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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해석하셨는가? [서문] / 에드먼드 P. 클라우니

에반젤(복음) 2020. 2. 15. 11:32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해석하셨는가? [서문] / 에드먼드 P. 클라우니

 

 

서문

 

아직 에어컨이 있기 전 남서부 필라델피아의 매해 여름이 되면, 나는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의 성경학교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내가 10살 되던 해, 가죽으로 된 스코필드 주석 성경을 상으로 받기 위해 소요리문답을 열심히 암송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이 성경책을 수년 동안 사용했고 주석도 많이 참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던 중 주기도문에 대한 이 주석을 보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성경책은 주기도문이 교회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기도문을 암송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기도문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오직 "합법적인 근거"에 의해서만 해야 했습니다. 이 기도는 오직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율법시대에 돌입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통치 기간에만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야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줌 같이 우리 죄를 사함받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내게 대단히 이상해 보였습니다. 결국 나는 소요리문답에 나타난 모든 계명에 관한 부분과 주기도문까지 다 암송해 버렸습니다. 소요리문답은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42문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십계명의 요약은 무엇입니까?"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십계명의 요약은 우리 마음과 영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소요리문답은 또한 주기도문도 암송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것과 관련해서 요리문답은 내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 모든 죄를 값없이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인데, 그의 은혜로서 우리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능히 용서하여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이것을 구할 담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자리는 무엇인가?

 

스코필드 성경과 그 영향

 

스코필드 주석성경이 계속해서 발간되었을 당시, 대부분의 성경 연구는 증거구절을 갖춘 교리적 형태를 띠었습니다. 하지만 스코필드 성경은 성경의 역사나 시대 또는 계시의 기간 등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10살 된 소년이었던 나는 스코필드 박사와 내가 그토록 열심히 암송했던 요리문답을 집필했던 사람들과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스코필드 성경은 성경적 역사 사이의 차이점들을 강조하는 세대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기간이나 시대라는 착상은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 참석한 신학자들이 심지어 "세대"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구속역사의 기간을 강조했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서도 낮선 사상은 아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행위 언약과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과 구원이 무조건적으로 제공되는" 은혜언약을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약과 신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언약을 율법시대와 복음시대에 따라 각기 다르게 시행하셨습니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장을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에 있어서 각기 다른 두 가지 은혜언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대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한 가지 언약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기에 "세대"를 "시행"의 의미로 사용하며 구원의 길을 집행하신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 학자인 넬슨 다비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느 세대가 그 본질에 있어서 다르고 다른 시기에 있어서 다른 구원의 방법이 제공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다비의 견해에 의하면, 모세언약은 행위언약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 시기에 율법을 준수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아브라함 언약은 "약속언약"이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스코필드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한 다른 "세대들"에 관한 좀 더 급진적인 견해입니다. 그들의 예언의 시계는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멈추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격했을 때, 예언의 역사에 있어서 짧은 막간의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언약은 중지되었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천년왕국의 시기에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때의 구원 역시 다윗의 보좌에서 통치하실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읽고 해석하는 것을 "세대주의적" 견해라고 합니다. 이 견해는 각각의 세대의 차이점들을 매우 강조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견해를 배격합니다만, 이 견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이 세계관을 제시한다는 것을 교훈한다는 의미에서는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는다면, 성경이 대단히 중요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성숙해가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스코필드 성경이 제시하는 방식으로의 성경구조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만이 구원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다비의 중심적 견해를 버리고 그들의 견해를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개혁주의자와 세대주의자의 토론

 

이러한 주제는 이제 구식인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대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세상에 관한 우리들의 생각에 어떠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율법에 대한 생각과 신자들의 다른 삶의 국면에 대하여 대단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대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서로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최근에 서로 공통적 근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구원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더 이상 구약시대의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 항상 단호하게 세대주의를 배격해왔던 개혁주의 신학교와 대화의 문을 열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장려한 또 다른 요인은 개혁주의 신학교에서의 성경신학의 성장이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사전적 형식을 띠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성경은 항상 한 가지 중심적인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신구약 시대 모두의 구원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처럼 개혁주의 사상가들 역시 구속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양 진영 모두 성경에 기록된 풍성한 하나님의 계시 역사를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성경신학"은 이제 특별한 의미의 신학적 용어로서 즉 성경적일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계시의 역사로부터 파생된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소요리문답은 "인간이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는 질문과 대답으로 시작하는 주제적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성경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주제별로 요약됩니다. "성경이 주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까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신학은 성경의 교훈을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기 또는 시대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으로 요약합니다. 성경신학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주제가 아니라 성경의 히스토리를 추적합니다. 학문의 분야에 있어서 성경신학은 유럽에서 특별히 독일과 화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후일 프린스턴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모두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게할더스 보스(1862-1949)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바로 이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끝나지 않은 스토리

