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에 나오는 핵심어 3가지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敎會)’입니다.
에베소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묵상한다면 ‘과연 무엇이 참된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가 확실히 보입니다.
에베소서를 포함한 신약의 모든 서신서를 묵상할 때에는, 그 서신서의 주된 논지(論旨)를 이루는 핵심어(核心語)를 파악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에베소서의 논지를 이루는 핵심어를 ‘우리’, ‘능력’, ‘비밀’이라는 3가지 단어로 뽑아 보았습니다. 이 3가지의 단어는 ‘교회’를 설명해주는 아주 중요한 핵심어가 되고 있습니다.
1. 우리
‘우리’라는 말은 성경에 아주 자주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라는 단어를 에베소서의 핵심어로 특별하게 뽑는 이유는, 에베소서에서는 ‘우리’라는 단어를 아주 일관되게 ‘교회’로서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서신서에도 ‘우리’라는 단어가 ‘교회’의 의미로 사용되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의미, 즉 ‘사도를 포함한 그 일행’만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에서만큼은 ‘우리’라는 단어가 시종일관 ‘교회’의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의 대부분이 비(非)유대인, 즉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에베소서 2장 11절~22절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11~22)
‘복음’이 전해지지 않던 시절에는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막힌 담이 있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는 도저히 가까이 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이 두터운 담을 허는 커다란 능력이 있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 언약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과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권속으로 담대하게 들어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주 의도적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14절의 아주 짧은 구절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사용되어지고 있는지 세어보십시오. 열 두 절이라는 짧은 구절 속에 무려 11번이나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시는 ‘우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되새겨서 온전한 사랑의 핵융합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나, 너, 우리’라는 주제로 말씀이 전해진 바가 있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성삼위 일체로 존재하시는 한 하나님, 즉 ‘우리’로서 존재하시는 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특히 신약의 성도들)을 교회 안의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한 몸이 된 교회를 위하여 친히 기도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7장).
에베소서는 그날 밤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바로 그 ‘한 몸’이 될 것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능력
‘능력’이라는 단어도 에베소서에서 빠져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핵심어입니다.
일례로 ‘능력’이라는 단어가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에베소서에서 7번이나 나옵니다. 그 외에 비슷한 의미로 쓰인 ‘그의 힘의 강력’, ‘권세’라는 표현을 합하면 9번이나 됩니다.
(1) 성도 안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는가?
사도는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mighty power)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라 하셨습니다. (엡 1:19)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얼마나 크신 능력을 베푸셨는지를 알게 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를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제대로 거듭난 사람은 특별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크신 능력을 베푸셨는지 스스로 (감각적으로)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각적인 지식이 아무리 강력하고 확실하다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실제적으로 행하시는 능력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조명과, 그 밖에 연구와 묵상의 깊이가 더할수록 성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이전에 깨닫고 느꼈던 것보다 언제나 비교할 수 없이 훨씬 크다는 사실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부단히 연구하고 탐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거듭난 자가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위력을 항상 바르게 인식하여 담대하게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이것(엡 1:19)을 힘주어 기도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거듭나지 않았더라도 복음의 부르심을 입어서 천국을 침노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장차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능력으로 자신을 거듭나게 하실 지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이고 확고한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대감과 소망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 믿음에 비례하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은 아주 자명한 일입니다.
(2) 능력의 실체는 ‘부활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성도 안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성령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다름 아닌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을 호칭할 때에 ‘살리시는 성령’ 혹은 ‘생명의 성령’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0~23)
성령님은 ‘부활의 일’을 행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일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20절을 보면 ‘그 능력’(곧 ‘성령님의 부활하게 하시는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능력’이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시고 만유를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말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성령님의 권능이 ‘교회’ 가운데 충만히 나타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지고하신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부활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교회에 있기만 하면 육신적으로 당장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다시 바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부활은 마지막 때, 성도의 부활이 있을 것으로 정해진 어느 시점에 전 세계적으로 단번에 일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에 충만한 부활의 능력’이란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이 제대로 거듭나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실제로 다시 살아나신 일만큼이나 엄청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제대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님의 부활의 능력이 실제로 발동(發動)됨으로서 일어나는 엄청난 능력의 일이요 범(凡)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다음에 에베소서 2장 1절~10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10)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신 주체(主體)가 누구이십니까? 그것은 바로 앞의 말씀, 즉 에베소서 1장 20절~23절에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0~23)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고, 교회의 머리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의 능력’, 즉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성령의 능력’이 충만히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령의 능력으로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만물 안에서 이미 충만으로 역사하시면서 존재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미 충만으로 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재(再) 충만, 혹은 가일층(加一層) 충만이라고 설명하고 계십니다.
사자성어 중에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것 위에 더 좋은 것이 더해졌더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약의 교회가 탄생하기 전에도 이미 충만(생명의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면서 존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께서 자신의 피로 신약의 교회를 구속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미 충만이신 그리스도의 가일층(加一層) 충만이므로 그냥 충만이 아니라 ‘특별 충만’이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특별 충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제곱 충만, 더블 충만으로 나타나는 곳입니다.
