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경 1독하기 **/- 52주 완성

스크랩 50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2. 10:04

 

50주 (월)

찬송 :(새)199장, 234장

■ 히브리서 1: 1-6:20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성숙에의 권유

☞ 줄거리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때에 유대 기독교인들은 배교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격려와 경고를 하기 위해서 히브리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보다 복음이 더 탁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 더 탁월하신 분이시며, 심지어 모든 천사들보다도 우월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집을 맡은 사환으로 충성했다면, 그리스도는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대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버리고 다시 율법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구원에 대한 기초를 다시 쌓지 말고, 계속해서 더 완전한 것을 향해서 전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말씀과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안식(4:12-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4:12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살아서 운동하는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관절과 골수 같이 분리하기 힘든 부분까지 절개할 수 있고, 마음속에 있는 감정적인 생각과 의지적인 뜻까지 감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를 상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숨김없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성경말씀의 능력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권면에 이어지는 전후 문맥상(11) 보다 구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안식을 방해하는 모든 불신앙과 불순종들을 드러내고 수술할 수 있음으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는 말씀을 상고하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13절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란 표현은 ‘우리가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자’ 혹은 ‘우리와 셈을 할 자’란 뜻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두 번째 방법은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큰 대제사장이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범죄할 가능성을 가진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고, 또한 격렬한 시험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일 년에 오직 하루 대제사장을 통해 지성소에서 속죄제를 드렸고, 그 속죄가 열납 되었을 때 은혜의 보좌(시은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큰 대제사장을 통하여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속죄가 완성되었기에 언제든지 시은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때를 따라’란 ‘적절한 시기에’라는 의미로,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를 아실 뿐만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베풀어주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GTM/「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2003. 03.14-

살며 생각하며 : 강도를 변화시킨 능력의 말씀

일본의 한 여학교 기숙사에 강도다 들어왔습니다.

“꼼짝마라.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다 내놔라.”

이렇게 여학생들을 위협한 강도가 그 방에서 값나갈만한 것을 여기저기서 다 챙겨 나갈 때였습니다. 한 여학생이 책상 위에 있는 낡은 책 한권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중요한 것은 다 가져간다면서 가장 중요한 저 책은 왜 안 가져가세요?‘

이에 강도는 그 책을 얼른 집어넣고 도망 나왔습니다.

얼마 후 훔친 물건들을 파는 데 이상하게도 그 낡은 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아무도 안사는 이 낡은 책이 무슨 책이기에 그 여학생이 가장 귀한 책이라고 했을까?‘ 의아스러운 마음에 그는 그 책을 몇 장 뒤적이며 일거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한 말이 계속 궛 전에 맴돌아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러기를 며칠, 계속해서 책을 읽는 동안 그만 그가 변하되고 말았습니다.

그 낡은 책이 다름 아닌 성경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곧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신실한 신앙생활을 한 결과 훌륭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 옛날 한 여학생이 그에게 성경을 주지 않았더라면----

강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힘과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늘 우리의 생각과 뜻은 얼마나 다듬어졌습니까?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6권,예화」p86-

50주 (화)

찬송 :(새)250장, 182장

■ 히브리서 7: 1-10:39 구약의 제사 제도와 그리스도

☞ 줄거리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레위 족속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을 쫓아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멜기세덱은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었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인은 옛 언약의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옛 언약을 지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것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드리기 위한 성전이 있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성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성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구약의 희생 제물인 짐승의 피는 한 번 죄를 정결케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를 영원히 정결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원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귀중한 구원을 등한히 하는 사람은,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될 것입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새 언약의 혁명(히브리서 9:1-14)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9:7)

하나님은 첫 언약 안에서도 구속의 방편을 매우 치밀하게 마련하셨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막입니다. 이 성막은 첫째 장막과 휘장 뒤에 있는 둘째 장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장막에는 촛대와 상, 진설병이 놓여 있습니다. 이곳이 “성소”입니다. 그리고 성소 안에는 “지성소”라 불리는 둘째 장막이 있는데, 이곳에는 금향로와 금으로 둘러싸인 언약궤가 있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만나가 담긴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 판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백성을 섬겼고,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하나님이 처음 언약 안에서도 구속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매우 섬세하게 예비하셨음을 나타냅니다.

