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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후를 하나님은 왜 정죄하셨나? (왕하 9:1-10; 10:30)

에반젤(복음) 2019. 11. 11. 19:22



  

예후를 하나님은 왜 정죄하셨나? (왕하 9:1-10; 10:30)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이 할지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주신 임무는 이중적이었다.
(1) 아합의 집의 모든 사악하고 배교적인 자들을 전멸시킬 것과 (2) 그들의 충성됨 때문에 순교 당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피를 보수하는 것이었다(왕하 10:7).  
  
이 경우 예후는 이세벨의 피 흘린 죄에 대해 하나님의 보수의 도구가 되었다(1).
예후는 그에게 부여된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하였다. 그는 여호람 왕과 아하시야(이세벨의 손자)를 죽인 후에 사마리아로 가서 그 성의 장로들을 위협하므로 그 궁정에 살고 있던 아합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였다(왕하 10:1-10). 그 후 바알 숭배를 위한 축제를 연다고 속여 바알 숭배자들을 신전에 모이게 한 후 그의 군대로 하여금 저들을 모두 학살하고 건물을 파괴시켜 다시는 바알숭배를 할 수 없게 하였다(18, 27절).
  
이런 예후의 행위를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칭찬과 보상을 약속하신 것은 당연했다.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의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4대를 지나리라”(왕하 10:30). 그는 자신의 왕위를 포함해서 그를 뒤이어 4대까지 왕위를 보장받았다(주전 814-798, 여호아하스,798-782, 요아스 793-753, 여로보암 2세 752년 즉위 후 몇 달만에 암살당한 스가랴)(2).
  
그런데 문제는 호세아 1:4에서 선지자 호세아는 예후의 왕조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다.  예후가 엘리야의 아합의 집에 관한 예언을 성취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었다면 어떻게 그의 집이 심판을 받아야 하겠는가?  그리고 이 호세아의 예언은 사마리아 멸망 40-60년 전에 한 것이다(3).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1. 예후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다시 말해서 명령하신 것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대의 왕 아하시야와 그 형제까지 죽였다(왕하 9:27)(4). 그러나 이 해석에 대해서 카일(Keil)은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를 들었다. 아합과 유대 왕국은 통혼을 하므로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유다왕 아하시야와 그 형제는 아합의 딸 아달리아의 아들들이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아합의 집에 속한 그 후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왕하 8:18, 26, 27)5).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명령 속에 저들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겠는가?
  
2. 예후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한 것은 잘못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악과 이기적 동기로 움직였다.  이 경우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지 구실이나 수단에 불과했으며 자신의 악한 마음의 욕망을 위해서 했다6).
  
3. 예후는 바알의 신당을 파괴하고 바알숭배자들을 다 학살시킴으로서 종교적인 개혁을 시도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바알을 파쇠하는데는 앞장섰으나 그 자신은 우상 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벧엘과 단에 워진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다. 그의 아들들도 모두 여로보암의 죄에 빠져 있었다(왕하 13:2-4, 14-19; 왕하 13:11).  또 아모스의 모든 예언(2:6-16; 4:1; 5:5-13; 6:1-8)은 예후의 집에 속한 여로보암 왕 때 정치 사회 및 개인적인 도덕성의 부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7).

그래서 칼빈(John Calvin)은 분명하게 하나님과 예후의 관계를 밝혔다. 대량 학살은 예후에 관한 한 범죄였으나 하나님께는 의로운 심판(보수)이었다.
  
예후는 이렇게 볼 때 우상 숭배를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으므로 그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행하지는 못하였다. 칼빈은 여기 예후의 행위는 마치도 영국의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헨리 8세(Henry VIII)의 경우와 같았다고 보았다(8). 헨리 8세는 로마캐토릭과 결별로 영국에 종교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사실상 이런 개혁이나 로마 교회와의 결별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아내 캐더린(Catherine)에게 실증이 났을 뿐 아니라 그녀와의 사이에서는 딸밖에 얻지 못했으므로 왕자를 얻기 위한 욕망과 사랑을 위한 이기적 목적에서 캐더린과 이혼을 하고 볼린(Anne Boleyn)과 재혼을 꽤하였다. 그러나 로마 교회가 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그는 영국의 성직자들에게서 결혼의 허락을 받으려는 목적에서 영국 교회를 로마 교회에서 단절시키는 종교개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행할 때 순수하지 못한 이기적인 목적이나 동기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그 일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던지 순수한 마음과 동기(하나님의 영광)에서 해야 한다.

   주
   1. R.D. Patterson and Herman J. Austel, 1, 2 Kings(Grand Rapids: Zondervan, 1988), p.206
   2.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p.280-281
   3. Beacon Bible Commentary, Vol.5(Kansas: Beacon, 1966), p.131
   4. The New Bible Commentary, Revised(London:IVP, 1970), p.705
   5. C.F. Keil, Minor Prophets(Grand Rapids: Eerdmans, 1980), p.41
   6. Op.cit., p.41
   7. 글리슨 아쳐, 상계서, p.282
   8. John Calvin, Commentary, Hosea(Grand Rapids: Baker, 1989), p.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