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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6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3. 07:37

 

16주 (월)

찬송 :(새)447장, 448장

■ 사무엘하 13: 1-16:23 죄의 결과

13장:근친 상간과 형제 살인

14-15장:압살롬의 반역

줄거리

나단 선지자의 예언대로 범죄 한 다윗의 가정에는 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왕자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여 거짓으로 병에 걸린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는 부친 다윗에게 누이 다말을 시켜서 자기의 병간호를 부탁했습니다. 다윗의 허용으로 인해 다말은 암몬을 간호하게 되었고, 암논은 다말과 단 둘이 있는 틈을 타서 그녀를 겁탈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그녀를 자기 처소에서 강제로 내쫒아 버렸습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자기 누이를 욕보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습니다. 그는 복수할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암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아버지 다윗을 두려워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오랜 후에 요압 장군의 요청으로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하고 궁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더 이상 압살롬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압살롬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 모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반역을 일으켜서 다윗의 왕좌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때에 다윗은 맨 발로 울면서 궁전에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아비도벨의 모략을 따라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을 겁탈하고 말았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사랑의 채찍(14:1-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 말을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저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14:33)

 

고대 로마의 부루투스에게는 티투스와 티베리우스라는 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그런 그의 아들들이 반정부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선택하기 곤란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살릴 것인가? 조궁에 충성할 것인가?”

그러나 그런 담대하게 선고를 내렸습니다. “ 이 자들을 법에 따라 채찍질을 한 뒤 광장에서 사형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난 후 아들들을 향해 고개 한 번 안 돌리고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렸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의 궁전에는 부루투스를 기념하는 글귀가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식은 여러 명 낳을 수 있지만 나라는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이복형제인 암논을 죽인 살인자이긴 하지만 아버지 다윗은 그를 용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아들을 용서에 주기 전에 먼저 따끔한 징계를 통해 아들로 하여금 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했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감정에 치우쳐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용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죄에 대한 뼈아픈 뉘우침이 없었던 압살롬은 이스라엘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반란까지 일으키게 되지 않았습니까! 실로 공의를 저버린 다윗의 사랑이 그의 아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해 준 것입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의 체질을 아끼지 않았었더라면.............

그렇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은 어떠한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므로 우리들을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이 보다 더 값진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사랑과 함께 심판을 가하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쁜 습관의 노예가 되어 고민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의 채찍을 통에 그들이 삶의 검은 부분을 완전히 제거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 주석, 구약 7권, QT」 p860-

살며 생각하며 : 성장 배경의 아픔

주일학교의 김행자 선생님은 타고난 성품도 좋거니와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랐습니다.

어린이들을 사랑하여 그가 설교를 하면 그 속에서 사랑과 행복의 모습이 넘쳐났습니다. 어느 주일 어린이들에게 ‘탕자의 비유’(눅15장)를 본문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외국에 가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초라한 꼴로 아버지께 돌아올 때 아버지가 사랑으로 맞이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전하며 김선생님은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멀리 자기 집이 보이고 거기에서 아버지가 보고 있다가 아들에게로 달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어떻게 했을까요?” 흥분한 한 어린이가 얼굴이 상기되어 소리쳤습니다.

“그 아들을 막 때렸을 거예요.”

오늘의 모습은 지난날의 내 성장과정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교회학교의 그 어린이는 아마도 매를 맞고 자란 아픈 세월의 경험이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었을 것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먹는다’는 속담처럼, 사랑도 받아보고 해본 사람이 남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닐지라도 지난날의 아픔으로 현재에 고통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랑을 훈련해야 합니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 349-

16주(화)

찬송 :(새)290장, 412장

사무엘하 17: 1-19:43, 시3, 63편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

17장:나쁜 계획을 좆는 압살롬

18장:압살롬의 죽음

19장:회복

☞ 줄거리

다윗은 지혜로운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섰다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아히도벨은 기도하여 모사를 결정했기 때문에 추호로 틀림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모사가 실행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의 친구 후새가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그를 압살롬에게 보내면서 그에게 아히도벨의 모사를 방해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포기하고 후새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만드셨습니다. 압살롬이 후새의 모략를 따라 전면전을 하기로 결정하게 되자,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패배를 예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압살롬이 전면전을 준비하는 동안, 다윗은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가서 전쟁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다윗과 압살롬의 군대 간에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났으며, 압살롬은 군대 장관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압의 권유를 듣고 슬픈 마음을 정리한 후에 승리한 군사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삼하 19:31-39)

“왕이 바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19:33,34)

가까워 온 죽음을 준비하느라 예루살렘에서 함께 살자는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는 바실래를 보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다