-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섬세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요청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 자신과 백성의 허물을 위해 피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법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첫 번째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드리는 피의 제사는 제사를 드리는 자의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첫 언약의 특징이자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완전한 장막, 곧 하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피를 통해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은 더러워진 우리의 양심을 근본적으로 깨끗게 하시기에 충분합니다.

- 나는 새 언약 안에서 정결케 된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새롭게 된 양심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있습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 2006. 07. 13-

살며 생각하며 : 헌신의 정신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C. T. 스터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수석을 달리는 우수한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아주 탁월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그는 크리켓으로 영국 전체 시합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보장된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캠퍼스 집회에 참여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 에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중국 땅으로 갔습니다. 중국에서 10여 년을 섬긴 후에 그의 육신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투병 생활을 하던 중 그는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정신인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로 만족해서도 안 되고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 「짧은 이야기 긴 감동」/ 이동원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 2006. 07. 13-

50주 (수)

찬송 :(새)542장, 340장

■ 히브리서 11: 1-13:25 믿음, 소망, 사랑

☞ 줄거리

유대 기독교인들은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모두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들은 고난 중에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고, 믿음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이제 하늘에서 믿음의 증인이 되어 성도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길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들이 간 길을 뒤쫓아 가야 합니다. 성도들은 거추장스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믿음의 경주에 참가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유일한 목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좆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영적인 축복을 파는 망령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으로 격려를 하면서, 형제들을 대접하고 찬송과 기도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 (히11: 1-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11:1-2)

믿음은 보이지 않는 중에 가지는 확신입니다. 믿음은 신비한 능력을 가져오는 신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어 가는 인간 편에서의 반응입니다. 앞으로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구약의 기준으로 볼 때는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저자는 먼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그분이 약속하신 미래를 위해 살 것을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이는 내 믿음이 내 일을 성공하게 만든다는 근시안적 차원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이 바랐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구속사적 맥락에서 실제로 얻은 것처럼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완성된 미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들을 믿음으로 받은 것처럼 살고 있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순종과 헌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창조에서 노아까지 (11:3-7)

창조 사건이야말로 믿음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누구도 보지 못했고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 중 아벨을 제일 먼저 언급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그가 믿음이 아닌 경쟁심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창 4:6~7). 에녹 역시 가인 후예의 갈등 문화 가운데서(창 4:23~24)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노아 역시 아직 확인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경고를 미리 받고 방주를 지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 신앙생활은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성경의 진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까?

-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 2006. 07. 17-

살며 생각하며 : 불탄 교회를 다시 세우다

무디 목사가 시키고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시카고에 발생한 대화재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고, 기자들이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건물들은 이미 불에 타버렸으며, 특히 시내 한 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는 완전히 다 타버려서 그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하시더니 어째서 거룩한 교회가 불타는 것을 보고만 계셨을까요?”

기자들이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다시 짓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는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불에 태우신 것은 건물을 허는 데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 같소.“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밤중에 화재를 당한 무디 목사는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몸만 빠져나온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큰 교회를 새로 지을 돈은 있으시구요?“

기자들이 다시 묻자 무디 목사는 그 경황 중에도 소중이 들고 나온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수표와 돈은 하나도 기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곧 이 자리에 새로 지어진 크고 멋있는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국을 뒤흔드는 큰 부흥을 일으켰고, 양국에서는 무디 목사의 새로운 교회를 위해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화재가 난 바로 그 자리에 전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가능한 상황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으로 용기를 잃지 않았던 무디의 믿음이야말로 진장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혹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계산적인 믿음은 아닙니까?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6권,예화」p207-

