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로마서 강해

바울서신I(로마서연구)

에반젤(복음) 2019. 12. 19. 09:36


                              바울서신I(로마서연구)

담당 교수: 김 지 철

I. 과목의 목적
바울신학의 중심적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제시하는 로마서 본문을 개역/표준새번역 성서와 Nestle-Aland의 Novum Testamentum Graece 27 판을 갖고 로마서 본문과 이에 따른 신학적 주제를 취급함으로 로마서를 통하여 바울신학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고자 한다.

II. 교수방법과 성적평가
강의와 세미나를 병행한다. 성적평가는 출석/세미나발표/학기말시험을 합산한다.

III. 강의 계획과 내용
1) 로마서의 서론적 질문들을(바울의 상황과 로마교회의 상황/로마서의 목적/로마서의 주제와 중요성등) 먼저 취급한다. 부분적으로 성서와 설교의 상관성도 다루려한다.
2) 매 주일 본문을 로마서 1장부터 단락별로 분석하고 신학적 주제를 설명해 나간다.
3) 과제물: 로마서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나 용어 중 하나를 선택하여 A 4 용지 4-5 매(글자크기 11; 줄간격: 160%) 정도로 준비하여 발표한다(3-4 명 조별로).

* 겨울방학중 준비사항:
1) 로마서를 우리 말로(개역/새번역/공동번역등으로) 두세번 정독할 것
2) 가능하면 로마서를 Novum Testamentum Graece 27 판으로 한번 정독해 볼 것(본문의 뜻이 다 통하지 않더라도 읽어 볼 것!)
3) 다음에 로마서의 구조를 제시하니 각자 로마서 전체 본문을 자기 나름대로 단락(대/소단락)짓고 소제목을 붙여 볼 것
4) 로마서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들을 찿아 볼 것

IV. 교과서: 한글성서(개역 개정판/표준새번역)와 Nestle-Aland의 Novum Testamentum Graece(27)



I. 로마서의 구조
                                                      
서문: 롬 1,1-7
서론: 롬 1,1-15
중심주제 선언: 롬 1,16-17: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해석학적 관점: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한 바울의 인간론 이해
I.하나님과 화해되지 못한 인간: 1,18-3,20
   1. 그리스도없는 이방인의 범죄(3인칭 복수: 1,18-32).
   2.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이방인)의 범죄(2인칭 단수: 2,1-3,9)
   3. 모든 인간의 범죄(1인칭 복수: 3,10-20); 문학적 복수
   - 인간의 의도적인 범죄행위이다.
II.하나님과 화해된 인간: 3,21-5,11
   1.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3,21-25)
   2. 믿음을 통한 의(3,26-31)
   3. 믿음의 모범자 다윗과 아브라함(4,1-25): 포괄적 우리
   4. 의롭게(화해) 되었으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5,1-11): 그리스도인
III.아담과 그리스도(화해되지 못한 인간과 화해된 인간을 구별하는 두  가지 모형적인 인격): 5,12-21: 우주적인 화해사건
IV.화해된 인간의 삶: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6,1-23: 우리 그리스도인
   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그리스도인: 6,1-14
   2. 거룩함에 이르는 의의 종: 6,15-23
V.갈등하는 인간: 아담적 인간의 갈등: 7,1-25(나/너희/우리)
VI.승리하는 인간: 그리스도적 인간의 승리의 확신: 8,1-39(너희/우리)
   1. 성령을 통한 새로운 존재: 8,1-30
   2.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찬양: 8,31-39
VII.이스라엘인의 운명: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9,1-11,36(나/너/그들/우리)
   1. 하나님의 선택의 자유함: 9,6-29: 참조 3,1-4의 질문과 9,6의 대답
   2.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방인 <=> 율법을 통한 의를 추구한 이스라엘의
        좌초: 9,30-10,21
   3. 하나님의 비밀: 이스라엘의 구원: 한시적인 이스라엘의 완악함: 11,1-36
VIII. 화해된 인간 그리스도인의 책임적인 삶: 12,1-15,13
    1. 이웃과 함께하는 삶: 12,1-13,14
    2. 교회의 하나됨: 약한 자와 강한 자: 14,1-15,13

결론: 15,14-33
문안인사: 16,1-27

로마서에 관한 참고도서:
  1. 영어 주석 중에
F. F. Bruce,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TNTC, 19852
C. E. 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I 1975, II 1979(번역본 있음).
J. D. G. Dunn, Romans, Word Biblical Commentary 38A/38B, 1988.
J. A. Fitzmeyer,S.J., Romans, The Anchor Bible, 1993.
W. Hendriksen,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1980(번역본 있음).
J. R. W. Stott, The Message of Romans, 1994(번역본 있음)

  2. 독일어 주석중에
E. K semann, An die R mer, HNT 8a, 19804(번역본 있음).
O. Michel, Der Brief an die R mer, KEK 14 19785
U. Wilckens, Der Brief an die R mer, EKK VI, 1.2.3.
P. Stuhlmacher, Der Brief an die R mer, NTD 6, 1989(임시 번역본 있음).

