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라, 강해

[스크랩] 성전 재건 공사 방해[스 4장]

에반젤(복음) 2019. 12. 27. 18:59


              

성전 재건 공사 방해[스 4장]
 
[내용개요]
 성전 건축의 대역사를 시작할 무렵 우상과 여호와를 함께 섬기던 혼합주의자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성전을 건축하자고 제의해 왔으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1-6절).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려고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유대인들이 옛날에도 주변 강대국에게 항거한 적이  많았으니 성전 건축과 성읍 건설을 마치면 바사를 배신하여 조공과 세금을 바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7-16절). 결국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 건축 금지를  명하였고, 사마리아인들은 횡포를 부려서 거의 14년 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말았다(17-24절).

 
[강  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늘 평탄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타신 배도 풍랑을 만났듯이(참조, 막4:35-37),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도 중도에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본장은 성전 재건을 시작한  유대 민족에게 일어난 반대와 어려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름대로의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1. 재건 동역 요청

1) 사마리아인
유다 왕국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함락되었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그보다 이전인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그 후 앗수르는  북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강제적인 이주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외국인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외국인들의 혼혈족이 되었고, 그들의 종교 역시 여호와 하나님과 이방 신들을 함께  믿는 혼합 종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 이후 남유다와 그 백성들에  대하여 적대적인 관계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a. 앗수르의 이주 정책(왕하17:24)
b. 다마리아인의 종교(왕하17:33)

2) 요청
이들 사마리아인들의 혼합 종교는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열심을 품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의 귀환민들이 성전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사실 사마리아에 정착하면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왔던 그들은, 사마리아에서 잡혀 간 제사장에 의해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익히 제사와 중앙 성소에 대한 말씀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a. 사마리아인의 종교 교육(왕하17:27-28)
b. 중앙 성소(신12:13-14)

3) 거절
사마리아인들의 요청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시지 사마리아인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혼혈인인데다가 혼합 종교를 가지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성결한 유대인의 유일신 사상과는 다른 체계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였고, 상종치 못할 자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협한 유대주의로서,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이 아닌 천지의 주재시요 참된 하나님이신 것을 성경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a.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않음(요4:9)
b.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님(롬3:29)

2. 방해

1) 방해의 빌미
이러한 유대인들의 편협함에서 나온 거절, 그리고 유순하지 못한 대답은 사마리아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혼혈이요, 혼합한 종교인 사마리아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유순하고 지혜로운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친 대답은 결국 사마리아인들의 분노를 사 고레스, 다리오, 아하수에로 왕에  이르는 기간까지 성전 재건을 지연시키게 하는 빌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과 우리에게는 기드온의 지혜로운 대답이 필요합니다.
a. 유순한 대답(잠15:1)
b. 기드온의 대답(삿8:2-3)

2) 고소
유대인들을 대항했던 중심 인물들은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을 비롯하여 르훔,  심새, 아바삿, 오스납발, 그리고 주변의 여러 족속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고도를 한 자들이며, 이들의 명단은 유대 민족을 시기하교 반대하던 자들이 얼마나 많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들은 아닥사스다만이  아니라 여러 왕들에게 고소문과 뇌물을 주어 가면서 유대인들의 성전 재건을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의 끈질긴 모습을 보여 줍니다.
a. 다리오에게 고소함(스5:6)
b. 사단의 끈질긴 방해(욥2:4-5)

3) 고소문
본장 11-16절에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고소문이  실려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은 주전 465-424년으로서 다리오 왕보다 더 이후 시대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본서의 기자는 역사적인 순서를 무시하고서 사마리아인들의 끈질긴 방해를 보여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고소문을 여기에 실은 것으로 보입니다. 
a.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스7:1)
b. 사마리아인의 모함(스4:13)

3. 성전 재건 중지

1) 왕의 조서
아닥사스다 왕은 고소문을 보고 즉시  조서를 내립니다. 아닥사스다는 그의  조서를 통하여 고소문에 기록된 표현대로 유대 민족은 패역하고 모반하는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강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 왕국이  반역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유다의 여러 왕들이 강대국들의 세력을 배척했던 것입니다. 아닥사스다는 유대인의 재기에 불안을 느꼈고, 따라서 그들의 사역을 그대로 두면  자신의 왕국에 큰 해가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르훔과 심새에게 건축 사역을 중지시키라고 명했습니다. 
a. 히스기야의 배척(왕하18:7)
b. 건축 중지 명령(스4:21)

2) 권력에 의한 억제
이에 유대인의 대적들은 왕의 권세를 업고서 그들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유대인들의  사역을 억제하여 그치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이 일을 행함에 있어 '급히'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세가 오용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의 권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단이 원하는 대로 사용된 것입니다. 
a.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세(롬13:1)
b. 권세의 오용(요19:15-16)

3) 사역의 중지
이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는 군사력이 없었으므로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 저항할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전의 재건 사역은 한동안 중지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데는 이처럼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환경에만  매달려서 끌려 다니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대응 방법입니다.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기도하면서 재건 사역을 재개했어야 했습니다. 
a. 재건 사역의 중지(스4:24)
b. 하나님의 사역에 따르는 장애물들(합1:13)

결론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성전 재건 사역은 처음에는  순조롭게 시작되었지만, 곧 대적들의 방해로 말미암아 중단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만사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고난은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도 견고하게 서서 나아간다면 결국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단어해설]
 2절. 구하노라. 원어 <vr"D::다라쉬>는 어떤 존재를 종교적 대상으로 삼아 섬기는 것을 말한다.
 
4절. 약하게 하여. 원어 <!yPir"m]:메라핌>은  '나태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상대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12절. 패역하고. 원어 <aT;d]r:m;:마라드타>는 '반역하다'라는 뜻. 페르시야에 이스라엘을 모함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다.
 
9절. 디나 사람. 지방 방백 밑에서 일하던 하급 관리직을 가리킨다.
 
13절. 수치. 원어 <hw:r][':아르와트>는 '부끄러움'을 뜻하며 여기서는 재정적인 궁핍으로 인해 겪는 곤란을 의미한다.

 
[신학주제]
 고난의 의미. 성전 재건을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던 유다  백성들에게 찾아온 고난을 보면서 성경이 말하는 고난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난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징계를 위한 고난과 연단을 위한 고난, 그리고 이유 없는 고난이 그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보는 고난은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신자의 범죄에 대해 징계하시되 더욱 굳센 신앙을 주기 위하여 고난을 주실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한편 이유 없는 고난의 문제는 매우 어렵다. 한 예로 날 때부터 장애인이 된 사람의 고난은 이유 없는 고난이다. 이러한 고난은 첫째,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죄인이고 둘째,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징계를 위한 고난이든  연단을 위한 고난이든간에 하나님께서는 고난 자체를 없애 주시지는 않는다. 다만 그 고난을 극복해 내기를 원하시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주시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험만을 주신다(참조, 고전10:13).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면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참조, 약1:12). 본장에서 유다 백성들에게 온 고난은 유다 백성들의 범죄와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포로 생활 후 영적으로 약화된 백성들을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단이 어떤 식으로 방해하는가를 보여 주는 한 실례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영적교훈]
 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대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신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위로가 담겨 있다.  어떤 고난과 시험이든지간에 무리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허락하시는 것이다. 고난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요셉의 고난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가서 누명 쓰고 옥살이하는 고난을 당했으나,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이처럼 고난은 인내를 요구하며 그 인내 뒤에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