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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울의 사도직과 그 권리의 정당성(고전 9:1~12)

에반젤(복음) 2019. 12. 17. 17:18



       

* 오늘의 말씀 : 바울의 사도직과 그 권리의 정당성(린도전서 9:1~12)

 

* 본문요약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자기에게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주께로부터 직접 세우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한 바울은, 자신이나 바나바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교인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돈을 써 가며 일하는 군인이 없고, 포도를 심은 이가 그 포도를 먹으며, 양을 치는 자가 그 양의 젖을 먹고, 하다못해 소도 타작마당에서 일할 때 그 입에 망을 씌우지 않는데, 주를 위해 일한 자가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혹시 지장이 될까 싶어 이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찬 양 : 351(321) 날 대속하신 예수께

          352(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 본문해설

 

1. 바울의 사도직의 증거(1~2)

 

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주 예수님을 뵙지 못했습니까?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한 열매가 바로 여러분이 아닙니까?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내가 사도는 것을 보증하는 인()친 표(확실한 표)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1) :

당시 사도로 인정을 받으려면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아야 하고, 예수께서 사도로 직접 세우신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예수께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아 사도로 세움을 받았으므로, 사도가 가진 위의 두 가지 요건에 충족이 되어 다른 열두 사도와 같이 주님의 사도로서 활동을 한 것입니다.

 

- 내가 사도라는 것을 인친 표는 여러분입니다(2) :

고린도는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타락한 도시였는데, 그런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서 예수를 믿게 하였으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야말로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표라는 것입니다.

 

 

2. 사도로서 바울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들(3~10)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변명(답변)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라고 해서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동생들)이나 게바(베드로)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습니까?

6) 어찌 나와 바나바에게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

7) 누가 자기 비용으로(자기 돈으로 생활하며) 군 복무를 하겠습니까?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습니까? 누가 양 떼를 기르면서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습니까?

8) 내가 단순히 사람의 관례대로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기를,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25: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10) 오로지 우리를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를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자기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 어찌 나와 바나바에게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6) :

주를 위해 일하는 자는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바울과 바나바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9) :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비록 소일지라도 자기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것이 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3. 사도의 권리를 포기하는 바울(11~12)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신령한(영적인) 씨앗을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지장이 될까 싶어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12) :

바울도 다른 사도들처럼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었으나, 복음을 전하기가 척박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지장이 될까 싶어 바울은 그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가 직접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 묵상 point

 

1. 바울의 사도인 이유

 

  당시 사도로 인정을 받으려면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아야 하고, 예수께서 사도로 직접 세우신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모두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고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도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정도 지낼 때에 예수께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았고, 주께로부터 직접 세우심을 받았으니 다른 열두 사도와 같이 주께 세우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2.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직을 인()친 자들이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께로부터 직접 교육도 받고 사도로 세우심도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본 일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의심했습니다. 그가 예수께 직접 교육 받은 것을 어찌 알겠으며, 예수께서 직접 그를 세우셨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그가 사도임을 인()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예수님을 믿게 한 것이 바로 그가 사도임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는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타락한 도시였는데, 그런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서 예수를 믿게 하였으니, 지금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야말로 바울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는 것을 증거 하는 가장 확실한 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하여 : 나는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말할 수 있나?

 

  예수님도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하는) 그 일은 믿으라”(10:38)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고린도에서 그가 한 일이 자신이 주님의 사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들 중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고 증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알라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일을 무엇으로 말하겠습니까?

 

 

3. 복음을 위하여 권리를 포기한 바울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자신과 바나바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고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돈으로 군 복무를 하는 자가 없고, 포도를 심은 자가 그 포도를 따 먹으며, 양을 친 자도 자기가 친 양의 젖을 먹는데, 하나님을 위해 일한 자는 더욱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경우만이 아니라, 율법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25:4을 보면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떠는(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도 일했으면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에게까지도 그 삯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고린도교회를 세운 바울과 바나바는 그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더욱 마땅한 일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린도는 복음을 전하기 아주 힘든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그들이 생활비를 받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어 바울과 바나바는 생활비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들이 직접 일을 하여 생활비를 조달하였습니다.

 

적용 1 : 평신도 입장에서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였으니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전적으로 목회에만 전념하지 않으면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는 복잡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레위인의 생활을 다른 지파 사람들이 책임졌듯, 성도들이 그 교회의 목회자의 생활을 담당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오늘날의 교회가 바울도 생활비를 포기했으니 지금 교회의 목회자들도 바울처럼 생활비 받지 말고 자비량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도저히 생활비를 줄 형편이 안 되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형편이 충분히 되는데도 불구하고 본문을 근거로 주지 않으려는 것은 말씀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잘못된 일입니다.

 

적용 2 : 목회자 입장에서

 

  하지만 목회자들은 이 말씀을 가슴 아프게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사역지를 정할 때에 그 교회의 성도들이 얼마인지, 한 달에 받는 생활비는 얼마인지를 보고 정합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가정까지 가진 목회자들이 생활비를 포기한 바울처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내 생활은 주께서 책임지시리라는 믿음으로 오직 복음을 위해 충성하는 바울을 본받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포기했기에 더 어려워진 바울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하기에 온 힘을 다하기 위해서 생활비 받는 것까지 포기하고 자비량하여 복음을 전했으면, 마땅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이를 본받아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비량하여 복음을 전하니,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 오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에 대하여 이런저런 뒷말들을 하고, 바울을 능력 없는 자 취급을 하였습니다.

 

묵상을 위하여 : 내가 가진 편견을 조심하십시오.

 

  바울은 키도 작았고 말주변도 없었으며, 게다가 간질병 같은 고질병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도입네 하고 왔는데, 생활비도 안 받고 자비량하여 섬긴다고 하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를 가볍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가장 뛰어난 사도였습니다.

  세상은 겸손한 자를 업신여깁니다. 세상은 성실한 사람을 바보 취급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까봐 염려하는 사람을 새가슴이라고 놀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사람을 더 큰 자로 여기십니다. 내 편견으로 하나님께서 훌륭한 자로 여기시는 자를 형편없는 자 취급한 적이 없었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5. 복음을 위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는 바울

 

  이렇게 자신에 대하여 뒷말이 많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바울은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요? 저는 바울처럼 온유한 자가 못되어 저 같았으면 그리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한 번 더 낮추어 겸손하게 자신을 향한 모든 뒷말들을 일일이 적어가며 그것이 아니라고 변명(해명)을 합니다. 자신을 잘 봐달라는 변명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변명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하여 :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생각하십시오.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자존심을 내려놓으십시오.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겸손해지십시오.

복음을 위하여 한 번만 더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 기도제목

 

1. 내가 주님을 믿는 참된 백성임을 주께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내 편견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게 하옵소서.

 

3. 오직 복음을 위하여 한 번 더 겸손하고 충성된 자가 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