  3. 우리말
박수암, {로마서}, 대한기독교서회, 2000.
전경연, {로마서 연구}, 1966.
차정식, {로마서}, 대한기독교서회, 1999.
II. 이방인 =>유대인의 죄
본문: 롬 2,1-16/ 17-29
A. 본문의 짜임새와 주요 어휘들
롬 2,1-16행위에 의한 심판롬 1,18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방인들을 넘어서 모든 인간에게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1) 2,1-16에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한다. 도덕주의자들(또는 유대인들)도, 그리고 모세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 앞에 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행위로 인간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다(참조 고후 5,10).
B. 본문분석
2인칭으로 언급하며 대화적인 양식을 지닌다(참조 6,1f. 15; 7,7a. 13a; 9-11 장). 그 대화적 상대자는 주로 유대인이다(그러나 이방인들도 그 대화 상대자에 간접적으로 포함시킨다). 1절의 2인칭은 2,17에서 다시 지속된다(너 유대인아!).
3. 4절은 질문이다자기의 악을 생각지 않고 남을 정죄하는 자들의 모습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5. 6절은 1절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6절은 인용(잠 24,12; 시 62,12)이다. 이것은 다시 7-10절(문학적인 교차법)에서 설명한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는 복(A)과 악을 행하는 자에게 줄 벌(B)이 7-8절에서는 AB로, 9-10절에서는 BA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1절은 다시 6절의 말씀, 행위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불편 부당함을 선언한다.
11절은 6절을 되풀이한다. 계속해서 12절과 16절이 6절을 이어받는다(행위에 의한 심판이다6111216).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인이기 때문이다(13절). 율법 없는 이방인은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양심이 이를 증거한다).
16절에서 내 복음의 또 다른 면을 말한다.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3) 1. 핑계할 수 없다1절은 1,18에서 언급된 말의 연속이다.
ㄱ. 1. 3절네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너를 정죄한다(똑같은 악을 행한다).
ㄴ. 4절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하심을 멸시한다.
ㄷ. 5절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신 9,27)을 따라 임할 진노를 쌓는다.
- 질문율법의 인과의 법칙과 믿음의 은혜의 법칙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의 뒷부분에서 믿음에 의한 새로운 행위의 법인 사랑의 법을 제시한다(13,10)
  2. 7-10절두 인간상마 7,24-29반석 위에 모래 위에 세운 사람(행위에 따라)
  3. 11절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행 10,34고넬료를 본 베드로의 말씀이다(참조 대하 19,7).
  4. 16절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심판이다고전 4,5을 참조 마 25,31-36; 고후 5,10
4) suneivdhsi"구약에는 없는 어휘이다. 바울에게서 14번(고전후, 롬) 등장한다. 마음에 새겨진 법.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행자다(고후 1,12).
  1. 선악의 판단 자리이다롬 2,15; 바른 인식을 주는 주체이다고전 8,7-12; 10,15-30)
  2. 그리스도 안에서의 착한 양심
롬 9,1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한다.
고후 1,12우리의 양심이 증거한다.
고후 4,2각 사람에 양심에 호소한다.
3. 타락한 인간 안에서의 양심
고후 4,2양심에 호소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요청한다.
고후 5,11우리가 주의 두려움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졌기를 바라노라.
복음은 양심을 자유롭게 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양심이란 마음에 새겨진 법이다. 양심이란 그리스도의 진리로 살아난 마음 자리이며 새로워진 판단의 자리이다. 마음이란 인격중심성이라면, 양심이란 판단의 자리이다.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행자다. 양심의 증거에 대해서 바울은 고후 1,12에서 언급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에 의한 증거(롬 8,16)와 양심의 증거(롬 2,15)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이고, 후자는 인간으로부터 그의 행위에 의해서이다. 양심의 증거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판단이다. 성령의 증거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인 아들됨이다.
III.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
본문: 롬 2,17-29 문자가 아니라 영이 중요하다!
1.
17-24절과 25-29절에서 바울은 율법소유와 할례 받음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다. 그는 여기서 논쟁적인 대화체(2인칭 단수)로 문장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17-24절에서 바울이 대화 상대자는 유대인들이다. 17-20절에서는 가정법 형태, 21-23절에서는 질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현실적인 가정법으로서 유대인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 그 자체이며, 후자는 이런 유대인들을 향한 바울의 직접적인 질문인 것이다. 먼저 유대인이 이방인들 앞에서 지닌 자랑스런 자의식을 끄집어낸다. 이와 더불어 수사학적인 강도를 더해서 유대인이 지닌 허구성을 부각시킨다. 21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퍼붓는다. 24절에서 이를 증명하는 구약인용이 나타난다. 율법을 이방인들 앞에서 자랑하는 유대인들도 행위에 있어서는 율법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계속해서 25-29절에서 할례 받음도 마지막 심판 앞에서 전혀 특권이 아님을 지적한다.
2. 본문 분석
a) 17-20가정법 문장으로 유대인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
b) 17. 18절에서 다섯 개의 병행 구문이 나타난다.
(1) 네가 유대인이라 칭하며,
(2) 율법을 의지하고,
(3) 하나님을 자랑하고,
(4) 하나님의 뜻을 알고,
(5) 율법의 교훈을 받아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고,
c) 19. 20절에서 다섯 개의 병행 구문이 반복된다.
(1)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2)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3) 어리석은 자의 훈도(paideuthVn)요,
(4)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는다.
(5)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범을 지닌 자로 생각한다.
d) 21-23유대인의 자기 정체성과 현실과의 차이를 다섯 개의 질문형식으로 묻고 있다. 유대인들의 말(요구)은 있으나 그것에 행위가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이중성을 지적한다.
e) 21-23다섯 개의 병행구문(질문형태)
(1)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스스로 가르치지 않느냐?
(2) 도적질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3)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4)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5)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f) 24왜냐하면(gaVr)을 통한 결론으로서 구약 성경인용(사 52,5)이 등장한다.
g) 25-29절은 내용적으로 12-16절과 병행한다. 전자는 율법의 선물에 대해서 언급했다면, 여기서는 할례에 대해서 언급한다. 즉 유대인은 율법과 할례에 의해서 그 우선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을 통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28-29절)
3. 중요한 어휘어구문장
a) kauca'sai e*n qew'/하나님 자랑(17절렘 9,23. 24; 고전 1,31; 고후 10,17)
b) kauca'sai e*n novmw/율법 자랑(23절)
c) 율법을 갖지 않은 자는 소경이다(19절참조 마 15,24; 23,16. 24).  이방인은 어두움에 놓여 있다. 율법선생으로서 유대인은 이 어둠을 비추는 빛이다. 그는 여호와의 종노릇을 한다(사 42,6.7; 49,6.; 60,10).
d) 21-23절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는 것에 따라 살지 않는다마치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비판하는 모습과도 유사하다(눅 11마 23장)율법학자들이 남은 가르치고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한다. 그가 가르친 것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참조 마 23,3)
e) 25절할례가 유익하다  할례가 구원의 효력을 지닌다는 것이다(참조 갈 5,2; 요 6,63 히 4,2; 13,9) 갈 5,2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f) 28-29절진정한 유대인은? 대비되는 두 어휘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그리고 육신의 할례와 마음의 할례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문자와 영이 대비된다.
o& e*n tw'/ fanerw'/  *Ioudai'o"  o& e*n tw'/ kruptw'/  *Ioudai'o"
h& peritomhv e*n sarkiV  h& peritomhV kardiva"
e*n pneuvmati ou* gravmmati와
e*n tw'/ fanerw'/  e*n tw'/ kruptw'/
ou*k e*x a*nqrwvpwn a*ll * e*k tou' qeou'
마음의 새로움레 26,41; 신 10,16; 30,6; 렘 4,4; 6,10; 9,25; 겔 44,7. 9
영바울은 렘 31,33; 겔 11,19. 20; 36,26을 생각하는 것 같다.
영은 살리는 영toV deV pneu'ma zw/opoiei'(고후 3,6)
IV. 다 죄 아래 있다.
본문 3,1-20 인간이면 누구나 다 죄 아래 있다.
우리는 빛의 자리에 나아가기까지 어두운 흑암의 터널을 헤쳐나가야 한다. 영광에 도달하기 위하여 인간이 지녔던 수치와 더러움을 통과해야 한다. 바울은 롬 1,16. 17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빛의 사건을 선언했다. 그리고 바울은 마치 그 빛의 사건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마치 시궁창과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 죄악의 모습, 한계 속에서 방황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제시했다. 그것이 1,18에서 3,20까지 지속된다.
바울 자신은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할례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을 전했다(갈 2,3-4; 5,2. 6). 유대 바리새인으로서의 바울은 복음을 깨달은 후에는 그의 특권을 모두 쓰레기 같이 버렸던 것이다(빌 3,4-11). 이는 그가 율법의 얽매임에서 자유케 되는 복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갈 2,19; 고전 9,20). 이러한 바울의 태도는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방인과는 달리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임을 망각한 처사일 뿐만 아니라, 율법을 고의적으로 멸시하고 폐기처분 하려는 의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은 로마교회에서도 생겨질 조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이에 대해 그들의 비난이 얼마나 왜곡된 신학적 기초 위에 서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반박하고자 하는 것이다.
A. 본문의 짜임새(롬 3,1-8)
대화적인 양식으로 구성된 유대인의 질문과 바울의 응답이다. 먼저 유대인의 입장에선 질문이 등장한다. 이는 롬 2장에서 언급된 것과(2,17 이하의 유대인의 특권; 2,25 이하에서의 할례의 특권과 관련된다) 연관된다. 롬 2,17 이하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구속사적 특권을 언급하면서 행위의 심판으로 유대인이 심판을 받을 것임을 말했다. 이제 롬 3,1 이하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대 앞에 서야 할 것을 말한다. 1-8절을 살펴보면 먼저 1357. 8a에서 유대인의 문제가 제기되고, 계속해서 2468b에서 바울의 대답이 나타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바울의 강력한 반대의지의 표명인 결코 그럴 수 없다(mhV gevnoito)가 반복된다(4. 6)는 사실이다. 이는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이 율법 아래 있는가? 아니면 은혜 아래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1. 유대인의 항변과 바울의 응답(롬 3,1-8그럴 수 없느니라; 4. 6절)
a) 유대인의 이의 제기
(1) 유대인의 특권은 무엇인가? 할례의 특권은 무엇인가? 바울은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선택을 무가치하게 하는 자가 아닌가?(1)
(a) 대답많은 부분에 있어서 특권이 있다(poluV kataV pavnta trovpon). 예를 들면, 롬 9,4-5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의 의미다롬 1,8 참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taV lovgia tou' qeou')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는 약속이 담겨진 성서를 지닐 수 있다는 유대인의 자랑과 관련된다(2절)롬 9-11 장 참조.
(2) 만약 일부가 믿음이 없다면(토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 약속은 헛것이 되고 마는가?(3절)
(a) 대답결코 그럴 수 없다. 신실치 못한 것은 일부(tine"3)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다(pa'"4). 이는 10절에서 하나도 없다(ou*deV ei%")고 선언하는 데서 더욱 명백히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의 신실치 못함에 대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인간은 거짓되되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신실하시고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다가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참조, 구약의 말씀인용시 116,11; 51,6(LXX, PS 115,2; 50,6).
(3) 만약 유대인의 불의죄가 하나님의 영광은혜를 드러내는 일을 한다면 의로운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자들의 죄불의를 심판하실 수 없지 않는가?(5-6)
(a) 항변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여기서는 심판하시는 의다)를 드러낸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이 분노를 행하는 것은 불의하냐? 우리가 인간적으로 말한다(5).
(b) 대답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kovsmo"전체 인간; 3,19; 고전 4,13; 고후 5,19)을 심판하시겠는가?(6)
(4) 만약 하나님의 진리가 나의 거짓을 통하여 그 분의 영광이 된다면 내가 어찌 죄인으로 심판을 받을 수 있겠는가?(7) 그렇다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8a) 이 질문은 5절의 연속적인 질문이다.
(a) 대답바울은 여기서 대화를 끊어버린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전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자라는 것이다(8b). 따라서 그런 사람들은 정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언한다.
B. 본문의 짜임새(3,9-20)
바울은 다시금 모든 인간이 다 죄 아래 있다(롬 3,9-20)고 선언함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죄의 권세가 얼마나 큰가를 설명한다.
롬 1,18 이하에서 시작한 이방인과 유대인의 불경건과 불의에 관한 고소가 마침내 마지막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9)
10-18절은 구약인용이다(기록된 바시 1453편(10. 11. 12); 시 5,9(13); 시 10,7(14). 사 59,7-8(15. 16. 17). 이를 다시 세분해 보면,
10-12절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상태(6번의 부정어가 나타난다)
13-17절행동으로 나타난 죄의 양상들(13-14언어의 죄; 15-17행위의 죄)
18절요약이다.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시 36,1).
인간들이 도덕적 허울과 종교성으로 겉을 꾸며도 전혀 소망이 없다.
롬 3,9절 이하에서 처음으로 인간 실존 전체를 향해 죄라는 말이 등장한다. 롬 1,18 이하에서 시작한 이방인과 유대인의 불의와 불경건에 관한 고소가 마침내 그 마지막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9)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따라서 9절은 3,1-8의 연속된 질문인 동시에 2,12의 율법 없는 자나 있는 자 모두 차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주제를 이어받고 있다.
10-18절은 이를 위한 바울의 논지로서, 구약 인용들로 꽉 차있다. 이는 마치 사슬처럼 연속적인 인용구의 묶음으로 되어 있다. 기록된 바란 바울의 구약인용의 용어이다. 바울은 전도서, 시편, 예언서 등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이를 문학적인 틀로서 구성하고 있다(시 1453편(10. 11. 12절); 시 5,9(13절); 시 10,7(14절). 사 59,7-8(15. 16. 17 절).
9절그러면 어떠한가? 우리는 나은가(다른 도피처가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pavnta" u&f * a&martivan)고 선언했다(바울은 롬 1,18-3,8까지 계속적으로 이 주제를 선포했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이며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죄라는 단순한 행위나 나쁜 행위의 전체 모음이 아니라, 인간을 타락시킨 힘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을 지배하는 권세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롬 5,12-21; 6,1 이하; 7,7 이하에서 언급해 주고 있다.
10-18절죄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성경의 증거다.
여기서 세 가지 모습이 드러난다.
1) 인간이 죄인이라는 선언은 단순히 바울 자신의 고소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선언이다.
2) 이러한 고발을 하나님은 성서를 통해 하셨다.
3) 따라서 성경을 소유한 유대인들은 먼저 하나님의 고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향한 것이다(19절)
10-12절깨닫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미련한 사람들의 말이다(시 14,1-3). 이들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임을 거절하고 짐승이기를 선언하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도무지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것이다.
13-18절구체적인 죄악(13-14언어; 15-17행위)
1) 언어로 행하는 죄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부패되고 역겨운 더러움인 것이다. 언어는 마음에 있는 것을 내 쏟는 도구이다. 그럼 점에서 언어는 마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혀로는 속임을 베푼다는 것은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한 저주한다는 것이다. 이는 약 3장에서 혀는 마치 배의 키와 같다고 말한 것을 연상시킨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는 비판이다.
2) 행위저희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 가는 길에 파멸과 고생과 비참이 있다.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참조. 사 59,7. 8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사 57,21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18절ou*k e!stin fovbo" qeou'시 36,1)
19-20절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19절여기서 율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약 성경인가? 아니면 시내산의 계명을 말하는가? 율법에는 시내산 율법 모세 오경 전체 구약성경(롬 3,19. 31; 고전 9,8; 14,21. 34; 갈 4,21b; 요 10,34; 12,34; 15,25) 표준준거적법성의 의미로 사용된다.
율법은 인간의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더 이상 인간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 아래, 이방인은 양심의 법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면전에서 침묵할 뿐이다(욥 42,3. 5). 하나님은 우리의 자랑하는 입을 막는다.
율법은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갈 3,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 3,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이란 인간을 하나님과 직면하게 하며, 저주 아래 놓이게 만든다. 율법은 하나님의 진지한 심판 말씀이다(그러나 심판 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
20절율법의 행위로(e*x e!rgwn novmou)롬 3,20; 갈 2,16; 3,2. 5. 10(축약형태로 롬 4,2; 9,12. 32), 또는 율법의 행위 없이(cwriV" e!rgwn novmou롬 3,28; 축약형태로 롬 4,6).
의롭게 되지 못한다(ou* dikaiwqhvsetai)미래형이다.
모든 육체가(pa'sa saVrx)시편 143,2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이러한 내용은 유대인의 사고와 대립된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가? 그것은 인간론의 차이 때문이다. 유대인은 인간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이란 죄를 깨닫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율법을 읽으면서 죄가 무엇이다라는 이해가 되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자유를 경험한 자들의 경험적인 질적 앎을 의미한다. 사실 죄인식이란 곧 신앙인식이다. 죄인식은 율법을 통해서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인 인식이 된다. 죄의 구원 불가능한 자리를 인식하는 것이다(롬 7,7-25을 참조).
종합(1,18-3,20)
1)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죄의 타락의 우주성과 보편성을 언급(3,19)
2) 어떤 유대인도 예외가 없다(3,9 이하pavnte")
3) 율법의 범주에서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없다(19-20).
바울은 어떻게 이런 사실에 도달했는가?(1,18-3,20)
1) 이는 단순한 인간실존의 현상의 결과가 아니다. 단순히 그의 실존적인 경험에서 안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다.
1,16.17은 3,21-27에서 다시 부연 설명된다. 진정한 죄 인식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서(거룩한 자의 거룩하지 않은 자에게 정죄됨) 가능해진다. 그 전에는 죄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이것도 영의 인식이어야 한다.
2) 바울에 의하면 구약에서도 유대인의 죄성을 언급한다. 시 51편은 구약에 나타나는 가장 깊은 죄인식이다. 계속해서 호 5,4; 렘 13,23을 인용한다. 그들은 어떻게 죄 인식의 자리에 들었는가?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성으로 다가올 때만 가능하다.
3)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는가?(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면서) 죄인인 하나님과 대비하여 침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이다. 율법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죄인임을 선언한다. 인간이 그의 죄에 묶여 있음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
예수의 화목제물
본 문: 롬 3,21-31                     로마서(바울서신 I) 강의안(2001/4/11): 김 지 철
I. 들어가는 말
롬 1,18-5,11의 짜임새를 살펴보면, 롬 1,18-3,20은 아담적인 역사로서 모든 인간의 죄악을 언급함으로 율법은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앞에 서게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롬 3,21-5,11은 그리스도적 역사로서 모든 믿는 자의 의롭게 됨을 선물하심을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행위가 나타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의 계시이다. 믿음을 통한 믿는 자들(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이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의의 역사가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롬 1,16.17의 주제가 1,18-3,20의 공백을 넘어서 이제 긍정적으로 전개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의의 계시로 온전히 극복된다. 3,21-26에서 이를 분명하게 전개한다. 3,27-31에서는 3,8에서 전개된 논쟁(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을 다시 받아들인다.
3,21-31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내용 설명이며, 4,1-25은 그에 대한 성서적 인증이다. 3,21-26은 율법과 선지자에 의해 증거된다는 사실을 다시 4,1-25에서 구약과의 관계속에서 미드라쉬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이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주제는 선택과 죄용서 받음이다. 아브라함은 할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 의롭게 됐음을 언급한다.
5,1-5는 3,21-26을 전개하고, 5,6-11은 다시 3,24.25의 주제로 돌아온다. 그리고 5,12-21은 5,11의 결론부분이며, 6-8 장의 서문으로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관계의 역사적이며 우주적인 의미를 언급한다. 이를 전체적으로 구조화시키면,
1) 하나님의 의는 예수의 속죄죽음을 통해 나타났다(3,21-26).
2) 이 의는 모든 믿는 자(유대인/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다(3,27-31).
3) 아브라함은 이러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첫 모형이다(4,1-25).
4) 그러므로 의롭게 된 자들은 고난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자랑한다(5,1-11).
5)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아담을 통해 주어진 죄악과 죽음보다 더 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주권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5,12-21).

