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료실/기념 주일

6.25주일 기독교와 평화.

에반젤(복음) 2020. 12. 26. 10:21

기독교와 평화.

사2:4절,190.343.488장.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6월은 우리 민족에게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달입니다. 그것은 6.25동란의 비극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고 그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전쟁의 쓰라린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실낙원 이후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사라진 때는 한 때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평화의 세계를 계시하십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사2:4)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지향하는 이상이요, 궁극적 목표입니다. 따라서 이 평화에의 이상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이고 역사적 사명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평화에 대해 상고해 보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인류와 전쟁입니다. 삼상17:46,47절에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불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1)전쟁이 끊이지 않은 인간 역사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에서 추방된 후 가인의 살인으로 시작되는 인간 살육의 역사는 인류 역사의 모든 지면을 피로 물들여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이 동물로 전락한 데서 온 결과로, 하나님의 사랑 대신에, 동물의 법칙인 약육강식의 힘의 원리가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평화를 표방하지 않은 때가 또한 없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에 대하여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 도다"(렘9:8)가 그것입니다.

 

즉, 현란한 명분을 만들어 평화를 주장하나 사실은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상 수많은 강화조약과 평화협정이 깨어진 것으로 입증 됩니다.

 

2)전쟁의 원인을 살펴봅니다.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을 정치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나 하나님은 그것이 죄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사42:24,25절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죄의 본질은 교만과 이기심인데(창3:4-6), 이것이 전쟁으로 나타날 때는 영웅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등으로 치장되어 정의와 평화의 깃발을 펄럭이며 민중을 선동하고 동맹국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우생학적 민족주의의 깃발을 들고 독일 국민을 세계 전쟁의 길로 선동한 것이나 레닌이나 모택동이 그들의 국민과 세계의 노동 계급을 붉은 깃발 아래 공산주의 혁명에 동원시킨 것들은 그 좋은 예라 할 것입니다.

 

3)전쟁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기독교 사회 윤리는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을 구분하고, 정의의 전쟁이라 할지라도 그 전쟁을 수행하는 태도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구분합니다.

 

또한 기독교 사회 윤리는 산상수훈에 따른 개인 윤리와, 무기를 가지고 동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국민적 책임 윤리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당신의 징계와 심판의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삼상15:1-3;사10:5-11,24-27).

 

이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고(삼상17:47), 하나님은 전쟁에 능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시24:8). 하나님은 인간을 전쟁에서 구원하실 수도 있고(신27:1-3)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레26:25,33). 전쟁은 인간들이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이를 역사를 정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시며 영혼을 각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

 

2.그리스도와 평화를 살펴봅니다. 사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1)그리스도의 강림과 평화입니다.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는 인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바로 이 평화의 소식이었습니다. 눅2: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 인류의 역사의 저변에는 평화의 정신이 흐르기 시작했고, 전쟁이 지구상에서 계속되었어도 끊임 없는 평화에의 노력이 모색되어 왔습니다. 십자군 전쟁의 왜곡된 의도를 제외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예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격하지 아니하고 보복하지 아니하며 동정하고 화해하는 것이 기독교의 특징인 까닯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폭력도 거부하셨습니다.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고 말씀하신 것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등하고 투쟁하는 인류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파놓으신 영원한 평화의 샘입니다. 이에 우리는 이 평화를 만인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2)그리스도의 평화 정신을 살펴봅니다. 그리스도가 인류 평화의 샘이 되는 것은,

첫째, 그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분이기 때문입니다.

 

고후5:18,19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골1:20,22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십자가의 대속적 은혜로 인류의 죄를 속하심으로써 얻은 근원적인 평화입니다. 이처럼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 없이 인간끼리의 평화는 결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평화는 곧 인간과의 평화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인간관에서 평화의 정신은 샘솟아 나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막3:33-35절에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했습니다.

 

형제와 자매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고 그 관계는 사랑입니다. 인류를 형제 자매로 보는 인간관을 가지고서는 결코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입니다.

 

고전12: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우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류형제주의, 사해동포주의가 탄생합니다. 박애, 평등, 자유의 개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모든 가치들은 다 평화 정신의 기초입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평화가 있고 그리스도의 정신이 있는 곳에 평화 정신이 있습니다. 3.평화의 추구해야 합니다. 롬12:17,18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했습니다. 1

 

1)평화 추구의 수단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갈등하는 역사 속에서 평화를 추구한 역사적 발자취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대적들을 향하여 무저항 비폭력적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인간의 갈등을 종교적 비폭력주의로 대응한 것입니다.

 

이 비폭력주의를 사회 운동에 적용한 것은 인도의 간디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도의 자유와 평화를 이로써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저항 비폭력 수단이야말로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차선책이고, 이 수단의 궁극적 목표는 무장해제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정치적 평화의 원리를 무력의 균형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정치적 평화의 원리를 무력의 균형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가 살얼음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모든 나라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무력 증강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력 증강이 반드시 언젠가는 전쟁으로 그 끝을 볼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앞으로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2)완전한 평화시대를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 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은 계속 있게 될 것입니다. UN이 있고, 많은 평화 운동 단체들의 평화를 위한 활동이 있다 하더라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예고하고 있습니다.(계16:16-21).

 

그리고 이 마지막 전쟁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식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이 세상에는 완전한 평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계20:4-6).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하여 평화의 정신이 시작되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하여 완전한 평화 시대가 정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지상에는 모든 무장이 해체될 것입니다.(마4:3,4). 3)역사의 방향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역사의 방향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을 인류의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계16:16,계19:17-21)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세계 제국 또는 사단의 총재적 세력인 바벨론에 의하여 주도될 것이며, 그때까지 과학 문명과 물질적 부요와 사치는 최고 수준에 달할 것입니다.(계18:1-3,11-20). 이때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킴으로써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평화의 왕국 통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계18:1-24; 19:17-21).

 

국지적 잠정적 평화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만 세계적 궁극적 평화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고 평화를 위한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실낙원 이후 인류의 역사는 사단의 지배를 받아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평화는 시작되고 그의 재림으로 궁극적인 평화 세계는 수립될 것입니다. 평화의 기적는 죄를 없이 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온 세계가 사단과 적그리스도의 지배에 굴복하게 될 날이 올 것이고, 그때 성도는 고난을 받게 될 것이나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계13:10절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계14: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환난이나 곤고함을 당할때에 인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서서 끝까지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은 평화의 도구로서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남 북이 복음으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기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평화의 왕이시며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모든 갈등과 전쟁이 종식되고 당신의 평화의 왕국이 속히 도래하기를 원하오며, 신앙의 자유가 없는 북녁땅에 복음이 증거되어 남북이 복음으로 통일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