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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된 사랑의 실천자(벧전 4 ; 7-8)

에반젤(복음) 2020. 11. 1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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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사랑의 실천자(벧전4장7-8)

<학생회헌신예배 설교>

성경본문|베드로전서 4: 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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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상운목사(서울당일교회)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신 ·구약성경의 핵심은 곧 '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기독교의 핵심인 참된 사랑, 곧 '아가페'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낭비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 중에서 탕자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난 둘째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둘째아들보다는 맏아들을 정말 탕자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둘째아들은 지혜가 부족해서 아버지를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 방탕한 자식이 되었지만 맏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집안에 있으면서도 사랑이 부족해서 불효한 자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둘째아들을 육신적인 의미에서 탕자라 한다면, 맏아들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탕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사랑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장차 어느 날 아버지가 늙어서 세상을 떠날 때에는 자기에게 막대한 재산을 남겨 줄 지주로서 타산적인 견지에서 아버지를 섬겨온 것입니다.

 

둘째아들은 육신적으로 아버지를 떠나 먼 거리에 가있었으나 맏아들은 육신적으로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먼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탕자의 비유 중에서 실제로는 두 사람의 탕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존 녹스 박사는 이 비유 가운데서 또 하나의 방탕한 인물을 발견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여러 가지 비유 중에서 '방탕하다' 는 개념은 좀더 광범한 범위에 적용해야 하는 단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탕자의 비유 중에도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했으나 아버지는 그의 사랑을 탕진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는 자기에게 불순종하고 집을 나간 무가치 한 아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나누어주고 날마다 대문에 나가 그가 돌아오기를 열심으로 기다렸고, 그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 달려가서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그를 위하여 새 신발과 가락지를 주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풀었으니 세상에 이런 방탕한 아버지가 또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지혜에 밝은 현대인들은 누구든지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맏아들이 문전에서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불평하는 행동을 동정하지 않을 자가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일한 노동자와 해질 무렵에 들어와서 잠깐 일한 노동자에게 똑같은 임금을 지불하는 방탕한 고용주 이야기, 자기에게 아무런 의무도 없는 강도 만난 낯선 행인에게 필요 이상의 보호와 친절을 베풀어준 사마리아 사람의 방탕함, 길거리의 수많은 병자, 가난한 사람, 소경들을 불러다가 귀한 연회석의 자리를 채우는 방탕한 잔칫집 주인,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방탕한 사죄‥‥‥ 등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낭비하는 사랑에 대한 초 상식적인 이야기들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가페 사랑은 이와 같이 낭비하는 사랑과 한없이 소비하는 사랑입니다.

 

 

2. 아가페 사랑이란 강제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작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곳에 한 젊은 왕자가 자기의 미래의 왕후가 될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려는 욕망으로 말을 타고 여기 저기를 헤매었으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한 번은 큰 도시의 변두리 지역인 빈민가를 지나다가 한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고 그 왕자는 빈민지대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왕자는 그 여성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강제로 결혼하는 것보다 그 여성의 사랑을 얻어서 결혼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왕자는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왕자의 옷을 벗어 던지고 그 여성이 살고 있는 이웃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이 왕자는 생활하기 위하여 목수 일을 자기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밤낮으로 일하는 동안 이웃과 친하는 데 힘쓰고 그들의 고민과 흥미와 관심거리를 같이 이야기하고 그들과 아주 친숙해졌습니다.

 

이렇게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그가 사랑하고 있는 여성에게까지도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여성을 사랑하고 있는 것만큼 그 여성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을 말해 주고 있음을 즉시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오셔서 사랑의 관계를 맺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원하시면 우리들로 하여금 억지로 사랑하고 복종하도록 명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강제로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원래 강제가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자발적인 충성과 봉사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그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아가페 사랑이란 강제하지 않는 사랑, 그렇지만 강제하는 것 이상으로 뜨겁고 열렬한 사랑에 상대방이 따라 올 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3. 아가페 사랑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8 : 1∼11에 음행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사이에 두고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함께 서 있습니다. 쌍방이 모두 이 여인을 죄인으로 본 점은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은 쌍방이 다릅니다. 즉 예수님은 그 음탕한 여자를 당장 돌을 들고 분노에 찬 눈으로 마주 선 것이 아니라 허리를 굽혀 땅에 글을 쓰고 그것도 지워 버린 후 그 여인에게 사죄를 선언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것은 곧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아가페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4 : 7∼11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사랑만이 죄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죄를 극복하는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으로 우리의 현실은 사랑의 홍수시대입니다.

입 가진 자마다 누구나 사랑을 부르짖습니다.

수 년전 여름 홍수가 났을 때 침수지역에서 물 때문에 수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침수지역에 가 보니 물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가운데도 또 하나의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물이 그렇게도 많은데 정말 생명을 위한 음료수가 귀하듯 오늘날 사랑의 홍수시대이지만 진정한 아가페 사랑은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이 땅 위에 사랑없이 쓸쓸하기 한없다.

어디가나 사랑없이 탄식소리뿐이라.

모든 사람 번민함은 사랑없는 연고니,

간절하게 손을 펴고 사랑 호소하도다.

먼저 믿은 사람들 주의 넓은 사랑을 보여 주지 않으면

원망 소리 듣겠네."

라는 찬송처럼 참사랑을 갈망하는 호소의 소리를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사랑의 빚을 지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학생들은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입으로만 사랑을 외칠 것이 아니라 묵묵하게 자신을 소금처럼 녹이고 한 알의 밀알처럼 산산히 부서져 가루가 되어 완전히 자신 전체를 바쳐 소비하는 삶을 살 때 사랑의 사도의 역할과 사명을 다할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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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