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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려주일설교] 우리의 왕 예수 (슥 9:9-10)

에반젤(복음) 2021. 2. 21. 00:11

우리의 왕 예수 (슥 9:9-10)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이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위대한 왕을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 중의 복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가 서거했습니다. 잘 아는 대로 리콴유는 제주도보다 더 작은 가난한 섬나라 싱가포르를 1인당 국민소득 56,000불, 1인당 국내총생산은 일본을 넘어 아시아 1위, 국가경쟁력지수는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초인류국가를 건설한 강력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개발독재라는 우리식 민주주의를 따른 비판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한 편으로 한 지도자가 정신 차려 헌신할 때 국가를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를 만난 것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입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이 말을 합니까?


우리는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완전하고 위대한 한 왕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왕은 바로 만왕의 왕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잘해야 경제나 외교나 안보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우주와 역사와 나라와 각 개인의 마음과 인생까지도 다스려주시는 위대한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어떤 은혜를 내려주실까요?


1.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9절에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이 구절은 유대 왕 헤롯이니 로마의 왕들이 가장 싫어했던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해 오해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인 의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자신이 왕이었으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시84:3). 그는 하나님을 왕으로 불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왕으로 모시면 다스려 주십니다. 나라가 예수님을 왕 삼으면 나라를 다스려주시고 각인이 예수님을 왕 삼으면 개인을 다스려주십니다.


혹시 마음이나 기타 악의 환경들,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나이 왕이 누군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의 왕이었다면 내 마음의 왕좌에서 내려와 겸손히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다스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육신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앞세우지 말고 주님을 앞세우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다시 9절에“그는 공의로우시며” 했습니다. 여기 공의로우시다는 것은 악을 철저히 척결하시고 의로서 다스려 주심을 의미합니다. 상선벌악이 공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 의로우시다면 죄인을 의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롬3:26에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했고, 요일1:8에도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주로 삼고 높이는 자에게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모든 악을 처리해 주시고 우리의 성품을 성령의 열매로 가득히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까지 다스려주시는 왕은 예수 말고는 없습니다. 혹시 예수 믿는데도 악이 척결 되지 않고 의로움이 없다면 예수님을 얼마나 왕 답게 높이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구원을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다시 9절에 “구원을 베푸시며”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략을 받아 속국이 되었을 때 사사나 왕을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도 있지만 그들을 세워서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은 곧 장차 왕으로 오실 예수를 예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모든 압제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용서 받고 죄에서 해방 받아 내 영혼이 살고 내 영혼이 승리와 영광을 얻고 복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약속을 통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지만 또한 구원을 누리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벧전1:8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런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예루살렘은 남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리고 이방은 세계 모든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침입도 많이 받았지만 남북 간에도 전쟁이 많았습니다. 왕권 간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남북전쟁은 우리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육에 속한 마음과 영에 속한 마음의 갈등입니다. 성도들의 최고의 싸움은 다름 아닌 성도 자신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예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그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성령이 임하여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천국이란 하나님의 정권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의 정권에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주십니다.


10절에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바다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땅 끝은 세계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셔서 온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을 예언하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삼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복음화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에게 임하시자 세상을 다스릴 능력이 임했던 것입니다.


6. 그런데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9절에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아주 독특한 왕이십니다. 세상 왕은 강압적으로 사람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키지만 예수님은 겸손하신 왕이시기에 우리가 그를 높여 드리고 순복하고 순종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구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면 이 점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강압적으로 다스리시지 않으십니다. 이런 왕을 보셨나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보여 주시려고 영광의 백마가 아니라 어린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우리 각인이 높이지 않으면 다스리시지 않으십니다.


교회의 권세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법처럼 강압적으로 형벌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그 다스림에 순종할 때 교회는 그만큼 권세를 발휘합니다. 권세만 발할까요? 교회를 존중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반면 교회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다스리심을 바란다면 주님께 스스로 순복하고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왕으로 부르고 높여야 합니다. 마음을 드려 사랑하고 경배하고 늘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중에는 주장이 강하고 기가 센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요? 그 사람의 남편은 얼마나 불편할까요?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부르면서도 주님을 무시하며 자행자지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실까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더 부지런하고 충성하고, 살든지 죽든지 주의 것이라고 믿고 염려와 근심도 온전히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알지 못하는 부분에는 내 감정과 내 의지 앞세우지 말고 주의 뜻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길에 옷을 펴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부르며 왕을 찬양하였던 것처럼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내 자리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왕으로 온전히 영화롭게 섬겨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다스림과 변화와 구원과 평안과 능력을 경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종려주일 설교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