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열왕기상,하 강해

[스크랩] 엘리사의 저주는 정당하였나? (왕하 2:23-24)

에반젤(복음) 2019. 11. 11. 19:16



  

엘리사의 저주는 정당하였나? (왕하 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왕하 2:23-24)

여기 열왕기하 2:19-25절에는 엘리사의 두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 기적은 여리고성의 물을 고친 사건이다.  여리고성은 아합시대에 다시 재건되었는데(왕상 16:34) 물이 아직도 여호수아의 저주 아래 있어서(수 6:26) 마실 수가 없으므로 백성과 땅이 크게 고통 중에 있었다(19절). 엘리사의 기적으로 물을 고쳐 온전히 구시대의 심판을 제거시켰다. 두 번째 기적이 바로 본문이다.  엘리사가 그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갈 때에 젊은 아이들이 떼로 몰려와서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을 하자 엘리사가 돌이켜 저들을 저주하니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 저들 중에 42명을 찢어 죽였다.  벧엘은 송아지를 숭배하는 우상의 중심지였으나 (왕상 12:32, 13:1-32) 역시 선지 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벧엘에 나무가 그리 많지 않으나 그 당시에는 삼림으로 덮여 있었으며 자주 사나운 짐승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했었다(삿 14:5; 삼상 17:34; 왕하 22:25)(1).
  
이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조롱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저주해서 42명의 아이들이 곰에게 찢겨 죽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조롱을 받았다고 저주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두 명도 아닌 4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다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엘리사의 도덕성은 물론 선지자의 진실성까지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그 문제를 풀어 보기로 하자.
먼저 본문의 젊은 아이들은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이 말은 영어 성경 흠정 역에서는 작은 소년들(small boys)로 번역했으나 히브리말의 원 뜻은 젊다(youth)는 뜻이다. 또 나이가 든 종들이란 뜻도 있다.  그리고 작다(little)는 말은 나이나 키에서가 아니라 특성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다(2).  따라서 젊은 아이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로스안젤스로 말하자면 싸우스 쌘추럴(south central)의 우범 지역에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갱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들이 한 50명 이상 모였다고 본다면 그것은 그 당시 사회의 큰 암적 요소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건달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그들이 존경해야 할 어른을 조소하며 심지어 잘 알려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까지 비웃기를 마지않았다면 이들의 난폭한 진행을 방임했을 때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의 종교 중심지(벧엘)에 사는 시민들에게 어떤 행패를 부렸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3).
  
다음으로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조소가 왜 저주의 원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당시 엘리사는 50세쯤 되었고(13:14) 아마도 그는 머리에 두건을 썼을 것이다(태양 광선의 강열함 때문에 중동 지역에서는 필연적이었음) 그러므로 그가 대머리였을 가능성은 없으며 설사 그랬더라도 두건을 썼으니 대머리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엘리사에게 대머리여 라고 한 말은 순전히 조롱이었다(4).  게다가 한번만 아니라 본문에 두 번씩이나 기록이 되었으니 저들이 경건치 못했음은 물론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를 미워한 것이 분명하다.  왜 네 동료 엘리야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느냐?  함께 올라갔다면 우리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5)  말하자면 저들은 엘리사에게 조소와 항변과 탄핵을 한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은 적은 죄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 당시에 대머리여! 라는 말은 치욕으로 간주되었으며 여기서는 경멸이나 조롱에 대한 형용 어구였다(사 3:17, 24)(6).
  
마지막으로 암콤 둘이 나와서 42명의 청년 불량배를 죽인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여기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저주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하나님께 그들을 죽여 주십사고 기도한 사실은 전혀 없다. 따라서 엘리사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는데 그 심판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정당하였다.

1. 엘리야는 승천했고 엘리사는 실제로 그의 선지 사역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조롱은 단호하게 대처되어야 했다(R.D. Patterson)
2. 동방에서는 실제로 머리털이 없는 대머리에게 대머리란 말을 써도 경멸과 모욕의 말이었으니 심판이 당연했다(Jamieson)
3. 이들에 대한 심판은 엘리사의 거룩한 위엄에 대한 특유의 두려움으로 온성을 영감시키기 위해서였다(C.F. Keil)(7).
4. 하나님 자신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어떤 선지자도 위협을 받거나 조소 거리가 될 수 없음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한 목적에서였을 것이다(G.L. Archer).

위와 같은 이유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한 벧엘의 불량배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적절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엘리사는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 왕 까지도 그를 대할 때는 큰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왕하 3:11-13).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권위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주의 종들의 영적 권위는 그 사역의 중요성이나 필연성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에 대한 도전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
   1. Jameison, Fausset & Brown,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Grand Rapids: Zondervan, 1961),  p.271
   2. New Bible Commentary, Revised(London: IVP, 1970), p.350
   3. 글리슨 아쳐; 성경난제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276
   4. New Bible Commentary, Ibid.,
   5.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 I(London: Baaner, 1968), p.719
   6. R.D. Patterson and Hermon J. Austel, 1 & 2 KIngs, E. B. C. Vol.4(Grand Rapids: Zondervan, 1988), 178
   7. C.F. Keil, I & II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