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룻기 강해

[스크랩] 어머니 나의 어머니 룻기 1장 15-18절

에반젤(복음) 2019. 11. 2. 18:01



   어머니 나의 어머니 룻기 1장 15-18절


여러분.
국경선의 세여인을 기억합니까?
바람이 몰아치는
모압 국경선에서
헤어짐을 슬퍼하며
서로 부둥켜 안고 울던
세 여인이 있었습니다.

나오미,
룻,
오르바입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이 세사람.
그들이 우리의 주인공들입니다.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는
그 황량한 모압국경지대를
사랑이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의 땅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미움은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미움은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지만,
사랑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주인공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는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그 세 여인이
고생하면서 살아온
모압땅을 떠나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길을 걷다가
모압 국경선에 이르러
그곳에 멈춰서서
한참 동안이나
긴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세 여인이 나누던 이야기.

당시에는 듣는 사람없는
그들 세 사람만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읽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메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도 같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놓는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붙들고
간곡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두번뿐이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너희들은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나를 따라가봤자
너희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제발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나오미는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며느리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합니다.
제발 나를 떠나서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아라.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같다.
결국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나오미와 룻은
떠나가는 오르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사람들.
그들은 이렇게 헤어집니다.
그러나 헤어진다고 해서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서로를 가슴에 품고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오르바가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떠나가는 오르바의 모습이
점점 가물거리더니
이제는 아주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 오르바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성경기자는
나오미와 룻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성경은
유다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을 때
바벨론 군인들이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던
유다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망하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돌아온 사람들보다는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숫자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촛점은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남은 유대인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이후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에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유다로 돌아온 사람들.
이들에게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오르바는 단순히
나오미와 룻을 떠나서
자기 친정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시어머니와 룻만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성경기록에서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르바가 악한 여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
또 성경을 기록케 하신 하나님의 관심은
유다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르바와의 이별은
말 그대로 영원한 이별입니다.
다시는 만날 길이 없는 이별입니다.
오르바는 이렇게 떠났습니다.
이제 나오미와 룻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오르바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던 나오미는
오르바가 저 멀리로 사라지자
이제
룻을 설득합니다.
네가 떠나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이 말을 듣고
룻이 말합니다.

16절에서 18절은
룻이 한 말입니다.
룻이 한 말을 들어보면
참 훌륭한 연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위대한 연설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룻은 좋은 아내였고
좋은 며느리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룻은 훌륭한 연설가입니다.
사람이 말을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당시에 듣는 사람이라고는
나오미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듣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 룻의 이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언이 되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자기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강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어디든지 어머니와 같이 가겠다.
둘째.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다.
셋째. 어머니가 묻힌 곳에서 나도 묻힐 것이다.
룻은 이 세가지를 말하면서,
죽으면 몰라도
나는 결코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바탕 연설을 하자

설득하려던 나오미가 오히려 설득을 당합니다.
그래서 손발을 들고
포기했습니다.
룻이 말하는 것이 너무나 강해서
룻을 꺽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룻이 한 말에서
두 번째 부분을 보면,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앞부분과는 조금 다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룻과 오르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나오미는
오르바가 그 백성들과 그 신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15절 앞부분을 보십시오.
네 동서는 그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갔다.
단순히 자기 백성에게 돌아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섬기던 신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
이야기는
어느 나라 백성이 되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어떤 신을 섬기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로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룻을 따라가려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룻은
이 두가지 문제를
쉽게 해결합니다.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룻과 오르바의 차이점입니다.
오르바는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에게로
자기가 섬기던 신에게로 다시 돌아갑니다.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그 이상을 넘지 못했습니다.
룻은 그것을 넘어섭니다.
룻과 오르바의 차이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때
오르바에게 있어서
아쉬운 게 있다면,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려고는 하지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르바의 한계입니다.

나오미와 오르바가 이야기할 때는
이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해도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까?
시어머니는 교회에 나오는데
며느리는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며느리는 교회에 나오는데
시어머니는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종교가 달라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룻은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합니다.
나는 무조건 어머니만 따르겠습니다.
여러분.
룻이 이렇게
나오미를 전적으로 따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도
새로운 삶을 살 가망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되었나
한탄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머니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라면
내가 무조건 믿고 따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함께 지내다보면
흉허물이 얼마나 많이 보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면서
서로 흉보고 욕할 일이 많았겠지만
나오미와 두 며느리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믿어주었습니다.
나오미는 두며느리를 사랑하고 믿었고,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룻의 사랑과 믿음은
뛰어났습니다.
룻의 사랑과 믿음은
나오미와 오르바를 넘어섭니다.

룻의 사랑과 믿음 앞에서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룻은 철저하게 어머니를 믿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룻은 오직 어머니입니다.
룻기에
어머니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머니.
룻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를 결코 버릴 수가 없습니다.
룻은 왜 그렇게
시어머니를 믿고 사랑했을까요?
뭔가를 바라보고 그랬을까요?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유다로 가면
무슨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다 아니까

룻이 나오미를 따라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 말하지만,
룻은 아직 그것을 모릅니다.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보았자
할 것이라고는
고생뿐입니다.
룻은 이방인에다가 과부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압여자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닙니다.
동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수군수군할 것입니다.
저 여자는 모압여자래.
그리고 과부래.
다른 사람보기에

룻은
완전히 저주받은 사람이지요.
유다 베들레헴에 가더라도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룻이 왜 몰랐겠습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룻은 어머니를 떠나지 않습니다.
룻이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것은
그렇게 하면 뭔가 복을 받을 것같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좋아서 그렇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어머니와 함께라면
무슨 고생을 당해도 좋다.
지금까지도 함께 고생해오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으로 룻은
나오미를 따라갑니다.
나오미는 그 고집을 꺽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고통 가운데서도
자기를 믿어주고
따라주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가족이라도 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면
떠나지 않습니까?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살만하면
같이 있지만,
조금만 어려워도 떠납니다.
가출합니다.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을 버려두고 떠납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룻, 오르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
나오미의 며느리들은
정말로 어머니를 사랑했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언제나 이런 마음입니다.
특히 룻은 나오미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룻기를 읽으면서
두 며느리 가운데
오르바는 나쁘고
룻은 좋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르바도 시어머니를 사랑했고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룻의 사랑과 믿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오르바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르바가 남보다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룻이 너무나 뛰어나서 그렇습니다.

룻의 사랑.
얼마나 위대합니까?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다.
아니 죽더라도
나는 어머니 곁에 묻혀서
영원히 어머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결코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강한 사랑입니까?
정말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룻의 연설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룻의 이러한 연설은
우리에게 한가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도바울의 위대한 선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8장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이것은 사도 바울의 위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빠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
그것을 알고나서
다른 것이 의미가 없어진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끊어놓을 수가 없다.
죽음까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놓을 수가 없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여러분.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이고,
그 아래로 쭉 내려가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옵니다.
룻은 이방여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가 되는
그런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사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입니다.
룻의 강력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죽어도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는 결단.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편입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는 분.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시는 분.
위대한 사랑의 실천자.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