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소망
I. 배경
벧전을 기록한 장소에 대해서는 본서 자체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벧전 5:13) 여기서 바벨론에 있는 교회란 곧 계시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교회를 말한다. 당시 베드로는 로마에 있었다. 주후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벧전은 무서운 박해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주며 신앙의 최후 승리를 확신케 하는 힘찬 격려와 충고의 편지이다. 지금 당하는 박해는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요 얼마 지나면 박해는 끝날 것이니 참고 견디어 내면 반드시 평화와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벧후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벧전 1:1)가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록한 서신의 형식으로 표현된 권고문으로 그 내용은 유다서와 비슷하다.(벧후 2:2-18) 이 편지는 이단 사상을 배격하고 정통교회를 수호하는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편지의 저자는 특히 영지주의를 공격하고 있는데 이와 아울러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종말론적 신앙 진리를 해명하려고 하였다. 이 편지는 이단의 도전에서 정통 신앙을 방어하는 문서로는 신약 성서 중에서 최고로 꼽힌다.
II.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주제 - 그리스도인의 산 소망과 거룩한 생활(벧전 1:1-2:10)
1) 그리스도인의 산 소망(벧전 1:1-12)
벧전의 주제는 ‘산 소망’이다. 이 주제는 두 개의 주요한 강조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하나는 소망의 근거로서의 복음(1:2-10)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교적 소망(2:11-5:11)이다. 저자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라고 말했다. 우리가 거듭나게 하셔서 얻게 되는 소망을 ‘산 소망’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소망이 산 소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산 소망의 생명의 근원은 믿는 자에게 나누어주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소망의 목표가 되며 이 생활의 최후 축복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거듭남으로 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유산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기업은 썩지 않는 기업이다. 그것은 결코 부패하거나 파멸되지 않는 기업이다. 또한 이 기업은 더럽지 않는 기업이다. 그것은 온갖 죄악의 더러움에서 자유케 된 기업이다. 이는 낙원의 시들 줄 모르는 꽃과 같다. 이 기업은 하늘에 간직한 기업이다. 이같은 놀라운 기업을 상속할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 사람들이다.
2) 부름에 대한 거룩한 생활(벧전 1:13-2:10)
이런 산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합당한 생활과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세 가지 제목으로 권고한다. 첫째는 거룩한 생활이고(1:13-21), 둘째는 형제 사랑이고(1:22-25), 그리고 셋째는 그리스도인의 성숙이다.(2:1-10)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구절의 총론을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에 두고 있다. 이 세상 유혹에 흔들리어 제 정신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근신하여 자기를 이기고 조절하여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 “너희에게 가져 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나타날 복된 소망에 대하여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세속에 휩쓸려 이 소망을 등한시함으로 범죄할 위험이 있으며 광신주의에 빠져 무절제하게 될 위험도 있고 재림이 너무 지연됨으로 해서 믿음이 해이해 져서 소망이 희미해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망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거룩함을 이루는 기초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 거룩이 이 구절의 최고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거룩을 처음에는 소극적인 면에서 그의 독자들이 믿기 전의 부도덕한 생활과 대조하였고 다음으로는 적극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을 지음으로써 전개하여 나갔다.
2. 두 번째 주제- 그리스도인의 선행과 사회 생활(벧전 2:11-5:14)
1) 하나님의 종다운 생활(2:11-17)
베드로는 여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선행과 사회생활에 관한 실제적인 교훈을 다루기 시작한다. 신자의 실생활에 대하여 특히 국가와 가정과 불신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먼저 베드로는 신자의 모든 생활을 규제할 근본 태도를 제시했다. 신자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이라 하였다. 나그네란 말은 다른 나라에서 와서 외국인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행인이란 말은 타향에 잠시 여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두 가지 말들은 다 우리의 국적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순례자이다. 그리므로 우리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곧 우리가 잠시 들린 이 세상 백성들의 악한 습관을 본받거나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이 선행을 하며 절제하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미치는 감화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큰 시련 속에 있었다. 온갖 중상과 허위 비난이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비난을 반박하는 유일한 그리스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러한 비난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훌륭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2)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의 선행(2:18-5:14)
베드로는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생활에 대하여 권면하면서 특히 신자의 국민적 의무에 대하여 말하였다. 다음으로 그는 신자의 사환들과 주인과의 관계 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서 부부의 의무, 박해에 대한 태도, 구속받는 신자의 생활에 대해 비교적 자상하게 권면하고 있다.
우선 사환들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한다.(2:18-25) 이 교훈의 요점은 ‘순복하라’는 말이다. 사환들은 주인에게 순복할 뿐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더 많게 하기 위해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라고 말한다.
다음 부부의 의무에 대해 말씀한다. (3:1-7) 여기서 아내 된 사람은 남편에게 사랑함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남편 된 자는 아내를 존경하고 아끼고 사랑하라고 말씀한다.
3. 세 번째 주제- 그리스도인의 소망으로서의 재림(벧후 1:1-3:18)
1) 재림을 부인하는 자에 대한 논박(벧후 1:1-3:7)
재림을 부정하는 자들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는 ‘재림의 약속’이 너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들의 조상들이 죽어 갔는데도 세계는 이전과 다름없이 언제나 존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에 대해 우선 일찍이 대홍수 시대에 한 번 물로 멸망을 받았으며 지금은 불의 심판이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 우주는 모든 것이 영원히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찍이 멸망당한 일이 있었으며 다시 멸망당할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2) 종말의 날을 준비하는 도덕적 생활(벧후 3:8-18)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베드로는 답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간이란 원래 상대적인 것이다. 사람에게는 오린 것 같은 시간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하루의 일도 영구하고 천년의 역사도 현재의 일각으로 눈앞을 스쳐가는 현실인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강조하는 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사람의 시간관념이 전혀 그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림을 지연시킨 것은 하나님의 지혜롭고 은혜스러운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심판을 연기하신 것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 안에서 구원 받는 기회를 얻게 하시려는 자비심에서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또 하나 이렇게 재림이 오래 지연되기 때문에 신자들이 해이해져서 거짓된 안전에 빠지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라”고 했다. 자연과 역사가 특별한 변동 없이 계속되고 있다거나 또한 재림이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재림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경솔한 생각이다. 재림은 자연 질서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없는 돌발적 사건이 될 것이다.
III. 신학적 의미
초대교회를 괴롭히고 교란시켰던 세 가지 세력은 첫째, 로마 제국의 박해였고, 두 번째는 유대주의자들의 저주였고, 그리고 세 번째는 교회 깊숙이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 사상이었다. 영지주의는 특히 기독교 신앙과 유사한 교훈들을 위장술로 사용하여 극히 위험한 그들의 이단 사상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속에 퍼뜨렸다.
영지주의란 한 마디로 희랍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한 이단 사상이다. 영혼은 신적이고 육체는 타락했으며, 영혼은 거룩하고 육체는 썩는다, 그리고 이 두 이질적 요소가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를 절대로 그리고 영원히 이룰 수 없다고 믿는다. 여기서 영지주의의 구원관은 단순하고도 간단하다. 타락한 육체에 감금되어있는 영혼을 되도록 빨리 육체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구원의 매개이며 죽음에 의해서 생기는 분리는 육을 땅에 영혼을 불멸의 세계로 들려 올라가게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영원한 분리이고 구원이다.
이들은 이런 배경 하에 성육신 신앙을 부정했다. 그리고 십자가도 부정한다. 또한 성만찬도 부정한다. 나아가 재림도 부정한다. 기독교의 본질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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