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로마서 강해

[스크랩] 로마서의 핵심기록목적과 반유대주의

에반젤(복음) 2019. 12. 22. 20:52


                             

로마서의 핵심기록목적과 반유대주의

 


그런데 위대한 종교개혁자인 루터까지도 그가 사제로 몸담고 있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반유대주의 정신에서만큼은 온전히 개혁되지 못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루터는 그의 목회 사역 초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유대인들을 모욕적으로 대접했던 사실들을 인정하는 연민에 찬 소책자들을 저술하고 그들을 부드럽게 대접할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개혁된 교회에 입교할 것을 기대하였었다. 그러나 그들이 개혁된 교회에 대하여 변화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먼저 쓴 책과 정반대의 노선을 주장하는 또 한 권의 책자를 저술하였다.(중략)


불행히도 루터의 이 책자는 후일 유대인들로 하여금 한층 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만드는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 1543년에 쓰여진 루터의 소책자의 일부 내용을 여기서 소개하겠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저주받고 배척받은 유대인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겠는가?... 첫째, 유대인 회장과 학교를 불태우고 태우지 못핦 것은 파묻어 버림으로서 아무도 그 잔재를 보지 못하게 하라... 둘째, 그들의 가옥 또한 완전히 파괴할 것을 권고한다. 셋째, 우상숭배, 거짓말, 저주 그리고 불경함을 가르치고 있는 그들의 온갖 기도서와 탈무드 책자를 압수할 것을 권고한다. 넷째, 지금부터 유대인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사형에 처하거나 사지 절단도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유대인에 대한 도로 안전 통행권을 완전히 폐지할 것을 권고한다...여섯째, 그들의 고리대금업을 금지시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현금과 금은 패물로 압수하여 보관한 것을 권한다. 일곱째, 젊고 건강한 남녀 유대인들의 손에 도리깨, 도끼, 호미, 삽, 물레 혹은 물레 가락을 건네주어 그들이 이미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도록 하라."


유대백과 사전은 루터가 저술한 책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평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우슈비츠의 화덕과 유대인의 멸종만 없을 뿐이지 나치의 대학살에 대한 윤곽이 이미 나와 있다." 히틀러와 스타라이페르가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라는 살인 계획을 정당화시킬 때 루터의 말을 인용한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에 900만 명이었던 유대인 중 600만 명을 독가스로 학살하였는데, 히틀러의 이 유대인 멸종계획에 루터의 책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중략)


루터는 앞에서 소개한 자신의 주장대로 그렇게 유대인들을 가혹하게 대우하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루터는 멍청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루터와 같은 성경에 박식한 위대한 신앙가가 그러한 끔찍한 책자를 저술할 수 있는가? 로마 카톨릭 종교의 사제였던 그는 로마 카톨릭 종교를 늘 지배하고 있는 반유대주의의 영(spirit)에게 계속 붙잡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는 사탄의 충동질로 인하여 그와 같은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책을 썼던 것이다.

 