선진들의 이름

신앙 특징

참 고 성 경 귀 절

아벨

경배하는 믿음

창 4:3- 5; 히11: 4

에녹

동행하는 믿음

창 5:24; 히11:5

노아

구별된 믿음

창 7:1; 히11: 7

아브라함

결단하는 믿음

창 12:1- 5 히11:8, 9

사라

확신하는 믿음

창 17: 19; 히11:11

이삭

순종하는 믿음

창 27:26-40; 히11:20

야곱

연단받는 믿음

창 48: 1, 5; 히11: 2

요셉

소망하는 믿음

창 50:24,25; 히11:22

모세

헌신하는 믿음

출 2:11; 히11:23-27

이스라엘과 백성

담대한 믿음

출 14:22; 히11:29

라합

모험적인 믿음

수 2; 1; 히11:31

정리하며 확신하며 :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 특징(히11: 4-10)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6권, p189

50주 (목)

찬송 :(새)314장, 511장

■ 베드로전서 1: 1-5:14 소망으로 시련을 이김

☞ 줄거리

베드로의 말년에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가혹한 박해에 노촐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들의 인내를 독려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위해서 성도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격려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베드로 전서는 "소망의 편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들은 복음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살펴보기 원했던 귀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도들에게 귀중한 복음 안에서 구원의 소망을 갖고, 당면한 시련을 극복해 나가라고 권면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고난 중에서 죄와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박해하는 국가에 대해서 성도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도들에게 노사 간의 관계와, 가정에서의 부부 관계에 대한 성경적인 지침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의를 위해 기쁘게 고난에 참여하라고 격려했으며, 지도자들에게 몇 가지 권면의 말을 남기고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부부생활 ( 3 : 1-7)

“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1절)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3:1,7)

아내들에게(1-6)

하나님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복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입니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섬김은 남자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섬김과 질서를 증거 하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아내의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불신 남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아내의 섬김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하고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불신자의 남편이 은혜를 입는다면 신자의 남편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아내의 섬김이 곧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여 그것만 단장하는 자가 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기 위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편들에게(7)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아내를 섬겨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열등한 자가 아니라 남편과 동등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은혜를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위해 목숨을 주신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내를 열등한 존재로 여기며 대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존귀히 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을 좇아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교회와 성도는 세상의 빛이 되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인 남편이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업신여기게 될 때 신앙생활에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기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가 막히면 신앙생활은 멈춰버리고 맙니다. 아내를 존귀히 여기지 못하면 남편의 신앙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남편인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내를 존귀히 여기며 함께 신앙생활을 경주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 2003년 11월 24일-

살며 생각하며 : 청소부의 아내 격려

길거리를 청소하는 어니 청소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지겹고 힘들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고 있던 아내는 남편에게 용기를 줄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이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당신의 노고가 없다면 이 마을은 쓰레기로 뒤덮였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청소부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빗자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고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아내의 지혜로운 격려 한마디가 남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사회를 살립니다.

지혜는 금은 보화 보다도 훨씬 귀한 보물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712-

50주 (금)

찬송 :(새)175장, 162장

■ 베드로후서 1: 1-3:18 소망으로 시련을 이김

☞ 줄거리

베드로전서는 외적인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을 위해서 쓰여 진 편지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는 내적인 위협, 즉 거짓 선지자의 위협을 받는 교회를 위해 쓰여 진 편지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베드로전-후서는 내적 외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쓴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에서 지식만 강조하고 행하지 않는 거짓 선생(영지주의자)들을 비난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교만한 지식 추구보다,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도들에게 전한 교리(복음)은 거짓 선생들처럼 교묘하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성도들에게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좆아 다니면서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전한 복음은 이미 구약 성경의 확증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거짓 교훈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저주하는 동시에, 그들의 그릇된 종말관을 올바르게 교정해 주고 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Krakatoa 크라카토아 (3:1-13)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1883년, 현대사에서 가장 큰 화산폭발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열도의 화산섬인 크라카토아가 16입방킬로미터 분량의 흙과 바위,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을 고도 40킬러미터의 성층권 속으로까지 쏘아 올렸습니다. 그 충격파는 지구를 일곱 번이나 돌았고, 그 파편은 3,300킬로미터 떨어진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까지 떨어졌습니다.

