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료실/기념 주일

6.25주일 역사(歷史)가 주는 교훈

에반젤(복음) 2020. 12. 26. 10:23

6.25주일 역사(歷史)가 주는 교훈

역사(歷史)가 주는 교훈

(시 44:7)

[1]주일오전예배(11:00)

▶예배에로의 부름: 시 118:6-7

6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7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118:6-7)

▶찬 송: 20장“다 감사드리세”

신앙고백: 사도신경

▶교독문: 32. 시편 143편

▶찬 송: 487 “죄짐 맡은 우리 구주”

▶기 도: 지 남준 집사

▶설 교: 이 길세 목사 / 인사: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 경: 시 44:7

*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시 44:7)

* but you give us victory over our enemies, you put our adversaries to shame.

************************************************************************************************

제목:“역사(歷史)가 주는 교훈

(시 44:7)

서론:

오는 금요일 6월 25일은 6.25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꼭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현재 참전용사들의 평균수명은 79.4세입니다. 따라서 6.25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2020년에는 참전용사들이 다 고령(高齡)이 되게 되므로 그때는 생존할 사람이 거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60주년을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역사의 교훈을 잊은 나라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로마의 베지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을 하였고, 우리 동양에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 고구려와 신라는 상무정신(尙武精神)이 있었고 화랑도 정신이 있어서 당시 중국의 수양제와 당태종이 각각 100만이 넘는 큰 군대로 침략을 했지만 잘 막아냈습니다. 을지문덕 장군, 양만춘 장군, 연개소문, 김유신 장군 등이 바로 그 주역(主役)입니다. 그런데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러 무반(武班)을 하대하고 문반(文班)위주로 나가다 보니 문약(文弱)에 흘러 국방에 소홀하게 되자 몽고군과 왜군, 청군에 의해 침략을 당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그래서 이 시간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금년 3월 26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네 맞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6.25한국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휴전상태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사건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안보와 국방 문제를 소홀히 하고 천하태평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6.25한국전쟁은 무엇입니까? 조사한 바에 의하면, 6.25한국전쟁이란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에 의해 도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된 전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다시 대립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이 갈등이 한반도에서 폭발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6.25한국전쟁은 냉전인 동시에 실전이며, 국부적인 동시에 전면전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가졌으며, 우리 전쟁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비참했던 전쟁중 하나였습니다. 또 최초로 UN군이 파견된 전쟁이라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6.25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처어칠 수상), 소련(스탈린) 등은 함께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일본 천황과 군부가 이끄는 일본제국이라는 추축국과 연합해서 싸웠는데 종전이 되자 조선[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키기로 미, 영, 소의 세 거두(巨頭)가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에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싸우면서 미군의 희생이 컸는데 이 희생을 줄이기 위해 소련에게 소련군의 참전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소련군을 참전시키는 결정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에서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게 되고 전의를 상실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참전을 미루던 소련은 재빨리 만주와 북한으로 군대를 진격시키게 됩니다. 이 때 타협해서 그어진 것이 38선이 됩니다. 또 중국에서는 쟝졔스의 군대가 부패로 인하여 민심을 잃고 마오쩌뚱이 이끄는 중국공산군이 중국본토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자 더 이상 마샬플랜으로 유럽쪽에서 위성국가를 세울 수 없던 스탈린은 아시아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데 만주를 중공에 양도함에 따라 대신 북한을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소련군 장교 출신 한국인인 김일성을 괴뢰로 내세워 북한을 통치하게 합니다. 이 김일성은 마오쩌뚱이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을 보고 자기도 어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마음에서 무력통일의 야욕을 품고 스탈린에게 군수물자 및 원조를 요청하여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일성이 무력통일 야욕을 품게 만든 요인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1) 조선과 소련 간에 맺은 ‘조소(朝蘇)군사비밀협정’, (2) 중공과의 상호방위조약, (3) 주한미군철수, (4) 당시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 1893.4.11 ~ 1971.10.12)이 워싱턴의 기자클럽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과 대만은 미국극동방어선에서 배제된다는 말, (5) 무력침공의 시기를 저울질 하던 스탈린이 드디어 승인해 준 것과 마오쩌둥의 동의를 얻은 것, (6) 남한의 정치, 사회적 혼란상, (7) 남한 국군의 장비와 무기 등이 열세라는 점 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김일성과 스탈린으로 하여금 오판을 유도하게 한 요인들입니다.

 

드디어 1950년 6월 25일 일요일[주일] 새벽 5시 북한괴뢰군은 보병 8개사단(19만8천명), 전차 2개사단(탱크 242대), 전투폭격기(211대) 등의 전투력으로 남한을 38선 전역에 걸쳐 공격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군은 보병은 8개 사단이었으나 대부분 인원수가 모자랐고, 또 4개 사단은 공비소탕과 지역 치안유지를 위해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전방에 있는 4개 사단마저도 6.25한국전쟁의 미스테리라고 하는 몇 가지 상황 때문에 다수의 장병들이 휴가를 떠나고, 장교들은 파티에 가고 방심하던 차에 기습도발을 해 온 것입니다.

 

예)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이 말하는 6.25 직전의 10대 불가사의

 

1. 첫째,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2. 둘째,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모두가 지형과 병사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다

 

3. 셋째,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다. 6.13-6.20일에 걸친 전후방부대 이동 역시 가장 부적절한 조치였다.

