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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3. 07:59

 

3주-(월)

찬송 : (새)370장. 455장

읽으며 묵상하며 : 첫 번째 신앙, 적신이 돌아가올지라(1:13-22)

“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 하지 아니 하니라 (20-22)

욥은 사탄의 첫 번째 공경을 받습니다(1: 13-19.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은 곧장 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의 공격은 매우 잔인하고 숨 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들에서 일하던 종들이 산적들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고 가축들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양들과 목동들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또 다른 산적들이 종들을 죽이고 낙타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욥을 가장 슬프게 하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광야에서 불어온 광풍이 잔치가 벌어졌던 맏아들 집을 무너뜨렸고 그 집에 모였던 욥의 열 자녀 모두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각 사건의 보고를 맺고 있는 “저 혼자만 겨우 살아서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라는 종의 말이 이 일들의 잔혹성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은 잘못된 신앙생활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련과 고난이 연거푸 다가오면,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욥의 불행은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보기 드문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사탄의 공경을 받은 욥은 성숙한 모습으로 환난을 맞습니다(1:20-22). 모든 재산과 자식들을 한순간에 잃은 욥은 매우 슬퍼합니다. 그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하던 풍습대로 겉옷을 찢고 삭발을 합니다. 그는 오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세를 가다듬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합니다. 욥은 자기가 태어날 때 빈손으로 태어났으며 죽을 때도 빈손으로 죽게 될 것이니 그가 누리던 것들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들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가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다시 거두어 가실 수 있는 권한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사탄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께 첫 번째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환난의 상황에서 잃지 말아야 할 진정한 내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욥은 많은 상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까?

-두란노 서원/「생명의 삶」말씀해설, 2003, 9, 18-

살며 생각하며 : 에디슨의 감사

발명가 에디슨은 1914년 12월9일에 평생 모은 재산인 공장과 연구시설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불탄 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67세의 에디슨은 아내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물과 시설을 아까워하며 뜯어고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이렇게 불로 책망도 하시고 허물어 주시는구나. 이제 새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기독교인은 불평할 상황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습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p 41-

3주-(화)

찬송 : (새) 543장, 342장

읽으며 묵상하며 :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7:1-10)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 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7:6-7)

욥의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여 있고, 피부는 짓무르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열 명의 자녀를 하루에 잃어버린 그의 심적 아픔은 어떠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수고한 삯을 애타게 바라는 품꾼처럼 그의 삶이 끝나기만을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7:1-6). 그는 죽음을 갈망해도 죽을 수 없다면, 삶의 나날들이 속히 지나서 그의 인생이 빨리 저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7:1-6).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고통만이 심각한 것이고 육적인 고통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육적인 고통이 영적인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들기도 합니다. 무조건 참는 것만이 고난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육적인 고통으로 영적인 절망을 체험할 때, 우리의 질고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영적, 육적 고통을 모두 아십니다.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상황에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고 친구들에게 퍼부어 대던 욥이 드디어 하나님께 말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사람이란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 죽어야 하며,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자신을 하나님이 찾으려 하셔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비천한 존재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오늘 있다가 내일 죽을 연약한 인간이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적수이거나 그분의 관심을 살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7:7-10). 욥은 하나님께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시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당하고 있는 욥에게는 하나님의 어떠한 관심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죽더라도 하나님에게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분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자신보다 더 지혜로우신 분임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일시적인 것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뀔 수 있습니다. 욥처럼 자기비하에 빠져 하나님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 나는 어떻게 소망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E. Blencowe. M.A)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해설, 2003, 9, 27-

살며 생각하며 : 그저 빨리만 가는 인생

영국의 헉슬리 교수가 더불린에서 개최되는 대영 학술협회에 참석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더불린의 기차역에 도착한 그는 시계를 보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급히 서둘러 이륜마차를 탔습니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급하게 소리를 쳤습니다.

“빨리 빨리 달립시다.”

마차는 덜그렁 덜그렁 거리면서 거리를 힘껏 달렸습니다.

