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설교. 힘을 다하여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4장 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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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1장(“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통 346장)의 1절 가사를 보면, “값 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라는 여인이 진짜로 향유를 부은 것이 맞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 라는 여인은 향유를 부은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주후 591년 교황 그레고리 1세는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향유 부은 사건을 강론 하면서,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은 몸을 파는 직업을 가진 여자였고, 그 여자가 곧 막달라 마리아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향유를 몸에 뿌려왔는데 고해성사와 회개를 통해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뭐 이쯤 되면 성경이 아니라 거의 추리 소설에 가깝습니다. 이런 잘못된 내용이 전통이 되어 불행하게도 14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 하면 몸 파는 여자, 향유 부은 여자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막달라 마리아는 몸을 파는 여인도 아니었고, 향유를 부은 여인도 아니었습니다. 전혀 성경의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니 오해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향유를 부은 사건인데 주인공은 누구인지 모를 익명의 ‘한 여자’입니다. 예수님은 베다니(Bethany, 감람산 동쪽 기슭에 있는 작은 동네. 나사로의 집이 있는 곳)라는 마을의 ‘시몬’이라는 문둥병 환자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자가 들어와서 병을 깨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식사 도중에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분위기 좋게 지인들과 밥 먹고 있는데 누가 쑥 들어와서는 머리에 액체를 확 부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자가 아니라 어린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도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식당에서 이런 일 벌어지면 아마 큰 싸움 나고 경찰 불러라 마라 큰 소동이 일어났을 겁니다.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향유를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라고 했습니다. 순전하다(헬, 피스티케스)는 말은 믿음 혹은 진실(헬, 피스토스)에서 비롯된 말로, 이 향유가 짝퉁이 아닌 진품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드’(헬, 나루드)는 고도 3~5천 미터 사이에서 자라는 식물의 이름입니다. 향이 매우 좋지만 아무나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식물이라고 합니다. 이 식물의 뿌리에서 기름을 추출한 것이 나드 향유입니다. 공기와 접촉하면 휘발성이 매우 강해 병에 밀봉하여 보관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향유의 값이 무려 300데나리온(노동자 300일치 급여에 해당, 일 8만원×300일=2,400만원)이나 되었습니다. 왜 이 여인은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 했으며, 그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야만 했을까요? 본문에서는 이 여자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고대 유대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값 비싼 향유를 붓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값어치의 향유를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은 보통의 공경심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제자들이 분개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여자의 무모하고 무례한 것 같은 행동에 분개한 것이 아니라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서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제자들의 시선에는 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향유를 부은 사건의 설교 말씀의 주 된 내용을 보면, “값 비싼 것도 척척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 받습니다. 물질을 아까워하면 크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우회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여자가 값 비싼 향유를 부었으니, 너도 값 비싼 향유를 부어야 한다, 꼭 부어라, 많이 부어라, 더 부어라, 안 부으면 복 못 받는다. 안 부으면 좋은 자리에 앉지 못한다” 이렇게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정말 본질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막무가내 식으로 돈 더 내라고 강요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오늘 날에도 제자들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분노의 말들이 난무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은 향유가 비싸고 안 비싸고 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것에 관한 말씀은 일체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분노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이 화내는 것을 막으시고 꾸짖으셨습니다. 그 여자가 내게 좋은 일을 하셨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좋은 일은 무엇일까요? 11절을 읽어 드립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아멘.
가난한 자들에게는 언제든지 너희 제자들이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라도 구제 할 수 있지만, 나는(예수님은) 곧 죽는다, 이 땅에 없다. 그러니 이 향유 붓는 것이 일생일대의 단 한번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이다. 이런 뜻으로 말씀 하신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향유를 부은 한 여자는 일생일대의 단 한 번 의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예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제자들은 눈앞의 향유와 돈을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여자의 마음 중심과 만남의 간절함, 그리고 최대한의 공경심을 옳게 여기시고,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헌신이요, 드림이요, 간구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통했을 때 만남의 감격과 은혜의 충만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절에서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향유를 부었지만, 이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예비 된 거룩한 예표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헌신, 또는 헌물 한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이 물질이든, 수고이든지, 그것이 많든지 적든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자체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순전한 나드 향유처럼, 진심으로 드리는 소중한 것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바라지 아니하고 진실 된 마음과 몸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13절은 분노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진실로 이 여자가 행한 일(향유 부은 일)을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진실로 말하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전도 할 때 이 여자의 일을 말해야 되지 않을까요? 복음 전하실 때 이 일을 말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문자 그대로 이 사건을 꼭 말하라는 것이라기보다,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여자의 마음처럼 만들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보내며 이 한 주간만이라도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향유를 부은 여자의 마음은 세 가지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여자의 행동을 옳게 여기신 것도 이 세 가지를 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여자는 대가를 기꺼이 치렀기 때문에 복음 정신에 합당한 마음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치른 대가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아낌없이 기꺼이 드렸습니다.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분노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이런 대가를 각오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정신이 복음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비천한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는 대가와 십자가 희생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기꺼이 치르셨습니다. 그 결과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복음은 희생의 대가 위에 세워진 고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과 같이 여자가 치른 대가도 고귀하게 보셨습니다. 우리가 향유 여인을 기억 할 때 대가를 기꺼이 치렀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손해 보지 않고는, 희생 하지 않고는, 고난을 감당하지 않고는, 복음이 온전하게 전파되지 못합니다. 대가를 각오 하시고, 치를 준비를 하십시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둘째는, 여자는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복음 정신에 합당한 마음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향유를 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결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시 여자로서 신분상의 위치나, 식사를 하는 공공 모임 장소에 나아가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떨림이나 두려움 없이 거침 없이 향유를 붓는 행동은, 한 여자로서 감당하기에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간절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자는 이 간절함을 사랑의 힘으로 이겨 냈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님께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반드시 그 앞에 나아가겠다는 소망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결국 과감한 결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의무가 되어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랑 없는 복음은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와 같습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앞에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복음의 용사로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유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무조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감추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때, 만국에 복음이 전파 되는 그 날이 속히 오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 침묵 했기에 복음 정신에 합당한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는 예수님 앞에 거룩한 침묵을 한 것입니다. 그녀는 비록 침묵 하였지만 예수님 앞에 자신의 부끄러운 죄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재판장 앞에서 죄인이 무슨 변명이 필요 합니까? 여자의 침묵은 진정한 회개와 참외의 침묵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은 죄 많은 인생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철저한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말 한 마디만 가슴에 담고 십자가 앞에서 침묵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다. 침묵하는 가운데 진실 된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복음 정신에 합당한 행동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앞 두고 한 연약한 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 향유를 붓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좋게 여기시고 앞으로 복음을 전할 때 진실로 이 여자의 행동을 말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여자의 마음이 곧 이 시대에 복음을 품은 우리들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순전하고 값 비싼 향유를 들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심정으로, 부활절을 잘 준비하시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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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향유를 지니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여인의 마음을 주셔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영광을 준비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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