크라카토아가 폭발할 때 근처에 있었던 영국선박 노함캐슬 호의 샘프슨 선장은 그의 항해일지에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작은 돌들과 먼지가 계속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있다. 너무나 격렬한 폭발로 인하여 선원들 중 절반 이상이 고막이 터졌다. 최후의 심판일이 도래하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샘프슨 선장은 세상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화산 폭발은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라고 한 말씀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크라카토아 화산폭발이 아무리 격렬했을지라도 그것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는 아니었습니다.

위기는 우리를 흔들어 깨워 현실안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위기는 이 세상이 우리의 고향이 아님을 깨닫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경건해지도록 북돋워줍니다 (11절). 우리들 개인의 세계가 종말에 이른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영원히 사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Dennis Fishe -오늘의 양식사, RBC Ministries /「 오늘의 양식」, 2007년 12월 01일-

살며 생각하며 살며 : 경건한 죄수

어느 단체에서 경건한 사람을 뽑는 대회를 열었습니다. 사람들을 추천하는 편지가 많이 도착했습니다. 많은 편지에서 몇 명의 후보자를 선정하였는데 그 중에 한 후보자는 자기 스스로를 추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저는 술이나 담배를 일절 하지 않으며,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몸에 익혀 나태하지 않으며, 영화나 비디오로 시간을 축내는 법이 없고, 매일 계획한 일은 그날에 꼭 마무리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생활한 것이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우승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자가 분명했습니다. 주최측에서는 그 사람이 편지에 쓴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상대가 수화기를 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에- 안양 교도소입니다.”

참된 경건은 즐겁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자유를 잃었고, 어떤 사람은 율법주의에 빠져 힘들게 자유를 잃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경건한 생활로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

-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442-

정리하며 확신하며 : 성경 해석의 7대 기본 원칙(벧후 1:20,21)

 

성경 해석의 7대 기본 원칙

참 고 성 경 구 절

1

가감하여 해석하지 말 것

신 4: 2; 마 5:19; 계22:18,19

2

사사로이 해석하지 말 것

막 7: 9,13; 벧후 1;20

3

억지로 해석하지 말 것

고후 4: 2; 벧후 3:16

4

성경의 영감성을 인정할 것

딤후 3:16; 벧후 1:21

5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할 것

사 55:11; 마 5:17,18

6

바른 해석을 위해 기도할 것

사 48: 6; 렘 33;3

7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의 깊게 살필 것

행 17:11; 벧후 1:19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16권 p439

50주 (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주제 : 재림을 준비하는 올바른 신앙생활(눅19:11-27)

말씀묵상 : 재림을 준비하는 올바른 삶(눅19:11-27)

인생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기대하던 자들에게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를 따르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열 므나의 비유 목적(11-14)

"달란트는 아무리 적을지라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크게 관계되는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고,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갖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동포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의무입니다. 재능과 유용성이 날마다 자라나지 않는 자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할 때 주님의 일꾼으로서 우리가 가능한 한 최고의 표준에 달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각 기능을 최대한 완전하게 계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준을 높이 세우기로 결심한 자들만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대리자들에게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완전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려는 우리의 성벽에 맞추기 위하여 의의 표준을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품성의 불완전함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품성의 모든 의로운 특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전체적으로 완전하고 조화를 이루게 되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특성을 가질 특권이 있습니다.