한참이 지나도록 회의 장소에 도착하지 않자 헉슬리 교수는 마차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요?”

그러자 마부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처음부터 당신이 말씀을 안하셨으니까요. 당신의 요구대로 그냥 빨리만 달리고 있을 뿐이지요.”

아, 이럴 수가! 헉슬리 교수는 마부에게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달리기만 한 마차, 우리들의 인생이 이와 같지는 않은가요?

욥의 한탄과도 같이 아무런 목적도, 소망도 없이 인생을 정신없이 보내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8권⌟ p104-

3주-(수)

찬송 : (새)83장, 83장

읽으며 묵상하며 : 고난의 시기에 던져야 할 질문(욥10:1-12)

“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10:1)

하나님은 왜 나를 때때로 고통스럽게 하시는가? (10:1~7)

우리의 실존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위를 보아도 막막하고 아래를 보아도 틈이 없으며 좌우를 둘러보아도 길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에게 자신의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자입니다. 욥은 그 대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그분께 항변합니다. “손수 만드신 이 몸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내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라며 자신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질문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던지는 우리의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이 문제를 물을 수 있는 창조주가 계시기에 위로가 됩니다. 언젠가는 그분이 그 고통의 원인을 깨닫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를 만날 때, 그것을 누구에게 가져갑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조성자 (10:8~12)이십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며, 마치 변덕스러운 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왜 손수 자신을 빚으시고 멸망시키시려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질문하는 그 하나님은 욥의 삶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욥을 조성하셨고, 살과 가죽으로 입히시고, 뼈와 근육을 엮어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욥의 조성자이실 뿐 아니라 인도자요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조성하신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돌보시며 우리의 호흡까지도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분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 더욱 세밀하고 자세하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고난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분께 항변 어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조성하셨다면, 내 인생의 문제를 친히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말씀해설, 2003, 10, 3-

살며 생각하며 : 주 바라기 이지선 감동스토리

이지선은 1978년 05월 24일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보스톤 대학교 재활상담학과를 졸업했으며 푸르메 재단 홍보대사(2005)로, TV: KBS 인간극장 '지선아, 사랑해'(2005)애서 소개된 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지선아, 사랑해(2003)가 있습니다.

이화여대 4학년 재학 중이던 2000년 7월 귀가 도중 음주운전자가 몰던 자동차와 충돌해 발생한 화재로 전신 55%의 화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 끔찍한 사고를 당한 그녀는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나 ‘생명 연장’을 선물로 받은 대신 어여쁜 얼굴을 ‘반납’했습니다.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한 그녀. 눈썹을 그리고 분홍빛으로 눈 화장을 하고 입술에 발그스레한 빛깔의 립스틱을 발랐습니다. 하지만 거울 앞에 앉아 몇 시간씩 꽃단장을 해도 예전 아름다운 얼굴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젊음’ 그 자체로 아름다웠던 ‘얼굴’이 사라져버린 지 일곱 해가 지났습니다. 다음 글은 그의 신앙 고백입니다

▷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 게 낫다라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그런 생각은,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의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이러고도 삽니다.

▷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 지선아 사랑해 中에서-..

3주-(목)

찬송 : (새)375장, 421장

읽으며 묵상하며 :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17)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욥은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박하거나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합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고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합니까?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3절). 욥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합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신학적 논쟁이나 그가 범하지 않은 죄에 대한 회개 또는 기운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선물에 의해 해결되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갈망하며 거기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모든 난제와 억울한 일들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입에 채운다”(4절)고 합니다. 참된 신자는 이처럼 난제와 억울한 일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 앞에 그 심령을 쏟아 기도하였습니다(삼상 1:15). 다윗도 그랬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이렇게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욥은 확신합니다(5절). 하나님은 엄하기만 하신분이 아닙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불쌍히 여기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한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

