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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

에반젤(복음) 2020. 11. 19. 10:18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 시62:11 출처보기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Why God used D.L. Moody?

R. A. 토레이 목사 저, 이인한 목사님 역.

 

무디 선생은 1837-1899

토레이 박사는 1856-1928,

토레이 박사는 1889년에 무디 사역에 조인했으니, 약 11년간 만년의 무디를 지켜본 셈이다.

 

▲서론

1837.02.05. D. L. 무디는 미국 매사추세츠 노스필드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시대에 가장 놀라운 사람이 될 아기였다.

위대한 장군들, 정치가들, 학자들, 그리고 문호들도 모두 가버리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며 그들의 업적과 큰 감화력도 종말을 고했지만,

무디의 업적과 그의 구원의 감화력은 계속 증거 되고 있으며

온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에 축복이 미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무디의 영적 감화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본서의 제목을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로 정한 것은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 이상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디 선생을 칭찬하고자 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무런 보잘 것 없는 자를 택하여

능력 있게 쓰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생명으로 그를 구원하시고 또한 성령께서 그 안에 살아계셔서

그를 통하여 놀랍게 역사하신 사실을 소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디 선생을 쓰심과 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도 무디 선생과 같은 준비만 갖춘다면

그를 놀랍게 쓰신 이상으로 여러분과 저를 쓰실 것이란 것을 명확히 말하고 싶다.

 

무디 선생을 그처럼 위대하게 쓰신 비결은 시편 62편 11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본문

 

나는 이 말씀이 지당함을 기쁘게 생각한다.

권능은 무디 선생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찰스 피니, 마르틴 루터, 기타 세계 역사상 하나님이 위대하게 쓰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능력도

그들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다.

만일 무디 선생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뜻 없이 주시지 않는다.

그는 이 능력을 그가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건들이 구비된 사람

즉, 성경 말씀으로 분명하게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무디 선생은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시대에 가장 놀라운 설교자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무디는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무디 선생은 그의 생애에 그렇게도 놀랍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던가?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할 때,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크게 쓰신 것은

무디의 생애에 일곱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1. 그는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D.L. 무디를 그렇게 능력 있게 쓰신 명확한 첫째 이유는

그가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280파운드의 육체 한 온스, 한 온스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었고

그의 실존의 전부, 그의 소유의 전부가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나는 지금 무디 선생이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만일 내가 그의 성격에서 어떤 흠을 찾아내려 했다면,

나는 그것을 쉽게 지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간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성경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에 따라 완전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 있어서의

완전한 사람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어떠한 단점도 없거나

고쳐야 할 무엇이 없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 무디 선생도 결코 흠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성격 중 흠이 있었다면 있었을 것이니

왜냐하면 나는 그의 생애의 말년에 있어서 그와 가장 가까이 하였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그 흠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말년에 있어서 세상 어느 누구에게보다

나에게 그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을 내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흔히 있는 어떤 결점이, 그의 성격 중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안다.

 

내가 시카고에 부임하던 달,

우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어떤 중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난 후

그는 내게 대하여 매우 담담하게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그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면서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저 창문에서 뛰어내리라고 명령하신다면

나는 뛰어내릴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믿기를 그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해치웠던 것이다.

그는 완전히 솔직하게, 무조건 그리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무디 선생은

"나는 하나님이 완전히 헌신한 사람을 쓰셔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무디를 곁에서 오래 지켜본 나는,

이 같이 하나님께 자기의 전부를 드려 헌신한 사람이

무디 선생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여러분과 저도, 무디가 그의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 같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도 우리의 소유와 실존을 그의 뜻대로 쓰시며, 그의 원하시는 곳에 보내시며

그의 원하시는 것을 우리로 더불어 이루시도록

모두 그의 손에 의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편에서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모든 일을

순종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재주 많은 남녀, 희귀한 천재적 남녀,

많은 희생을 아끼지 않는 남녀, 그들의 생애에 있어 죄에서 해방을 받은 남녀가 수천, 수만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일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한 능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디 선생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함에 있어 부족한 점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무디의 생애에 나타난 큰 능력의 둘째 비결은

무디가 매우 깊고 의미심장한 감격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따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무디 선생을 뵈옵고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수백 마일이나 간 일이 있었는데

과연 그는 놀라운 설교자였습니다."

