다.

지금 13:14이 그 사건에 대한 예언이냐, 아니면 AD 70년에 일어났던 그 성전의 파괴와 더럽힘 등을 두고 이야기 하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마가복음의 연대를 정할려고 한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 한데로 비판적인 학자들은 이런 예언들을 사건자체로 부터 만들어낸 예언들로 보고, AD70년 이후에 마가복음이 쓰였다고 본다.

 

4) 캠브리지의 신약학자였던 John Robinson 은 아주 큰 책을 썼는데, Redating the New Testament (1976) 라는 책이다. 그는 1960년에 Honest to God 라는 조그만한 책자로 신학계에 아주 혁명을 시도한 신학적으로는 아주 과격파이다. 이 사람은 원래 철학자로 시작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철학신학, 조직신학 그런 주제에 대해서도 글을 썼지만, 그런 주제에 대해서는 아주 과격파였지만, 그러나 이 사람이 주로 연구한 것은 신약이었다. 신약의 역사적인 연구에 있어서는 극보수주의자였다. 그러나 신약의 메세지를 오늘날 현대인의 사고범주(category)로 번역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과격파 중에 과격파 였다. 불트만 이상의 과격파였다. 그래서 아주 묘한 combination을 이루고 있다.

이 사람의 주장은 4복음서중에서 요한복음이 제일 먼저 쓰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요한복음이 제일 늦게 쓰였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요한복음이 제일 먼저 쓰였다고 한다. 요한복음의 모든 역사적인 기술이 공관복음의 기술보다 더 정확하다고 한다. C.H. Dodd의 제자인데 아주 재미있는 친구이다.

그런데 그의 책 Redating the New Testament (1976)에서 그는 AD70년의 성전파괴 사건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서, 신약성경 모두가 AD70년전에 쓰여진 것으로 주장한다. 왜 그러느냐면 AD70년의 성전파괴와 유대인들의 노예로 전락한 그 사건은 유대교에서 완전히 엄청난 사건으로 유대교가 새롭게 태어나는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었다.

그 전에는 유대교가 원래 성전중심의 종교 - 성전과 율법만을 중심으로 하는 이런 종교였다. 그런데 이 후로는 성전이 더 이상 없으니까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가 되었다. 특히 이후에 AD100년쯤까지의 조정기간을 걸쳐서, AD100년쯤에 유대교가 완전히 율법중심의 랍비 유대교로 변모한다. 그리고 AD70년의 대재앙을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특히 메시야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내린 재앙으로 보았다. 그래서 복음서들이나 신약의 문서들이 유대인들과의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의 율법신학에 대한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요한복음에는 아주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이란 말이 전혀 다르게 쓰인다. 이스라엘은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유대인들은 이 세상의 대표로서 마귀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예수에게 적대하는 마귀자식의 대표가 유대인들이다. 요한복음에는 유대인들이란 말이 욕으로 나온다. 이렇게 신약 성경 전체가 유대인들에 대한 논쟁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런데 우리 신약성경 전체가 AD70년 이후에 쓰였다면, AD70년에 유대인들에게 내려진 재앙을 얼마나 효과적인 논쟁용으로 썼겠는가? 우리 신약성경에 아마 유대인 너희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그 재앙이 내렸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종말론적인 대속의 죽음인데, 성전의 제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활시킴으로 받으시고 너희들의 성전을 다 때려 부숴버렸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 논쟁을 했겠지요. 우리의 신약성경이 AD70년 이후에 쓰였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의 논쟁이 우리 신약성경에 하나도 없다. 그것은 무슨 소리냐면 우리의 신약성경이 AD70년 전에 다 쓰였기 때문에, 아직 AD70년의 재앙을 모르고 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AD70년 재앙이후에 썼다면, 신약성경저자들이 유대인들과 논쟁을 할 때, AD70년의 재앙을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주 효과적인 논쟁용으로 사용했을터인데, 일체 그런 흔적이 없다.