II. 본문의 짜임새와 각절에 대한 석의적 해설
1. 율법과는 상관없이 계시된 하나님의 의(롬 3,21)
하나님의 진노(1,18)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의: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셨다. 하나님의 의의 계시는 롬 1,18 이하에 언급된 하나님의 진노와 대비된다. 21 전반부: 1,17을, 21 후반부: 구약전체를 염두에 둔다.
이제는( ): 구속사적인 새 시대의 의미를 지닌 종말론적인 현재를 의미한다. 참고: 고후 6,2: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다의 지금과 상응한다. 옛 시대와 대비되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시작된 새 시대(갈 1,4 참조 3,26; 5,9-11; 6,21; 7,6; 8,1; 11,30.31; 13,11)를 의미한다.
26 절에서도:    : 바로 지금과도 상응하는 표현이다.
율법 외에( ): 율법의 정죄하는 심판기능을 하나님께서 그 의의 계시로서 침묵시켰다(갈 3,19 이하).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기 때문이다. 율법을 행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의다.
나타났다()의 의미는
1) 그리스도사건이 계시되었다(Tat). 십자가의 사건이 발생했다.
2)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Wort).
사건과 말씀은 함께 간다. 구원의 행위와 구원의 말씀은 분리되어서는 아니된다. 3,21 이하에서 초점은 십자가의 사건에 놓여 있다.
율법과 선지자들(성서전체를 가리키는 terminus technicus)에 의해 증거받는다:  율법이란 오경이고, 선자자들이란 구약의 나머지 책들이다.
롬 4,1-5에서는 오경에 의해, 롬 4,6-8에서는 나머지 성경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의를 설명한다. 그 의는 지속적으로 구약(율법과 예언자)에 약속되고 증거되었던 것이었다(롬 1,2; 1,17 참조).

