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히브리서 강해

[스크랩] 히브리서 길잡이

에반젤(복음) 2019. 12. 27. 11:08



     

『생명의 삶』 2014년 1월호, pp.170-171 (책에는 제목이 “십자가 지나 은혜의 보좌로 달려가라”로 되어 있음)

 

   히브리서 길잡이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히브리서는 누가 어디에서 기록했는지 모른다. 문체도 다르고 논리 전개도 특별하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셨으며, 그래서 다시는 송아지와 염소 같은 짐승으로 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만 나올 수 있고, 대제사장은 그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님이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110:4의 말씀을 가지고 답변한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개역한글판에는 ‘서열’ 대신에 ‘반차’로 되어 있음) 이 구절은 히브리서에 세 번이나 인용될 만큼 중요하다(히 5:7, 7:17,21). 여기서 ‘너’는 시편 110편 1절에서 ‘내 주’라고 했으며 2,3절에서는 ‘주’라고 했다. 5절에서는 ‘주의 우편에 계신 주’라고 했다. 따라서 ‘너’는 메시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메시아 되신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히 5:10, 6:20, 7:26-28).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나오는데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 이름의 뜻은 “나의 왕은 의” 또는 “의는 나의 왕”이다. 그는 ‘살렘 왕’이었다.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평강’이란 뜻이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히 7:1-2).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전혀 기록이 없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다는 말도 없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마치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고 한다(히 7:3). 이 말은 멜기세덱이 정말로 부모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에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창세기에 보면 갑자기 멜기세덱이 나타나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축복하였다(창 14:17-19). 그리고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따라서 성경의 이런 기록을 보고서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이 마치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다고 말한 것이다(히 7:3).

 

  예수께서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셨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계속 사람이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은 영원한 제사장이다(히 7:24).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히 7:25).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다(히 9:12). 소나 염소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신의 피로써 단번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다(히 9:26,28). 따라서 땅에 있던 대제사장들처럼 해마다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십자가에서 단 한 번의 속제 제사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영원토록 온전케 하셨다. 따라서 다시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릴 필요가 없으며 또 드려서도 안 된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희생을 무효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은 구약의 율법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율법 제도를 폐하셨기 때문이다. 제사 제도뿐만 아니라 옛 언약 전체에 대해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다(히 8:6-13, 7:12, 9:10). 따라서 이제 우리는 율법에 나타난 모형과 그림자가 아니라 참된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섬긴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이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6).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지상에 계실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함을 체험하셨으며,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히 2:14-18, 4:15). 따라서 우리에게 무슨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거든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대제사장을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