 

그렇다! D.L. 무디는 정말 놀라운 설교자였다.

내가 들은 한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설교자가 없다.

참으로 그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큰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나는 그가 설교자라기보다

오히려 굉장한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때로 그는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장애물에 직면한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모든 난문제를 극복하며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은, 그 어떤 일이건, 이뤄놓을 수 있는 방법(기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과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믿고 있었다.

종종 무디 선생은 새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내곤 하였다.

 

“내가 OO일을 OO곳에서 OO날 시작하고자 하니 내가 바라기는

토레이 선생께서 성경 학생들과 함께 하루 동안 금식하며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 역시 이런 편지들을 받을 때마다 강의실에서 그 편지를 읽어주고는

"무디 선생께서 우리가 하루 동안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먼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 자신 위에와 일에 내리시기를 기도하며,

아울러 하나님의 축복이 그와 그의 일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하였다.

 

이따금 우리들은 강의실에 모여서 밤이 맞도록

어떤 때는 1시, 2시, 3시, 4시, 아침 5시가 되기까지

단순히 무디 선생의 요청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까지

하나님께 기다리며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철야 기도회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가 변하고

성격이 달라져서 각처에서 능력 있는 역사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느 날 무디 선생이 노스필드에 있는 나의 집에 마차를 몰고 와서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나와 함께 좀 갑시다."하므로 나는 그의 마차를 타고

로버스레인이란 동리까지 나아갔다.

 

그 때 우리는 노스필드와 시카고에 있는 사업에 관계된 어떤 크고 예기치 않은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에게 매우 귀중한 다른 일들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마차를 달리고 있는 도중 우리들 앞에 먹장구름이 달려오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로버스레인 입구에 가까운 마구간에 몰아넣어 말을 피하게 한 후

말고삐를 마차 흙받이 위에 올려놓고 하는 말이 "토레이 선생, 기도해 주시오."하므로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였는데, 그도 나와 함께 기도에 합심했던 것이다.

 

나의 기도 소리가 끝나자, 그가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기 직전 상황)

오! 나는 독자가 그 기도를 들었으면 한다! 나는 그때의 기도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너무도 단순하고, 너무도 믿음직하고, 너무도 확실하며,

그리고 너무도 매달린 기도였으며, 너무도 힘 있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소낙비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마차를 타고 돌아 왔는데 (기도한 결과)

어려운 문제들은 해결되고 학교 일이나 다들 두려워하던 일들도 전에 없이 잘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던 길에 우리는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우리는 사람들의 말과 비평에 개의치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만 착실히 하면

어려운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치워주실 것이고 비평에도 해답해 주실 것입니다."하였다.

 

또 한 번은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서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여기와 노스필드의 사업을 위하여 2만 달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2만 달러가 꼭 필요합니다. 나는 그것을 기도로 해결하고자 합니다."하였다.

 

그는 그 2만 달러의 부족액을 소액이라도 담당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고,

곧 하나님께 엎드려 말하기를 "저는 지금 당신의 일을 위해서 2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바로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길을 통하여 이 돈을 보내 주십시오."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 돈은 기도의 직접 응답으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명확히 알 수 있는 길을 통하여 무디 선생에게 주어졌다.

 

그렇다! D. L. 무디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으니

그는 이론상의 하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 그를 믿었던 것이다.

그는 모든 난관을 기도로써 해결한 사람이었다.

만사를 그는 기도로써 처리하고, 모든 일의 최후 신뢰를 하나님께 두었던 사람이었다.

 

 

◑3. 그는 깊이 있고 실제적인 성경 연구가였다.