욥은 연단 후에 정금같이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욥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하지만 현재의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 것만 같았습니다(8, 9절).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10절). 자신이 처한 고난의 상황에는 분명히 의로우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임하면 회개할 죄가 있는지 먼저 찾아보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큰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더 정결하고 큰 그릇으로 단련하시기 위한 훈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의 가는 길까지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나의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세속적 자아를 깨뜨리셔서 영적인 새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고통 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고통을 통과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정금같이 깨끗하고 견고하고 존귀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만물의 찌끼만도 못한 우리를 정금으로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7. 8. 6-

살며 생각하며 : 더비 도자기

‘더비’ 도자기는 영국의 더비라는 곳에서 생산되며, 국왕이 품질을 보장하므로 ’크라운 더비‘라고도 불리며, 세계 도처에서 주문이 몰리고 있으며 비싼 가격으로 무명한 도자기입니다.

하루는 어느 목사가 더비 도자기 공장을 찾았습니다. 그는 직공들이 황갈색, 흑녹색과 탁한 붉은 색 등 여러 가지 색들을 열심히 칠하고 있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 보왔습니다.

직공들은 검은 물감으로 도자기의 가장자리를 빙둘러가며 칠한 후 가마에 넣을 준비를 하였는데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도자기들은 겉보기에도 정말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도자기는 불 속에서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목사는 가마 속에서 꺼낸 도자기들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검은 색은 밝은 색으로 변했으며, 탁한 푸른색과 붉은 색은 맑은 색으로 변해 찬란하게 반짝이고 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하신 지혜로운 성도들을 택하셔서 슬픔과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훈련시키십니다. -성서 연구사/「기독교 무장 대백화사전,15권」p39-

3주-(금)

· 찬송 : (새267장, 201장

읽으며 묵상하며 : 순전함, 종말론적 삶의 태도(27:1-12)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27:4)

순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27:1~6)

우리가 욥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는 지금까지 그의 의로움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간절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해 주시길 원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은 묵묵히 지켜만 보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욥은 더욱 굳은 결심을 합니다. 그는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호흡하는 동안, 자신에게 숨결이 남아 있는 동안 결코 불의의 말과 궤휼의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무딤이 강철 같은 이 세대에 욥의 고백은 큰 도전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져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순결한 마음과 순수한 입술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늘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존전 의식으로 산다면, 우리의 삶이 곧 향기로운 제물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왜 순전한 삶이 필요한가요? (27:7~12)

우리가 숨 쉬는 동안 순전함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종말이 갑작스럽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분의 주권적 의지를 따라 우리의 생명을 끊고 우리의 영혼을 불러 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거두어 가실 때, 우리가 더러운 욕망을 따라 추구하던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주실 때, 우리의 부르짖음은 허공을 치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시간적 한계와 종말의 급박성을 깨닫지 못하고 부끄러운 욕망을 따라 악한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순전함으로, 내일도 순전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더러운 욕망들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종말은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나는 내 삶의 순전함을 위해서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까? -두란노 서원/「생명의 삶」,말씀해설, 2003, 10, 30-

살며 생각하며 : 맹인 훼니 제인 크로스비의 고백

훼니 제인 크로스비 (Fanny Jane Crosby, 1820-1915)는 생후 6개월 만에 의사의 주의로 시력을 잃게 되는 크나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인해 그녀의 성장기는 절망과 반항과 갈등으로만 점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오히려 눈이 먼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일생동안 8.000여 편의 찬송시를 작시하는 등 헌신적이고 성결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녀의 찬송 시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비록 내가 볼 수 없으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다른 사람이 줄기지 못하는 축복을 나는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지. 나는 장님이라고 눈물짓거나 한숨을 쉬지 않으련다. 내 육신의 눈은 감겨져 있으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맡으셨네.“

그녀는 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고 해도 받지 않으렵니다. 하늘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것인데, 이 세상에서 더렵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뵈오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한 고백인가! 욥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죽기 전에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고백을 드리고 있는가요?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8권⌟ p281-

3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주는(主) 교회의 주인 되심(마16:13-20)

말씀 묵상 :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3-20)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아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 이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은 벳새다에서 북쪽으로 약 40KM지점의 헬몬산 기슭에 위치한 도시로 헤롯 빌립이 재건하여 가이사에게 바쳤습니다. 이곳은 로마의 황제가 신임을 선전하는 도시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계시하셨고 제자들이 절대적인 신앙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세상 신들은 겉이 비록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본질은 유한하고 상대적이며 우상적입니다.