2. 예수의 화목제물(롬 3,22-26): 하나님의 의 자체
22 절은 롬 1,16.17 의 주제에 대한 반복이다.
1) 하나님의 구원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2) 모든 믿는 자들에게: 1,18-3,20과 대비된다. 구원없음의 우주성과 구원의 우주성이 대비된다(참조 롬 5,12-19; 11,32). 모든이란 유대인/이방인을 다 포함한다.
차별이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그러하다: 롬 10,12 참조.
23 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Impf.). 여기서 다시 1,18-3,20을 다시 받는다. 왜냐하면 죄의 결과는 하나님 영광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인간이 아담처럼 같은 방법으로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롬 5,12이하; 7,7 이하). 그러나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 영광의 회복이다. 영광()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이다.
24 절: 의롭다하심을 얻음(part pass)이란 신적인 수동태(passivum divinum)이다. 하나님의 칭의가 정죄보다 우선한다.
값없이(): 인간의 공로없이, 즉 선물의 성격을 말한다. 받을 만 하지 못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 죄인이 의롭게 됨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긍휼의 뜻으로 인한 것이다.
구속(): 눅 21,28; 롬 3,24; 8,23; 고전 1,30; 엡 1,7,14; 4,30; 골 1,14; 히 9,15; 11,35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속: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의미한다. 롬 8,23은 미래적인 구속이나, 여기서는 현재적인 구속이다.
그리스도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구속의 수단이 아니라, 구속자체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구속 자체이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하나님앞에서 행동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 자 안에서 행동하셨다(참조 고후 5,19). 고전 1,30에서도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자안에 존재하시고 그안에서 행위하셨다(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에서 이 구속은 일어났다(3,25). 그러나 그 결정적인 양상은 아직 기다려야 한다(8,23).  
25 절: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분/만드신 분/구원하시는 분이다.
화목제물( ): 히 9,5에만 나타난다(신약) 언약궤의 덮개(출 25,17.18; 레 16,2.3)로서 하나님의 임재장소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와 만나고 대화했고 또한 대제사장들과 만났다. 제사장들은 속죄의 의식에서 제물의 피를 이 카포렛에 뿌렸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이다.즉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나셔서 속죄를 행하셨다(고후 5,18-21 참조).
세우다: 골고다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믿음의 필요성이란 자기의에 대한 포기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 앞에 서는 일이다.
피로 인하여: 피는 생명이다(레 17,11; 마 20,28; 참조 26,28; 요 10,11,15) 참조 사 53,10-12.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도 전승맥락에서 나타난다(고전 10,16; 11,25).
'오래 참으심'(25b; 참조 롬 2,4; 8,3): 하나님의 긍휼과 죄용서를 의미한다.
성금요일은 종말론적인 속죄의 날이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더 이상 속죄제를 드리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안에서 단번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직접 십자가에서 속죄를 수행했다는 선언이다.
26 절: 지금/ 이때에(   ): 21 절을 다시 받는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첫째로 스스로 의로우심을 보이고, 둘째로 믿는 자를 차별없이 의롭다 하신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구원을 선물함으로 구원을 창출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다.

21-26 절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하나님의 의(21a)가
1) 율법(성경)을 통해서(21b) 증거됐다.
2) 믿음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22ab)
3) 차별이 없다(22c).
4) 모든 죄인들에게(23):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한 죄인이다:
5)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24)
6) 이는 예수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 일어난 구속의 사건 때문이다(25-26a).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계신다. 예수의 피로 인하여 세운 화목제물로 이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다.
7) 하나님의 의의 두가지 면: 하나님의 의로움을 스스로 나타내시다. 또한 바로 예수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이다.