아무튼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신칭의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로마서 1장에 대해서는 눈이 밝았다. 그러나 이방인은 유대인에 대하여 결코 오만해서는 안 되며 아무쪼록 그들을 시기나게 해서 구원받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로마서 11장에 대해서는 소경이었다. 루터가 쓴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그 책자가 이 사실을 입증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모진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죽기까지 충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으나, 성경에 없는 연옥설을 만들어서 신자는 누구나 죽으면 연옥에 가서 정화 기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선행을 쌓아야 한다는 카톨릭 교회의 비성경적 교리에 눈이 어두워져 있던 카톨릭 교회의 사제 루터는 여전히 죄와 구원의 문제로 고민하며, 평안을 얻고자 성당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며 고행을 하였던 바, 어느 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로마서 1장 16,17절이 대단히 큰 감동으로 부딪혔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자들이 카톨릭 교회의 비성경적 행습이나 사상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이루어 놓은 여러 공헌들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이신칭의(以信稱義)와 같은 구원론의 재발견이었기 때문에 마치 로마서의 핵심이요 주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이 있는 로마서 1장이라고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죄와 구원문제를 해결하려고 씨름하다가 이신칭의의 교리를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이신칭의의 교리를 다루게 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다루는 구속사적 문맥에서인 것이다. 최근의 대부분분의 신약학자들은 이신칭의의 교리가 크게 대두되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바울의 진정한 관심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하는 개인적 문제의 해결에 있다기보다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속사적 관계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즉, 유대인에게는 율법과 할례가 의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오직 예수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가르침의 맥락에서, 또한 이방인에게는 유대인에게 부여되었던 할례와 같은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로 그들에게 요구되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의 맥락에서 바울이 이신칭의 교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개인적이며 실존적인 구원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서의 진정한 핵심부분은 이스라엘 - 이방인 -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의 경륜과 대계를 자세히 설명함과 아울러 구원사에서 유대인과 구원받은 이방인의 관계를 신약성경 가운데 유일하게 설명하고 있는 로마서 11장인 것이지, ‘이신칭의’의 교리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 1장 26,27절 말씀이 아니다. 바울의 이신칭의의 구원론은 갈라디아서에도 발견되며(갈3:11), 히브리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히10:38). 우리는 이 문제는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바울의 로마서 기록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잠시 더 살펴보기로 하자.

 

로마서를 기록하려고 했던 바울의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려면 교회 공동체의 구체적인 상황을 이행하여야 한다. 로마 교회는 유대교적 바탕 위에 세워졌다. A. D. 49년에 그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의 ‘추방칙령’을 내릴 때까지 태어났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유대인으로서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몇 년 후 ‘추방칙령’이 폐지되고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돌아오자 로마 시내에 그리스도인들의 사회가 재구성되었다. 이번에는 이방인의 비율이 상당히 늘어나서 유대인과 더불어 꽤 많은 이방인들이 거기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오만하게도 유대인 교우들을 영원히 몰락해버린 이스라엘 중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 구원된 “불쌍한 이웃”정도로 여겼다.

 

이방인들은 오직 하느님이 그들을 “참 감람나무”(11:17이하)에 접붙임을 받게 해주었기 때문에 언약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기독교적 유대인들(Messianic Jews)과 기독교의 모체가 되는 유대민족을 제켜 놓고 자신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몇몇 이방 기독교인들은 거만하게 하느님이 자신들을 유대인들보다 낫게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잘라내 버렸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11:19).

 

따라서 바울은 로마교회 공동체의 이방인 멤버들에게 복음과 유대인의 지위에 대해 바르게 이해시킴으로써 그곳 안팎의 유대인들에게 대항하는 대결적 자세를 취하지 못하도록 설득해야 할 긴박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로마서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인 목적인 것이다. 로마교회 공동체의 구체적인 정황을 무시한 채 로마서의 기록 동기를 바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한 바처럼 로마서의 클라이맥스이며 핵심이요 중심은 로마서 11장인 것이다. 바울의 이신칭의의 구원론은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추적해 볼 수 있지만 이스라엘 - 이방인 -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하느님의 인류구원역사의 심오한 경륜 및 대계에 관한 가르침과 이스라엘의 운명에 관한 바울의 사상은 로마서 11장이 없었다면 다른 곳에서는 추적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사실상 반유대주의 책자를 저술한 루터는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인 11장에 대하여 소경이었던 것이다. 루터가 쓴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책자는 후일에 히틀러의 유대인 박멸운동의 근거가 되었고 결국 600만 유대민족이 학살당하는 데에 공헌을 한 셈이 된 것이다. 루터가 1546년 2월 그가 사망하기 3,4일 전에 그의 고향인 에이스레벤(Eisleben)에서 전한 그의 마지막 설교의 요점도 유대인은 기독교인들에게 위험한 적이므로 독일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 감정이 현저히 고취되었음은 물론이다.

 

유석근 지음, 「알이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서울: 도서출판 예루살렘, 2013), pp.282-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