주님은 비록 겉보기에는 연약하시지만 본질이 영원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 즉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께 대한 절대적인 신앙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했음의 증거는 신앙고백으로 나타납니다. 절대적인 신앙이 있어야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난이 닥쳐와도 십자가를 지게 되고 최후 승리 할 때까지 인내하며 믿음으로 삽니다. 상대주의 신앙이 만연한 이 시대에 제자훈련을 통하여 절대적인 신앙인으로 훈련받고 절대적 신앙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 대한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 주는 교회의 주인 되심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감격적인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칭찬하시고 약속하시길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고 천국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교회의 주인으로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제자들을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을 얻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불러낸다는 뜻으로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사람의 노력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여 예수께 대한 신앙을 가질 때 주님의 교회는 확장되어집니다. 교회에 대한 인간적인 생각을 벗어 버리고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라는 확신 가운데 나는 단지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로서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되고 하늘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4. 6. 8

생각하며 살며 : 신나는 교회 생활

어떤 사람은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서 분주하게 하루 종일 지내면서도 별로 피곤해하지 않고 밝은 얼굴로 보냅니다.

어떤 사람은 주말이 되면 또 어느새 일요일이 돌아왔는가 하면서 짜증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예배가 시작된 예배당에 걸어 들어와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성경책을 들고 오지도 않고 멍청하게 앉아서 찬송을 부를 때에는 다 죽어가는 것처럼 개미 소리만하게 따라 부르고, 헌금하는 시간에는 주머니에서 부시럭거리면서 구겨진 돈을 꺼내서 언짢다는 듯이 헌금 주머니에 넣습니다.

설교가 시작되면 영락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도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회 문을 나서는 것입니다.

신나는 교회생활을 하고 싶습니까?

우선 "내가 정말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있는가?"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축 쳐진 어깨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가겠습니까가? 시간에 늦을까봐 부리나케 달리고 서둘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마음으로 나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돌아보며 다짐하며 : 가치관과 물질관의 변화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불평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드리며 일하다니 우리 부모님은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 열등의식, 반항, 원망이 가득 찬 그의 삶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겐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그는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를 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 강단에서 존 하이아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난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었을 때 ‘에드워드 모트’에게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셔서 에드워드는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거듭난 에드워드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 속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 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목회 공부를 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 488(통539장) 장으로 지금도 널리 불리워 지게 되었습니다.

- 이 몸에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 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

오늘의 기도 : 신앙이 흔들릴 때 드리는 기도

믿음을 주장하사 온전케 하시는 주님, 믿음이 약한 죄인이 주 앞에 나왔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났사오나 부족한 죄인은 갈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는 주의 보호하심을 믿지 못하고 주의 명령 앞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도전적인 삶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도 쉽게 안일하고 또한 편안하게 형편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바라보고 바다 위로 발을 내디디던 모험의 신앙을 주시옵소서. 풍랑이 무서워 발을 내디디지 못하는 비겁한 마음을 없애 주옵소서.

물욕이 제 눈을 가리워 주일을 지키는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피는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고 내 노력 내 재간으로 사는 줄 알고 하나님을 너무나 멀리 하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입고 먹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아는 신앙을 주옵소서.

시험과 유혹 때문에 저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나이다. 저의 신앙에는 전진보다 후퇴가 더 많고 깊어지기보다 얕아지는 때가 많은 것을 고백합니다.

물욕의 시험과 정욕의 유혹이 저의 신앙을 흔들어놓고 있사오니 처음 믿을 때의 결심을 도로 찾을 수 있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받는 영광과 자랑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