3. 믿음의 법(롬 3,27-31):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
연속적인 세개의 질문(V 21-26에서 나온):
1) (당신의) 자랑은 무엇인가?(27): 2,17-23 참조,
2)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신가?(29),
3) 믿음의 길이란 율법을 폐기처분 하는 것인가?(31)
그러나 이에 대해 바울은 철저하게 아니오를 선언한다: 있을 수가 없느니라( 27). 그럴 수 없느니라(  31).
바울의 적대자들이 품었던 생각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이해를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무력화시키는 반신적인 것으로 바울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참조. 예수께서 그의 적대자들에 의해 받은 비난(마 5,17 참조)이기도 하며, 첫 순교자인 스데반집사가 받은 고소 명목이기도 하다(행 6,13-14 참조). 이제 그 비난은 바울의 복음을 향해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율법의 마침이다(롬 10,4)라고 선언(갈 2,21; 5,4; 고전 9,19-23 참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위의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길)을 열어 주셨다(27-30).
  1) 인간이 죄인임을 알기위해(행위로 구원받을 자가 없기에: 27)
  2) 인간의 헛된 자기 자랑을 멈추게 하기 위해(27-28)
  3)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30)
  4)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열려진 은혜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29)
27 절: 행위의 법과 믿음의 법이 반복해서 나온다. 여기서 법()은 여기서는 표준/근거/기준을 의미한다. 이제 인간의 모든 자랑은 끝났다. 행위로 스스로의 존재를 부각시킬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불가능성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주어졌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자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있을 수가 없다(): 전혀 가능성이 없이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다만 믿음위에 세워진 구원의 새 질서만이 존재한다.
28 절: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 믿음으로(): 루터는 이 본문에서 믿음만(allein aus Glauben)이라는 해석을 추가하여 번역한다.
인정한다(): 생각한다. 해석학적 이해다. 의심할 수 없는 신학적인 확신이다.
한 사물을 바라보는 두개의 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판이하다. 믿음과 율법의 행위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29-30에서 28의 인간()을 해석한다.
29-30 절: 하나님의 유일성과 그분의 우주성은 배치되지 않는다. 유일성이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 세상에 보여주신 분이라는 데, 우주성이란 유대인과 이방인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원리로 대하시는 분이라는 데 있다.
30 절의 초점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로 하나님은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 '믿음으로 말미암아'(  )는 다른 전치사를 사용하지만 같은 의미를 반복이라 할 수 있다.
한 하나님(  ): 참조 사 45,21.22: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이외에 다른 이가 없다.
31 절: 율법은 여기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를 의미한다(3,19; 고전 9,8; 14,34; 갈 4,21b)고 볼 수는 없는가? 믿음의 법은 율법을 바르게 세운다(31):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4 장).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믿음의 법에 대해 증거한다(4,1이하). 이는 이미 예언자가 증거한 것이기도 하다(1,17)

토의 사항
I. 롬 3,21-31절을 읽고 단락구분을 하고 제목을 붙여 보라.
  21-26 절: 선언적인 어조
  27-31 절: 논쟁적인 대화
1. 21 절에서 하나님의 의가 와는 상관없이, 그러나 에 의해서 증거된 것이라고 말씀한다. 무슨 뜻인가? 여기서 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의 뜻은? 앞의 문장을 받는 논리적인 의미인가? 아니면 종말론적인 의미인가?(참조 롬 3,26; 5,9.11; 6,22; 7,6; 8,1.18; 11,5.30.31; 13,11; 고후 6,2))
3. 나타났다()는 말의 뜻은?
4. 모든 믿는 자들(22)은 1,18-3,20과 대비된다. 어떻게 대비되는가?
5. 23 절은 1,18-3,20의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죄의 결과는 왜 하나님의 영광의 상실인가? 그렇다면 믿음의 결과는 무엇일까?
6. 24-26 절에 나타나는 중요한 신학적인 어휘가 무엇인가?
-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 다음 단어들의 뜻은 무엇인가?
   구속(: redemption):
   화해(: propitiation):
7. 은혜로, 값없이라는 말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8.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속(24)/하나님이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았다(25)는 뜻은?
9. 하나님의 의를 각자의 언어로 정의해 본다면?

II. 27-31 절에서
1. 연속적인 세 개의 질문과 대답의 내용은?
   27-28 절:
   29-30 절:
   31 절:
2. 행위의 법과 믿음의 법의 차이는 무엇인가?(27-28 절)
3. 31 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지 않고 세운다고 했는데 이 율법은 무슨 율법을 말하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par * e*lpivda e*p * e*lpivdigegen Hoffnung auf Hoffnung)        2001년 4월 18일 김 지 철

본 문: 롬 4,1-25
I. 본문의 짜임새와 중요 어휘
율법을 세우는 이유: 믿음으로 의롭게 된 두 인물(아브라함과 다윗)
1. 롬 3,31 절의 문맥적 위치
롬 3,31은 3,27-30을 4 장과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롬 3,31은 3 장의 결론이며 4 장의 시작이기도 하다. 3,31의 율법()은 시내산 율법이나 모세오경이라기 보다는 전체 성서를 의미한다. 즉  를 의미한다(3,19; 4,3; 고전 9,8; 14,34; 갈 4,21).
2. 롬 3,31: 먼저 적대자들의 이의가 제기된다. 율법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폐기되는가? 그렇다면 우리(바울)가 믿음을 통해서 성서의 적법성을 폐기처분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지금까지의 선언은 성서의 정당성을 세우는 것이다. -의 대비는 막 7,9에서 -의 대비와 상응한다. 바울은 여기서 적대자들의 말을 받아서 성서의 정당성을 내 세운다. 특히 3,28.30에서 바울은 구원은 믿음으로이지, 율법 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는 3,21.22에서 이미 언급된 바다. 하나님의 의는 이미 성서가 증거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3. 따라서 3,27-4,25을 단락별로 구분해 본다면,
    3,27: 자랑할 것 없음에 대한 이유
     28: 율법준수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음
     29-30: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믿음안에서 구원을 주신다.
3,31:   위의 명제가 성서의 정당성과 증거에 맞는다.
4,1-12: 27-30의 명제를 설명한다.
  1-8: 3,28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명제에 대한 설명이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죄인인 자가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다.
  1-5: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음
  6-8: 행함이 없이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받은 다윗
      두 사람 모두 다 율법준수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입었다. 그들은 본래 의롭지 않은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9-12: 3,30의 테제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다윗은 유대인의 대표로, 아브라함은 이방인의 대표로 등장한다. 즉 유대인인 다윗과 이방인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로써 바울은 그 자신이 성서(율법)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정당성을 증거한 것이다(3,31).
  13-25: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약속과 약속의 성취는 두 단계의 과정을 밟는다. 먼저 13-17a: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은 믿음으로만 상응한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믿는자들에게 실체화된다. 계속해서 17b-25: 하나님의 약속에 상응하는 믿음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서술이다. 그것을 다시 세분하면, 먼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어떤 것이었으며(17b-23), 이러한 믿음이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어떠한가(24-25)를 설명한다.

* 바울이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한 해석은 당시 유대인들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유대전승에서 아브라함은 완전한 의인이다. 이는 그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인정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이란(창 15,6) 아브라함의 뛰어난 행위로서 이해된다.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자유로운 순종으로서 그는 온전한 의인인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의로운 자가 아니라 죄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은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4,4) 죄용서가 포함된 의라고 할 수 있다(4,4-6). 따라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업적도 아니다. 또한 순종하는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인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전제를 갖고 출발한다.
1. 율법의 일과 믿음의 일( - )라는 엄정한 대비도식으로 출발한다.
2. 믿음이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전혀 받을만함직 하지 않은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며 선물이라는 것이다.

질문: 아브라함의 의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의와 연관 되는가?
롬 15,4: 성경에 쓰여진 것은 우리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심은 곧 우리에게 말씀하심이다. 성경에 증거된, 그리고 스스로를 증거하는 하나님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에서 나 로 읽는 것은 신약에서 그리스도로 읽는다(고전 10,4).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의로와짐의 예나 모형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결정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사람의 첫 번째 인간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은 것과 마찬가지다. 바울은 성서를 늘 십자가의 사건 하에서 읽어간다. 따라서 구약에서 의롭다고 된 사람들은 실상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의롭게된 자일뿐인 것이다.

