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욥기 강해

[스크랩]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책망[욥 5장]

에반젤(복음) 2019. 8. 5. 20:57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책망[욥 5장]
 
[내용개요]
 전장에서 엘리바스의 논지는 욥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욥이 당한 고난의 근거가 과거의 범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본장에서는  그러한 논지가 더욱 구체화되어 확고한 신념으로 서술된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충고가 수용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회개를 촉구하며, 자기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신 의존적 신앙으로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바스의 주장 속에는  다음과 같은 모순이 숨겨져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면만을 증거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빠져 있는 것이다. 본 장은 미련한 자가 당하는 멸망과(1-2절) 악인의 비참한 운명(3-5절), 그리고 고난 그 자체인 인생(6-7절)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과(8-16절)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내용이(17-27절) 기록되어 제4장에 이어 제5장에서도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가 기록되어 있다. 

 
[강  해]
 본장에는 전장에 이어서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이론이 계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자들을 증인으로 들어  죄를 지은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엘리바스는 만일 욥이 솔직하게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면,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손을 거두게 될 것이고 욥의 고통을 제거하실 뿐만 아니라 번영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1 . 고난에 대한 엘리바스의 정의

1) 미련한 자의 멸망
엘리바스는 미련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멸망시키는 것은 분노와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분노는 잔인하고, 과격하며, 다툼을 일으키고  원한을 품는 기질을 가리킵니다. 분노는 절제되지 아니한 감정으로서 충동적이고 사려 깊지 못하며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시기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훌륭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악한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분노와 시기는 잔인성을 유발시키고 평화와 온유를  파괴합니다. 분노와 시기의 근본  동기는 하나님 의식의 결여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교만에서 기인되므로 하나님의 응징을 초래케 하여 멸망하게 됩니다. 
a. 하나님이 없다고 함(시14:1)
b. 명철이 없음(잠8:5)

2) 악인의 운명
계속되는 고난은 사람들에게 죄인이 당하는 형벌로 인식됩니다. 고난이 크면 가족마저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욥의 경우 자식들은  죽고 아내는 욕을 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자의 아픔은 그의 재산의 축소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재산을 지키려고 캐도 올무가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면 순식간에 가난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자가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의 고난의 때에 우리를 건질 사람이 없습니다. 
a. 악인은 영원히 멸망함(시92:7)
b. 주께 득죄한 결과(욥8:4)

3) 인생은 고난임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드신 아담과 하와는 고난 없는 동산에서 슬픔을 모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에 빠지게 되고 죄가 전가됨으로 인하여 인생은 고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당하게 되는 고난은 여러 가지입니다. 자연적인 재난, 국가적인 재난, 순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고난 등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재앙과 고난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인간에게 내려진 보편적인 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참조, 창3:16-19).
a. 괴로움이 가득한 인생(욥14:1)
b. 수고뿐인 연수의 자랑(시90:10)

2. 고난 중에 의뢰할 하나님

1) 전능하신 하나님
엘리바스는 욥에게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만드셨고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그의 행하신 일은 지금도 발견의 대상들인  것입니다.  a. 일향 미쁘심(딤후2:13)
b. 약속을 지키심(민23:19)

2) 세상사를 주관하심
하나님은 세상사를 주관하시는 능력자입니다. 그분은  비를 땅에 내리시고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십니다, 또한 궤휼한 자를 파하시고 낮과 밤을 주관하십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서 말라 가는 논밭의  현상을 우리는 가끔 보게 됩니다. 과학이 발달하여도 비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역사는  좌절에 빠진 자를 일으키셔서 큰 일을 이루게 하시는 독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낮과 밤은 자연의 법칙으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대원칙이지만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마음대로 조정하시는 것입니다(참조, 수10:12-14).
a.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심(행14:17)
b. 비천한 자를 높이심(눅1:52-53)

3) 소망이 되심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곤비한 자를 그들의 입의  칼에서 강한 자의 손에서 면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곤비한 자는 고아나  가난한 자, 혹은 곤궁한  자들을 의리합니다. 이들은 억압이나 소외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들에게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도우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악한 자의 힘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형통할 때나 형통하지 못할 때나 현재와 미래를 맡기는 자세를 갖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생각지 못한 좋은 결과를 얻는 축복을 보게 됩니다. 
a. 악인의 팔은 부러짐(시37:17)
b. 악인의 도모가 서지 못함(사8:10)