영국의 한 사회학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만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왕은 이상할 정도로 삶에 더욱 애착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67 세 때에도 30세 때에 했던 것과 똑같이 젊은 신하들과 사냥하고 춤추며 신나게 떠들어대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여왕은 죽기 몇 달 전까지도 젊었을 때의 패기와 활발함을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충신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쪽에서 저쪽 별장으로 떼를 지어 옮겨 다니기를 좋아 했습니다“

여왕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젊은 시절의 습관을 계속 즐기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여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녀는 노년을 적절히 즐길 수 있는 일들을 예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후를 위하여 현명하게 준비해 해나간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과하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됩니다. 노후나 죽음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은 그러한 시간이 다가올 때에 커다란 실망과 불안을 경감하게 됩니다. 웅변가들은 웅변을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한 배려와 압축을 사용하긴 하지만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하여 청취자들의 감정과 열정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기교와 재능을 발휘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 드리는 끈질기고 설득력 있는 웅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생애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해야 할는지 생각해 놓아야 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하는 생각과 행실들이 최선의 것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얼마가 남지 않았다 내가 곧 열납 될 시간을 위해 그 때까지 나의 영혼을 최대한 청결하고 완전하게 해야겠다” 이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며 맞이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7권, QT」, p969-

살며 생각하며 : 어머니의 짧은 편지

성공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리는 전형적인 미국 청년인 에디 캔도(Eddie Cantor)가 어느날 시골에 사는 어머니로부터 한 문장밖에 안 되는 짧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에디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그렇게 하면 좋은 경치를 못 보고 지나친단다.”

이 때부터 에디는 열심히 달리다가도 다음과 같은 4개 조항을 수첩에 적어놓고 스스로의 발걸음을 조절하였습니다.

첫째, 나는 맹목적인 야심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

둘째, 나는 나의 경력을 쌓기 위해 달리고 있는가? 나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셋째. 나는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인생의 참다운 보물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넷째,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남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편지는 에디의 발걸음을 조절하게 하였고, 그 결과 에디는 미국의 가수이며 라디오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최요섭/뜻을 돌이키는 하나님>

-성서 연구사/「기독교 문장 대백화사전, 18권」p778-

16주(수)

찬송 :(새629장, 9장

■ 사무엘하 20: 1-24:25, 역대기상20: 1-21:30 다윗에 대한 평가

20장:세바의 반란

21장 기브온의 원수를 갚음

22-24장:말년

☞ 즐거리

다윗이 다시 돌아올 때에 베냐민 지파 세바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에는 3년간 큰 기근이 들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 일로 인해 여호와께 나아가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근이 사울 집안이 평화 조약을 맺은 기브온 거민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서 어떻게 하면 원한을 풀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사울 집안의 사람 중에 몇을 죽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윗은 그 요청대로 사울 집안사람 몇을 그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들이 사울 집안사람을 죽여서 원한을 풀게 되자, 이스라엘에는 다시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비새의 도움으로 겨우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군대 장관은 다윗에게 다시는 전쟁에 나가지 말라는 요청을 듣고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모든 대적과 사울의 집에서 구원을 받고 그의 왕권이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감사의 시를 지었고,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윗은 교만해져서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후에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타작마당에서 화목제를 드렸으며,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이스라엘에 내렸던 재난을 그치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구원의 노래(삼하22:1-20)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삼하 22:2)

 

다윗은 용맹스런 통치자로서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수금을 잘 타는 음악가요(삼상 16:18), 시인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모든 대적으로부터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노래로 시편 18편과 흡사합니다. 그의 인생을 잘 요약한 시를 통하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묵상하길 바랍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구원자시라”라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인생을 회고해 볼 때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다윗만큼 환난 많고 고난 많은 생을 산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덮치는 것 같이 적이 그를 죽이려고 에워싸 두려움에 떨기도 했고(5), 사냥꾼이 짐승이나 새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파고 덫을 놓으며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가는 것처럼 적이 포위하여 죽음의 위협에 놓이기도 했습니다(6). 때때로 즐겁고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잠깐이요, 고난과 반역과 쓰라림이 더 많은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다윗을 때마다 돕고 인도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니 감격적인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반석이시요, 요새시요, 건지시는 자시요, 피할 바위시요, 방패시요, 구원의 뿔’이십니다. 하나님은 안전한 피난처요, 적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표현하시겠습니까? 다윗보다 더 아름다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윗은 ‘환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들으셨다’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다윗이 어려운 삶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7) 하나님께 부르짖고 호소하였습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때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성도의 가장 큰 특권이 하늘 보좌를 향해 입을 벌려 간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극한 환난으로부터 능히 피할 길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응답하였습니다.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하나님은 미천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친히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강림하사(10) 인생사에 개입하시어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며 또한 불의한 자를 엄히 다스리심을 체험하였습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능력! 연기와 불꽃의 위엄 속에 계시는 하나님! 번개와 뇌성과 같은 음성으로 원수들에게 소리쳐 공포에 떨게 하시는 위대한 하나님! 등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한번 뇌성을 발하시면 모든 원수가 물러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독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5. 12. 03-