 

4. 넷째, 북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이 6.24일 0시에 해제됐다.

 

5. 다섯째,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육본은 비상경계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1(50%)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6. 여섯째, 육군 장교클럽 댄스파티다. 장교들은 6.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다.

 

7. 일곱째, 적의 남침 직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 투입해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8. 여덟째,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6.25-27일 우리 방송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9. 아홉째, 한강의 조기 폭파다.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서둘러 폭파했다.

 

10. 열번째, 공병감 최 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이다. 최 대령은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복종,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9.21일 비밀리에 처형됐다.

 

6.25한국전쟁의 경과는 4단계로 볼 수 있는데,

(1) 제1단계: 북한군의 공세단계, 이때 아군은 낙동강까지 밀려 낙동강방어전투를 하게 됩니다.

(2) 제2단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과 UN군의 반격과 북진단계. 이 때 국군과 UN군은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 초산, 두만강 혜산진까지 진격하여 거의 통일을 목전에 두게 됩니다. 그러나

(3) 제3단계: 중공군의 개입과 1.4후퇴.

(4) 제4단계: 휴전회담이 개시되고 38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6.25한국전쟁의 인명피해는 아래와 같습니다.

6․25한국전쟁은 남북한 합쳐서 인명피해 약 450만 명, 피난민 520만 명, 전쟁미망인 약 20~3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 이산가족 약 1,000만 명이나 발생시키는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또 약 60만 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산업시설의 45%가 파괴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론:

그러면 6.25한국전쟁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첫째, 6․25전쟁은 하나님이 한민족에게 허락하신 시련과 고난이었습니다.

 

6․25한국전쟁은 남북한 합쳐서 인명피해 약 450만 명, 피난민 520만 명, 전쟁미망인 약 20~3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 이산가족 약 1,000만 명, 약 60만 여 채의 가옥이 파괴된 이 전쟁은 인적, 물적 손실만 아니라 이 민족의 가슴에 민족 간 불신과 적대감, 증오, 복수심을 뼈에 사무치게 하였습니다. 엄청난 상처를 남겼습니다.

 

2. 둘째, 우리는 6․25라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6.25한국전쟁은 하나님을 믿지 않던 이 민족에게 전쟁의 참상을 겪음으로써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절실히 깨닫게 하였고 동시에 그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습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편안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총알이 옆에서 날아다니고 포탄이 터지고 여기저기에 죽은 사람이 쓰러져있는 모습을 볼 때 사람은 인간이 참으로 무력함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 36년과 6.25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한국은 세계교회역사상 가장 급속도로 기독교 인구가 증가하고 교회가 부흥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3. 셋째, 하나님은 6․25전쟁 때 우방 미국과 UN군을 통해서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1950년 당시 60개국 회원국 중 41개국이 우리를 지지, 지원했습니다. 파병국이 16개국, 의료지원국이 5개국, 원조물자지원국이 20개국입니다. UN사무총장 트리그브 리(Trygve Lie)는 북한이 침략을 중지하고 38선이북으로 군대를 철수하라는 UN결의안을 북한이 무시하자 “이것은 유엔에 대한 전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6․25한국전쟁 때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개입하셔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일들이 여러 가지입니다.

(1) 북한괴뢰군이 서울을 점령하고도 3일간 지체함으로써 한국군이 전열이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준 점. (2) UN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말리크 대표가 회의에 참석치 않음으로 비토권을 행사하지 않음으로 UN군을 파송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점, (3) 미국 트루만 대통령이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한 점 등입니다. 이 외에도 북한군이 약 600명의 유격대를 배에 싣고 부산 후방에 침투시키려 하던 것을 우리해군 백두산함이 발견하여 격침시킨 일 등이 있습니다.

 

예) 요번에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UN안보리 투표함을 만든 사람이 크리스천인데 그분이 만든 투표함이 너무 낡아서 최근에 해체하였는데 그 안에 “이 투표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의 문장이 써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4.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6․25전쟁의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하겠습니다. 또 이 나라를 사랑하고 더욱 잘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6․25한국전쟁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살던 나라, 그 나마도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 대부분이 폐허가 되다시피한 작은 나라가 지금은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고층건물이 도시마다 들어선 나라, 또 OECD회원국이 되었고, G20의 의장국이며 경제중진국으로서 피원조국에서 유일하게 원조국으로 바뀐 나라,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한 나라, 세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비롯하여 박찬호, 박지성, 박세리, 추신수, 김연아 등 스포츠 스타를 배출한 나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산업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 이것은 한강의 기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6.25전쟁이라는 역사를 통해 주시는 교훈을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1. 첫째,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기독교 신본주의(神本主義) 신앙관을 가져야합니다. ---올바른 신앙관!

 

2. 둘째, 우리는 성경적인 정통 개혁주의 신학관을 가져야 합니다.---올바른 신학관!

 

3. 셋째, 우리는 우리의 정치이념과 국가관으로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올바른 국가관!

왜냐하면 인권을 무시하고 자유가 없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시고 우리의 선조들과 애국선열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온 이 나라를 우리 자손들에게 신앙의 유산과 함께 물려주고, 또 나아가 이 나라가 온 세계에 도덕적 정신적으로 모범이 되고 복지국가의 좋은 모델이 되며, 복음을 수출하는 선교강국, 영성강국, 선진국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찬 송: 43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