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무엘하 강해

[스크랩]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함(삼하 14:25~33)

에반젤(복음) 2019. 11. 23. 17:53



    

* 오늘의 말씀 :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함(사무엘하 14:25~33)

 

* 본문요약

 

  온 이스라엘에 압살롬만큼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사람은 없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압살롬이 그술에서 예루살렘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났으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압을 불러 만남을 주선해주기를 요청하려 했으나 요압이 만나주지 않자,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억지로 찾아오게 하여 왕과 만나게 해 줄 것을 강요합니다. 결국 왕이 요압의 청대로 압살롬을 불러 화해의 입맞춤을 합니다.

 

찬 양 : 212(420) 너 성결키 위해

          219(540)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본문해설

 

1. 외모가 뛰어난 압살롬(25~27)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만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사람은

없다고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26) 그는 머리숱이 많아서 해마다 연말에 머리를 한 번씩 깎았는데,

그 깎은 머리를 왕의 저울로 200세겔(2.3kg)이나 됐습니다.

27) 압살롬은 슬하에 아들 셋과 다말이라는 딸 하나를 두었는데,

다말은 외모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2.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지름(28~31)

 

28)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만 2년을 살았지만,

왕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29) 그래서 압살롬이 요압을 왕에게 보내려고 사람을 보내 불렀으나 요압이 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다시 사람을 보냈으나 요압이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30) 그러자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밭 근처에 있는 요압의 밭에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질러라.” 그리하여 압살롬의 종들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따졌습니다.

당신의 종들이 어찌하여 내 밭에 불을 질렀습니까?”

 

 

3.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함(32~33)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어 여기에 와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장군을 왕께 보내어 나를 왜 그술에서 돌아오게 하였는지 여쭈어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거기에 있는 것이 나았을 뻔했습니다. 이제라도 왕의 얼굴을 뵈올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시오. 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말씀 드려 주시오.”

33) 그리하여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이 말을 전하니, 왕이 압살롬을 불렀습니다. 압살롬이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자, 왕이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 묵상 point

 

1. 압살롬의 외모에 끌리는 백성들

 

  사무엘서가 24절에서 압살롬이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기록한 한 후에, 25절에서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에서 압살롬만큼 머리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사람은 없다고 칭찬이 자자했다는 말을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의 잘생긴 외모에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이어 나올 또 다른 위기와 재앙을 예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1) 외모 가꾸기에만 마음을 쏟는 압살롬

 

  압살롬이 자신의 외모 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머리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매년 연말에 머리를 한 번만 깎았습니다. 그 깎은 머리 무게가 200세겔(2,3kg)이나 나갔다는 것은 그가 그 머리의 무게를 매년 재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카락이 그의 머리를 무겁게 하지만 1년에 한 번만 깎은 것은 그만큼 그가 외모 가꾸기에 치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오늘날 여자들이 추운 날에도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과 같이 압살롬은 그의 외모를 위해 무거운 머리를 감수하고 1년에 한 번만 깎은 것입니다.

 

2) 마음과 영은 텅 빈 건달에 불과한 압살롬

 

  그러나 그런 멋진 외모와는 달리 압살롬은 그의 영과 마음이 텅 비어있는 건달에 불과합니다. 자기의 형을 죽이고도 죄책감 하나 없는 자, 아버지와 만나게 해 줄 것을 주선해달라고 말하기 위해 요압이 1년 농사지은 것을 몽땅 불태우는 사람, 그리 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하는 천하의 건달이요 깡패입니다.

 

3) 이런 건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백성들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하지만, 여기에서의 민심은 결코 천심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압살롬을 겉모습만 보고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일본 백성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아베를 총리로 뽑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압살롬의 외모만 보고 그가 천하의 건달이요 깡패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4) 여론을 힘입어 더 큰 재앙을 일으키는 압살롬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는데 성공한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합니다. 이 일은 백성들이 압살롬의 외모를 보고 마음이 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일은 언제나 백성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

 

  우리들이 모두 아브라함이나 다윗왕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누가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이 믿음이 좋은 신실한 사람인지는 분별하는 자는 돼야 합니다. 압살롬을 다윗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 여기고 그를 따르는 어리석은 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는 분별력을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2.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른 압살롬

 

  압살롬이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왕의 얼굴을 한 번도 뵙지 못하게 되자, 압살롬은 자신과 왕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에 사람을 보내 요압을 부릅니다. 그러나 요압이 두 번이나 자신의 청을 거절하고 오지 않자,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있는 보리에 불을 지릅니다.

 

  그술에 있던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오게 한 사람이 요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압살롬의 요청을 요압이 두 번이나 거절합니다. 요압은 매사에 과격하고 폭력적인 압살롬을 보고 자신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자신의 밭에 불까지 지르며 억지로 청을 하니, 요압은 마지못해 왕께 말씀을 드리고, 압살롬으로 하여금 왕을 만나도록 합니다.

 

 

3. 다윗과 압살롬과의 어설픈 화해

 

  요압의 청을 듣고 다윗이 압살롬을 궁으로 불러 만납니다. 압살롬은 다윗 앞에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로 엎드립니다. 그러자 다윗이 압살롬을 일으켜 입을 맞춥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이나 친구, 애인 사이에서 서로 나누는 다정한 인사로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압살롬과의 입맞춤은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그의 형 암논을 죽이고 그술의 달매에게 도망한 후 5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압살롬 사이에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행동으로는 다정한 입맞춤을 했으나, 모든 일이 침묵으로 진행됐습니다. 참으로 어설픈 화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1) 회개를 하지 않은 압살롬

 

  다윗이 기다린 것은 압살롬의 회개입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입에서 이 말 한 마디를 기다린 것입니다. 만일 이번 만남에서 압살롬이 형식적인 말이라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만 했다면 다윗은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입니다. 회개 없는 입맞춤, 그것은 예수님께 배반의 입맞춤을 한 가룟 유다의 입맞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2) 남의 탓만 하는 압살롬

 

  압살롬은 모든 일을 남의 탓만 합니다. 왕을 만나지 못한 것도 요압 탓이고,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는 것도 아버지 탓입니다. 자기가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인데, 압살롬은 자기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회개 없는 입맞춤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서로 상대방 탓만 했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도 자기 예배를 받지 않은 하나님 탓만 했습니다. 이렇게 압살롬처럼 남의 탓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3) 기다릴 줄 모르는 압살롬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도 10년이나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기의 형 암논을 죽여 놓고도 다윗의 용서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의 이 조급함이 영원한 멸망을 가져옵니다. 신앙이란 기다림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만이 기다릴 줄 압니다.

 

 

4. 그러나 예수님의 용서는 온전한 용서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안고 화해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용서의 입맞춤입니다. 그러나 말을 한 마디 하지 않음으로 압살롬과 교제가 회복되지는 않았음을 보였습니다. 죄는 용서되었으나 따뜻한 사랑의 교제는 회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이런 어정쩡한 용서에 오히려 불만을 품고 아버지를 죽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완전히 지워버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와 더불어 영원히 즐거움을 나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친아들이 됩니다. 단지 아들의 명분만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진짜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과 압살롬처럼 명분만 있는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즐거움을 나누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묵상 :

 

 이 모든 일이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가능해졌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가 이런 엄청난 영광을 누릴 소망을 가진 자들이 됐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 기도제목

 

1. 압살롬의 외모에 마음이 끌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헛된 것에 마음이 끌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다윗처럼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우리에게 참된 용서와 기쁨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