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자료/종려주일 설교

[스크랩] 면류관을 예비하는 삶(종려주일)

에반젤(복음) 2021. 2. 21. 00:12

면류관을 예비하는 삶 13:31-35, 딤후4:7-8

나이팅게일은 1820년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이팅게일에게 가정교사를 붙여주어 라틴어, 영어, 불어, 역사, 지리 등의 교육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녀는 부유층 가정에서 자라면서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였으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돕는 일을 가치 있고 보람된 일로 여겼습니다.

당시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간호사가 되려할 때 극도로 반대하였지만 나이팅게일의 결심이 굳건하여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독일 카이저벨트의 개신교 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였고 크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34세 때 런던 숙녀병원의 간호부장이 되었습니다. 1860년 드디어 간호학교를 설립하고, 간호사를 전문직으로 승격하고, 간호전문서적을 출판하는 등 많은 병원 및 간호 시설의 설립 및 개선에 노력하였습니다.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그녀가 30세 되던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이다. 주님, 저도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은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간호사로서의 헌신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후에 한 기자가 성공적인 인생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그녀는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길의 결국은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아름답고 숭고하며, 영광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면류관을 예비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면류관을 예비하는 삶은,

1.예수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삶입니다.

복음서 본문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여기를 떠나라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눅13:32-33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마땅히 가실 길을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기 전에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선지자가 죽음이 두려워 사명을 버리고 도망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3년의 사역기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병들고 귀신들린 불쌍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고쳐 주시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모여드는 군중들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셔야 했습니다. 잠깐 시간이 있으면 열두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묵묵히 이 사명을 감당 하시다가 때가 되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성으로 들어가신 때가 바로 이 종려 주일입니다. 바로 이 주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셨고, 무리들에게 잡혀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며 재판을 받으시고 빌라도로부터 십자가형을 언도 받으시고 온갖 수모와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가신 것입니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채찍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채찍을 맞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채찍으로 인해 죽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 달리기 전의 상태는 매우 위독한 상태셨다. 그 원인은 고통도 고통이겠지만 대부분 저혈량 성 쇼크 때문이었다. 저혈량 성 쇼크는 쉽게 말해서 피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저혈량 성 쇼크 상태의 증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심장이 더 이상 피를 못 퍼 올림. *혈압저하.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 *신장에 남아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의 역할이 중지

*몸에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목이 아주 마름.

이렇게 고통을 당하여 지치고 쓰러져가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을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했다. 십자가는 그 무게는 약 57kg이었다. 그 십자가를 매고 올라가시는 예수님은 계속해서 넘어지셨다. 왜냐하면 이미 채찍에 맞으셔서 많은 피를 흘리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넘어지면 로마 군병들은 또 채찍으로 때렸다. 예수님은 넘어지면서 턱이 깨지고, 무릎이 상했으며, 얼굴에는 더 많은 상처가 났다. 예수님은 이사야 53장 말씀처럼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만큼 흉측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말씀 하신 것처럼 다 이루시고,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서신서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 역시 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다가 순교의 죽음을 예감 하고 달려 갈 길을 다 마쳤다고 고백하면서 주께서 자신을 위해, 믿음의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면류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인생의 교차로를 만납니다. 거기서 어느 길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반드시 어느 한 길을 선택을 하고, 그 길로 발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선택의 기로에 자주 섭니다. 선택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배우자의 선택도 중요하고, 직업의 선택도 중요하고, 친구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선택이 있는데 좁은 문, 좁은 길인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선택은 우리 일생뿐만 아니라 영원을 좌우하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입니다. 우리 모두 남은 삶을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라 살겠다는 결심과 다짐을 하고 묵묵히 그 길을 따르다 면류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입니다.

주께서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대적들로부터 많은 공격과 훼방을 받으시고 죽음의 위협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역시 주님을 죽이려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헤롯 왕은 대 헤롯이 죽은 후 그가 통치하던 지역을 넷으로 나누어 각각 아들들이 맡아 통치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가리켜 분봉 왕이라 하였습니다. 본문의 헤롯은 헤롯대왕이 죽은 B.C. 4년부터 A.D. 39년까지 네 개의 통치지역 가운데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렸던 헤롯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 자로 예수는 자기가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여 다시 예수까지 죽이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죽음의 위협을 나면서부터 받으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 역시 선한 싸움에 동참하는 자들입니다. 서신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딤후4: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가 주의 종이 되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지 않고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은 육신에 속한 싸움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주종을 이루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악한 권세 자들, 가난과 굶주림 및 질병과 자신과도 싸워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적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매를 수 없이 맞고 여러분 죽을뻔 하였고 동족과 이방인과 광야의 위험, 춥고 헐벗는 것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고후 11:23-28)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과 싸워서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였습니다.

