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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도신경 연구 - 1

에반젤(복음) 2020. 10. 9. 01:06

사도신경 연구 - 1

 


사도신경의 현대적 의미

 


1. 사도신경이란 무엇인가?

 

# 사도(apostle):

사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한 초대교회의 사도들을 말한다. 물론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라는 말을 쓴 것은 이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전승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다른 모든 신경이나 신앙고백들 중에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주기도문이 모든 기도문 중의 최고 권위요, 십계명이 모든 율법 중의 최고 권위이듯이 사도신경은 모든 신조들 중의 최고권위이다. 그 이유는 사도들의 전승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도신경이기 때문이다.

 

# 신경(creed):

신경이란 말은 신조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말이다. 그 뜻은 우리가 믿는 신앙을 공식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고대 기독교 역사에는 수 많은 신조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니케아 신조, 칼케돈신조 등이 있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아우구스부르그 신조, 웨스트민스트 신조 등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신앙고백(confession)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때론 믿음의 규범(Rule of Faith)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기독교 각 교단은 저마다 신앙고백 또는 믿음의 규범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어떤 교회는 개교회적으로 신앙고백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신경이나 신앙고백은 신앙공동체들이 공식적으로 자기들의 믿음의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함으로써 자기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밝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 사도신경:

결국 사도신경이란 사도적 전승에 기초하여 기독교 공동체 전체가 함께 공식적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내용이다.

이것은 이단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된다. 또한 교회 일치 곧 에큐메니칼 운동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2. 사도신경의 역사

 

# 형성 역사

초대교회시 사도들의 가르침이 구전으로 전승되어왔다. 주후 100년경 이것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특히 세례문답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던 중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2세기 후반에 [로마신경]이라고 불리는 원시형태의 신경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주후 215년경 히폴리투스라는 사람이 [사도적 전통]이라는 질문형식의 신조로 정리하였다. 바로 이것이 원시형태의 사도신경인 것이다. 주후 340년에 마르셀리우스라는 사람이 이 사도적 전통에 일부를 첨가하여 신조를 만들었고 이것이 널리 사용되었다.

최초로 사도신경 본문이 작성된 것은 주후 404년 루피누스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 사도신경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이보다 조금 이른 390년 암브로시우스가 처음이다. 이것을 기초하여 수정 보완 첨가를 거쳐서 오늘의 사도신경 본문이 확정된 것은 7-8세기 경이다. 그리고 범교회적으로 사도신경을 사용하게 된 것은 샤르망 대제 때였다. 즉 주후 8세기 경이다.

 

# 활용 역사

사도신경은 기독교 역사에서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의 주춧돌 역할을 해 왔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529년 대소요리문답 즉 세례문답 교재를 작성할 때 사도신경을 기초자료로 사용하였다. 장로교 창시자인 요한 깔뱅은 그의 신학적 사고의 기초를 이 사도신경으로 삼고 기독교강요를 쓸 때 바로 이 사도신경의 구조를 그대로 따랐다.

현대의 조직신학은 모두 이 사도신경을 해석하는 작업에서 출발되었다. 사도신경을 현대적으로 올바로 해석하여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기독교 공적 예배에서 이 사도신경을 고백함으로써 잘못된 신앙고백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3. 사도신경의 내용구조

 

# 사도신경의 내용(새로운 번역)


-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며, 장사되신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고,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 나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사도신경의 구조

 

- 고백 대상: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교회

- 고백 내용:

* 성부 하나님/ 아버지, 전능, 창조주

* 예수 그리스도/ 잉태, 수난,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 성령/ 믿음

* 교회/ 거룩한 공회, 성도의 교제, 사죄의 은총, 영생

 


4. 사도신경의 현대적 의미

 

1) 실존적 신앙을 강조한다.

사도신경의 원문은 “내가 믿는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 말이 갖는 두 가지의미가 있다.

첫째, “나”의 강조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점으로 답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의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을 물으신 것이다. 남들의 견해를 종합해서 답하기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고백을 물으신 것이다.

우리는 구약시대의 야곱을 기억한다. 그가 벧엘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야곱이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적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창 28:13)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차근차근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설명하신다. 야곱이 깨닫고 창 28:21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사도신경은 이처럼 우리 자신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강조해 준다.

둘째, “지금과 여기”의 강조이다.

“믿는다”라는 고백은 늘 현재이다. 고백할 때마다 현재라는 시점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의 믿음의 고백이 아니고 또한 그렇다고 내일의 믿음의 고백도 아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으로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을 재확인하도록 해 준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과거의 회상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장차에 대한 기대여서도 안 된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신앙고백을 전제로 한다. 과거에 예수 잘 믿었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믿을 것이라는 기대로 구원 받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서 믿음을 고백하는 살아있는 고백이어야 구원을 받게 된다.

결국 사도신경은 여기 그리고 지금 바로 나의 신앙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안내해 준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실존적 신앙고백이 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2) 전승적 신앙을 강조한다.

기독교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멀리는 구약의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는 신약의 사도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만난 하나님, 그가 고백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나님의 구속사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은 멀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베드로를 신앙의 초석으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마 16:18에 보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다. 이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기독교 신앙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은 실제로 베드로의 믿음으로부터 발원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많은 경우 이단들은 자기들의 개인적인 체험적 믿음 위에 신앙을 세워간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일 수 없다. 부분적으로는 옳을 수 있어도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오늘 우리의 신앙이 사도적 전승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이다.


3) 하나의 신앙을 강조한다.

오늘의 교회는 너무도 다양하다. 큰 물줄기로 볼 때 네 개의 흐름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동방정교회이다. 지금은 희랍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와 같은 동방교회 전통 하에 있는 교회의 흐름이다. 둘은 로마 천주교이다. 동방정교회와 분리된 이래 서방 교회 전통을 이어왔다. 셋은 개신교다. 로마 천주교의 문제를 개혁하고 초대교회로부터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교회이다. 그리고 넷은 영국성공회다.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 천주교와 결별하고 예전적으로는 로마 천주교를 따르고, 교리적으로는 개신교와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그리고 개신교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교단적 흐름이 있다.

이 다양한 기독교 흐름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으로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