II. 구체적인 내용: 1-12 절/ 13-25 절
1. 1-12 절
1-2 절: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만으로도 자랑거리다: 참조 마 3,9; 눅 3,8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아브라함의 고백(창 18,3)은 그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참조 롬 3,27. 다음 성서구절을 참조해 보라.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22,15이하;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18 절)
창 26,2이하: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5절).
3 절: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의롭다고 여겨졌습니다().
3-8 절에서 중심단어는 여기다() 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는 것에서 여기다()는 3-8 절에서 다섯 번 사용한다. 이 수동태는 신적인 수동태다. 하나님에 의해서 인정받는 수동태의 의미이다.
5 절: 일을 아니한자와 불경건한 자는 동일한 존재이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의 판정이 나타난다. 이것은 기독교의 거침돌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이 일하지 아니한 자이며, 동시에 경건치 아니한 자라는 사실이다.
경건치 아니한 자: 참조 롬 5,6: 바로 롬 1,18-3,20의 인간이 다 이에 해당된다.
- 하나님 이해: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분(    :4,6). 이러한 이해는 롬 4,17에서도 4,24(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분)에서도 드러난다.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새로운 창조행위다(고후 5,17).
6-8 절: 바울은 다시 구약의 한 모형을 제시한다. 다윗의 죄악의 행위(다윗과 밧세바)와,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언급한 시편 32,1.2(LXX: 다윗의 기도)을 인용한다. 다윗은 죄인(살인자/간음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분여받았다. 롬 4,3.8을 주의해서 살펴보라. 다윗도 sola fide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경건치 못한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는 모형이다.
일한 것이 없이( ): 공로를 세우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여 다윗의 시(32,1-2 LXX)를 인용한다. 여기서 인간의 참회와 하나님의 죄용서 선언이 잘 어울린다. 7-8 절에서 복되도다(와 )가 두 번 연속 등장한다. 또한 여기다()도 등장한다.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으로서의 아브라함과 함께 유대인으로서의 다윗을 언급한다. 다윗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의해서는 오히려 고소를 받는 자이다. 살인자요 간음자다. 율법에 그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죽어야만 한다. 그러나 은혜로 죄용서를 받았다. 이로써 3,28의 명제가 구체적인 증거제시로 정당한 것임을 말한다.

1) 4,1-8: 여기다(: 시 32,2)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의 판단을 의미한다. 이 판단은 선언적이고 창조적인 판단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없앰을 선언하는 판단이다.
2) 창 15,6: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의 상태에 있을 때다. 즉 이방인으로 있을 때의 모습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은(시 32,2) 유대인인 다윗뿐만 아니라 이방인인 아브라함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여기서 토라와 시편에서 인용함으로 3,21의 말씀을 정당화시킨다. 특히 이는 증거가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한다는 구약의 증거에 대한 전통과 상응한다.  

9a 절에서 시작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9b 절에서 창 15,6을 가지고 언급되지 않는 대답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계속해서 10-11a 정에서 창 15,6을 17,10.11과의 관계에서 해석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부분이 나타난다(11b-12).
9-12 절: 사죄의 축복이 할례자(다윗)와 무할례자(아브라함)에게 다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죄와 의인됨의 축복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건임을 강력하게 보여준다(10). 바울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김을 받은 시점을 질문한다. 창 15.16 장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언급되고, 창 17 장에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미 할례받기 전에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았음을 명시한다.  할례는 약속의 표시이며 인침이다(창 17,11).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감히 이방인의 조상이라고 명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유대인에게는 충격적인 거침돌인 것이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자에게나, 할례받지 못한 자에게 모두 믿음의 조상으로서 등장한다. 이에 대한 계속적인 증거가 롬 4,13-25에서 지속된다.

2. 13-25 절
롬 4.13은 창 15,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의로 여겼더라:          )와 창 18,3(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소서)을 연상시킨다.
13-17a 절: 이제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롬 4,13-17a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언급한다. 바울은 여기서 창 12,1-3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갈 3,6-4,7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다면 창 12,3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이란 무엇인가?
1) 자손의 약속(Nachkommenschaft),
2) 땅의 약속(Land),
3) 복의 약속(Segen)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약속이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다고 이해한다.
1) 자손의 약속이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서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녀들로 부름 받았음을 지적한다(갈 3,7이하; 롬 4,11.12.16; 9,7.8)
2) 땅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가나안을 차지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구원의 상속자가 된 것을 말한다(롬 4,13).
3) 복이란 이제 구체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곧 불경건한 자의 의로움이다. 그리스도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의인 것이다(갈 3,6-22)
여기에 제시된 신학적인 특징은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은 우주적이어서,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다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준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 모두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를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16 절). 이로써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라 부를 수 있다      

