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베소서 강해

신앙생활은 영적전투

에반젤(복음) 2019. 12. 11. 16:06



        

◈신앙생활은 영적전투                  엡6:12            출처보기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6:12


 

우리는 지금 영적전쟁 중입니다!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신앙생활이 전투라는 사실을      ←설교제목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은, 신앙생활이 일종의 종교적 유희나

생활의 위로를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하고 다른 종교에서는 영적 전투라는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고행과 수련이라는 일종의 극기 훈련 정도의 연단은 있지만

그것을 전투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삶을 ‘영적 전쟁’이라고 선언하고 있고,

우리를 그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군사’로 곳곳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랑, 겸손, 희생, 섬김, 핍박 받음으로 싸웁니다. ‘강함’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은 수많은 전쟁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하고

그 전쟁마다 하나님이 개입함으로써 승리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 전투는 결국 패전하게 되며,

전술 전략에서 항상 하나님의 의도를 반영하도록 지시하고 있으며,

그 전투를 치르는 병사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승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영적 전투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전투 원리를 제공해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력인) 적과 마주해서 싸워 승리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전쟁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과의 전쟁입니다. 엡6:12


이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서

그 전쟁 자체를 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용사입니다. 딤후2:3

그리고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은 영적입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영적으로 인식할 때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이며,

그렇지 못하면 지고 맙니다.


이 전쟁에서 적군은 사단과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들인데,

그들은 쉬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요10:10

그 도적 또한 사단입니다.

우리는 이 도적과의 전투를 쉬지 않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쉬지 않고 수시로 우리들에게 전투를 시도합니다.

그럴 때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전투에 관한 개념조차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주제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일종의 종교 행위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식에 참여하고, 교리를 아는 것 정도로

신앙생활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나 타 종교에서 행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싸우시는 하나님”입니다(대하 32:8, 신 20:4, 신 3:22, 사 51:22, 느 4:20).

그리고 우리는 그의 병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당연히 전투에서 질수 밖에 없고

많은 것을 사단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단과의 전쟁에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지게 되어 빼앗기는 것으로써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리고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신 무기인 영적 권세들입니다.


전투combat에서 적군에게 패하면 병사들은 포로가 되어 무장 해제를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지게 되면

제일 먼저 이 무장해제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세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큰 전쟁war에서는 이미 이겼고, 결국 최후에 이길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무엇입니까?

포괄적으로 설명하면 그것은 권세와 권리입니다.

이것을 적에게 내주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각종 능력들이 있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며 예언하며, 영을 분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각종 정보를 분별하는 능력이 모두 빼앗기게 되어

무덤덤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아무런 것도 할 줄 모르는, 무지하고 무능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되찾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구제하고 섬기고 돕기 위해서 주어진 각종 축복들

즉, 물질과 부요함과 건강 등을 빼앗기고 어려운 삶을 살고,

 

질병에 시달리며, 불행한 일에 휘말리고

갈등과 다툼과 분노와 충돌로 인해서 삶이 황폐해지며

마귀에게 사로잡혀 불의한 일을 계속하고 악습에 묶여서 시간을 허비합니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악한 습관들 즉 도박, 술 취함, 방탕, 허세부리기,

우울증, 과대망상, 게으름, 비난하기, 다툼, 당 짖기, 술수를 부리기,

아첨하기, 불륜행위, 도적질하기 등과 같은 악한 일을 교묘하게 행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악에서 떠나지 못하며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위선적인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별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미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 양심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투에서 패배한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무기력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영적 전투에서 실패한 결과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슬픈 일입니다.


자기 축사(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공격하는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는 것)를 주기적으로 행하고

사단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요?


자신이 치르고 있는 영적 전쟁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전략을 새롭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되고,

그것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또한 얼마나 될까요?


영적 전쟁에 대한 무지는, 아마도 그릇된 교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자동적으로 승리하기 때문에

영적 전쟁 같은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가르침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이기고 사단을 이겼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항상 치러야 할 영적 전쟁을, 소홀히 하는 불행한 결과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을 우리들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이 우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사단과 제대로 전쟁도 치르지 않고 무장해제를 당한 것입니다.


‘대적기도’ ‘전투기도’ ‘집중기도’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다수일 것이며,

들어보긴 했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절대 다수일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단을 멸하셨지만.. 완전히 멸한 것은 아닙니다.

사단을 무력하게 했지만 그 숨통을 끊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사단을 패퇴시킬 날은.. 주의 재림이 일어나는 그 때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들에게 주어질 그 날까지

사단은 (약화된 능력으로) 우리들을 괴롭힐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단의 어떤 공격에도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는

전략과 무기를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와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로 무장하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엡 6:14~17).


이 무장으로 인해서 우리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능히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The whole armour of God)는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무장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제도로 갖추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사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것이며,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안타깝게도 이 무장을 해제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결과, 우리는 끊임없이 사단으로부터 공격에 시달리거나

많은 것들을 빼앗겨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우리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승리를 보장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정하고

십자가의 권세를 사용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사단에게 빼앗겼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수시로 사단을 몰아내는 기도를 해야 하며, 사단의 속임수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적기도를 해야 합니다.


대적기도가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이를 악물고 그 악습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게 하며 시험에 빠지게 함정을 파놓게 됩니다.

마치 정밀유도탄처럼, 사단은 나의 죄를 정확히 찾아내어, 공격할 것입니다.


죄의 처리와 단절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의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 본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단의 공격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단과의 전쟁에서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빼앗긴 축복도 되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와 축복을 되찾는다면

우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유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분요는 사라지고 평안이 가득해질 것입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건강해질 것입니다. 가족의 다툼이 사라지고 화목해질 것입니다.