 

무디 선생 능력의 셋째 비결, 즉 하나님께서 무디 선생을 쓰신 셋째 이유는

그가 깊이 있고 실제적인 성경 연구가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이) 무디 선생은 ‘학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학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가장 저명한 학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심리학자도, 인류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전문적 술어로 신학자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다른 모든 책들을 합친 것보다 더 연구할 가치가 있는 책에 대해

매우 심원하고도 실제적인 학자였으니 곧 그는 성경학자였다.

 

그는 평생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죽기까지 계속했다.

무디 선생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는 나에게

"나는 어떤 연구를 하고자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납니다."

라고 말하곤 하였으니, 그는 그의 집 골방에서 문을 닫고 홀로

하나님과 성경으로 더불어 지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집에서 처음 지내던 날 밤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는 그가 나를 성경 학교 교장으로 청빙하여 내가 이미 일을 보고 있었고,

동부 어느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 전도자 수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가고 있었던 때이다.

 

그는 나에게 편지하기를 ‘수양회가 끝나는 즉시로 노스필드에 와 주시오’하였다.

내가 돌아올 무렵 그는 사우드벗논까지 나를 맞으러 나왔다.

 

그날 밤 그는 마운트 헐몬 성경 학교와 노스필드 신학교의 선생들과 함께

그의 집에서 만나 이 두 학교의 문제들을 토의했다.

한밤중까지 이야기한 후 교장들과 선생들이 집으로 돌아갔으나

무디 선생과 나는 좀 더 의논했다.

 

내가 그날 밤 잔 것은 매우 늦었으나, 다음 날 새벽 5시경 나는 내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 무디 선생의 조용한 소리가 났다.

 

"토레이 선생 일어났소?" 나는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보통 나는 그렇게 일어나는 습관이 아니었으나, 그 날 아침만은 특별히 일찍 일어났던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하고 함께 좀 갈 수 없습니까?"하므로 나는 그를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내가 그 때 안 것은 그는 벌써 한 두 시간 전에 일어나

그의 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 당신은 능력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의 능력을 부어주시며

그의 능력을 행사케 하시는 하나님의 책(성경)을 등한히 한다면

당신은 그의 능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수양회에 따라다니며

성령의 능력을 위해 철야기도회를 가진다 해도

이 성경을 계속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능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매일 열심히 이 책을 정성들여 연구하지 않고는 그 능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100명 중 99명의 신자가 성경 연구에 있어서 그저 장난치듯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의 99%가 생활과 봉사에 있어서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

어린아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무디 선생이 그렇게도 많은 청중을 끈(어필한) 것은

그의 성경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실제적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1833년 10월. 시카고의 날에 시카고의 모든 극장들은 시민들이

그 날 열리는 <세계 박람회>에 갈 것을 예상하여 감히 문을 열지 못했으니

사실상 그 날 박람회에 들어간 사람이 40만 명을 초과했던 것이다.

시카고 시민들은 그 날 모두 박람회에 가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디 선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중앙음악당을 빌려 주시오.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회가 있다고 광고해 주시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무디 선생, 극장들도 문을 닫고

사람들이 잭슨 공원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갈 것이라고 하는데...

누가 오늘 이 집회에 오리라고 그러십니까?"

 

무디 선생은 대답하기를 "내가 말한 대로 하시오." 하므로

나는 들은 대로 중앙음악당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회 장소로 빌렸다.

 

그 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일을 했었다. 나는 청중이 불과 몇 명 안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날 정오에 설교할 강사였는데, 나는 내 사무실에서 부흥회 계획 때문에

너무 바빠서 12시가 다 되기까지 집회 장소에 못 갔다.

나는 들어가는데 곤란을 느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 음악당에 도달했을 때는 매우 곤란한 지경이었다.

만일 내가 건물 뒤로 돌아가서 뒷창문으로 간신히 기어 올라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시간에 강사를 못 볼 뻔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청중이 내 말을 들으러 모인 것이 아니라, 무디 선생의 이름이 그들을 모이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왜 그들은 무디 선생의 말을 들으려 했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무디를 당시의 철학이나 유행하는 오락이나 취미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한 권의 책, 즉 이 퇴폐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책인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디 선생의 마지막 시카고 방문을 잊을 수 없다.

