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 조재진 - 마리아의 성탄준비
설교제목 : 마리아의 성탄준비
설교자 : 조재진목사
성경본문 : 누가복음 1 : 26~38
성탄절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절에는, 다른 것들, 하늘의 별이라든지, 산타클로스라든지, 선물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려도 상관없지만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상하게 성탄절에 예수 이야기는 사라지고 산타크로스가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복음이 아닙니다. 일본에 가서 보니까 크리스마스가 무슨 산타클로스 생일처럼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0.5%정도 밖에 안되는 그 나라는 12월 초만 되면 온통 거리에는 성탄분위기가 가득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은 없고 산타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산타클로스는 없어도 됩니다. 양말 갖다 놓고 선물 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양말을 갖다놓는 것도 알고 보면 다산 신을 숭배하던 우상숭배자들부터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 부모님들은 그냥 아이들 불러놓고 예수님 이야기하고 선물 주시기 바랍니다. 양말 걸어놓고 이상한 거짓말을 안해도 됩니다.
제가 언젠가 이 설교를 했더니 아이들의 상상력을 죽이는 이야기라고 항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거짓된 상상력은 위험합니다. 거짓 진리, 거짓된 상상력은 오히려 아이들의 장래를 망치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온 세상의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지 다른 달이 아닙니다.
성탄절과 마리아
어떤 소년이 자전거를 몹시 갖고 싶어했습니다. 자기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측은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님께 기도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자니(Johnny)라고 하는 이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종이 위에다가 기도 내용을 쓰고서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님, 제가 얼마나 자전거를 갖고 싶은지 잘 아시지요? 제 친구들은 다 있는데 저만 없답니다. 아멘." 그리고 기도 내용을 적은 종이를 성모 마리아 상 바로 옆에다 두고서는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전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그날 밤과 또 그 다음 주간 내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참다못한 소년은 갑자기 성모 마리아 상을 수건으로 둘둘 말더니만 옷장 서랍에 처박아 쑤셔 넣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년이 뭐라고 기도한지 아십니까? "예수님, 당신 어머니를 다시 보기 원하시면 저에게 자전거를 하나 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인질삼아 예수님께 협박을 한 것입니다.
보통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너무 높혀서 경배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 라고 부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호칭하기도 하고, 심지어 마리아 승천설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가르침은 비성서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영원한 동정녀도 아니고 승천한 것도 아닙니다.
그에 비해 개신교에서는 마리아 숭배를 경계한 나머지 마리아에게 대해서 무관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본받고 따라야 할 마리아의 믿음의 결단과 헌신마저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알아야 할 것은 마리아는 그 시대 하나님께 쓰임 받은 놀라운 믿음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온 세상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이 땅에 보내 메시야이신 예수를 잉태할 여인을 찾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천사 가브리엘은 저 갈릴리 나사렛 땅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틴 에이져의 소녀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네게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수태 고지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수많은 동정녀들 중에 하필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메시야를 보냈을까요?
당시에 세계를 정복한 로마엔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여인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만 해도, 그곳엔 유대교의 엄격한 종교적인 훈련을 받은 좋은 믿음의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잉태할 사람을 찾지 않고 나사렛 동네에서 처녀 마리아를 선택해서 이 땅에 오실 메시야를 잉태하게 했습니다. 수많은 동정녀들 가운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성모로 선택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 이 은총의 절기를 보내면서 마리아의 믿음과 헌신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첫 번째 우리는 본문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예수님을 잉태하여 예수님의 어머니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6절과 27절을 한번 읽어보십시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 마리아라” 여기에 보면, 성경은 마리아를 소개하면서 굳이 그가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 그리고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로 마리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마리아의 고향을 밝히고 있을까요? 그것도 그냥 나사렛이라고 말하지 않고 성경은 ‘나사렛 동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굳이 나사렛을 강조해서 소개하는 것은,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작고 인구도 적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이 받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두로, 시돈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 군대나 장사를 하는 희랍의 상인들은 반드시 나사렛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군인들과 상인들이 많이 지나다니게 되니까, 자연적으로 여러 가지 타락된 문화가 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사렛은 그렇게 평판이 좋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할 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는데,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다’라고 했을 때 나다나엘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나다나엘은 감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런데 이것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 한 여인을 선택하실 때 유다지방이 아니라 갈릴리 지방에서, 그 중에서도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나사렛 동네에 사는 마리아를 선택했다는 것, 그것도 교육을 많이 받지도 못한, 그리고 나이도 어린 여인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은혜라는 단어의 뜻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입니다. 나사렛 동네에 있는 마리아가 선택된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만나 한 첫 번째 말이 ‘은혜받은 자여’라는 말이었습니다. 한번 2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리아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에게는 하나님께 칭찬들을 만한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라고 해서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아무 사람이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0절을 한번 읽어보십시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여기에 보면 “은혜”라는 말이 한번 더 나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을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you have found favor with God"
여기, ‘have found'라는 단어는 우리가 마리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이 말은 수동태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희랍어 원문에서는 능동태 직설법입니다. 이 부분을 바르게 해석하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찾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에 대해 이렇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이 배우거나 훌륭한 여성은 아니었을지라도 모르지만 하나님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사렛이라는 이 작고, 덕스럽지 못한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그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경건한 믿음의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에 천사 가브리엘 보내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리아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세상을 한탄하거나 비판하거나 분노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럽고 추한 세상 한 가운데 살면서도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사람, 바로 그런 자를 하나님은 찾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이 잉태되었습니까? 은혜를 찾는 마리아에게 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낼까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마리아가 하나님의 눈에 마리아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번 성탄절은 의미 깊은 은총의 계절이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가 되십시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성탄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두 번째 우리는 본문에서 마리아가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여인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적, 성탄의 기적을 직접체험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마리아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믿음과 순종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수태하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때가지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순결한 처녀가 아이를 수태할 수 있습니까? 사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주는 수태고지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본문 34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여기에 보면 마리아의 첫 번째 반응은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반응입니다. 마리아가 생각할 때는 이것은 “Mission impossible"입니다. ‘사내를 알지 못하는 내가 수태한다고?’ ‘이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라는 반응입니다.