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과의 통화료

이스라엘 수상 메나헨 베긴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의 안내로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베긴은 테이블에 놓인 세 대의 전화기를 보았습니다. 베긴이 전화기의 용도를 묻자 레이건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흰 것은 행정부로 통하는 것이며 주로 공무에 쓰입니다. 빨간 것은 소련과 직결되어 있는 비상전화입니다. 그리고 황금색 전화기는 하나님과 통화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베긴이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과 통화할 할 때 통화료는 얼마입니까?”

레이건이 대답했습니다. “일만 달랍니다.”

그 후에 레이건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베긴 수상의 집무실을 안내 받았습니다. 거기에도 전화기가 세대 놓여 있었는데 레이건이 물었습니다.

“이 전화기들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

“희 것은 국회의사당과 연결된 것이고, 빨간 것은 이집트와 연결된 비상전화입니다. 그리고 노란 것은 하나님과 통화하는 전화입니다.”

그러자 레이건이 또 물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통화할 때는 통화료를 얼마나 냅니까?‘

“15센트 냅니다.”

“왜, 그렇게 쌉니까?”

레이건이 놀란 듯이 묻자 베긴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어서 시내통화료만 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통화할 때 통화료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받으시면서 직통 전화선을 깔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화기를 들고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십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645-

정리하며 확신하며 :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10대 방법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참 고 성 경 귀 절

1

환상과 꿈을 통해 말씀하심

창 15:12-16; 37:19

2

천사들을 통해 말씀하심

창 18: 1-22; 마 1:18-21

3

역사적 사건을 통해 말씀하심

출 6: 6, 7; 신 3:24

4

자연을 통해 말씀하심

삼하 21: 1, 2; 시 19: 1- 6

5

성경을 통해 말씀하심

시119:105; 딤전 3:15,16

6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심

단 10: 1; 벧전 1: 12

7

성도의 믿음을 통해 말씀하심

마11:25; 롬 1:17

8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심

고전 2:10; 갈 1:16

9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 주심

갈 1: 2 히 1: 1, 2

10

성령을 통해 계속 말씀하심

엡 1:17; 골 1: 9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5권, p786

16주(목)

찬송 :(새)94장, 102장

■ 열왕기상 1: 1-53, 역대기상22: 1-25:31,

시편 2,4-6편: 아도니아의 왕위 찬탈과 솔로몬의 등극

☞ 줄거리

다윗 왕은 나이가 많아져서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신하들은 젊은 여인을 구해서 다윗 왕을 모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압살롬의 동생인 아도니야가 솔로몬을 제치고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는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왕권을 차지하려고 습니했다. 나단 선지자는 그 소식을 듣고 즉시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밧세바에게 다윗에게 아도니아의 소식을 고하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달라고 요청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통해서 아도니야의 반역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즉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니야를 불렀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즉시 솔로몬을 왕위에 앉히는 즉위식을 거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어린 솔로몬은 기혼에서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왕위 찬탈을 위해 모여 있었던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성전으로 달려가서 제단 뿔을 붙잡았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잡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다시 반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받고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왕이 되려는 아도니아(왕상1:1-14)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왕상1:5)

사람은 늙으면 쇠잔해 집니다. 열왕기상은 한때 누구보다도 젊고 용맹스러웠던 다윗의 쇠잔해진 모습을 그리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은 그의 기력을 돕기 위해 고대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던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40년을 왕위에 있었으며, 그토록 숱한 역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던 다윗마저도 인생의 황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인생의 종국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편 다윗은 노년이 될수록 점점 더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은 자녀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도니야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여동생을 범한 암논의 경우, 그리고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자녀들에게 공의를 세우지 않고 일방적으로 두둔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생존해 있는 아들들 가운데서 최연장이였던 아도니야는 솔로몬으로 다윗의 왕위를 계승 시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합니다(5). 사단은 다윗의 약점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송두리째 자신의 손에 넣을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귀한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아도니야의 계략은 이미 대세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계략에 가장 노련하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인 요압과 종교인의 대표인 예루살렘 성막의 대제사장 아비아달도 동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이라 불리는 일단의 충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압이나 아비아달 등의 기회주의자와는 달리, 승계자에 대해 이미 밝힌 바 있는 연로한 다윗의 뜻을 그대로 받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무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도 합한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중 선지자 나단은 솔로몬의 생모 밧세바를 찾아가 솔로몬을 왕위에 옹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들고 온전히 지키기 위해 고난을 무릅쓰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속한 용사들’이라는 칭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GTM /「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2007, 1 9-

