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체이신 성령님
우리 모든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하나님을 찾는 갈급한 심정이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찌할 도리 없이 더 주님을 알고 싶고, 더 능력있는 신앙, 더 깊은 기도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하고 헤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더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고 더 능력있는 기도를 할 수 있는지 그 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생활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와 성령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서는 길밖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바로 성령님의 시대인 것입니다. 구약 사천년 아버지 하나님이 역사하던 시대가 아들 예수님께로 옮겨가고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성령께 바톤을 넘겨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님께서 인격체이신 것을 수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계 2:7)에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롬 8:26)에서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하십니다.
(요 14:26)은,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요 15:26)에는, “성령께서 주에 관하여 증거 하신다”고 했습니다. (요 16:13)에는, “성령께서 성도를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행 16:6-7)에는, “성령께서 주의 사업을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엡 4:30)에는, “성령께서 근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살전 5:19)에는, “성령께서는 소멸되기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말씀들만 살펴보아도 성령님은 인격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들을 하십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성경에 무수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지,정,의(知情意)의 인격, 완전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고전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다 통달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知) 분이라는 말씀이지요. (롬 8:26)에 성령님은 느끼고 탄식하시는, 함께 공감하시는 정(情)을 가지셨습니다. (고전 12:11)을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말합니다. 그 뜻대로 즉 의지(意志)를 갖고 일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이끌어 가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행 10:17-33)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 분은 내가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할 때, 내 생각 속으로 말씀하신다(19절). 그 분은 내가 모르는 사건의 전모를 다 알고 계신다(19절). 그 분은 베드로의 의심하는 마음을 읽어내셨듯이 내 생각과 감정을 읽고 그것을 다스리신다(20절). 그 분은 그 사람들을 베드로에게 보내셨고, 또한 베드로를 보내신다(20절)."
성령님을 하나님이요 인격체로서 인식하고 대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성령님을 구하고, 성령님과 동행하길 원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고자 하는데, 또한 성령님이 우리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도우시고자 하시는데, 왜 무기력 가운데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무능력 가운데서 주저앉을 때가 많을까요? 그것은 깊이 생각해 보면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성령님을 붙들어서 원하는 바를, 혹은 기도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물론 그 이루고자 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모두 주님을 위한 고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하는 태도와, “성령님께 어떻게 하면 내가 완전히 붙잡혀서 성령님이 나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구가 될까?” 하는 태도는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연약하고 허물 많은 인간이 성령님을 통해서 태산이라도 한 번 옮겨 보겠다는 생각과, 성령 하나님께서 이 연약하고 허물 많은 죄인이라도 이용하셔서 태산을 옮기시기를 바라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인격체이신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인식을 할 때는 성령님을 통해서 뭔가를 해보고자 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앞에 내가 어찌하면 복종할 것인가, 성령님이 나의 존재와 삶에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고 성령님에게 모든 주권을 이양하는 자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마음가짐, 의식 무의식 세계에서 이런 자세를 갖게 되면 성령님께서 성령님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자세를 바로 잡아줍니다.
가령 당신이 운전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조수석에 탔습니다. 그런데 2-3시간 운전을 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아무 이야기도 건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가 나서 내릴 것입니다. 실제로 당신의 인생의 자동차를 운전할 때 성령님께서 옆에 와 계시는데 몇달 몇년 동안 아무 대화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제는 당신 인생의 자동차의 key와 핸들을 성령님께 내어 드리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영의 세계에 눈을 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을 통해서 죄를 이길 힘도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비추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으나, 성령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시고 우리의 사정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제대로 도우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인격체로 교통하고 대화하고 함께 동행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능력있게 역사하셔서 호랩산 가시덤불 속에 불타오르듯이 우리 안에 불타오르고, 오순절 다락방에 바람같이 불같이 임한 것처럼 우리에게 바람같이 불같이 임하셔서, 우리의 기도의 능력을, 우리의 신앙의 능력을, 또 우리의 생활에 권세가 따르게 하므로 말미암아 진실로 우리가 일어서 가는 곳마다 천국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시작해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Good Morning, Holy Spirit" 인사하세요.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 하듯 항상 그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크고 중요한 일까지 모든 일에 그분을 초청하시고 그분의 뜻을 물으며 그분의 나타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7)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회복하고 이분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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