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진) 敎會論 2
2. 교회의 기초
A. 말씀과 성례전
아욱부르크 신앙고백에 의하면 교회의 기초는 복음의 말씀과 성례전이라 말할 수 있다.
말씀과 성례전 가운데 교회의 보다 저 본질적 기초는 말씀이라 말할 수 있다.
말씀 없는 성례전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틴에 의하면,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탄생하여 말씀에 의하여 양육되고 유지되고 성장한다.
루터는 이를 계승하여 교회는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사명과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의 본질은 말씀에 있으며, 교회의 사명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성례전을 동반하는 말씀인 것이다.
B.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나에게 살아 있는 말씀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성령의 역사 내지 활동에 있다.
칼 바르트에 의하면
"성령께서 활동함으로써... 공동체, 참된 교회가 생성하고 존재한다.
성령이 사람들과 그들의 인간적 사역을 거룩하게 하며,
그들과 그들의 사역을 참 교회로 세우시기 때문에 교회는 존속한다."
C. 인간의 믿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응답하는 인간의 믿음도 교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한 요소라 말할 수 있다.
단독 자의 믿음은 철저히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과 함께 있음, 함께 나눔,
곧 공동체적인 삶을 뜻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삶으로부터 유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 없는 개인의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신앙적 결단과 그 결과로 얻은 그의 믿음은
성령의 사역이고 이것은 하나님을 통해서 생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보다 원초적 기초는 개인의 결단과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D. 이스라엘 민족의 "약속의 역사"
옛 계약은 그리스도의 새 계약을 통해서 지양되며, 구약성서의 계시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지양된다.
그러나 그것들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새 계약과 새 계시의 역사적 터전 내지 기초를 형성한다.
옛 계약과 새 계약, 구약성서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계시, 이스라엘과 교회,
이들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으나 연속성도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는 희망의 지평을 지향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 희망의 지평 속에서 태어나 활동하였으며, 그의 교회는 이 희망을 함께 나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약속도 교회의 기초 내지 터전을 형성한다.
팔레스틴 땅에서 시작한 교회는 아무런 역사적 관련성 없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과의 역사적 연관 속에서 형성되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는 참 희망은 온 창조를 지향하며,
이 세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과 행위의 목적과 완성을 지향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E. 궁극적 기초 : 예수 그리스도
위에서 살펴본 네 가지 교회의 기초보다 더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를 그 위에 세울 기초는 그리스도께서 닦아 두셨고 이 기초 곧 터 위에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에베소서 2:20-22의 말씀은 교회는 먼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말씀에 기초한다.
그러나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교회의 궁극적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에서 교회론의 시작을 그리스도론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의 내용을 결정한다.
네 가지 기초는 교회의 궁극적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통합된다.
선포된 말씀은 기록된 말씀에 기초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격화된 말씀으로서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의 기초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기초로 간주될 수 있다.
교회를 형성하는 성령의 역사도 성령 그 자체는 내용이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있고
성령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삶인 것이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증거하고, 자기를 현재화시키며, 자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나누어주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교회는 다른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와의 관련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각 사람의 신앙적 결단과 믿음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다.
"교회는 공동체로서 실존하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본훼퍼의 명제,
"예수 그리스도는 공동체이다"라는 칼 바르트의 명제는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 내지 근거가 무엇이며 도대체 교회가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이 모든 요소들은 함께 교회의 기초를 형성한다.
그러나 교회의 가장 궁극적인 기초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이다.
F.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기초인가 ?
역사의 예수가 교회를 세웠던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예수의 목적이었던가?
최근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학자들은 예수가 교회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마태복음 16:18-19를 성서적인 근거로 본다.
그러나 콜첼만은 "예수의 종말론적 자기 의식은 오늘의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배제한다"고 잘라 말한다.
위의 구절이 오늘날 예수 자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서 보여지고 있다.
1) 통계학적 논증 :
교회에 대한 두 번의 언급, 마태복음에만 기록, 이것은 매우 불리한 통계학적 수치인 것이다.
2) 종말론적 논증 :
복음서의 예수는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는 교회를 형성하여 그것을 존속케 할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요한네스 바이스는 이 구절을 "형성되어 가는 카톨릭 교회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3) 교회사적 논증 :
베드로는 실제로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방 선교에서 주도적으로 일한 사람은 바울이다.
4) 심리학적 논증 :
베드로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완전한 특성을 가졌다
그런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네 가지 외에도 최근 초대 교회의 연구에서 초대 교회에는
유대파와 헬라파 유대인의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16: 18-19는 바울 계열의 공동체와 긴장 및 대립 관계에 있었던 베드로 계열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그의 법통과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관심에서 첨부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예수의 관심사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에벨링 교수의 말대로 "교회의 설립자"로 볼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복음서의 구절로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사건 전체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다.
예수의 삶의 사건을 통해서 교회의 기초를 이룬 것은 다음과 같다.
1) 예수는 특별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 의도를 전혀 가지지 않고
먼저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것이며 온 우주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를 세우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에 대한 예수의 의지"에 있다.
2) 온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던 예수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부르심을 듣고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세워지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보장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합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는 부르고 제자들은 따르는 여기에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가 있는 것이다.
3) 예수의 죽음과 함께 깨어졌던 종말론적 공동체는 그러나 그의 죽음과 함께 새롭게 탄생한다.
새 인간성의 공동체는 그의 부활로 증명되며 교회의 기초는 여기에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정초 되고 부활의 능력 속에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부활의 능력 속에서 실현되는 교회는
"십자가의 공동체","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통하여 정초된 공동체"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자신을 십자가로부터의 교회로, 십자가 아래에 있는 교회로,
그리고 십자가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있는 교회로 이해한다."
교회는 철저히 십자가의 교회인 것이다.
G.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란 무엇을 말하는가 ?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 내지 근거라는 이 명제는 교회의 존재와 삶과 미래를 결정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여섯 가지를 의미한다.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교회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3) 교회는 그리스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그리스도와 한 마음 한뜻이 되고자 노력하고 그 분 안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해야 함을 의미한다.
4)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이시며,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명제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배타적 통치권을 뜻한다.
5) 교회의 삶과 실천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검증되어야 함을 뜻한다.
기초는 규범의 기능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진위성을 검증하고 판단하는 규범이다.
이것은 교회는 예수의 삶에 비추어 언제나 자기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자기를 수정하고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6)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한 유대인으로 구약의 지평 속에서 생존하고 활동했다.
특히 묵시 사상의 지평 속에서 생존하고 활동했다.
이것은 교회도 구약의 메시야적 기다림과 희망의 지평 속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뜻한다.
교회론이 그리스도론적 정초를 하는 의미는
교회의 존재와 삶과 미래는 철저히 그리스도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존재가 교회의 존재를 규정하고, 그 분의 삶이 교회의 삶을 규정하고,
그 분의 관심이 교회의 관심을 규정하고, 그 분의 목적이 교회의 목적을 규정하며, 그 분의 교회가 미래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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