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천로역정

[스크랩] 천로역정 6. - John Bunyan ( 존 번연 )

에반젤(복음) 2020. 8. 29. 00:39

천로역정 6. - John Bunyan

전 도-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기독도’씨…,(2차 전도의 만남)

이렇게 말하니 ‘기독도’는 이 말에 무엇이라고 대답할지를 몰랐다.
그 때에 ‘전도’는 다시 말하기를,

전 도- 당신은 ‘장망성’ 밖에서 울고 있던 사람이 아닙니까?
기독도- 네 나는 그 사람입니다.
전 도- 내가 당신에게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기독도- 네 그러셨지요.
전 도- 그러면 어찌하여 그렇게 속히 곁길로 들었습니까? 지금 여기는 정로가 아닙니다.
기독도- 내가 ‘절망소’에서 벗어난 후에 즉시 한 신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나를 권유하기를 저 앞에 있는 촌으로 가면
내 짐을 벗겨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리라 하였습니다.
전 도- 그가 어떠한 사람이던가요?
기독도- 그는 보기에 점잖은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로 내게 말하여 결국 나를 설복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왔으나 내가 이 산을 보매 산이 길 위로 수그러져 있는 것이
내 머리 위에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나는 졸연히 머물러 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죄의 깊이와 선의 깊이를 측정하시려고)

죄의 깊은 구렁에 빠져 절망하기에 구출해 주시는 과정으로 여호와 닛시의 축복이 없으면 자살함.

전 도- 그 양반이 당신에게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기독도- 네 그가 어디로 가느냐 하기로 나는 저에게 고하였습니다.
전 도- 그래 그가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감성의 밤을 맞이한 상태 = 마음 고생이 극심한 상태.)
기독도- 내게 가족이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저더러 있기는 있으나
내 등에 있는 집에 눌려서 전과 같이 저희와 함께 즐거워할 수 없다 했습니다.
전 도- 그러니까 그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기독도- 그가 나더러 ‘일찍이 짐을 벗으라’고 말하기로
‘이는 내가 구하는 바이라’하고 다시 말을 이어
‘그러므로 나는 저 건너 편 좁은 문으로 가서 어떻게 내가 구원 얻을 곳으로 갈 수 있을는지
지시함을 받으려 한다’고 한즉 그는 ‘더 좋고 가까운 길을 보여 주마’하며
‘거기에는 당신이 나더러 가라 하던 길에서와 같이 곤란을 받지 않겠다’하고
또는 ‘그 길로 가면 이 짐을 벗겨 줄 재주가 있는 신사의 집이 있으리라’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저를 믿고 내 짐이 쉬 벗어질 수 있을까 하여 가던 길을 돌이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광경을 보는 동시에
내가 말한 대로 위험을 두려워하여 섰을 뿐이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말하기를

전 도- 잠깐 가만히 서 계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드릴 터이니

때에 ‘기독도’는 떨고 서 있었다. 그래서 ‘전도’가 말하기를

전 도- “삼가 말씀하신 자를 싫어 버리지 말라.
이미 땅에서 명하신 자를 저희가 싫어 버리고 오히려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명하신 자를 우리가 배반하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오”(히 12:25) 하고
다시 말하기를 “나의 의로운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려니와 만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 하였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적용하여 말하기를 “당신은 이 불행 중으로 달려들어가는 사람이로구려.
당신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권고를 저버리고 발을 화평의 길에서 돌이켜 물러간 것이니
이는 곧 멸망을 자취하는 모험이 아니고 무엇이리까?”

그 때에 ‘기독도’는 죽는 것 같이 되어 그의 발 앞에 넘어지며 외치기를
“나는 실패하였으니 화를 받겠구나”하였다.
이것을 본 ‘전도’는 저의 오른 손을 잡고 말하기를
“‘모든 죄와 훼방하는 것을 사람에게 사하시리라’ (마 12:31) 하셨고
또는 ‘의심치 말고 믿으라’(요 20:27) 하셨다” 하였다.

이때에 ‘기독도’는 다소 원기를 회복하여 전과 같이 ‘전도’앞에 떨며 서 있었다.
‘전도’는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전 도- 나의 고하는 말을 일층 주의하여 들으시오.(말씀에 대한 경외심 신뢰심이 있음)
지금 나는 당신을 꾀던 자가 누구이며 또는 당신을 누구에게로 보내려 하였는지 말하렵니다.
당신이 만나던 그 사람은 ‘세지’라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이름지은 것이 적당한 것은
저가 다만 이 세상 교훈만 좋아함이요(요일 4:5)
또는 저가 십자가를 제외하고 교훈을 가장 좋은 것으로만 여기며 (갈 6:12)
또는 육체적 근성을 위하여 옳은 길을 버리게 하려는 때문이외다.
그래서 저는 항상 ‘도덕촌’교회로 가는 것이지요.
그의 권고 가운데는 당신이 전연 거절하여야 할 세 가지가 있으니,

1. 당신을 정로에서 떠나게 하는 것.(자신이 의로워 지려는 노력)
2. 당신으로 십자가를 싫어하게 하는 것.(힘들고 어려워서 죄를 이길 수가 없기에)
3. 당신의 발을 사망의 권세로 인도하는 길에 들게 하는 것들이외다.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신앙의 성장은 멈추었다는 것)

신약의 성결 29-33면에서 토마스 쿡 목사님께서는 ‘자아 인식’이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레나 가브리엘 신부님은 등짐을
‘영혼의 메마름’이라고 말씀하셨고, ‘집착의 큰 부분’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즉 첫째는 저가 당신을 그 길에서 돌이키게 한 것과
또는 당신이 거기 등 의한 것을 등한히 여겨야 할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권고를 저버리고‘세지’의 권고를 들음인 때문이외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24)하셨고
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라’(마 7:12-13)하셨으니
이는 내가 당신더러 가라 하던 문이외다.
이 좁은 문에서 또는 그리로 가는 길에서 저 악한 자가 당신을 꾀어내서
거의 멸망으로 들어가게 하려 하였은즉 저가 당신을 그 길에서 꾀어 낸 것을 한탄하고
당신이 저의 말을 들은 것을 스스로 원통히 여기시오.