그런 것을 주로 이유로 해서 J. Robinson은 우리의 신약성경의 모든 문서들이 심지어 요한복음, 사도행전까지도 전부 AD70년 전에 쓰였다고 주장한다.

 

5) 그런데 최근에 M.Hengel 교수는, 이 베드로의 통역관이었던 요한 마가가 AD69년에 정확히 로마에서 이 복음서를 썼다고 길게 논증을 했다. AD69년이 로마에서 혁명의 해이다. 왜냐하면 64-68년에 걸친 네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핍박이 있었고, 그 끝에 69년에 네로가 암살을 당한다. 그러니까 AD70년전에 로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네로에 대한 핍박과 네로의 암살당하는 그런 정황속에서 네로의 핍박이 절정을 이를 때 쓰였다고 주장을 하므로 M.Hengel 교수는 69년에 마가복음이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 이 소리가 지금까지 나온 학설중에서 제일 그럴듯한 소리이다. AD69년에 쓰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고 13장의 작은 묵시록에 나오는 예루살렘에 대한 위협, 성전에 대한 위협, 이런 분위기가 있다. 이것은 바로 이 복음서가 쓰이고 있는 로마에서는 네로의 핍박아래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핍박에 처해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핍박을 당하고 어떻게 승리 하는가를 보임으로, 위로를 주고, 권면을 주려고 하고, 동시에 예루살렘에서는 AD66년부터 일어나는 반란으로 또 거기에서 대환란이 있어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멸망하려는 위기에 있고 그래서 이 마가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의 위기를 반영하는 그런 복음서를 썼다고 볼 수 있다.

 

3. 기록 장소

 

(1) 외적 증거

 

어디에서 썼느냐? 물론 내부 증거로는 어디에서 썼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증거로는 파피아스의 말처럼 로마에서 썼다고 한다. 그런데 내부증거가 이 로마설을 많이 뒷받침한다.

 

1) 가령 66-69년, 70년 그 무렵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사건들 즉 로마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에 대한 어렴풋한 분위기 제시만 있지 그것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만약에 이 마가복음서가 팔레스타인에서 쓰였다면 그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반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이렇게 어렴풋이 반영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팔레스타인 밖에서 썼다.

또 1C의 기독교 중심이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이 하나의 중심지였고, 또 안디옥을 중심한 시리아가 하나의 중심지 였고, 그 다음에 그리스 반도 소아시아 지금의 그리스가 하나의 중심지였고, 터어키가 하나의 중심지 였고, 로마가 하나의 중심지 였다. 그런데 초대교회 문서들이 대개 팔레스타인이나 안디옥에서 많이 발생을 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에서 마가복음이 왜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는가? AD66-70년 사이에 그 엄청난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어렴풋한 분위기 전달만 있지 자세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거기에 있는 독자들에게 쓴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시리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에서 썼느냐? 그것도 아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이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반란을 일으켜 가지고 아주 엄청난 전쟁을 하게 되자, 시리아 지역에서도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엄청나게 많이 잡아 죽였다. 그런 것도 전혀 마가복음에 반영이 안되어 있다. 그래서 사리아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전승이 주장한대로 로마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본다.

 

2) 또 막7장 3절4절 같은데 보면, 유대관습을 마가가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한다. 만약에 마가복음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해서 쓰여진 복음이라면 그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누구든지 그 관습을 다 안다. 마가가 그런 관습을 독자들을 위해서 일부러 설명하는 것을 보면 팔레스타인 밖에서 이방인들을 위해서 이 복음서를 쓴 것이 거의 분명하다. 또는 아람어로 된 표현들을 마가가 번역을 한다. 가령 14:36에 보면 '아빠'를 번역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방인들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밖에서 쓴 것 같다.

