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스크랩] 공회 앞에 선 베드로와 요한(행 4:1~12)

에반젤(복음) 2019. 10. 5. 12:09




* 오늘의 말씀 : 공회 앞에 선 베드로와 요한(사도행전 4:1~12)

 

* 본문요약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할 때에 이를 싫어하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두 사도를 체포하여 감금합니다. 그러나 두 사도가 감금되었음에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져 남자들만 해서 5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튿날 공회가 모여 두 사도를 가운데 세워놓고 이 일을 누구의 권세로 행하였는지 추궁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해서 그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이 사람이 낫게 되었다고 말하며, 하늘 아래 구원 받을 이름은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역설합니다.

 

찬 양 : 102(94)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96(262) 날 구원하신 예수를(예수님)

 

 

* 본문해설

 

1.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한 공회(1~4)

 

1)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인들이 몰려 왔습니다.

2) 그들은 두 사도가 예수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격분하여, 심기가 몹시 불편하여)

3) 두 사도를 붙잡았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어 두었습니다.

4) 그러나 사도들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이 많으니,

믿게 된 사람들의 수가 남자만 해서 약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 사두개인(1) :

제사장들과 예루살렘의 권력가들로 이루어진 유대교 종교 당파 가운데 하나로 부유한 귀족 지배 계층입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주요 자리를 잡고 있었고, BC 2세기 하스몬 왕조 때부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문서로 기록된 모세 5경만 인정했습니다. 내세와 부활, 영적인 세계,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 싫어하여(2) :

싫어하여로 번역된 디아포누메노이심히 격노하고 크게 불안해하다, 괴로움을 당하다, 슬픔을 당하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병자의 치유 사건이 그들에게는 괴롭고 불안하고 슬픈 일이 되었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이 얼마나 부패한 상태인지를 알게 합니다.

 

 

2. 공회의 재판(5~12)

 

5) 이튿날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세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다 참석하였습니다.

7) 그들은 두 사도를 가운데에 세워놓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하고 물었습니다.

8) 그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9) 오늘 여러분이 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해명하라고 우리를 부른 것이라면,

또 이 사람이 누구의 힘으로 어떻게 낫게 되었느냐고 우리에게 묻는 것이라면,

10) 여러분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선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것

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11) 이 예수님은 여러분의 건축자들에게는 버린 돌이었으나,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12) 이 예수님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 묵상 point

 

1.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에 격분하는 사람들

 

1) 두 사도가 예수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함을 싫어하는 자들(1~2)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는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전하자 이에 격분한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합니다. 이들은 제사장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 때문에 자신들의 성전 제사가 방해를 받았다며 격분하며 두 사도를 체포합니다.

 

2) 하나님께서 바꾸신 구원의 새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구원의 질서를 새로 바꾸셨는데, 과거 시대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새 구원의 질서를 선포하는 자들을 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예배를 바꾸셨는데,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이전의 예배가 더 좋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생각만 고집하는 자들입니다.

 

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예배와 구원의 조건을 바꾸셨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뜻대로 드려져야 합니다. 구약 때에는 짐승의 피로 드리는 것이 바르고 참된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짐승의 피로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짐승의 피보다 더 거룩하신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 이름을 선포하고 있는데, 예배를 책임 맡은 자들이 격분하여 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 부패한 교회는 부패한 세상보다 더 악한 일을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교회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중세기대를 가리켜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을 지키는 자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미워한 것입니다. 혹시 나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를 함부로 판단하여 미워하고, 훼방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2. 가둘 수 없는 복음

 

1) 두 사도를 가두었으나 믿는 자는 도리어 더욱 많아짐(3~4)

 

 산헤드린 공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였으나,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이튿날 재판하기로 하고 일단 두 사도를 감금합니다. 그러나 두 사도가 감금되었으나 이들이 전파한 말씀은 더욱 세력을 얻어 믿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의 수가 남자들만 해도 5천 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2) 가둘 수 없는 복음

 

 두 사도를 가두었으나 복음의 말씀은 가둘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복음의 말씀은 핍박을 받을 때 더욱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복음이 세상으로 전파된 것도 역시 핍박을 받을 때입니다. 마치 불붙은 마른 들판에 불을 끄겠다고 부지깽이로 내리치면 불씨가 튀어 불이 더욱 퍼지게 되는 것처럼, 복음의 말씀은 핍박을 받을 때마다 더욱 그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묵상 :

 

 교회와 성도들의 힘은 바로 이 복음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복음의 말씀보다 금과 은의 힘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3.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 앞에 담대한 베드로

 

1)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는 베드로와 요한(5~7)

 

 이튿날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가운데 섰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으로, 로마 정부로부터 종교재판의 권한을 위임받아 사람들을 재판하고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70명으로 된 산헤드린은 부채꼴 모양으로 앉아 피고인을 그 가운데 세워놓는데, 보통 이 자리에 세워놓으면 벌벌 떠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공포의 자리입니다.

 

2) 공회 앞에서 당대하게 말하는 베드로(8~12)

 

 그런데 베드로는 그 자리에 서서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하게 말합니다. 베드로는 차분하게 이 병든 자가 고침 받게 된 원인을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너희가 얼마 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입니다.

 

3) 천하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느니라(12)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이 일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 앉은뱅이를 치유하여 주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제사장가 사두개인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 얻게 된다고 증거합니다.

 

묵상 :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우리를 마음의 자리에서부터 도우시니 우리가 세상의 핍박이나 조롱이나 그 어떤 평가에 대하여도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4.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한 과정

 

1) 우리가 주목하여 보아야 할 자가 누구인가 :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봄(3:1~4)

 

 유대인의 하루 세 차례의 기도시간 중 오후 기도시간에 참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 앞을 지나던 베드로와 요한은, 그 앞에 구걸하기 위하여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봅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움 받기를 바라며 두 사도를 간절히 바라보던 그 사람을 본 것에서부터 전도는 시작됩니다.

 

 전도는 이렇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주목하여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저 전도지만 달랑 전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십시오. 전도는 그 사람의 아픔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2)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여 줌(3:5~8)

 

 앉은뱅이는 돈 한 푼이라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만, 두 사도는 금과 은 대신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건강한 몸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주변에 마음이 상한 자, 외롭고 고독한 자,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고민하며 기도해보십시오. 다행히 교회가 커서 그들 도울 힘과 능력이 있다면 당장 그를 도우면 될 것이고, 힘이 약하여 혼자 하기 어려우면 다가가서 손이라도 잡고 위로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3) 그 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 :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3:12~26)

 

 베드로와 요한이 병자를 치유하여 건강한 몸이 되자 이 일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사람들이 두 사도를 주목하자 두 사도는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말하고는, 이 일을 이루신 이는 그들이 얼마 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나사렛 예수님의 힘과 권능으로 된 일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들이 한 착한 일로 모인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4) 질문하는 자들에게 또 복음을 전함 :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거하는 두 사도(4)

 

 그리고 본문 4장에서는 산헤드린 공회가 두 사도를 붙잡아 누구의 힘과 권능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나사렛 예수님의 힘과 권능으로 한 일이라고 담대히 전합니다.

 

묵상 :

 

 이 일 없이 그저 복음을 전했다면 사람들은 귓전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하게 했습니다.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복음을 경청하여 듣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처럼 질문을 일으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착한 일을 보고 사람들이 당신들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합니까?”하고 질문하게 합시다. 그러면 우리도 두 사도처럼 나사렛 예수님 때문에 이 일을 합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을

내 주관대로 함부로 평가하여

그 일을 훼방하거나 미워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령 충만하여

주의 이름을 담대하게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