 

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약속의 후손 즉 마침내 반드시 뱀의 머리를 쳐부술 여자의 아들의 이야기를 추적합니다. 성경의 스토리에서 구속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스토리의 기간 및 시대를 파악해야 합니다. 세대주의는 이러한 시기들의 차이점들을 옳게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언약의 스토리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차이점들을 허용하면서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스코필드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사이의 차이점들을 약간 다루었습니다만 아직 나의 본래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구속의 역사 안에서 계명이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모세의 율법이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이 절대로 우리를 당신에게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당신의 계명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시한 율법이 그 자체로 예언의 한 종류가 된다는 사실을 즉 언약의 역사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율법을 포함한 그 역사는 앞으로 올 것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완전히 지킴으로 율법을 성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새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순종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참된 의미와 깊이를 펼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계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예수님께서는 이 첫째 계명을 다음과 같은 둘째 계명으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이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과 당신의 삶 안에서의 그 적용은 대단히 철저합니다. 그는 이웃이란 용어를 하나님을 사랑함이란 의미의 용어로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나 대단해서 그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자들을 위한 저주를 기꺼이 받기까지 하셨습니다. 그의 이웃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역시 너무나 크셔서 바로 그 이웃들(당신을 혐오한 자들)을 위해 기꺼이 당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러한 깊고도 철저한 계명의 개념은 계명의 참된 요구 즉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요구를 나타냅니다. 이 모든 계명들을 새롭게 하시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제외하고서는 절대로 율법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질 수 없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율법을 새롭게 바꾸신 예수님

 

변화산에 오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 앞에 눈부셔야할 때, 그들은 또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율법의 수여자)도 엘리야(가장 위대한 선지자)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해 그 어떤 부가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습니다. "이는 내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막 9:7). 예수님은 율법을 설명하거나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하나님의 새로운 율법이십니다.

 

 

에드먼드 P. 클라우니의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해석하셨는가?'에서 발췌(11-16p)  

 

 

 

[도서소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로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7).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습관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상하게 보이며 은혜의 복음과 상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십계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클라우니 박사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떻게 심화시켰고 모든 인생의 상황에 맞게 그 범위를 얼마나 확장하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사역을 통해 자주 나타났듯이, 그는 율법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설명하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그것을 성취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본서를 통해 율법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춘 복음을 더욱 잘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본서는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장에는 고찰과 적용을 위한 연구 질문들이 있습니다. 본서는 그룹 스터디와 개인연구를 위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서문중에서

아직 에어컨이 있기 전 남서부 필라델피아의 매해 여름이 되면, 나는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의 성경학교에서 참석하곤 했습니다. 내가 10살 되던 해, 가죽으로 된 스코필드 주석 성경을 상으로 받기 위해 소요리문답을 열심히 암송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이 성경책을 수년 동안 사용했고 주석도 많이 참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던 중 주기도문에 대한 이 주석을 보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성경책은 주기도문이 교회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기도문을 암송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기도문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오직 "합법적인 근거"에 의해서만 해야 했습니다. 이 기도는 오직 그리스도인이 다시 율법시대에 돌입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통치 기간에만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야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줌 같이 우리 죄를 사함받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율법을 새롭게 바꾸신 예수님

변화산에 오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 앞에 눈부셔할때, 그들은 또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율법의 수여자)도 엘리야(가장 위대한 선지자)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해 그 어떤 부가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만이 울려퍼질 뿐이었습니다. "이는 내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막9:7). 예수님은 율법을 설명하거나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하나님의 새로운 율법이십니다.

 

 

[추천의 글]

"애드먼드 클라우니 박사의 본서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작품입니다. 클라우니 박사보다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을 더 깊이 있게 이애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모든 성인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더 나은 지식을 얻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서를 진심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존 프레임, 리폼드신학대학원


"성경신학의 대가인 클라우니 박사는 십계명에 관한 이 놀라운 작품을 통해 율법 없는 방종과 은혜 없는 율법주의의 오류들을 잘 안내해줍니다."

-브라이언 채플, 커버넌트신학대학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