거룩한 구원 266~268 페이지를 꼭 숙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이미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성령님께서 누군가의 심령에 찾아오시면, 하나님께서 택자들을 위해서 예비해주신 그 특별하고 풍성하신 은혜의 실체를 다 깨달을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2)
우리(성도)에게 이루신 은혜는 무엇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요, ‘부활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은 예수님 안에 충만한 모양으로 존재하며, 이런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특별 충만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 (즉 회심의 역사, 거듭남의 역사)가 충만히 나타날 것을 뜨겁게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합심하고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우선 본인(本人) 안에서 이 부활의 능력이 확실하게 나타나기를 기대해야 하고, 이 부활의 능력이 본인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나라로 침노하는 분들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교회 밖의 택자들을 위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파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비밀
에베소서를 설명하는 핵심어 중에서 가장 내밀(內密)하고 소중한 부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의미심장한 뜻으로서의 ‘비밀’이라는 단어는 전체 성경 중에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제일 많이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각각 6번씩 나와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 말씀을 보면, 만세와 만대로부터 ‘어떤 비밀’이 줄곧 감추어져 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 드디어 신약의 성도들에게 완전하게 공개되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 1:26)
우리 조상들은 옛적부터 천기(天機 - 하늘의 비밀)를 누설하면 큰 벌을 받는다고 여겨왔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허락받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하늘의 비밀을 남에게 알리거나 발설하면 큰 벌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천기(天機) 중의 천기(天機), 즉 ‘천국의 특급 비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 그것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나와 있습니다!
천지(天地)의 주인께서 직접 공개하시고 열어 보여주셔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하늘의 비밀’입니다.
그 비밀 공개장(公開狀)이 바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특히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허락이 주워졌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의 특급 비밀’을 열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쳐져왔던 ‘하늘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비밀’에 대한 설명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비밀이라는 실체’는 똑같지만 이 비밀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특정한 사람의 얼굴을 묘사할 때에 ‘얼굴이라는 실체’는 같지만 그것을 오른쪽에서 보고 묘사한 것과 정면에서 보고 묘사한 것에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나오는 ‘만세부터 감취었던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관점’에서, 골로새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묘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이시오, 그리스도가 곧 교회이십니다.
교회를 잘 설명하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잘 설명하는 것이 됩니다. 뒤집어서 그리스도를 잘 설명하면 그것이 곧 교회를 잘 설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A. 에베소서에서 묘사된 ‘비밀’
비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에베소서의 모든 구절들을 다음과 같이 뽑아보았습니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최소한의 구절만 뽑은 것이니, 이 구절들의 앞뒤에 나오는 에베소서 전체의 맥락 속에서 깊이 있게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7~10)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 3:1~4)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7~11)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22~3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6:18~20)
B. 골로새서에 묘사된 비밀
이 구절들 역시 ‘비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최소한의 구절들만 뽑은 것입니다. 골로새서 전체의 맥락 속에서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5~29)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골 2:1~5)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골 4:3,4)
C. ‘우리’가 적용해야 할 것은?
우리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로 우리가 적용해야 할 점은 과연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또한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바로 아는 데에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올바른 기독론(基督論, 즉 그리스도론)과 교회론(敎會論)에 대하여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마귀는 ‘기독론(基督論)’과 ‘교회론(敎會論)’을 타락시킬 것입니다. 기독론과 교회론은 마귀의 주 공격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성령께서 계실 동안, 진리의 성령께서는 참 교회 위에 계셔서 이 기독론과 교회론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단히 묵상하고, 우리 감사교회의 교과서인 ‘거룩한 구원’을 깊이 자주 정독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성쌓기의 글들도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양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현대는 정보과다의 폐해가 너무 심합니다.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전부 다 정확한 것도, 유익한 것도 아닙니다.
위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책의 사람’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위로 많은 책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선별해서 읽되, 가장 우선적으로 성경과 교과서에 충분하게 푹 젖어 들어갈 때까지 읽고 또 계속 묵상해야 합니다.
위조지폐(僞造紙幣)를 감별하는 감별사들이 진폐(眞幣/진짜 돈)와 위폐(僞幣/가짜 돈)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훈련은 정작 여러 가지 위폐(僞幣)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진폐(眞幣)를 최대한 자주, 보고 또 보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하자있는 것을 자주 본다고 해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진짜’를 자주 보고 또 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링컨의 삶을 변화시킨 책은 단 세 권의 책(그중에서 제일은 성경)이었다고 합니다. 죠지 휫필드 목사님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책은 헨리 스쿠걸의 ‘인간의 영혼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정보가 많으면 분산됩니다. 정작 집중해야 할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감사교회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기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 혹은 다른 모든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감사교회라는 장(場)을 통해서 모든 적용과 실천을 다 해봐야겠다는 마음과 태도를 지녀야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1시간보다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15분의 기도가 훨씬 양질의 기도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골방의 기도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골방의 기도를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저 또한 은밀한 골방의 기도가 전혀 없이, 남의 이목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태도에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지 않으면서 골방의 기도를 충실히 하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믿는 자 두 세 사람이 모인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훨씬 많습니다. 위에서도 이미 언급을 했지만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의 ‘특별 충만’이 가득한 곳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 ‘특별 충만’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어야 교회 생활이 기대와 소망으로 넘쳐나게 되고 또 박진감이 생겨날 수 있게 됩니다.
4. 결론
마지막으로 고린도 후서 3장 12절~18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께로 충실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이심을 알고 그 분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영안이 닫힌 사람은 열려질 것이요 조금 열려진 사람은 활짝 열려져서 성령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밝히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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