정신없이 추구하던 허욕이 사라짐으로써 삶이 건강해지며,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게 되며,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평안으로 인해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하지 않게 되어

아등바등하던 삶의 태도가 바뀌어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넉넉함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어 자족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빌 4:12).

모든 것에 자족할 줄 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일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승리는 그리스도의 분깃으로

우리 안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단에게 빼앗겼다면 되찾아야 합니다.


....................


◑성도는 ‘죽음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유명한 심장 전문의의 글을 읽었습니다.

메멧 오즈(51세)라는 외과의사인데, 미 컬럼비아대 의대교수이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건강 코너와 <TV 닥터 오즈 쇼>를 진행하고 있고,

국내에도 소개된 베스트셀러 <내 몸 사용설명서>의 저자이기도 한 유명한 분입니다.


그는 불시(不時) 수술이 많아, 수도승처럼 살았답니다.

흰 쌀· 흰 빵· 흰설탕과 담배는 입에 안 대고, 술은 이틀에 딱 한 잔만 했답니다.

그가 나이 50이 되어

반(半)세기나 세상살이를 한 기념으로 건강진단을 받아보았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건강만큼은 자신하였던 그가, 검사를 담당했던 친구 의사로부터

‘의심스러운 용종(polyp)이 보인다.’는 진단 결과를 듣고서 교만이 꺾어졌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내게 더 허락된 삶이 40년일까, 1년일까?’

하는 생각이 났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났답니다.

‘아내한테 뭐라 할 것이고, 25살부터 12살까지 자식 넷한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청자들한테 사실대로 고백해야 할까.

내가 의대에서 배운 건 위기를 당한 환자를 고치는 것뿐이었지,

죽음에 직면할 이들에게 해줘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무엇을 공부했었나?’


비로소 자신의 환자들이 그동안 느꼈을 공포와 분노를 알게 됐다고

자신이 너무나 교만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마귀의 종노릇하고 삽니다.

“너는 죽을거야!” 하면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더 이상 마귀의 종노릇,

죄의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다는 말은 “죽어도 좋다.”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죽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기 사명을 다 했으면 ‘죽어도 좋은 것’이고,

자기 사명을 아직 다 완수 못했으면 ‘더 살아서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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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를 쫓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 - 케네스 해긴                     출처


※약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비적인) 내용이 있더라도,

꼭 필요한 부분만 선별해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예수님보고,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기다리거나, 부탁하지 말고,

 내가 직접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주제의 글>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동안,

원숭이처럼 생긴 악령 하나가 예수님과 나 사이를 뛰어 지나가더니


그 귀신이 자기 팔과 다리를 흔들며 위 아래로 뛰어오면서 날카로운 소리로 고함쳤습니다.

"야케티 약, 야케티 약, 야케티 약"


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내게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시끄러워서)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을 내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모르시나?

난 그걸 들어야 해, 중요한 말씀인데 난 지금 놓치고 있어.’


그런데 나는, 왜 예수님께서 그 악한 영에게

그치라고 명령하지 않으시는지 의아했습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악한 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 계속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왜 주님께서 그를 쫓아버리지 않으시는지 의아했지만>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나는 자포자기하여 내 손가락으로 그 악한 영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는 잠잠할 지어다!"


그는 즉시 멈추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검은 연막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영은 바닥에 누워 낑낑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는데, 마치 매 맞은 강아지 같았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단지 조용히 있을 뿐 아니라 일어나 여기서 나가라!"

그는 일어나 도망가 버렸습니다.


나는 왜 예수님께서, 이 악한 영이 방해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는지 여전히 의아했고

예수님께서는 물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뭔가 하지 않았다면, 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마귀를 대적해서 기도하면

내가 뭔가 행할 것이라고 말한 곳은 신약성경 어디에도 없단다.

마귀를 꾸짖어 달라거나 뭔가 마귀에 대해 역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된 곳은.. 서신서 어떤 장면에도 없단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러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쇠사슬로 마귀를 묶어 무저갱에 가둘 때까지

그가 하고자 하시는 일은 이미 모두 하셨다.


신약의 기자들이 모두 교회를 위해 기록하면서,

마귀에게 뭔가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신자들이라고 기록 했다.


믿는 자는 마귀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래서 성경에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막16:17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처음 표적 중의 하나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 말은,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를 다스리는 권세를 사용하라 의미이다.


나는 마귀를 다스리는 권세를 교회에 넘겨주었고,

나는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일할 수 있는데, 이는 내가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믿는 자들에게 기록하기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라고 했다.


야고보는 ‘하나님으로 마귀를 대적하게 부탁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너희가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너희를 피할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나중에 '피하다(flee)'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어떤 정의에 따르면

‘공포에 질려 어딘가로부터 달아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읽었을 때, 환상에서 내가 악한 영들을 꾸짖었을 때

그들이 어떻게 달아났는지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계속,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할 때면

그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나타내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했다.


너는 무엇을 하려느냐?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며 말하기를 ‘나는 매 맞았어요’라고 하려느냐?

아니다. 결코 아니다. 9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라고 되어있다.


마귀를 다스릴 건세가 없으면서 그를 대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를 다스릴 권세를 이미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너는 그를 대적할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라고 했다.

이 말은 마귀가 네게 들어오도록 어떤 틈도 주지 말라는 의미이다.                              


네가 그에게 허락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네게 들어올 수 없다.

그러려면 네가 그를 다스릴 권세를 가져야만 할 텐데,

그렇다면 이것은 진리이다! 네가 그를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 케네스 해긴 <나는 환상을 믿습니다> 가운데서                            ▣ 영적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