17b-25 절: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신앙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17b 절: 하나님은 1)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다(17b). 2) 하나님은 또한 없는 것을 있는 자로 부르시는 분(     ; 참조 고전 1,26 이하)이시다. 이것은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라는 기독교 창조신학을 연상시킨다. 이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얻는 과정(18-22)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일(24)에서 확인된다. 이로써 바울은 창조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과 생명의 하나님을 통전적으로 이해한다. 기독론을 통해서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가 연결되는 것이다.
18 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 gegen Hoffnung auf Hoffnung) 믿었다는 것에서 대비적인 두 어귀가 나타난다. 소망을 거슬려서, 그리고 소망에 붙잡혀서라는 말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상황을 지칭하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향하고 있다. 모든 현실적인 가능성이 거부할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소망은 인간적인 판단에 따른 희망이며 인간적인 기대이다. 두 번째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는 희망이다. 즉 롬 4,17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19 절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무조건적인 신앙이 아니라, 현실의 암담한 것을 알면서도 갖는 믿음인 것이다. 인간의 탈출구가 막힌 자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자리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20-21 절에서 아브라함이 지닌 100세가 된 인간의 한계적인 상황이 그려져 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믿음의 영웅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이 막혔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이다. 그 근거는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임을(   )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23-25 절에서 아브라함의 사건은 이제 우리 믿는 자들의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보다 확실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현실의 불가능성을 뚫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한다.  
바울은 25 절에서 기독론적인 마지막 결론을 내린다. 예수는 우리의 죄악을 위하여(  ) 내어줌이 되고(), 우리의 의로움을 위하여(  )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 아브라함에 대한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서술을 비교해 보면,  
                   로마서        야고보서
1) 신앙과 행위:      3,27-28        2,18
2) 하나님은 한 분:   3,29-30        2,19
3) 아브라함:         4,1-2          2,20-22
4) 창 15,6:           4,3            2,20-22
5) 창 15,6 의 해석   4,4-21         2,23
6) 결론              4,22           2,24
로마서는 율법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믿음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로마서는 참다운 믿음을 가르쳐 준다면, 야고보서는 참다운 행위를 가르쳐 준다. 양자가 다 순종이 동반된 믿음을, 믿음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스도인의 자랑
                                          바울서신(로마서) 2001년 4월 25일  김 지 철
본 문: 롬 5,1-11
I. 본문의 짜임새
롬 5,1-11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진정한 자랑과 기쁨을 언급하고 있다. 계속해서 롬 5,12-21은 다시 1,18-3,20의 아담의 역사와 3,21-5,11의 그리스도 안의 역사를 구속사적으로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두 인격을 대비시킴으로 극대화시킨다. 계속 롬 6-8장은 개인적인 실존의 관점에서, 9-11장은 온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5,12-21을 취급한다. 따라서 롬 5,12-21은 1,18-5,11의 결론부분이며, 6-11장의 서론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6-8장은 롬 3,21 이하에 언급된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행위는 인간의 자유를 위함임을 분명히 한다. 이 자유는 하나님을 위한 참다운 삶에로의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롬 즉 1,17의 살리라(zhvsetai)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이다.
롬 5장의 내용을 단락으로 구분해 보자. 바울은 예수의 죽음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을 가져왔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미래적인 소망을 허락한다고 말한다.  1-11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의 삶의 운명을 고백적으로 언급한다. 교회론적인 관점에서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2-21절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모든 인간을 염두에 두고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시키므로, 신앙인이 아담적 인간에서 그리스도적 인간에로 바뀌어 졌음을 표명한다.
특히 1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dikaiwqevnte" ou^n e*k pivatew")는 3,21-4,25의 내용을 종합하는 어귀라 할 수 있다. 계속해서(2-11절) 하나님의 구원행위와 그리스도의 역할과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그려져 있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단락을 구분해 보자.
1절그리스도인의 실존의 두 가지 모습을 그린다. 첫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ei*rhvnhn e!comen)권면적인 명령형이라기보다는 서술형이 더 적절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diaV tou' kurivou h&mw'n *Ihsou' Cristou')는 앞의 롬 4,25과 관련되고, 또한 롬 5,6. 9. 10을 염두에 둔 것이다.
2절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소망을 자랑한다(kaiV kaucwvmeqa ep * e*lpivdi): 1절은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상태를, 2절은 미래의 상태를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린다.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3-4절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환난 자체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환난(qli'yi")을 자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신앙이란 모든 것이 소망 없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4,18 참조). 환난을 소망의 자리에서 검토해 보면 일시적인 것이다. 따라서 환난자체를 기뻐하기보다는 환난 속에서 허락된 소망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5절그 소망이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랑을 확인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동자이시고, 인간은 수동자일 뿐이다. 완료형으로 쓰인 것(e*kkevcutai)은 그 효력이 언제나 타당함을 보인다. 우리들의 마음에(e*n tai'" kardivai" h&mw'n)란 인식론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공간적인 자리를 지닌다(고후 1,2; 갈 4,6). 성령을 통하여에서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시다(롬 8,9. 11).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붓는 수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영원히 타당하다는 보증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의 부름을 한다(롬 8,15. 16; 갈 4,6 참조). 성령은 말씀을 통해 주어진다 갈 3,2.5에 의하면 율법을 따름이 아니라, 믿음의 소식을 들음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주어진다고 말씀한다. 성령이란 그리스도를 밝혀주는 분이기 때문이다(고후 4,6).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전 2,12).
그렇다면 성령을 받음이란 믿음의 전제인가? 아니면 결과인가? 전제이며 동시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제인 것은 성령이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성령은 역사는 거부되기 때문이다.
6-10절위의 사항을 확인하는 두 가지의 사건이 있다.
6-9절1) 그리스도가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10절 2) 우리를 위해 죽은 예수는 마지막 날에도 우리의 구원을 보증한다.
- 6 절: 그리스도께서 불경한 자를 위하여(u&peVr a*sebw'n) 적기에(e!ti kataV kairoVn기약대로) 죽으셨다. 적기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결정적인 때와 맞물려 있다. 예를 들면 갈 4,4에 때가 차다(toV plhvrwma tou' crovnou), 또는 막 1,15에 때가 찼다(peplhvrwtai o& kairoV")는 증언과 일치한다.
인간이 연약할 때에(a*sqenhv")란 곧 인간의 전적인 무능성을 의미한다. 즉 죄 아래 있는 인간의 한계성이다(롬 8,3; 6,17)
1.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것도 내 세울 수 없다(시9,4; 27,2)
2. 인간은 그리스도 없이 유혹과 죄에서부터 헤어나올 수 없다(막 14,28 이하)
이를 다시 롬 7,14-25 에서 부연 설명한다.
- 8 절: 하나님의 사랑이 현재형으로 나타난다. 지금도 그 사랑이 보여지고 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과거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영속적인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적인 사랑이다. 즉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석적이 아니라, 참여적이고 역설적이다.
- 9 절:  결론: 그의 피로란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을 의미한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swqhsovmeqa)는 미래 수동태로서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받을 것임을 나타낸다(살전 1,10; 롬 8,31 이하).
- 10 절: 예수는 우리의 화해자이시다: 과거 원수였을 때와 미래 마지막 심판 때에 그러하다.
원수된 사람들(e*cqroiV o!nte") =약한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a*sqenoiv a*seboiv6절) = 죄인(aa&martwloiv8절). 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인간 편에서 부쳐진 어휘이다. 성경에 어느 순간도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원수가 되신 적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분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롬 8,34에서 우리를 위한 대변자로 언급한다).
- 11 절전체 사상의 마무리다.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이제(nu'n): 종말론적인 현재. 여기서 자랑은 궁극적인 자랑이다. 자랑의 대상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바울은 롬 5,1-11에서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언급했다. 특히 삼위일체적인 언급을 통해서 구원의 자리를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지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 안에서 행하신다.

그러면 이와 같은 내용을 인간론적으로 구조화 시켜보자.
1) 옛 인간에서 새 인간에로의 변화(1-11)믿음으로 새롭게 된 자
1. 옛 인간아직 연약할 때에(o!ntwn h&mw'n a*sqenw'n e!ti6)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u&peVr a*sebw'n6),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o@ti e!ti a&martwlw'n o!ntwn h&mw'n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e*cqroiV o!nte"10)
2.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diaV tou' kuvriou h&mw'n  *Ihsou'
         Cristou'1. 11)
    그로 말미암아(di * ou%au*tou'2. 9)
    그리스도의 피를 인하여(e*n tw'/
ai@mati au*tou'9)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diaV tou' qanavtou tou' u&iou' au*tou'10)
3. 하나님의 구원행위
  ㄱ.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diaV pneuvmato" a&givou tou' doqevnto" h&mi'n5).
  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다(h& a*gavph tou' qeou'
      e*kkevcutai e*n tai'" kardivai"5).
  ㄷ.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셨다(8).
4. 새 인간그러므로 지금(nu'n)의 상태
  ㄱ. 믿음으로(e*k pivstew"1) 의롭다됨(1)하나님과 더불어 화평
      (ei*rhvnhn e!comen proV" toVn qeoVn)을 얻는다(1)
  ㄴ. 믿음으로(th'/ pivstei)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ei*" thVn cavrin tauvthn)
      들어간다(2)
  ㄷ. 그의 피를 인하여 이제(nu'n) 의롭게 되었다(9). 더욱 더 진노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swqhsovmeqa di * au*tou' a*poV th'" o*rgh'"). 10절에도 구원을 받을 것이다(swqhsovmeqa)가 등장한다.
  ㄹ. 하나님과 화해되었다(kathllavghmen tw'/ qew'/)(10).
- 그러므로 새 인간의 삶의 자세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을 자랑한다(kaucwvmeqa e*p * e*lpidi th'" dovxh" tou' qeou'2)
2. 우리의 현실적인 환난을 자랑한다(kaucwvmeqa e*n tai'" qlivyesin3)
3.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한다(kaucwvmenoi e*n tw'/ qew'/11)


그리스도와 아담

본 문: 롬 5,12-21
I. 본문의 짜임새
롬 5,12-21은 앞의 5,1-11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12-21절은 그 결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근본 전제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아담적 인간과 그리스도적 인간을 표상하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두 표상을 대비시킨다.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독자적인 대비로 서로 비교한다. 이를 바울은 고전 15,21. 45-49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14b에 의하면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tuvpw" tou' mevllonto"), 곧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고전 15,45. 47에 의하면 아담은 첫 인간(o& prw'to" a!nqrwpo")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o& e!scato" *AdaVm)으로 묘사된다. 또한 고전 15,47에서는 그리스도는 두 번째 인간(o& deuvtero" a!nqrwpo")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롬 5,12-21에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한 인간(o& ei" a!nqrwpo"o& ei")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담과 관련하여그리스도와 관련하여12절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di * e&noV" a*nqrwvpou)
죄와 죽음(h& a&martivao& qavnato")이,
15a절한 사람의 범죄
   tou' e&noV" toV paravptwma