둘째는 당신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싫어하게 한 것을 분히 여기시오.
이는 당신이 ‘애굽’의 모든 재물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할 것이외다.
영광의 주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면 잃을 것이라’ 하셨고
‘무릇 내게 오는 사람은 그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의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치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마 10:39, 눅 14:26)하셨사외다.
그런즉 진리가 말씀한 바 이것이 아니면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을 것인데
이것이 당신의 죽음이 되는 것으로 가르쳐 권유하려고 애쓰는 자가 있으니
그런 교훈은 아예 기피하여야 합니다.

셋째는 당신의 발을 사망이 주관하는 곳으로 인도하여 드린 것을 원통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하여 누구에게로 당신을 보내었는지,
또는 그 사람이 당신의 무거운 짐을 도저히 벗겨 줄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당신의 짐을 벗겨 준다고 해서 가 보려던 그 사람은 이름이 ‘시법’이요,
지금도 살아있는 여종의 자식으로서 모자가 다 종노릇을 하고 있으니(갈 4:22-27).
그 ‘시내’산은 곧 당신의 머리 위에 내려질까 두려워하던 산으로서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있습니다.
저와 저의 자식으로서 지금도 종으로 있는 터에 어찌 당신은 저희를 힘입어 자유를 얻기 바랄 수 있으리까?
그런즉 이 ‘시법’은 당신으로 하여금 짐을 벗게 할 수 없으니
저를 힘입어 짐을 벗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금후에도 언제나 있지 못할 것이외다.
우리가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으니(갈 2:16).
이는 율법의 일을 행함으로 저의 짐을 벗고 살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음이외다.
그런즉 ‘세지’는 한 외인이요. ‘시법’은 속이는 사람으로서
그의 아들 ‘예의’(禮義)는 웃는 얼굴을 짓는 사람이지만 한 거짓 착한 체 하는 자이라,
당신을 도와 줄 수 없을 것이외다. 내 말을 믿으시오.
그 혼미한 사람의 말을 듣고 떠든 것은 다 쓸데없는 일이요,
결국은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길을 벌림으로 당신의 구원을 방해하려 한 것이외다.

그 후에 ‘전도’는 자기의 말한 바를 확실케 하려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에
저 가련한 ‘기독도’는 자기가 서 있는 윗산에서 말과 불이 나오므로 모골이 송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나온 말은 곧 ‘무릇 율법의 일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하는 아래 있나니
기록하였으되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한 대로 범사를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하는 아래 있다 하였다’(갈 3:10)한 것이다.

이 때에 ‘기독도’는 죽는 것 외에 달리 바랄 것이 없어서 슬피 울기를 시작하며
‘세지’를 만나던 때를 저주하고 자기가 저의 권유를 들은 것이 너무도 어리석은 것을
몇 번이랄 것 없이 무수히 부르짖었다.
그리고 다만 육정에서 나온 그 신사의 언론이 마침내 저로 하여금
정도를 버리게 하리만큼 세력을 가졌던 것이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저는 다시금‘전도’에게 나아가서 간절한 말로 아래와 같이 물었다.

기독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돌이켜서 좁은 문으로 가오리까?
그리다가 부끄러움이나 당하고 물리침을 받아 기기서 쫓겨나지나 않을까요?
내가 그 사람의 권유에 귀를 기울인 것이 심히 민망합니다.
하여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통회하는 정을 느끼는 단계)
전 도- 네 당신의 죄가 매우 중합니다.
당신이 여기서 두 가지 죄를 범하였으니 즉 선한 길을 버린 것과 금지한 길을 밟은 것이외다.
그러나 좁은 문을 지키는 이는 누구에게나 호의를 가지 느니만큼 당신을 영접하리라.
다만 당신은 조심하여 다시 곁길에 들지 않도록 하시오.
만일 주의 진노가 조금이라도 발할 것 같으면 당신이 길에서 망할까 합니다. (시 2:12절).

기독도의 죄(욕망을 떨치려고 했던 열망)
1.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되는 것
2.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한다는 마음

그 때에 ‘기독도’는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전도’도 저와 악수하고 혼연히 웃으며 평안히 잘 가라고 하였다.
저는 빨리 가며 길에서 누구에게나 말도 하지 않고 누가 저에게 묻는 말이 있을지라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여호와 닛시의 은총을 맛 본 성도만 손들고 좁은 문까지 달려가는 과정.
그래서 저는 마치 금지한 땅을 밟는 사람과 같아서
‘세지’의 권유를 따라 떠나던 길에 조금도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얼마동안을 지나서 ‘기독도’는 좁은 문에 다다랐다.
이에 본즉 그 문 위에는 ‘문을 두드리라 또한 열어 주실 것이라’(마 7:7)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저는 재삼 두드리며 말하기를

나를 용납하시고 문을 열어주시오
내가 비록 무지한 반역 죄인이지만
죄 사함, 마음 문, 나의 모든 것,
하나님께 대한 자세,

“나를 용납하시고 문을 열어주시오.
내가 비록 무지한 반역 죄인이지만 높고 높은 주님께 길이 찬송하겠네” 하였다.

내 영혼아 주님만 바라라

 

 

 

 

 

 

출처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