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자료/종려주일 설교

[스크랩] 종려주일 설교 - 예수님의 가시관

에반젤(복음) 2021. 2. 21. 00:09

예수님의 가시관/사 53:4-6

 

사 53:4-6 /최성규목사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영광의 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가셨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던 많은 사람들은 성전의 주인이 오셨는데도, 그 주인을 맞이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에서 돈벌이에 정신이 없었습니다(마 21:12).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려고 하는 길에는 관심도 없이, 자신들 중에 누가 더 큰지를 가지고 논쟁 했습니다(눅 22:24).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일 궁리만 했습니다 (눅 22:2). 게다가 믿었던 제자는 예수님을 팔 기회만 노렸습니다(마 26:15-16). 예수님이 가셔야 할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예수님은 통곡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히 5:7상)다고 증거합니다. 뿐만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습니다(눅 22:44).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면류관 대신 가시관을 쓰셔야 했을까요? 열두 영이 넘는 천사를 부를 수있었던 예수님은 왜 고난을 묵묵히 참으셨을까요?

그러면,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함으로, 그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죄의 짐


현대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죄를 인생의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까? 혹시 너무나 쉽게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사실 우리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죄의 짐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는 산다는 것이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은 가시와 엉겅
퀴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때 시작된 가난의 가시, 질병의 가시, 절망의 가시, 미움의 가시, 시기와 질투의 가시가 오늘날까지 우리를 찌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죄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롬 5:17상)다고 증거합니다. 사망이 왕 노릇 하는 한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망은 사람들을 무너지게 하고, 멸망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의 인생길에서 벗어나려고 죄 위에 죄를 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동합니다. 그러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한 사사시대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약탈과 억압과 절망의 삶뿐입니다. 예수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10:10상)라고 말씀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롬 3:23). 이 무거운 죄의 짐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져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둘째, 가시관 쓰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많은 면류관을 쓰고 계시는 분입니다(계 19:12상). 면류관이 많다는 것은 그분이 왕 중에 왕이라는 뜻입니다. 피조된 인간은 만왕 의 왕에게 더 많은 면류관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예수님께 면류관 대신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사도 요한은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요 19:2)웠다고 증거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만왕 의 왕을 앞에 놓고 일개 피조물인 가이사가 왕이라고 외쳤습니다(요 19:15).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요 19:17-18).

가시와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입니다(창 3:18; 갈 3:13). 예수님은 저주의 자리에 계셔야 할 이유가 없는 분이십니다(고후 5:21). 예수님은 죄가 없고, 거짓말도 하지 않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벧전 2:22).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천대했습니다(사 53:3). 성경은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라고 증거합니다. 만약 우리 같았으면 억울해서 큰 소리로 자신을 변호하거나, 누군가에게 호소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떤 변명도, 호소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침묵하시며, 그 모든 고난을 인내하셨습니다(사 53:7).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같은 고난을 참으셨습니까? 마땅히 형벌 받아야 할 나의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
이라"(사 53:8하)고 증거합니다.


셋째, 해방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벧전 2:24).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이제 우리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요일 1:7). 죄의 짐은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막고 있는 죄의 담은 허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십니다(렘 31:34하).

우리는 새 피조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고후 5:17)다고 선포 합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엡 2:1). 죽음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가난에서, 절망에서, 미움에서, 다툼과 전쟁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자입니다(요 8:36). 그러므로 우리는 죄책감과 절망으로 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담당하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사 53:6). 질병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사 53:5). 가난으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십니다
(고후 8:9). 게다가 우리에게는 때를 따라 도우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히4:15-16).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3-14).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로 인해 복을 얻게 합시다(창 12:1-3).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가시관 쓰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앞에 가시와 엉겅퀴는 없습니다. 가시관 대신 영생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삶과, 가족과, 교회와, 나라에 넘치게 합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쁜 소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며 삽시다. 그리하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 위에 차고 넘칩니다.

 

출처: 꿈돌이 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