 

3) 그런데 마가복음에 라틴어들이 꽤 많다. 예컨데 4장21절에 modus, 5:9 legion, 6:27- spiculatore, 6:37- Denarius, 7:4-, 12:24- census, Qadrus등 이런 라틴어들이 괘 많이 나온다. 이런 것을 보아도 팔레스타인 밖, 라틴말을 쓰는 곳 즉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본다. 즉 AD69년쯤에 로마에서 네로의 핍박이 절정에 다다른 그 무렵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요한 마가에 의해서 쓰였다.

그런데 요한 마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주로 담아서 썼다. 쓰는데 그 독자의 상황에 적용해서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자료들만 썼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해서 마가복음에 담은 것만 말했겠어, 더 많은 것을 말했겠지. 그런데 특별히 이런 자료들만 마가가 고르고, 또 이런 점들을 여기저기 강조하고 한 것은, 그의 상황에 적합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이것이 양식사와 편집비평의 통찰력이다. 즉 베드로로부터 받은 자료를 자기의 삶의 장(Sitz im Leben)의 need에 따라 강조점을 새롭게 하고, 적당한 자료를 고르고, 이런 식으로 해서 마가가 복음서를 썼다는 것이다.

 

4. 마가복음의 주된 사상

 

그러면 마가가 자기 복음서를 쓸 때에, 어떠한 주된 사상을 근거로 해서 썼을 것인가? 어떤 사상을 중심으로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를 편집해서 복음서를 썼을 것인가? 거기에 대한 의견이 여러가지이다.

 

(1) C.H.Dodd의 견해

 

C.H.Dodd의 설로서 마가복음의 서술 순서는, 예수의 역사에 순서를 대충 다른 것으로서 초대교회가 공통적으로 이 예수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다고 선포한 케리그마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행전10:37-41, 13:17-41, 고전15:3-5등에서 볼 수 있는데, 행전10:37-41은 초대교회의 베드로의 설교이고, 행전13:17-41은 바울의 설교이고, 그리고 고전15:3-5은 바울이 자기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로부터 받았다는 복음이다. 여기서 C.H.Dodd는 초대교회의 어떠한 설교의 정형(케리그마)을 유출했냐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첫째로, 구약의 예언, 또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성취의 시대가 도래했다.

2) 둘째로, 이 구약의 예언, 구원의 약속의 성취는 예수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일어났다고 한다.

3) 셋째로,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는 하나님의 우편에 만유의 주로 높힘받고 새 이스라엘,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의 머리가 되었다.

4) 넷째로, 교회에 주어지고, 교회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의 표증이다.

5) 다섯째로, 이 메시야 시대는 그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곧 완성될 것이다.

6) 여섯째로,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으라는 호소, 이런 것이 초대교회의 설교의 정형이었다. 케리그마의 정형이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바로 이와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을 담으면서 자세한 점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예수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의 순서를 따랐다고 그렇게 C.H.Dodd는 본다.

 

즉 C.H.Dodd에 의하면 마가가 마가복음을 편집한 원칙은,

하나는, 초대교회의 설교의 정형의 내용을 담고 있고,

둘째로, 실제로 예수의 사역의 역사적 순서를 대개 따랐다. 모든 자세한 것은 그렇지 않지만 C.H.Dodd는 그렇게 보았다.

그런데 이 C.H.Dodd의 이 설이 아주 중요하다. 이 설이 그의 책 '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s '란 조그만한 책에 있다. 아주 내용이 깊고 영항력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D. Nineham이라는 사람이 주로 양식사적인 통찰력을 반론으로 들면서 마가복음의 틀은 예수의 사역의 진짜 역사적인 순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을 해서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것에 대해서 D. Guthrie 책에 자세히 있다.

 

(2) W. Wrede의 견해

 

비판적인 학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강력하게 영향력있는 학설은 W. Wrede의 Messianic Secret 이론에 의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이 메시야적 비밀이라는 원칙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W. Wrede는 원래 예수가 실제로는 메시야가 아니었다고 한다. 스스로 메시야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메시야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또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서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가 부활했다는 확신가운데, 예수가 메시야라고 선포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메시야로 선포하게 되는데 있어서, 역사적인 현실과 신앙과의 괴리가 생겼다. 그래서 금방 유대인들과의 논쟁가운데 변증의 문제가 생겼다.

