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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에반젤(복음) 2020. 7. 6. 16:07

어린이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막10:13-16)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금년에는 어린이 주일을 보다 뜻 깊게 지키기 위해 어린이들을 중심 하는 예배를 야외에서 드리기로 하고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흔히들 그 집 아이를 보면 그 가정의 미래를 볼 수 있고 그 나라의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보면 그 나라의 장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 젊은이들을 보면 교회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어린이들이야말로 우리 미래의 꿈이요, 또 꿈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바르게 자라고 건강하게 자라고, 신앙으로 자라야 하는 것은 두 말 할 여지가 없습니다.

역사의 발전은 이 아이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예수님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여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이 것을 보신 예수님은 도리어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노하여)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러면서 이 아이들을 손수 품에 안으시고 일일이 축복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어린이 주일을 맞아 우리가 자녀이든 손자 손녀이든 우리들의 2세들이 보다 건강한 인격자로 또는 신앙 인으로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자녀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이 땅에 많은 민족들 중에 유대인들만큼 자녀들의 교육열이 대단한 민족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나라 부모님들도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합니다. 둘째가라하면 서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우리 한국인 부모들과는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두 민족이 다 자녀들을 가르치려는 지적 욕구는 다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교육관이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의 인생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탈무드에는 이런 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부모가 가르칠 때, 실수로 옷과 책에 잉크가 엎질러지면 옷보다 먼저 책에 묻은 잉크를 지워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또 돈과 책이 동시에 땅에 떨어지면 돈보다 책을 먼저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 경우는 만일에 이런 경우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전통 중에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 선생님과 부모님이 다 같이 감옥에 갇히면 유대인들은 선생님을 먼저 구해 내고 부모님을 구해 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교육철학이 분명하고 지적인 욕구가 더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 나라는 자녀들에 대해 맹목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녀가 작은 고통이나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학교까지 찾아가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육의 현실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에 대한 애정은 좋은데 지나친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출세 지향적인 인간보다는 인간으로 바른 인격자로 양육하기 위한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 이민가정에서도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자녀 교육열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찍부터 이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칩니다. 특별히 쉐마라고 해서 일찍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 즉 율법을 가르칩니다. (신6:7)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지니라."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것이 부모님들의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과외공부에 열성을 부리면서 엄청난 경제적인 부담을 하고 있습니다만, 도무지 인성교육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경쟁에서이기는 자가 되는데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과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차이가 또 하나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기가 첫돌을 맞으면 어머니는 이 아이를 데리고 랍비(선생)에게 데리고 가서 축복을 받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오늘 분문 에서도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온 것은 이런 전통을 따라 예수님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심신이 많이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돕기 위한 뜻으로 그렇게 했겠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어머니들을 꾸짖었던 것은 큰 실수 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보시고 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잘 노하시지 않으시는데 노를 발하시면서 이 제자들의 실수를 책망하시고 그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안수하시면서 축복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왜 이 세계에서 출중한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는가? 단순히 공부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고 공부를 해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성경을 통해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손들에게 조상들이 축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부모들이 축복하는 전통을 지켜 왔습니다. 자 보세요, 아브라함은 이삭을 축복했습니다. 이삭은 눈이 멀었지만,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이 얼마나 효험이 있었기에 야곱은 형을 속이면서 까지 그 축복을 가로채었겠습니까? 그만큼 아버지의 축복이 자녀들의 행불행을 좌우할 만큼 효험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축복한대로 자녀들은 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에스보다 훨씬 잘 되었습니다. 야곱도 역시 죽기 전에 12아들을 일일이 다 축복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역사를 보면 그 아버지가 축복한대로 12아들이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기복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자기 한계를 깨닫고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면 그들을 끊임없이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없이 성공한 것은 생명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산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들을 사랑하신다면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들의 축복의 효험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효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많은 기독교 교육학자들은 우리들의 자녀들을 건전한 인간으로 신앙의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마음껏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심지어 식물이나 동물도 먹이를 주거나 물을 주면서 "사랑한다 잘 자라거라" 하고 축복을 하면 다른 가축이나 식물들 보다 훨씬 더 잘 자란다는 것이 실험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의 자녀들을 정말 사랑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부모님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자녀들을 많이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자녀들을 축복해 줄 수 있을까?


1. 인격적인 성숙을 위해 축복해야 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건강해도 사람이 인격적으로 잘 못되면 그는 이 세상에서 해악을 끼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적으로는 성공을 하고도 그 인생은 실패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성공을 자축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그런가? 진정한 성공은 혼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성공했다고 혼자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그를 누구도 성공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일까?

그러려면, 여러분,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 때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격이 건전해야 합니다. 그 인격은 어디서 가능한가? 이타작인 삶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혼자만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그런 이기적인 인간이 되기보다는 직업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을 먼저 고려할 줄 아는 사람만이 훌륭한 인격자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들을 축복하시되 건전한 인격자로 성장해 가도록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도덕적으로 너무나 타락한 시대입니다. 윤리적인 모델이 없습니다. 교육의 철학도 없이 모든 것이 다 상대적입니다. 다만 기능인으로서의 인간을 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배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기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자녀들은 예수님의 정신을 가르치고 신앙으로 키우는 것은 역사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라도 바른 인생관을 가르쳐서 이 무너져가는 역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일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자녀들이 건강하고 이 세상에서 다 훌륭한 자리에 서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인격과 신앙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어린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미래의 희망이 되고 역사를 건강하게 하는 기둥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정의 부모님은 매일 아침 자녀들이 집을 나설 때, 현관에서 축복기도를 해 주고 저녁에 잠을 잘 때도 침상 옆에서 축복기도를 해 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축복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결코 잘 못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정말 사랑하신다면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매일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우리 자녀들이 장차 훌륭한 인격자와 신앙 인으로 바르게 자라 이 땅에 위대한 역군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 함께 한 이 자녀들을 마음으로 축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