선한 싸움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입니다.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게 중요 합니다. 이기는 것보다 끝까지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싸우다 보면,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선한 모습을 잃기가 쉽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맞서기도 하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악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명분으로 끔찍한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고, 자식의 잘못을 고쳐주려고 자식을 야단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선한 싸움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끝까지 선한 것이 목적인 싸움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이기는 겁니다. 이기고 지는 것을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핍박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인 후에, 바울을 칼로 목 베어 죽인 후에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선한싸움을 싸우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고, 박해를 받기를 받기도 하지만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며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여기며 견디는 자가 됩니다.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았던 남아공화국은 인종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별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내버스도 흑인용과 백인용이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성 시온 교회'라는 흑인교회에서는 고난주간의 성만찬을 행하기에 앞서 세족식을 가졌습니다. 이때 갑자기 백인 대법원장이 이곳을 방문했는데, 세족식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발을 다 씻긴 올리버 대법원장은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 씻겨 주었습니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씻어준 바로 이 사람의 발을 씻겨주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뿐입니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어닌데 그렇게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그는 이일로 인해 대법원장직에서 파면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제야 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라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올리버 대법원장도 예수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권세나 잘 못된 관습을 개선하기 위해 믿음으로 내게 어떤 재재가 오고, 손해가 오더라도 묵묵히 주님을 본받아 사는 모습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주님과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믿음의 선한 싸움의 삶을 살므로 면류관을 예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인내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삶입니다.

복음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사역을 이루기까지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그 사역을 멈출 수 없음을 단호히 말씀 하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아버지께 모든 것 다 순종하시고 십자가 죽으심만은 순종할 수 없다고 포기하셨다면 실패자가 되셨을 것이요,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서신 서를 기록한 바울 사도 역시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중에 너무 힘들다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낙심하지 않고 인내로서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선한 싸움을 싸우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6:9)라고 권면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42.195 킬로미터를 달려서 결승 테이프를 끊습니다. 그런데, 42.194 킬로미터를 일등으로 달려 온 선수가, 결승 테이프를 눈앞에 두고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됐다. 여기까지 온 것도 많이 온 거다. 지금까지 내가 줄곧 일등으로 왔으니까, 여기까지만 뛰어도 내가 우승이다, 그러면서 결승 테이프를 끊지 않고 가버리면, 그 사람은 1미터도 뛰지 않은 사람하고 똑같아 집니다.

그의 기록은 42.194킬로미터까지 일등이 아니라, 그냥 기권인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식으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잘 하다가 한 순간에 어그러진 길로 빠져 지금까지 해온 공든 탑을 다 무너뜨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떤 이들은 그 믿음이 파선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던 분이 별것도 아닌 일에 인간적인 감정으로 상처받거나 분노해서 교회를 떠나거나, 성도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봉사 잘하고 열심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이단에 미혹되어 빠지고, 다른 사람들까지 빠지게 만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를 일으켜 남에게 짐을 떠맡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그동안에 과정은 좀 어설프고 부족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달리는 것도, 끝까지 달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디를 향해서, 무엇을 위해서 달리는가는 더 중요합니다. 오늘 바울은 자기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외롭고 힘든 날들이었지만,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이 끝나는 지금 이 시점까지 왔다고 고백하면서,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목적은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일을 믿음 때문에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 믿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쳐서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합니다. 싸우느라고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믿음 없이 싸우는 싸움은 선한 싸움이 될 수 없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이유도 믿음 때문이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이유도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일들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 겁니다. 믿음 없는 싸움은 선한 싸움일 수 없습니다. 싸우다 시험에 들어 타락하거나,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달리다가 믿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놓친 채로 열심히 싸운다 해도 허사가 됩니다.

믿음 가지고 죽을 때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인내로 달려갈 길을 다 마쳐야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샌디라는 열여섯 살 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육상선수였는데,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달리기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샌디는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고, 수술이 잘 되어서, 이제 다시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훈련을 하고 대회에 나갔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서 2등하고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제일 선두에서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결승선이 눈에 보이는데, 너무 무리를 했는지 다리에 쥐가 나면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2등을 보면서,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샌디는 엉금엉금 기어서 결승 테이프 밑으로 들어왔고,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에서 어느 선에서 이만하면 되었지.’라고 만족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다하여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자기 생명을 쏟아 부어서 주님을 사랑했고, 복음을 전해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기력이 없고, 일어설 힘조차 없으면서 기어서라도 결승테이프를 향해 가는 사람과도 같이, 자기의 전 생애, 모든 생명을 부어드리는 제물로 하나님께 바쳤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인내로 달려갈 길마치고 믿음을 지켜 면류관 받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면류관을 예비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면류관을 예비하는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입니다.

.인내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삶입니다. 아멘.

<2019. 4. 10. 호현낙선.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땅끝 사랑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