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의 배경, 영지주의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문제의 근원은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적인 경향의 신앙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의 신학과 신앙 행위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그들의 카리스마적이고 열광주의적인 신앙은 그들로 하여금 고난과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과 영광에만 집중하는 신학적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러한 신학은 또한 그들에게 이미 모든 것이 이루었다고 하는 영적 자만심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카리스마적, 열광주의적 경향은 결혼과 같은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견해를 묻는 편지를 썼다(고전 7:1). 이들은 또한 성령의 은사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방언과 같은 외적으로 표출되는 은사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서로 자신의 영적 능력을 내세우는 일에 경쟁적으로 집중하였다. 따라서 눈에 뜨이지 않는 은사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었고, 이것이 공동체의 균열을 불러 왔다. 이러한 상황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에 이르는 긴 '은사론' 혹은 '교회론'을 바울이 쓰게 된 동기이다.
[영지주의]
영지주의(靈知主意) 혹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는 고대 그리스어로 ‘앎, 깨달음,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 등의 뜻을 가진 γνωσις(gnosis)에서 비롯된 용어로 1세기 말에 기독교 및 지중해 연안의 토속종교들의 신학적 이론과 사상을 절충하여 이루어진 하나의 종교적 경향 혹은 주의를 일컫는다. 영지주의라는 말은 영적인 지식, 영적인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다는 신념에 따라 예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는 예수가 인간의 탈을 썼을 뿐,인간이 아니라는 가현설을 주장하였다. 구원이란 바로 예수와 같은 빛의 사자에 의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라는 신념 체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교육이나 경험적 관찰이 아닌 신적 계시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를 중시해 내면의 준비 과정과 자아 성찰, 변화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리
‘영지’의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식같이 산만하고,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재에 대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신비한 영역이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식인 것이다.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비한 영역에서 오는 신적 존재의 ‘섬광(spark)’ 또는 ‘씨앗(seed)’은 전적으로 악한 물질 세계에 주어졌다고 한다. 그 섬광들 또는 씨앗들은 인간의 몸에 갇혀 있지만 ‘신비한 지식,’ 즉 ‘영지’로 다시 일깨워진 신적 요소는 사람들을 초월적 영적 영역에서 적절한 보금자리를 갖도록 한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라고 할 때는 영지를 소유한 자들, 즉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지를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 영지를 통해 극상의 존재인 가장 거룩하고 존귀한 하느님과 연합하여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에서는 그것을 구원으로 본다. 즉,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얻은 지식을 통하여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에서는 인간은 신성을 소유하고 있는 영혼이, 불완전한 창조자에 의해 창조된, 불완전한 육체에 갇히게 되었다고 본다. 이 불완전한 창조자를 데미우르게라고 부르며, 대개는 기독교/유대교의 하나님(하느님)과 동일시한다. 데미우르게는 악의 근원, 또는 단지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 데미우르게는 또 다른 완전하며 선한 존재와 대비된다. 이러한 불완전한 육체의 세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그노시스적 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이러한 완전한 존재의 화신이며 영지를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는 지중해와 중동 지역에서 흥행했으나, 서기 4세기에 문자주의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국교화 되자 문자주의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박해대상이 되었으며, 많은 영지주의 자료들도 훼손되었다. 이슬람교의 확산에 의해 남아있는 영지주의자의 수는 더욱 줄었으나 현재까지 내려오는 단체들이 있다. 영지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신비주의적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어떤 단체들은 영지주의의 전통을 이어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해문서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이 직접 작성했던 저서들을 통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문제의 근원은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적인 경향의 신앙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의 신학과 신앙 행위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그들의 카리스마적이고 열광주의적인 신앙은 그들로 하여금 고난과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과 영광에만 집중하는 신학적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러한 신학은 또한 그들에게 이미 모든 것이 이루었다고 하는 영적 자만심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카리스마적, 열광주의적 경향은 결혼과 같은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견해를 묻는 편지를 썼다(고전 7:1). 이들은 또한 성령의 은사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방언과 같은 외적으로 표출되는 은사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서로 자신의 영적 능력을 내세우는 일에 경쟁적으로 집중하였다. 따라서 눈에 뜨이지 않는 은사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었고, 이것이 공동체의 균열을 불러 왔다. 이러한 상황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에 이르는 긴 '은사론' 혹은 '교회론'을 바울이 쓰게 된 동기이다.
[영지주의]
영지주의(靈知主意) 혹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는 고대 그리스어로 ‘앎, 깨달음,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 등의 뜻을 가진 γνωσις(gnosis)에서 비롯된 용어로 1세기 말에 기독교 및 지중해 연안의 토속종교들의 신학적 이론과 사상을 절충하여 이루어진 하나의 종교적 경향 혹은 주의를 일컫는다. 영지주의라는 말은 영적인 지식, 영적인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다는 신념에 따라 예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는 예수가 인간의 탈을 썼을 뿐,인간이 아니라는 가현설을 주장하였다. 구원이란 바로 예수와 같은 빛의 사자에 의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라는 신념 체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교육이나 경험적 관찰이 아닌 신적 계시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를 중시해 내면의 준비 과정과 자아 성찰, 변화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리
‘영지’의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식같이 산만하고,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재에 대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신비한 영역이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식인 것이다.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비한 영역에서 오는 신적 존재의 ‘섬광(spark)’ 또는 ‘씨앗(seed)’은 전적으로 악한 물질 세계에 주어졌다고 한다. 그 섬광들 또는 씨앗들은 인간의 몸에 갇혀 있지만 ‘신비한 지식,’ 즉 ‘영지’로 다시 일깨워진 신적 요소는 사람들을 초월적 영적 영역에서 적절한 보금자리를 갖도록 한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라고 할 때는 영지를 소유한 자들, 즉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지를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 영지를 통해 극상의 존재인 가장 거룩하고 존귀한 하느님과 연합하여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에서는 그것을 구원으로 본다. 즉,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얻은 지식을 통하여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에서는 인간은 신성을 소유하고 있는 영혼이, 불완전한 창조자에 의해 창조된, 불완전한 육체에 갇히게 되었다고 본다. 이 불완전한 창조자를 데미우르게라고 부르며, 대개는 기독교/유대교의 하나님(하느님)과 동일시한다. 데미우르게는 악의 근원, 또는 단지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 데미우르게는 또 다른 완전하며 선한 존재와 대비된다. 이러한 불완전한 육체의 세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그노시스적 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이러한 완전한 존재의 화신이며 영지를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는 지중해와 중동 지역에서 흥행했으나, 서기 4세기에 문자주의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국교화 되자 문자주의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박해대상이 되었으며, 많은 영지주의 자료들도 훼손되었다. 이슬람교의 확산에 의해 남아있는 영지주의자의 수는 더욱 줄었으나 현재까지 내려오는 단체들이 있다. 영지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신비주의적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어떤 단체들은 영지주의의 전통을 이어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해문서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이 직접 작성했던 저서들을 통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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