여기에 대해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천사는 마리아에게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덮는다’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본래 구약의 성막에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성막이 세워진 다음에 그 위에 구름이 성막을 덮었는데,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성막을 덮듯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것이라는 겁니다.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분명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리아의 먼 친척 엘리사벳이 나이 늙어서 아들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원래 엘리사벳은 수태를 하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평생 아기를 갖지 못하던 할머니가 놀랍게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태했습니다. 얼마 전, 6개월 전에 세례 요한을 잉태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면서 3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과학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신자들의 생활 속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어려운 기적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사실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법칙 가운데 인간이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하나님의 법칙은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때문에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납득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짓말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우리들은 시험관아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이 발달해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수정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즘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박사 신드롬이 바로 이것입니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아니라도, 체세포의 핵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똑같은 사람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동물 실험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사람에게도 가능할까요? 과학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서 마리아에게처럼 말했다면 아마 우리는 ‘그럼요 믿지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자라는 사람의 과학으로도 가능한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못하겠습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못함이 없다’고 하자 마리아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38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보십시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메시야가 자기를 통해 얼마든지 이 땅에 탄생하게 되리라는 사실도 믿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4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이것은 마리아가 믿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님의 능력을 신뢰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기적은 마리아의 믿음 안에서 가능했습니다. 마리아 때에는 생명공학이니 배아줄기 세포니... 라는 과학이 없었지만 그래도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온 세상의 구세주가 탄생하는 기적이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결과 마리아 'Theotokos,' 즉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들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약성서 학자인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은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최초의 제자'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세 번째 우리는 본문에서 마리아의 순종과 헌신의 아름다운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여인 마리아는 자신이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렸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자신을 주의 여종, 계집종이라고 한 것을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종이란 주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 존재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늘 ‘예, 주인님’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안돼요 주인님'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리아는 자신 스스로를 일러 '하나님의 여종, 계집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내게 이루어지이다"란 이 말은 헬라어로 '게노이토'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문법적으로 보면 마음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일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길 간절히 사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 마리아의 헌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 관습이나 가치관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가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문이 떠돌게 될 때 마리아는 갖은 수모와 수치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 소문이 요셉에게 들리면 당장 정혼한 것을 파혼하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평생, 부정한 여인으로 찍혀서 행복한 삶을 살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은 어떠한 고난도, 어떤 값비싼 대가도 치루겠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머리로 계산하고 판단하고는,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부인하고 반대하는 자가 아닙니다. 은혜 받은 자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손해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놀라운 삶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순종과 헌신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하여, 그 사람 안에서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람은 학식 있는 사람, 혹은 부자나 달변가나 명석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단순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해마다 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몇 가지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아마 여러 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좀 변조되긴 했지만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제가 드리는 이야기가 그의 오리지날에 가깝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로서 캐나다 몬테리오에 있는 크리스챤 엘레멘트리 스쿨에서 이 사건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는 어느 날 이 학교에서는 성탄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극 배우들을 모집을 하는데 한 학생이 너무 너무 연극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랄프라는 학생이었는데, 4학년 이었고, 정서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아무리 이 학생이 연극을 하고 싶어했지만 말도 더듬고 생각도 민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극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크리스챤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랄프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배역을 하나 맡겼습니다. 아무래도 액션을 많이 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배역은 맡을 수가 없겠죠? 그래서 대사가 가장 적은 배역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관집 주인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를 밴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이 여관의 문을 두들겼을 때 이 여관주인은 한마디 말만 하면 됩니다. ‘방 없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랄프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열심히 연극 연습을 시켰습니다. 한마디 말이니까 정성스럽게 또박 또박 발음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방 없어요’ 그 말만 하면 되는 거예요. 자, 그것을 세 번 하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한 번에 물러간 것이 아니라 ‘큰일 났는데요 이 사람이 아기를 낳을 것 같아요. 어떻게 좀 봐 주세요’ 그러면 한번 더 ‘방 없어요’ 세 번 하면 되는 거예요.
드디어 연극이 시작 되었습니다. 자, 연극을 지도했든 모든 분들은 숨을 죽이고 랄프가 어떻게 역할을 감당하는 것인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주인이 나왔습니다. 랄프가 나와서 또박 또박 연습한데로 말을 했습니다. ‘방 없어요’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가지 않고 한 번 더 매달렸습니다. ‘큰일 났어요 이 사람이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에게 방 을 줄 수가 없나요?’ ‘방 없어요’ 한번만 더 하면 돼요. ‘어떻게, 사정하겠습니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이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랄프는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하기를 ‘그러면요 제 방 오세요!!’
하하~ 제 방으로 오세요. 연극의 약속을 깼어요. 그러나 그것은 숙연한 감동이였습니다. ‘제 방으로 오세요’. 누가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수가 있을까요? 이런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방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노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방문을 잠가둡니다. 그리고는 방없다고 말합니다.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없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의 방을 열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우리가 마리아처럼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성탄의 기적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무엇보다 주님께 헌신된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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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들의 찻집 원문보기 글쓴이: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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