☞ 주인의 심판(15-27)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신체의 각 기관(器管)과 마음의 자질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된 교육은 육체적·지적·도덕적 능력을 우리의 모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이 교육은 거룩한 봉사를 위하여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교육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방면으로 능률과 재능이 자라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봉사를 받으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떻게 일해야 하고 어떤 정신으로 일하여야 할 것에 대한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가장 잘 추진하고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요 3:16)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에게 최대의 사랑과 충성을 바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비유에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받은 달란트를 충성되게 일하여 상을 받는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잘 사용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충성되게 일한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과 더불어 상급을 받을 것이지만, 불순종한 사람들은 ‘악한 종’이라고 불려지며 수치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맡기신 일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살며 생각하며 : 작은 일에 충성한 소년

함경도 어촌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할아버지가 운영하던 40척의 고기잡이배가 한 척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폭풍에 모두 침몰된 것이다. 소년의 가족은 그 많던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주고 빈손으로 동네를 떠났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은 하루아침에 캐나다인 선교사 가정의 머슴이 됐습니다. 소년은 온갖 궂은 일을 감당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맨손으로 빨래까지 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 운 적도 많았습니다.

선교사는 종종 소년이 알 만한 곳에 돈을 놓아두었습니다. 소년의 정직성을 시험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한 번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주인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선교사는 소년을 서울에 데려가 교육시켰고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도 보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남대문교회 목사를 지내고 천안대의 전신인 대한신학교 창설자인 김치선 박사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돌아보며 다짐하며 :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인류사회가 지향하는 바는 성실(誠實)이입니다.

‘성’(誠)자는 정성, 순수한 마음, 참되게 하다, 삼가다, 공경하다, 의 뜻을 가지며, ‘실’(實)자는 열매, 차다, 가득하다, 익다, 곡식이 익다,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성의 열매를 맺는 사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 참되게 사는 사람, 삼갈 줄 알고, 공경 할 줄 아는 사람, 이러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것이 인성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성실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민족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인류사회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1989년 미국 역사상 최연소 합참의장에 오르고 2001년 흑인으로 최초의 국무장관에 임명된 ‘콜린 파월’은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뉴욕의 남부 브롱스에서 자랐습니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콜린의 가정은 스스로 용돈을 벌어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콜린은 콜라 공장에서 여름동안 바닥청소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습니다. 한번은 50개의 콜라 병이 든 상자가 떨어지면서 유리파편과 콜라가 뒤섞여 바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콜린은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유리 조각을 줍고 바닥을 닦아 냈습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는 다음 해 여름에 다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다음 해 여름 다시 콜라공장을 찾아 갔을 때는 바닥 청소 대신 음료주입기를 맡게 되었으며, 여름이 다갈 무렵에는 음료주입 팀의 부책임자로 승진했습니다.

어른이 된 콜린은 콜라공장에서 일할 때 얻은 교훈이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 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집니다. 어떤 일에서나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 나를 지켜봐 준다는 겁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번 밖에 없는 인생,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서 태어난 이 땅에 이바지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홍근(뉴욕 그리스도의 교회 소망회 회장)/「HK 컬럼⌟ 2007-06-06-

오늘의 기도 :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주님!

봄날의 추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는 햇빛처럼, 어린 시절 아무리 뛰어가도 여전히 내 뒤를 따라오던 밤하늘의 조각달처럼,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늘 염려하며 걱정하며 새벽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도 주님의 능력과 함께 하심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나를 고백합니다.

때를 따라 인도하시고 늘 더 좋은 길로 더 좋은 것으로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주신 일들을 감당할지 모르나 때가 차면 이 땅에서 내게 맡겨진 모든 짐을 벗고 그리운 본향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생각과 건강한 믿음으로 주신 일들에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좋은 동역자들을 보내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주신 일들을 감당하게 하신 은혜와 축복을 사랑의 표현으로 감사하게 하옵소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눅 10:2)고 나를 찾고 계시는 주님께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나를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펼쳐나가는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