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라, 강해

[스크랩] 성전 재건의 허가와 완공[스 6장]

에반젤(복음) 2019. 12. 27. 18:55


               

성전 재건의 허가와 완공[스 6장]
 
[내용개요]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및 아바삭 사람들의  상소를 받고 다리오 왕은 고레스의  조서를 찾아냈는데, 그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1-5절).  이에 다리오 왕은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의 역사를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예산 중의  일부를 성전 건축 경비로 사용하게끔 하였다(6-12절). 총독의 물질적  지원과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권면과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도력으로 인하여 신속하게  성전이 완공되었다(13-15절). 성전이 완공된 후 유다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정월  십사일부터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다(16-22절).

 
[강  해]
 닷드내 및 스달보스내의 글을 받은 다리오 왕은 사실의 여부를 알기 위해 서적 곳간을 조사하여 고레스의 조서를 발견합니다. 본장은 그 조서의 내용을  더욱 자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조서의 사실성을 확인한 다리오는 성전 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이에 힘입어  성전은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새 성전의 봉헌식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1. 다리오의 조서

1) 조사와 발견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의 글을 받은 다리오 왕은 즉시 고레스의 조서에 대한 자료를 조사시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보물 창고 중 서적 곳간에서 고레스의  조서에 대한 기록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대의 역사 기록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많이 파괴되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고레스와 다리오간의 좋은 관계로 말미암아 고레스의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위하여 고레스의 조서에 대한 기록물을 보전시키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문서들 가운데서 그것이 발견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a. 조사(스6:1)
b. 발견(스6:2)

2) 고레스의 조서
본문에 제시되어 있는 고레스의 조서는  본서 1장에 있는 조서와는  조금 다릅니다. 본문의 조서는 재건되는 성전의 규모에 대한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고레스가 제시하는 성전의 제도는 솔로몬 성전의 제도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고레스의 성전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고레스는 이와 함께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왕실에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약탈해 온 기명들을 돌려보내는 것 이상의 파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다리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성전 재건을 지원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a. 솔로몬 성전의 제도(왕상6:2)
b. 경비 제공(스6:4)

3) 다리오의 조서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한 다리오는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에게 조서를 내립니다. 그것은 몇 가지의 내용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성전 재건 사역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역은 고레스의 조서를 따른 합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강 서편의 세금 중에서 재건에 필요한 비용과 성전 제사에 필요한 모든 수용물들을  제공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요청하는 것은 모두 그대로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왕과 왕자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기 위해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세속 군주를 위한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부과된 의무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리오는 변개할 수 없는 메대의 법칙을 강조하면서 누구도 성전 재건을 방해하지 못할 것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이 조서가 신속하게 시행될 것을 명함으로 조서를 끝맺습니다.
a. 세속 군주를 위한 기도(딤전2:1-2)
b. 변개치 못하는 법(단6:8)

2. 성전의 완공과 봉헌식

1) 완공
다리오의 조서는 그의 명대로 신속히 시행되었습니다. 명을 받은 강 서편 총독들이 충성스럽게 조서의 내용을 시행했을 뿐 아니라, 학개, 스가랴 선지자들과 모든 유다인들이  협력하였습니다. 결국 성전 재건은 고레스가 처음 조서를 내린  지 24년만인 주전 51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때는 다리오 왕 6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전이 파괴된 지 94년만에 다시 회복되어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이 다시 가능해진 것입니다. 14절은 계속되는 역사 속에서 바사와 메대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금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a. 완공 시기(스6:15)
b.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심(잠21:1)

2) 봉헌식
성전이 완공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 봉헌식을 행했습니다. 시들은 제물로 수소, 숫양, 어린 양을 드렸고, 속죄제로 숫염소를 드렸습니다. 이들은 이  모든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모세가 기록한 그대로 행했습니다. 비록  이들이 행한 봉헌식은 솔로몬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서 행해졌습니다. 16절과 22절에 나타나는 '즐거움'이라는 단어는 스3:13의  성전 지대를 놓는 사건에서 사용된 이후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즐거움은 4장부터 시작된 방해와 중단, 낙심 등의 상황에 비교할 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큰 것입니다. 
a. 솔로몬의 낙성식(대하7:5)
b. 즐거움(스6:16)