예수가 메시야였으면 왜 당시의 메시야로 알려지지 않았느냐? 예수가 메시야 였으면, 왜 구약과 유대교에서 이미 잘 예언된 그런 메시야의 특징을 나타내지 않았느냐? 그것에 대한 답으로 마가가 이 복음서를 썼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의 소설이다. 그 내용은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마가가 예수는 실제로 메시야 였다고 썼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메시야로 알려지지 않았느냐? 예수께서 그것을 비밀에 붙이도록 명령을 했기 때문에 그가 메시야로 안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함으로 그 비밀이 벗겨져서 예수가 메시야임이 판명이 되서 우리가 선포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는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메시야로 나타내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W. Wrede는 복음서라는 독특한 기독교적인 문학장르가 바로 마가의 이와같은 Messianic Secret라는 원칙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고, 마태와 누가와 요한은 마가를 그런 점에서 답습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W. Wrede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관찰에서 그렇다.

 

첫째로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기술되어 있는 예수의 상은 당시 유대교에서 기대했던 메시야 상과 다르다. 당시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은 다양했다. 그러나 주종을 이룬 메시야 사상은 다윗의 아들로 다윗왕조를 재건하고 모든 이방 민족들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줄 전사, 전쟁의 영웅, 왕, 이런 정치적 메시야이다.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의 행적을 보고 유대인들이 메시야로 알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구약에서 전승받은 메시야 사상과 예수의 모습이 다르므로 그런 이유로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마가복음에 강조된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정체를 예수가 혼자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밀이 가끔 탄로가 난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들이 예수의 메시야됨을 안다. 하나님의 아들됨을 귀신들이 부르짖으면, 조용히 하라,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다.

또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의 메시야 정체가 그의 제자들에게 탄로났다. 그때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널리 소문내지 못하게 한다. 또 예수를 통해서 치료받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야 됨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의 메시야 됨을 알면 그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가르친 것이 있다. 특히 비유를 말해 놓고 군중은 못 알아듣는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만 따로 그 의미를 가르친다. 그래서 예수가 그의 정체를 자꾸 숨기는 것으로 되어있다.

W. Wrede는 바로 마가의 이런 의도를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예수의 모습이 아니고 마가가 지어낸 technic이라고 한다. 실제로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어낸 technic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W. Wrede에 의하면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었다. 그런데 교회는 그의 부활을 경험한 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했다. 그래서 역사적인 실제와 믿음과 괴리가 생겼다. 이 괴리에 대한 답으로 마가가 메시야적 비밀이라는 소설적 원리를 창안해서 이런 식으로 예수의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예수는 진짜 메시야였다. 그래서 그래서 그의 메시야 됨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보통 인간보다 인지능력이 강한 영적존재들은 그의 메시야됨을 인정했고, 예수로부터 그의 메시야적 능력을 체험한 즉 치유받은 자들도 그의 메시야 됨을 인정했고, 예수와 함께 오래같이 살면서 그로부터 배움을 받고 그를 아주 가깝게 알게 된 제자들도 그의 메시야 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메시야 됨에 대한 문제로 재판받고 십자가에 죽었다. 그러니까 보통 인간보다 인지 능력이 많다거나 또는 예수로 부터 능력을 체험을 했다거나 또는 예수와 가까이 지낸 사람은 다 예수가 메시야 임을 알았다.

그러면 왜 널리 메시야 사상이 안 알려졌느냐?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너무 소문내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고 해서 그런 것이다. 이것을 마가가 다 지어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이 왜 쓰였냐면, 마가가 이 비밀이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C.H.Dodd는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에 따라 그 내용 곧 예수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선포하기위해서인데 그것을 베드로가 설교한 대개의 역사적인 사역의 순서로 썼다는 것인데, W. Wre-de는 그것이 아니고 마가복음이 하나의 소설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설이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비판적인 학자들에게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설이 최근에 와서 여러가지로 빵구가 났다.

