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는 초대교회 때 고난 때문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1절에서 “흩어진 나느네”란 고난 때문에 고향을 떠나서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고난가운데 고향을 떠나서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의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때가 ad64년인데, 이때는 로마의 황제 네로로 인한 큰 박해가 있기 직전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후서는 고난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쓴 서신입니다.
베드로는 고난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3절에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고난가운데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베드로가 하나님아버지께 찬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천국의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받아 정처 없이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산 소망이 무엇입니까?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소중하게 간직한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우리는 너무도 자주 이 땅만이 우리의 소망인 것처럼 하면서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바라던 소망이 끊어지면 마치 이 세상이 끝이 난 것처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저 영원한 천국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만이 아닙니다.
둘째, 우리가 저 영원한 천국에 갈 때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는 것도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가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란 우리가 천국을 가는데,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어떤 사탄의 권세, 세상의 권세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오직 믿음입니다. 또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가는 것도 오직 믿음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가기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 것도 오직 믿음입니다.
/창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가 되고 상급이 되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성령의 불 병거가 우리를 지금도 보호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불성곽이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듯이 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게 갈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 번째,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당하지만 “잠깐 근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라는 말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와 비교할 때 이 땅의 고난은 “잠깐” 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 땅에서의 고난도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영원한 고난을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잠깐의 고난 뒤에서 반드시 큰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따라하겠습니다. “이 고난도 속히 지나가리라”
/고난 뒤에 반드시 축복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오히려 크게 기뻐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6절에 보시면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뻐한다는 동사는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한다는 말입니다(아갈리아스데). 우리가 2002년도 월드컵4강에 오를 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베드로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면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험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잠깐 근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주신 이유를 잘 생각하고 묵상하면, 우리는 그 어떤 시험 가운데서도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시험가운데서 우리가 왜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보다 더 귀하게 연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시면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 1톤에 금이 2그램만 있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금광석이라고 합니다. 그 금광석을 수없이 연단해야 금2그램이 나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그 작은 믿음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에는 많은 불순물이 썩여 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시험은 이 모든 불순물들 다 제거시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정금과 같은 순수한 믿음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박국처럼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어도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이 있어도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가운데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믿음의 시험을 잘 이겨나가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칭찬이 있습니다. 또 믿음의 시험을 잘 이겨나간 사람에게 더 큰 영광과 상급이 있습니다. 또 마지막에 우리가 믿음의 시험을 받은 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더 존귀하게 여겨주십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도 크게 기뻐하고 기뻐해야합니까?
그 이유는 시험을 잘 이기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더 큰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상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가운데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는, 시험은 예수님을 더 믿고 사랑하게 하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세상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로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로 이제 더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또한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더 예수님만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믿음의 시험이 있습니까? 그러면 더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험가운데 있는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사랑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더욱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우리는 시험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아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가운데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시험가운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또 북한의 지하교회성도들이 어떻게 그런 큰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들도 시험가운데서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시험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그 이유는 첫째, 우리의 믿음을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연단시키기 위함입니다.
또 둘째, 우리에게 종말에 큰 영광과 존귀와 상급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 셋째, 우리로 예수님을 더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게 하기 위함 입니다
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믿음의 시험이 있어도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고난과 시험가운데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더 정금과 같이 단련시킬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믿음의 시험을 잘 이기는 자에게 종말에 더 큰 영광과 상급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고난과 시험가운데서 더욱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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