3. 유월절 준수

1) 정결
성전이 완공된 것은 아달월 3일이었고, 14일에는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주요한 신앙의 분기점마다 유월절이 준행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그러했고 요시야 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유월절 절기 준수를 지도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몸을 정결케 하여 유월절 준수에 문제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은 90여 년만에 처음으로 지키는 유월절을 철저하게 지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a. 히스기야의 유월절(대하30:1)
b. 요시야의 유월절(대하35:1)

2) 연합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스스로를 정결케 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습니다. 이 유월절 행사에는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한 유대인들뿐 아니라 본토에 남아서 신앙적인 정절을 지켰던  남은 자들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적으로 혼합  종교를 가진 사마리아인들은 배척했지만, 남아서 신앙을 지킨 자들은 한 형제로 인정하여 교제를 나누며 함께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a. 남은 자들(느1:3)
b. 사마리아인 배척(스4:3)

3) 유월절 준수의 의미
이들은 이렇게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는데, 그것은 원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이 절기를 지켜 왔습니다. 특히 외국의 압제나 내부로부터의 배교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에 감사하면서 지켜졌습니다. 이스라엘은 90여 년만에 성전이 지어진 것을 계기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될 것을 기대하면서 유월절을  지진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유월절과 유사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a. 유월절의 의미(출12:13-14)
b. 성만찬의 의미(고전5:7-8)

결론
성전 재건 사역은 하나님의 섭리로 완전하게 이루어졌고, 이스라엘은 이것을 계기로 봉헌식과 유월절이라는 예식들을 통하여 새로운 신앙적 결단과 다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간섭하셔서 역사하실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새롭게 헌신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오늘날 유월절을 지키지는  않지만 그것이 지켜지는 의미를  기억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를 삼아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2절. 악메다 궁. 원래 메대의 수도였으나 고레스에 의해 B.C.550년에 정복된 후 페르시야 왕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되었다.
 
10절. 향기로운. 원어 <@yji/jynI:니호힌>은 '기쁘시게 할만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18절. 반차. 각 개인에게 할당된 몫을 뜻한다.
 
21절. 스스로 구별하여. '스스로 갈라서다, 불리하다, 차이를 만들다'라는 동사. <ld"B;:빠달>이 기본형
 
22절. 즐겁게 하시고. 원어 <jm'c;:사마흐>는 주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 베푸심으로 인해  얻게 되는 즐거움을 가리킬 때 사용.

 
[신학주제]
 성전 준공까지의 과정. 성전 건축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14년 간  중단되었다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활동으로 재개되었다. 그러나  총독 닷드내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다리오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 상소를 보고 다리오 왕은 바사를 개국한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는다. 그런데 고레스의 조서의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이 탈취한 성전 기명들까지도  돌려주라는 것이었다. 당시 다리오 왕은 정치, 군사적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었는데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지역을 겸비한 왕이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제국의 첫번째 왕인 고레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입증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발견된 고레스 왕의 조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겉보기에는 다리오 왕의 유화적 종교 정책이 고레스의 조서 발견과 맞물려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운좋게 쉽게 완공된 것 같지만 배후에는 철저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유다를 돌보시기 위해서 세계의 대제국인 바사를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이다. 에스라서의 저자는 성전의 완공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신앙 고백을 했다(참조, 스6:22). 결국 성전 완공의 주인공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 있다. 성전이 무사히 완공될 수 있었던 것은 스룹바벨 등의 지도자들 때문도 아니요, 선리자들 때문도 아니요, 합심한 백성들  때문도 아니요, 더구나 다리오 왕의 건축 허가 때문도 아니다. 모든 것을 배후에서 섭리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 때문이다. 

 
[영적교훈]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성전 완공은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의 방해가 너무도 심했다. 비록 선지자들의 경고와 격려로 힘을 얻어서 유다 백성들이 성전 건축의 역사를 다시 시작했지만 언제 방해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2성전은 완공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야 말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담대히 외친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어렵게 보이는 일들이 신앙의 눈으로는 가능한 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