 

(3) W. Wrede의 견해에 대한 반론

 

가장 큰 이유는, 그럼 예수가 메시야적 자기 이해가 없었느냐? 예수가 진짜 메시야가 아니었느냐? 그렇다면 역사적인 예수가 아니었다면 W. Wrede설이 성립할 수 있다. 만약에 W. Wrede식으로 역사적인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교회가 예수를 메시야라고 선포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W. Wrede이래로 불트만까지, 불트만 제자들까지 이 비판적인 학자들은 막연히 예수가 부활했다는 체험에서 교회가 예수가 메시야라고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이 그의 부활에서부터 나왔다. 역사적인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었는데 그가 부활했다는 확신 가운데서 교회가 그를 메시야로 선포했다. 이런 식으로 신학을 전개한다.

 

그런데 최근에 더 예리한 연구에 의하면, 이 부활자체는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을 낳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왜 그러느냐면 구약과 유대교의 메시야는 부활한다는 전제가 없다. 메시야는 죽고 부활한다는 전제가 구약과 유대교에는 없다. 메시야가 죽고 부활할 수가 없다. 구약과 유대교에 의하면 메시야는 하나님의 축복 덩어리이다. 그런데 어떻게 메시야가 죽을 수가 있나? 여러분들 사53장에 메시야가 죽는다는 소리가 있지 않느냐 할지 모르지만, 사53장은 구약내에서도 아주 특별한 장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유대교가 사53장을 어떻게 이해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구약의 아람어판 - 탈굼 - 사53장을 보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주의 종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을 한다. 다만 거기에 주의 종은 고난 받는 자가 아니고 승승 장구하여 이방민족들을 정복하는 다윗과 같은 전사, 왕으로 나와 있다. 사53장의 고난은 전부 이방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놓았다. 그래서 사53의 정신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주의 종은 고난받고 백성을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하는 자가 아니고, 승승장구하여 이방들을 다 정복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모세 율법을 잘 가르치는 메시야이다. 사53에 있는 고난은 이방인들이 다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이 유대교의 대표적인 메시야 사상이다.

메시야가 고난 받을 수 없으므로 메시야가 부활한다는 사상은 없다. 유대교에 이런 전제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은 나올 수 없다. 가령 구약과 유대교에 메시야는 죽고 부활한다는 사상에 의해서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 그랬다면, 초대교인들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없으므로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가? 해석할 카테고리(category)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 예수가 메시야라는 주장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역사적인 예수가 스스로 메시야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환멸을 느끼고 실망하고 다 도망을 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을 시켰다. 이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옳다고 인정함(vindication)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메시야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옳다고 인정하신 것이다.

이랬을 때만 부활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을 낳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부활이라는 사건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을 낳을 수 있는 힘은, 구약과 유대교에 메시야가 부활한다는 전제이던지, 아니면 예수가 스스로 메시야라 주장을 했을 때 인데, 전자는 구약과 유대교에는 없다. 그러니까 자연히 예수의 부활 후, 예수가 메시야라고 신앙고백한 초대교회의 선포는 예수가 메시야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전제하게 한다.

그래서 W. Wrede식의 메시야적 비밀이 아니고 진짜 메시야적 비밀을 논하게 된다.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중요한 것이 삼하7장의 나단의 신탁인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서 다윗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네 수가 다하면 내가 너의 아들 다윗의 아들을 일으켜서( 다윗의 씨 하나를 일으켜서) 다윗의 왕 위에 앉히고 그를 통하여 너의 집을 내가 세우겠다. 다윗 왕조를 내가 세우겠다. 그를 이스라엘 위에(하나님의 백성위에) 내 대신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왕이라는 의미로 나의 아들로 곧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겠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나를 위해서 성전을 짖게 하겠다. 이것이 나단의 신탁이다. 이것이 구약과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의 가장 중요한 뿌리이다. 여기서 구약과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이 거의 다 나온다.