살며 생각하며 : 맨드라미 꽃

옛날 로마에 힘세고 용감한 베르로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싸움에서 항상 승리를 했으나 간신들의 훈장만을 늘려 줄 뿐 십년 만에야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간신의 행동을 보자 다시 싸움터에 있기를 청했으나 왕은 배르로 장군이 왕위를 탐낸다는 간신의 말을 믿고 결투를 명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무사들이 장군을 둘러쌓습니다. 넓은 들이라면 이런 무사들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좁은 방이라 그는 깊은 상처를 받고 쓸어졌습니다. 간신 두목은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왕을 몰아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이 때 넘어졌던 베르로 장군이 마지막 힘을 내어 간신들을 모두 찔러 죽이자 왕도 그제서야 장군의 충성을 알았습니다. 그가 묻힌 무덤에서 피어난 방패처럼 생긴 꽃이 맨드라미였습니다

. -성서 연구사/「기독교 문장 대백화사전, 21권」p440-

16주(금)

찬송 :(새)569장, 442장

■ 시편 7-9,11-14,16-17,19-23편

☞ 줄거리

다윗은 말기에 반역자들에게 쫓겨 다니면서 구원을 요청했던 일들을 시로 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내용도 시로 썼습니다. 그는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신성과 능력을 발견하고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때로 그는 자기 기업을 지켜 주시고, 자신을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시며, 주의 날개 아래 품어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노래하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시22편은 다윗이 반역자들에게 쫓기면서 극한 고난 중에 쓴 시였습니다. 이 시는 후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유명한 시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평생 동안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삼은 어린양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삶을 살면서 고난 속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베푼 상이 풍부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23:1)

본시는 모든 시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실존적인 필요를 대변해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동 출신이면서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으로 추앙받은 다윗의 고백을 깊이 묵상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입니다 이 시의 배경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궁에서 쫓겨나 유다 광야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베들레헴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던 목자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목자의 역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치는 사람인데, 양을 먹이고,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게 됩니다. 특히 양의 특징은 순하고 공격적이지 않아서 친근감이 있지만, 늘 다니는 길조차도 알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위험한 곳인 줄도 모르고 아무데나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윗은 목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목자와 양인 것을 체험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목자라는 고백이며, 자신은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르는 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선한 목자이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으며, 실제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실제적인 삶속에서 밀접하게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삽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목자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목자의 인도함을 받을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부족함이 없고 가장 만족스럽게 됩니다.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영혼을 소생시키며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함께 해주신다.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해주신다. 원수의 목전에서 융숭한 대접을 해주신다. 평생토록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따르기에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감으로 만족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길은 순풍에 돛다는 것 같은 때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원수들이 거친 파도와 같이 밀어닥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치고 피곤하고 영혼이 시들어버린 것 같은 한계에 부딪칠 때도 있었고, 죽음의 골짜기를 다니는 것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나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라서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조류나 스타들을 따라가 가거나 자신의 감정에 따르기보다도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독대학인화,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7.09.15-

살며 생각하며 : 부족함이 없는 은혜

한 부부가 해변으로 놀러갔다가 부인이 넘어져 왼쪽 팔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문병 온 남편의 친구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부인은 참 운이 좋으시군요, 만약 왼쪽 팔목이 아니리 오른 쪽 팔목이었더라면 더 불편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또 다른 친구들은 “뒤로 넘어졌더라면 허리를 다쳐 고생이 심했을 텐데 앞으로 넘어져 팔목을 다쳤으니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뭐니 뭐니 해도 담당 의사가 자리를 비우지 않을 때에 다쳤으니 부인은 정말 운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팔이 불어졌는데도 엄청난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 일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우리들의 생활은 부족함도 있고, 사고가 뒤따르며 오늘 무사했어도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언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으머,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정 우리도 어떠한 중에도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8권⌟ p602-

16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노동의 가치(살후3:6-18)

읽으며 묵상하며 :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7살후3:6-18)

말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생활습관을 낳고 잘못된 생활습관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에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도록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은 무엇입니까?

