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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영과 아들의 영

에반젤(복음) 2020. 2. 29. 21:05



종의 영과 아들의 영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로 부르짖느니라”(롬8:15)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여정을 보면 종의 근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이고 아침마다 신기한 양식인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텐트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문제만 생기면 애굽으로 되돌아 가자고 아우성을 친다. 애굽에 있는 사람들은 광야를 모르고, 광야에 나온 사람들은 가나안을 모른다. 애굽의 가마솥에서 나오는 고깃국 맛에 푹 빠져 있다. 애굽 군대가 시키는 대로 벽돌이나 열심히 만들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면 되는데 왜 이런 생고생을 해야만 하는지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죽인다. 종의 근성이 없는 자들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종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육군하사 출신인 히틀러가 자유로부터 도피를 원하는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독재를 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적그리스도나 거짓선지자들이 출현해서 짐승에게 경배를 하도록 하고 결국 666표를 받도록 하는 미혹의 역사도 결국 슈퍼스타를 원하는 종의 영을 가진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에 종의 영을 먼저 받고나면 참으로 곤란하다. 율법의 종이 되고, 사람의 종이 된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천주교 신자와의 대화에서 진리를 따라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포기하고 신부를 통해서 고해성사를 하므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만인 제사장이라고 외치면서도 종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유명한 사람을 의지한다. 대상은 주로 목사다. 그리고 잘 한 일이 있으면 기고만장하나 못한 일이 있으면 두려움에 떤다.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며 위장을 잘한다. 좋게 말하면 미학이며 나쁘게 말하면 외식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딤후3:5) 겸손한 것 같으나 교만을 포장한 술수만 늘어간다. 감사헌금은 있는데 진정한 감사는 없다. 십일조는 있으나 믿음의 의와 인과 신은 없다(마23:23) 신앙의 업무수행은 있으나 자비는 없다. 이파리는 무성하나 열매는 없다. 무화과와 같다. 씨가 없다. 의무는 있으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일은 없다. 종의 영을 가진 자들의 특징이다. 


갈라디아서 4장은 계집종인 하갈과 자유하는 여인 사라를 비교하면서 땅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내산의 언약이냐 시온산의 언약이냐를 구분한다. 결국 교회의 이야기이다. 종의 영을 쏟아내는 교회가 있고, 아들의 영을 말씀을 통해서 선포하는 교회가 있다.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종의 영을 농약 뿌리듯 무차별 살포하고 있는지 본인들도 제대로 모른다. 살인자인 마귀의 종이 되어 자신이 살인의 하수인이 되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 아마 오늘도 자신의 말이 인간의 양심과 생각에 합당한 말이라고 마이크 볼륨을 끝까지 올리고 고함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죄인인지 의인인지 모르고 오락가락하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은근히 돈을 많이 바치고 열심히 봉사를 하면 자신들의 잘못을 만회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게 수지가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장사가 잘된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다른 대용품으로 갚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의 영을 가진 사람이다. 물어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하나님의 아들을 삼기 위함이다(갈4:5)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수식어를 많이 사용지만 그 중에 ‘아빠 아버지’ 보다 더 좋은 호칭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3년 이상이나 따라다녀도 예수님을 한 번도 ‘주’라고 불러보지 못한 가룟유다나 교회생활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님께 ‘아버지’하고 간절하게 불러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불쌍하기는 똑 같다. 아들의 영은 바로 아버지의 생명의 영이다. 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 생각하다가 잠이 들 때가 많을 정도이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종은 유업이 없다. 기업이 없다. 품삯을 받고 나면 끝이다. 그러나 아들은 상속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그 아들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갈4:6) 한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양자(an adopted son)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간절히 부른다. 아무 두려움이 없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담대히 우리 아버지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