또 하나는 신명기 18장 15절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자이다. 그래서 다윗의 씨, 다윗의 가지, 다윗의 아들, 그냥 다윗 이런 것들이 다 메시야 칭호이다. 이것이 구약과 유대교에서 계속 재해석되어서 메시야적으로 이해되는데, 그래서 시편89, 139, 사11, 미가 5장, 스가랴3,4,6장, 렘33장등에서 계속 나온다. (재해석 되어서 메시야적으로 이해가 된다)

여기서 얼핏 보면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로서 다윗왕조를 세우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것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다윗과 같은 이방민족을 정복해서 다윗왕조를 재건하고 이스라엘에게 다윗과 같이 태평성대를 줄 왕으로 해석될 만하다.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메시야 사상을 과격히 재해석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이 해석했던 정치적, 전사적 왕, 메시야적 사상을 배격한다.

우리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모습이 당시 여기에서 근거하는 민속 메시야 사상과 어긋난다. 왜냐하면 예수가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여러가지 방법으로 예수는 자기의 메시야 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예수가 구약의 메시야 사상을 재해석해서 자기에게 적용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눈에 볼 때, 자기들의 메시야 사상에 비추어 볼 때,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의 메시야적 identity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수의 메시야적 비밀이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예수의 메시야적 주장에 비밀적인 요소가 실제로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는 자기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그의 메시야적 과업으로 보았다. 전사적 영웅으로, 정복자로 하는 것이 메시야적 과업이 아니고,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그의 메시야적 과업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십자가 전에 예수는 메시야로 인명된 자이다. 아직 메시야가 아니다. 메시야적 과업을 성취하도록 임명된 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메시야적 과업을 완수하므로 예수는 메시야로 등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유대인들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쓴 것이 맞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메시야 유대인들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의 메시야적 과업을 성취하므로 메시야로 등극하기 전에 그의 메시야 됨을 직접적으로 널리 선포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이 두가지 이유로 자기가 당시 유대인들이 해석했던 이런 정치적 군사적 메시야가 아니라, 자기는 그것을 재해석하여 즉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하므로 진정한 성전의 기능을 완성한다. 속죄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한번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의 관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성전의 기능이다. 그 기능을 십자가에서 완성함으로 진정한 성전을 세우는 것이 예수의 메시야적 과업이다. 그것이 나단의 신탁을 진정한 의미로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당시 유대교가 나단의 신탁에서 가져온 여러 메시야적 칭호들 다윗의 씨, 다윗의 가지,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이런 칭호들을 예수는 꺼렸다. 자기에게 잘 적용을 안했다. 그런 칭호들을 가지고 자기에게 대해서 신앙고백을 하면 그것을 수용을 하기는 했으나, 자기 자신은 자기에게 내가 다윗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이런 칭호들을 일부러 피한다. 예수는 그 대신 자기에게 알송달송한 그 사람의 아들(인자)이라는 - 퀘퀘묵은 책에서는 인자라는 말이 예수 당시 유대교에 있어서 메시야에 대한 하나의 칭호였다고 쓰여있는데 다 거짓말이다 - 말을 쓴다.

남들이 당시 이런 데서 나오는 메시야 칭호로 자기에게 메시야라고 신앙고백을 하면 수용을 하나, 자신은 메시야 됨을 이런 칭호들을 사용하기를 꺼리고, 도리어 알송달송한 '그사람의 아들'('인자')로 표현하고 자기가 어떻게 성전의 의미를 성취하느냐?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느냐? 이런 식으로 자기의 메시야 됨을 나타냈다.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이 간접기독론이란 말을 한다. 그런 말 속에는 다 메시야적 비밀의 요소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예수의 자기 이해속에 진정으로 메시야적 비밀이 있다.