☞ 바울 자신을 본 받으라

당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오해를 한 사람들은 규모 없이 행하였습니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일하지 않고 먹으며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를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병폐를 지적하면서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규모 없이 행하지 않았습니다. 빈들거리며 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복음역사를 위하여 헌신하였지만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주야로 일을 하면서 복음사역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양식을 먹을 때에는 늘 값을 치렀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본이 되도록 사역하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며, 놀고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는 부지런하고 충성됩니다. 악하고 게으른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착하고 충성된 종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마 25:15~28). 종말의 때에 사람들의 본이 되고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본을 보이셨습니다(요 13:13~15).

☞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강력하게 권면하였습니다. 주님이 곧 오실 것인데 땀 흘리며 일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며 놀고먹었던 자들, 재림열광주의자들에게 강력하게 말한 것입니다. 당시 게으른 노동자들에게는 저녁 먹는 것을 금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바울이 이러한 제도를 교회 안에 적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시고 하루를 쉬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도 하나님의 명을 받아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며 동산을 가꾸는 일을 하였습니다. 타락이전에 일은 곧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습니다(창 1:28). 그런데 죄로 인하여 일은 곧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창 3:17).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일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복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신자는 일하면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일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복을 차버리는 행위이며,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진정한 기독인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7. 6. 30

살며 생각하며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예날 어른들은 서로 다투다가 곧잘 ‘에끼 이 불한당 같은 놈’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불한당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하면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뜻인데 이 말은 애써 수고하여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떼를 지어 다니며 재물을 강탈하는 강도를 의미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 불로소득(不勞所得)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강도와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조선시대 양반의 근성이 남아 있는지 아직도 불한당이나 불로소득하는 무리들을 부러워합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엄격히 교훈합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어느 한 왕이 신하들을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이 엄명을 내렸습니다.

“ 너희들은 지금부터 가서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공의 비결에 관한 책을 써 오너라.”

몇 달 후 신하들이 제각기 심혈을 기울여 책을 지어 왔는데 그 분량이 한 수레는 족히 되었습니다. 왕은 다시 명령하였습니다.

“시간 없는 백성들이 어디 볼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요약해 오너라.” 그리하여 신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요약하고 또 요약한 끝에 얻은 한 마디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습니다.

지금 이 세상 풍조는 '어떻게 하면 적게 노력하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성서교재 간행사「그랜7드 종합 주석 15권,예화」p998

돌아보며 다짐하며 : 행복한 가정

노동은 근심과 걱정을 잊게 합니다. 노동에 의해 가난한 자는 가난의 근심 걱정을 잊고 노인은 늙음의 우고(憂苦)를 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최대의 망우제(忘憂劑만)를 갖지 않는 자는 달리 근심 걱정을 제거할 길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엇이든 자기의 불평을 남에게 전가시키려 하려는 것입니다.

동양적인 가정에서 불쾌한 일이 많은 것은 온전히 이 노동에 관한 그릇된 사상 때문인 것입니다. 일하는 것을 괴로운 일로 알고, 손해로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을 극력 피하려함으로써 가계(家計)는 부족을 가져오며, 한사람이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관계로 불평하고, 일하는 자는 노하며, 그도 일하기 싫어지는 것이요,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괴로운 일들이 한없이 생깁니다. 이에 반하여 노동을 최대의 쾌락으로 알기만 하면 집안 사람은 다투어 일하게 되고, 노동은 노동을 낳아 가계는 구하지 않더라고 풍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에 행복은 더해지고, 누구도 불평이 없어지며, 찬송은 끊이는 일 없이, 그리고 밤이 오면 노동의 피로로 단잠을 자게 되는 것입이다. (잠 10:4)

-성서연구사/「기독교 문장대백화사전 4권」p830-

오늘의 기도 : 직장에서 드리는 기도

하나님! 일터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직장의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자리가 없어 직장을 찾아다니는 무직자들을 기억합니다. 세계의 경제가 흥하고 발전하여 실직자들이 복직하고, 무직자들이 직장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들을 대신하여 저는 지금 이 일터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고 책임 있게 일하게 하옵소서

내가 이렇게 일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는 우리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가정의 재정수입을 위하여 대표하여서 일하는 일꾼이오니 오늘도 성실히 일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 가정의 부모님, 학교에 간 아들 딸들, 집에 있는 아내도 다 각각 자기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게 하옵소서.

주여!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이 직장에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게 하시며, 인류와 세계에 공헌되는 일이 되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하나님이 인류와 세계를 위해 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믿고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히 일하게 하옵소서.

윗사람들에게 순종하고, 아래 직원들을 사랑하고, 동료들과 협력하여 모범적인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일할 때에 열심히 일하고 쉴 때에 충분히 쉬고, 잠을 주실 때 단잠을 자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