시카고의 목사님들이 나를 신시내티에 계신 무디 선생에게 보내어

집회를 인도해 주시도록 청하라는 것이었다.

 

집회를 승낙하면서 무디 선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그러나 시공회당을 얻게 되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를 열어주셔야 가겠습니다."하시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무디 선생, 시카고가 얼마나 바쁜 상업 도시인 것을 모르십니까?

사업가들에게 있어 주일을 빼놓고 평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 집회에 참석케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저녁 집회와 주일 집회가 좋겠습니다."

 

"아니오. 나는 교회의 정기 집회를 방해하기를 원치 않습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카고에 돌아와 시공회당을 빌렸는데

그 당시 그 건물은 시카고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약 7천명) 장소였다.

나는 광고하기를 무디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주간 동안 아침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를 열 것이라고 했다.

 

즉시 나에게 항의가 쏟아졌다. 그 중 한 사람은 시카고의 상업왕이라 할 수 있는

마샬 필트씨였다. 필트씨는 나에게 편지하기를

‘토레이 선생, 우리 시카고의 사업가들은 무디 선생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에 나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녁에 집회를 열어 주시오.’

 

나는 같은 취지의 편지를 많이 받았으므로, 무디 선생에게,

저녁 집회를 해 주시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무디는 단순히 회답해 오기를

‘내가 말한 대로 하시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말대로 내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회 첫날 아침. 나는 개회 30분전에 회장으로 나갔다.

그 큰 강당에 도저히 차도록 모일 수는 없으리라고 걱정하여 불안한 심정으로 내려갔다.

집회 장소에 도착하자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 근처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니

4열로 회장 입구에서 네거리에 길게 늘어서서 교통이 차단된 형편이었다.

나는 간신히 강당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도 여러 사람들이 떠들면서 야단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문을 열게 되어 20명의 순경들이 관중의 난립을 막고자 했으나

순식간에 군중에 의하여 순경들의 경계선은 무너지고 문을 닫을 때는

벌써 8,000명의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관중을 모을 수 있었던 사람은 세계에서 무디 외에 없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무엇 때문이었나?

 

무디 선생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서는 박학이 아니었으나

그는 오직 한 책, 곧 이 패역한 세상이 알고자 하며 바라고 있는 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 무디는 성경을 잘 알며 성경을 잘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이 성경 말씀을 들으려 떼를 지어 모여 왔던 것이다.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 기간 중

무디 선생같이 많은 청중을 집회에 모은 사람은 없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그 당시 시카고에서 열린 가장 큰 종교적 사건은

세계종교회의가 동시에 열렸던 사실이다.

어떤 동양의 석학이 이 회의에 강사로 청빙되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 강연의 기회야말로 그의 평생에 다시없는 시간으로 알고

논문을 준비하였다.

아마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낡은 교리에 대한 새 광명’이라는 제목이었던 듯하다.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하여, 그의 친구들인 고명한 학자들에게 평을 부탁하였다.

그들은 얼마간의 교정을 가하여 그에게 돌려보냈다.

받은 충고와 평을 살려 그는 다시 논문을 재작성하여 다시 그것을 보내어

더 수정을 의뢰하기를 3, 4차례 하여 만족할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종교회의의 강사로 시카고에 갔다.

그의 강연은 내가 기억하기로 토요일 11시에 있었다.

 

그는 강단 밖에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11시가 되어 의기양양하여

강단에 올라갔으나 거기에 모인 청중은 겨우 여자 11명과 남자 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날, 낮과 밤에 열린 무디 선생의 집회에는

찾아오는 군중을 수용할만한 건물이 없을 만큼 굉장한 청중이 모여왔던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도 청중을 원하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주기 원한다면 연구하라!

연구하라! 성경을 연구하시라! 그리고 증거하라! 증거하라! 성경을 증거하시라!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책, 이 성경만이 장시간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고

그들을 붙잡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4.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수년간 계속 쓰신 넷째 이유는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평생에 D.L. 무디와 같은 그렇게 겸손한 사람은 다시 보지 못했다.

그는 이런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으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하나,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한다.”