W. Wrede식의 마가가 지어낸 의미로 메시야적 비밀이 아니라, fiction으로서 메시야적 비밀이 아니라, 예수의 진정한 의미로 메시야적 비밀이 있었다. 그가 당시 유행하는 메시야 사상에 반해서 구약에 메시야 사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4) Ralph Martin의 견해

 

Ralph Martin이 마가복음에 Redaction Criticism을 잘 적용해서 쓴 책이 하나 있다. 복음주의 자들이 Redaction Criticism을 긍적적으로 잘 쓰는 경우가 있는 데 그 한 예가 Ralph Martin이다. ' Mark: Evangelist and Theologian ' 이라는 책인데, 그 책에서 Ralph Martin이 주장할려고 하는 것은, 마가복음을 편집사적으로 고찰을 해보면 마가가 강조하는 것이 십자가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강조한다.

막8:31, 즉 마가복음에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에 대해서 메시야라고 신앙고백을 한다. 거기를 분수령으로해서 그 이후로는 예수의 수난사이다(15장까지)

어떤 사람은 마가복음 긴 서문이 달린 예수의 수난사이다라고 말한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수난사가 중심이다. 8:27-31까지를 분수령으로 해서 그 이후15장 끝까지가 예수 수난사이다. 그 앞에는 어떻게 예수가 수난을 받게 되었는가하는 서문에 불과하다.

여기서 두 논쟁 2장에서 3장까지의 논쟁, 7장이후의 논쟁을 통해서 벌써 여기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여기 서문에서도 예수를 죽일려고 작정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강조되는 것이 예수의 죽음이다. 8:31, 9:9-12, 9:31, 10:33, 10:45, 14:17등 계속해서 예수는 자기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서 예고한다. 그래서 십자가 신학이 강조되어 있다. 그 다음 강조된 것이 믿음이 굉장히 강조되어 있다. 이쯤되면 바울신학과 비슷하다.

바울의 신학이 십자가의 신학이다. 바울이 강조한 것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입는다 이다. 바로 이런 점을 들어서, 이런 마가복음의 특성을 들어서, 또 막7장에 율법에 대한 배경, 이것도 바울신학과 비슷하다. 이런 마가복음가 바울신학의 비슷한 점을 들추어 내서 Ralph Martin은 마가는 바울의 케리그마,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 - 그의 대속적 죽음이 우리의 구원의 사건이라는 선포,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고 구원받느다는 그 선포의 역사적인 뒷받침, 역사적인 예수의 삶과 가르침과 행적과 죽음과 부활을 narration함으로써 바울의 케리그마를 역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쓰였다고 주장한다. 그럴 듯하다.

아까 이야기한데로,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관 노릇을 했지만 또한 바울의 선교 동반자였다. 그래서 바울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선 뒤로 마가는 바나바편만 들어서 바울과 아무 관계가 없었느냐 할 때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골로새서 끝에 보면 마가가 다시 바울의 팀에 소속이 되어 있다. 그런데 또 베드로 전서에 보면, 베드로전서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과 비슷하다. 베드로 전서에 강조된 신학이 십자가 신학이다. 핍박, 십자가의 신학, 은혜와 믿음이다. 바울의 신학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래서 마가가 참 재미있는 친구이다. 베드로의 통역관이면서 바울과도 관계가 있었는데, Ralph Martin은 그런 점을 착안해서 마가가 그의 복음서를 바울의 케리그마를 역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썼다고 주장한다.

 

(5) M. Hengel의 견해

 

M. Hengel의 설이다. 이 사람은 마가복음을 자세히 공부하면, 고대 헬라의 비극 드라마의 형태에 따라 썼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가복음이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훌륭한 문학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M. Hengel 교수의 ' Studies in the Gospel of Mark ' 을 읽어보라. 이 사람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5막으로 되어 있다.

 

Ⅰ . 구원사적인 Prologue(1:1-13) : 서언

세례요한의 구원사적인 역할이 나오고 예수의 세례와 시험이 나온다.