3. 징계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

1) 전능자의 경책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그의 경책의 대상입니다. 징계는 목적을 가지고 오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하시는 자의 크고 전능한 인격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며 회개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참조, 히12:29). 연단의  손길이 우리에게 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려는 의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a. 경히 여겨서는 안 됨(잠3:11)
b.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심(디12:6)

2) 징계에 대한 순종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징벌이 가지고 있는 축복에 대하여 피력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외적 죄악에 대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본문에서는 욥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앗아간 재앙들에 대하여 순응할 경우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임을 권고합니다. 환난을 겪을 때 우리는 큰 고통 속에 신음과  울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으나 그것은 연단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순종해야 합니다. 
a. 거룩해야 할 성도(벧전1:15-16)
b. 불의에서 떠나야 함(딤후2:19)

3) 징계 후에 축복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분입니다(참조, 고후1:3-4) 징계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첫째로, 밭의 돌이 그와 언약을  맺습니다. 두번째는 들짐승이 그와 화친합니다.  그리고 장막의 평안함과 자손이 많아지며 장수의 축복이 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참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상과 같은 전화위복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을 엘리바스는 욥에게 권고했습니다. 
a. 하늘의 별처럼 많아짐(창15:5)
b.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음(신28:6)

결론
우리는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논지는 죄인의 고난과 의인의 축복이라는 지나친 일방 견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이 죄의 결과라면  욥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스데반, 바울 같은 인물들의 고난까지도 죄의 결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단정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단어해설]
 2절. 어리석은. 하나님께 불평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우둔한 사람을 가리킴.
 
4절. 성문. 성읍의 큰 출입문. 전쟁시에는 적군의 공격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회의를 열거나 재판을 하는 공공 장소로 이용됨.
 
5절. 올무. 사냥에서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올가미.  성경에서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유혹이나 함정의 의미로 나타남.
 
7절. 불티. 원문으로는 역병과 파괴의 신인 '르쉬프의 아들들'로 나타남. 즉  '불, 역병, 전염병'을 상징.
 
11절. 흥기시켜. '들어올리다'를 뜻. 낮은 신분에서 높은 신분으로 상승되는 것을 가리킴.
 
13절. 사특한. '무익한, 쓸모 없는, 해악한'을 뜻.  곧 간악하여 나쁜 일만 일삼는 것을  나타냄.
 
20절. 기근. 전쟁이나 충해, 가뭄 등으로 발생하는 대규모의 식량 부족 현상.
 
23절. 화친할. 서로간에 나쁜 감정이 없어져 신뢰를 회복하는 것.

 
[신학주제]
 고난에 대한 구약의 이해. 구약 성경 속에서는 사단, 또는 악의 세력이 각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이해되고 있다. 욥과 엘리바스의 논쟁은  이러한 구약적인 사상을 배경으로 행해진 것이므로 그 논쟁을 현대의 사고에 근거하여 고찰하기보다는 당시대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 시대에 선한 생활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간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또한 그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 이외에는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릴 만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삶 속에서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이해했다. 구약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도 고난은 악하고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보편적으로 고난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의 표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된 구절 속에서 나타나는 '고난'에 대한 이해이다. 그것과도 다른 측면에서는 고난이란 축복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난받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람은 아니다. 본문에서 엘리바스가 욥의 고난을 반드시 욥의 악행의 결과라고 하는 것은, 엘리바스의 고난에 대한 폭 좁은 이해 때문인 것이다. 

 
[영적교훈]
 엘리바스는 욥에게 적절한 권고와 경고의 말을 한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으니 결코 하나님의 징계를 무시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적인 적대감을 억제하여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켜야 한다는 엘리바스의 진심  어린 충고이다. 현재의 상태가 나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아야 된다는 엘리바스의 충고는 참으로  친구의 모범상을 보는 듯하다. 욥이 곤경에 처하자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문병을 왔다. 그런데 이들의 문병은 욥을 진정으로 위로하기보다는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발했는지 우리 성도들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엘리바스가 자신의 판단하에서 옳다고 생각한 방법으로만 욥을 문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웃에게 도움을 베풀 때 자신의 입장에서 옳은 대로만 행하면 때로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깨 닫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