 

이미 내가 말한 대로 그는 내가 아는한 겸손한 사람이니

그가 이뤄놓은 위대한 일들이나 그에게 주어진 칭송을 우리 마음속에 생각할 때

진정 그는 겸손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 얼마나 그는 남을 앞세우고 자기는 숨겼는지 모른다.

언제든지 그는 강단에 설 때마다, 자기 뒤에 앉아 있는 미미한 우리들을 내세우면서

하는 말이 "내 뒤에 설교하실 분들이 저보다 더욱 훌륭합니다."하곤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할 때마다, 자기 어깨 너머로 미미한 우리들을 지적하여 내세우기를 잊지 않았다.

그가 말한 그대로 얼마나 우리를 신임하고 있었는지 내가 알 길이 없으나

그는 자기 다음에 말하는 우리들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겸손을 꾸미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를 작게 여기고 남을 크게 생각하였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쓰신 것 이상으로

더 놀랍게 타인을 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무디 선생은 항상 자기를 숨기는 일을 계속했다.

노스필드 집회 때나 그 외의 집회 때에도

그는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그들에게 설교하도록 청했으니

맥그리거, 캠벨 몰건, 앤드류 머레이, 기타 여러 강사에게 그리하였다.

 

우리가 그를 프로그램에 넣으려면, 반드시 먼저 승낙을 얻은 다음

둘째 번 설교에 그를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었다.

(첫 번째 순서로 설교는 거부함, 겸손 때문)

이렇게 그는 자신을 감추기를 자주 했었다.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 환영을 받으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다가도

스스로 높아지므로 그에게 버림을 받는 사람이 많은지...

내가 알기에 많은 수의 유능한 사람들이 자고심과 자만심으로 인하여 파선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을 회고해 볼 때

한 때 세계적 위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파멸되거나 버림을 받은 사실을 기억한다.

그들은 세평에서 모두 사라지고만 것이다.

 

왜?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자신을 너무 높였기 때문이다.

 

많은 남녀가 자기가 무엇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기를 시작한 때는

벌써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일찍이 전국적으로 크게 신앙운동을 벌여 매우 가깝게 일하던 친구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대단한 성공리에 버팔로(NY)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 때 그 친구는 매우 득의하여 어느 날 집회를 인도하러 거리를 걸어가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토레이씨. 당신과 나는 이 나라 부흥 운동에 가장 놀라운 인물들이오."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내가 성경을 보니 여러 사람들이 큰일을 하고는 그것이 자기의 공로인양 자부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하였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때부터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직도 살아있으나

누구도 그의 말을 듣기를 원치 않았다. 소식조차도 수년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D. L. 무디를 어느 누구보다 놀랍게 쓰신 것이다.

그러나 무디는 자기를 어떻게 썼건 자고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사람’인 것을 깨닫고, 늘 하나님께 자기의 자만심을 제거해 주시기를 기도했고

항상 하나님 앞에 얼굴을 숙이는데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여러분! 아마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성경교사로 당신은 정말 놀라운 은사를 받았어요!

당신은 설교자로서 능력이 충만하군요! ... 얼마나 놀라운 인재인가!"

 

그러나 주의하시라! 하나님 앞에 얼굴을 숙이시라!

나는 바로 여기에 사탄의 사자 뱀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탄이 사람으로 낙심케 못했을 때는, 그는 다른 방책으로 사람에게 다가오는 법이니

 

곧 그의 귀에 속삭이기를 "너는 이 시대의 지도적 부흥사이다!"

“너는 네 앞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 있는 놀라운 사람이다.

너는 놀라운 지도자가 될 것이니 곧 이 시대의 무디가 될 것이다."하면서

 

당신을 추켜올림으로써, 보다 무서운 결과를 가지게 하는 것이며

당신이 이를 청종할 때 사탄은 당신을 멸망시킬 것이다.

 

수년 전까지도 화려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자고, 자만의 바람에 의하여 깨어져

그리스도교 역사의 해안에 무참히 그 잔해를 늘어놓고 있음은

정말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 보시려면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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