Ⅱ. 제 1막(1:14-3:6)

갈릴리에서 예수의 활동 이것은 고대 헬라 고전 드라마의 proposi-tion에 해당된다. 시작이다. 이것이 1:14,15절의 예수의 메시지의 요약, 소위 program 천명으로 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메시지를 요약하면서 예수의 사역의 program의 천명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련의 논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논쟁들의 극적인 클라이막스가 3장6절에서 헤롯당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일려고 하는 것으로 제1막이 마친다.

 

Ⅲ. 제2막(3:7-8:26)

이것은 예수의 활동의 중심인데 많은 그 무리들이 모여든다(3:7ff 에). 12제자를 임명한다. 또 많은 이적들을 행한다. 또 많은 비유들로 가르친다(4장). 그런데 이 비유들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비유들을 불순종하는, 심장으로 사람들이 받기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의 심장이 완악해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래서 6:1-6까지 예수가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의 turning point가 된다. 그래서 예수가 무리들한테 배척을 받고, 종교지도자들한테 배척을 받고, 심지어 그의 가족들에게도 배척을 받고, 심지어 그의 제자들도 이해를 못한다.

그래서 제2막의 climax는 예수가 그의 제자들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심장의 완악해짐을 꾸짖는 것으로 도달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활동을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음이 제 2막으로 끝난다.

 

Ⅳ. 제 3막(8:27-10:52)

이것은 고전극에서 peripeteia(사태의 급변)에 해당된다. 그래서 예수의 정체가 드디어 인정되는 그런 부분이다. 나는 고전 문학의 비극을 잘모르므로 M. Hengel만큼 실감나게 극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의 비밀이 드디어 노출이 되고 예수가 어떤 분인가하는 인식이 일어난다. 그러나 거기에 벌써 예수의 진정한 메시야 됨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다(8:28ff). 예수가 메시야라는 그 이해는 진정한 옳은 이해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야가 되기를 원하는데, 베드로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다린 전사적 영웅, 왕 메시야 되기를 기대해서, 거기에 tension이 벌어지고, 그리하여 예수가 어떤 메시야인가 이 ten-sion으로 이 부분이 가득차 있다. 이 tension은 막14:61에 산헤드린의 재판에서 예수가 자기의 메시야 됨을 산헤드린에 공표함으로 해소가 된다.

그런데 지금 이 부분에 있어서는 10:46-51까지의 예수의 예루살렘의 입성 때에 여리고에 장님이 예수의 메시야 됨을 선언하므로 3막이 마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수의 진정한 메시야됨에 대한 인정이 됐으나, 어떤 의미로 메시야가 되느냐 하는 것에는 계속 tension이 있다.

 

Ⅴ. 제 4막: 11:1-13:37

여기서는 극에서 절정을 이룬다. 점증했던 tension이 폭발하는 단계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체포할려고 준비해서 체포한다. 예루살렘에 입성, 성전에서 소란, 결의 하고 심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Ⅵ. 제5막 (14:1-15:3)

tension이 폭발하는 장면인데 예수가 체포되고 심판받고 죽임을 당한다. 여기에서 십자가에서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백부장의 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 나온다.

 

Ⅶ. 에필로그(15:4-16:2)

예수의 장사지냄, 빈무덤의 발견 천사들이 나타남, 그리고 happy ending으로 끝난다. M. Hengel에 의하면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에서 얻은 자료들을 그 역서성을 왜곡하지 않고 그러나 효과적인 presen-tation을 하기 위해서 고대의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서 예수의 삶, 행적, 사역,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복음서를 썼다고 주장한다. 이 복음서는 드라마 형식을 빌린 케리그마틱 이야기 서술이다. 이것은 믿음을 유발시키고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것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연극의 형식을 빌린 것인데 그러나 역사성을 무시하거나 왜곡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출처: 예장 서울노회 원문보기 글쓴이: 다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