16a절 di * e&noV"
  심판과 정죄(toV krivmakatavkrima)
17a절tou' e&noV"di * tou' e&noV"
  사망
18a절di * e&noV"
19a절tou' e&noV" a*nqrwvpou
  순종치 아니함(h& parakohv)
  죄인
20절죄(h& a&martiva)

15b절한 사람의 은혜
  (tou' e&noV" a*nqrwvpou toV cavrisma)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h& cavri" tou' qeou'  
  h& dwreaV)
16b절e*x e&noV"
  은사와 의롭다함(toV cavrismadikaivwma
17b절 diaV tou' e&noV"  *Ihsou' Cristou'
  생명
18b절di * e&noV"
19b절tou' e&noV"
  순종(h& u&pakohv)
  의인
  은혜(h& cavri")
한 사람 속에 아담과 그리스도가 각각 이해된다.
모든 사람(pavnte")많은 사람(polloiv)은 아담 쪽이나, 그리스도 쪽이나 다 해당된다. 그러나 아담 쪽은 모든 인간이나, 그리스도 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만이다.
전체적으로 단락을 구분해 보자.
12절한 사람  죄  세상  사망  모든 사람의 죄  사망이 임함
13-14a절죄와 율법에 대해 취급한다.
14b절중심적 테제를 언급하는 문장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15-17절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를 두 단계로 언급한다.
    15절첫 번째 단계
        15a과 같지 않다(ou*c w&"  ou@tw")
        15b15a의 근거더욱 더(pollw'/ ma'llon)
    16.17절두 번째 단계
       16a과 같지 않다(ou*c w&")
       16b.17두 방식더욱 더(pollw'/ ma'llon)
18-19절대비는 두 단계로 구분된다.
    18절첫 단계와 같이(w&"  ou@tw")
    19절둘째 단계와 같이(w@sper  ou@tw")
20-2120a모세와 그리스도간의 시대에 있어서의 율법의 기능
20b.21은혜가 죄와 죽음보다 더 크다
        1. 와 같이 마찬가지로(w@sper  ou@tw")
        2. 더욱 더(pollw'/ ma'llon1517)
- 아담과 그리스도와의 대비
죄는 행위와 결과가 모든 인간에게 죽음으로 주어진다(수동적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능동적이라는 것이다). 순종의 행위는 모든 자에게 생명으로 주어진다(능동적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신학적이고 해석학적인 평가
ad a&martiva
아담이 범죄하고,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인간이 같이 범죄하고, 죽음이 지배한다. 인간의 죽음에 죄의 타락이 있다. 여기서 죄란 인격적인 힘으로 인식된다(3,9. 21; 6,13; 7,13). 그러나 원래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죄와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그에 대해서 바울은 언급하지 않는다. 죄란 결코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도전으로부터 활동적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인간을 죄인으로, 또한 죄를 만들지는 아니했다. 그러면 아담이 죄를 창조했는가? 그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의 거대한 인격의 힘처럼 보인다. 죽음의 옴은 죄의 활동적인 결과다. 이러므로 죄의 우주성과 보편성이 있다.
그렇다고 죄가 운명은 아니다. 죽음은 숙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12모든 자가 범죄했다).
1. 죄란 단순히 죄의 행위뿐 아니라, 인간을 규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즉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하는 인간을 규정하는 힘이다. 따라서 인간은 죄를 행할 뿐 아니라, 본래적인 의미에서 죄인이다(인간이 죄를 행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행한다).
2. 죄란 인간의 피조된 구조 속에 속하지 않는다. 죄란 인간의 본래적 존재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인간을 그 죽음의 길에 집어넣도록 유혹하는 그 어떤 것이다. 인간은 죄가 아니라, 죄의 노예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타락의 전표를 갖고 시작된다(시 51,7). 구약과 신약은 죄의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대적인 죄죽음의 상관관계
1. 죽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닥치는 운명이다. 의로운 자인 아브라함과 모세도(집회서 25,24; 4 에스라서 3,7) 죽어야 한다.
2. 죽음은 각 죄의 결과다. 아담에게 일어난 것이 다시 모든 인간에게 일어난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종합한다. 아담의 죄와  그리고 각 인간의 죄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두 가지 사실이다.
-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
1) 대비의 상응성w&"  ou@tw"(18)         w@ster  ou@tw"(19. 21)
아담과 그리스도는 역사하는 거대한 힘이다. 둘 다 다 모든 자(pavnte"), 많은 자(polloiv)를 규정한다. 아담은 전체 아담적 인간을 규정하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을 규정한다. 바로 이 인간이란 새로운 인간이다. 첫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성 없이 창조했지만, 새 인간은 인간과의 인격적 관계성 속에서 새 창조를 만든다. 여기서 하나님과 화해된 새 인간상의 역사를 그리스도는 만들고 있다.
2) 비 상응성(4개의 언어적인 특징)
a)
1. 그러나 와 같지 않다( *all * ou*c, 15)가 14b에 뒤따라 나타난다. 따라서 대비적인 특징이 부각된다. 15-17에서 이러한 대비적 특성이 나타난다.
2. 와 같지 않다(ou*c w&"  ou@tw"15. 16)
3. 더욱 더(ei* gaVr  pollw'/ ma'llon15. 17)
4. 그러나(toV meVn  toV deV, 16b)
결론서로 대비적이다. 그러나 은혜의 힘이 더욱 더 크다.
b) 아담과 그리스도의 행위의 비상응성
1. 아담의 범죄에서 인간의 행위가 언급된다. 여기서 인간은 행위자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편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행위자요, 하나님의 은혜가 언급된다. 여기서 인간은 수동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이란 은혜를 받은 자요, 선물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2. 아담의 행위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
그리스도의 행위와 선물은 그 사역에 있어서 죄인에게다(homo peccator).
아담 편에서는 모든 인간이 아담이 하는 것을 행한다. 즉 모든 사람이 범죄를 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편에서는 인간의 어떤 행위도 언급되지 않는다. 모든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행한 자리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은 아담의 범죄가 개정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단순히 아담을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는 달리 더욱 더(pollw'/ ma'llon)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운 현실을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볼 수 있다(고전 15,54; 부활이 죽음을 삼킨 것이다).
1) 아담과 그리스도는 극단적인 대비다. 그러나 아담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대비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원론을 말한다.
2)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한 편으로는 은혜아래 서면서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죄 아래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죄 아래 지배당하고 있던 인간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첫째마지막 아담)         아담(둘째 아담)
1) 오실 자                        오실 자의 표상(14)
2) 은사                        범죄(15)
3) 그리스도의 은혜로 선물이,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15)
4) 은사는 의롭다함을,                심판은 정죄를(16)
5) 은혜와 의                        범죄와 사망(17)
6) 의의 행동의롭다함                범죄정죄로(18)
7) 순종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불순종많은 사람이 죄인으로(19)
8) 은혜가 넘치다                죄가 더하다(20)
9) 은혜도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21)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
1) 첫 번째 아담                두 번째(마지막) 아담(고전 15,45)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음        하나님의 형상 자체(고후 4,4)
3) 뱀(사탄)의 유혹을 받다        사탄의 유혹을 받다(마눅 4,1)
4)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구약 인용)
5)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하나님이 피조물처럼(빌 2,6이하)
   인간의 교만                          그리스도의 겸손
6) 말씀의 불순종                말씀의 순종(겟세마네의 기도)
   결과죽음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
7) 하와에게 책임전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눅 23,34)
8) 분열하나님자신인간자연        화해하나님자신인간자연
                                       (엡 2,13-18)
예예수의 세례 받음유혹 받음막 1,9-13하늘이 열리다들짐승이 함께 하다
    천사들이 수종든다.
9) 노동이 형벌로                노동이 하나님의 복으로
  (자기 생명을 유지키 위한 수단)        (이웃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10) 죽음정죄갈등불안        생명의로움화해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