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에반젤(복음) 2019. 10. 3. 19:36




<바울의 1차 전도여행> 

1. 일차 순회 시대(사도행전 13-15장)

여행할 때는 파자마(pajamas:PJ 라고도 알려져 있음)를 가방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정보를 기억한다면, 바나바가 첫번째 전도 여행을 했을 때 PJ[Paul(바울)과 John Mark(요한 마가)]를 데리고 갔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바, 바울, 요한 마가는 안디옥에 세워진 첫 교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구브로를 거쳐 여행하면서, 세 사람은 회심자들을 얻기도 했지만 갈등을 겪기도 했다.

요한 마가가 버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후,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중심 도시의 내륙 지방을 방문했다. 수많은 새 신자들에 의해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사단도 역사해서 바울은 돌에 맞아 거의 빈사 상태가 되어 루스드라에서 내버려졌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다시 살리셨다.
첫번째 전도 여행에서 그 두 사람이 더베에 이르렀을 때, 그 여정(旅程)은 큰 반원형이었다. 그때 바울은 새로운 교회들로 돌아가 신자의 믿음을 굳게 해주려고 결심했다. 그들은 마침내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바울의 세 차례 전도 여행은 지도에 쉽게 그려질 수 있다. 세 가지 길은 "C"라는 글자, 땅콩, 국자 모양이다. 첫번째 여행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옆 페이지의 지도를 보라.


양육


회심자들에 대한 바울의 주 관심사였던 성장(growth)을 나타내기 위해(바울의 첫번째 여행에서 중심지였던) 갈라디아(Galatia)의 G를 사용하라. 바울은 회심 후의 성장을 강하게 믿었다. 돌로 치는 등의 핍박이 그를 몰아내기까지 가능한 한 오래 머물면서 그는 새 신자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큰 위험까지도 무릅쓰면서,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을 방문하기 위해 그는 돌아갔다. 심지어 돌에 맞았던 성에까지!
전도 상황 보고를 위해 안디옥으로 돌아오자마자,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리고, 구원을 위해서는 오직 믿음만을 의지 하라고 그들에게 권고했다. 이는 거짓교사들이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함으로써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첫번째 공의회에 참석해서 유대의 반대자들에 대해 새로운 이방인 회심자들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첫 여행 때 얻은 회심자들을 재방문하기 위해 두번째 전도 여행을 감행했다.
그리스도께로의 회심이 평생에 걸친 영적 성장 과정에 있어 첫 단계일 뿐이라는 점은 초대 신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시도록 허락하는 만큼 우리는 성숙한다.
개인적인 영적 성숙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수단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격려하는 다른 신자들과 만나는 것이다. 벌겋게 타오르는 석탄 더미에서 조각 하나를 꺼냈을 때, 그것을 다시 집어 넣지 않으면 곧 식어 버리고 만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서로 불 속에 남아 계속해서 타올라야 한다.


갈라디아서 - 자유의 복음

갈라디아에서 돌아온 직후, 바울은 최근의 회심자들에게 갈라디아서를 써 보냈다. 첫번째 여행과 관련해서 그는 한 편지를 기록했던 것 이다. 갈라디아서는 유명한 전도자가 쓴 하나의 양육 편지(follow-up letter)이다.

갈라디아서의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의 종된 상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전혀 무력한 구약 시대의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갈 3~4장).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고 이 세상에서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케 되었다(5~6장).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허가증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자유케 된 것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분을 위해 살기 위해서이다(갈2:20). 우리는 이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기꺼이 새로운 주인-그리스도-을 택하기 위해 자유케 되었다.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성령에 의해 살고 행할 새로운 능력에 대한 대가는 갈보리에서 완전히 지불되었다. 그리스도는 옛 사람과 옛 생활에 우리를 매어 놓은 사슬을 끊어 주셨다. 왜 우리가 그 끊어진 사슬을 다시 맬 필요가 있겠는가?

야고보서-신앙의 생활의 조화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는 갈라디아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일찍 기록된 신약 서신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갈라디아서는 믿음만이 구원을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 신앙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행위에 의해 스스로를 입증한다.

야고보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열 두 지파의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신자답게 처신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야고보서는 신자의 삶에 있어 구원하는 신앙으로 말미암에\ㅏ 생기는 차이점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시련과 시험에 대한 승리(1:1~18)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1:19~27)
●다른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우함(2:14~26)
●아브라함과 라합과 같이 선을 행함(2:14~26)
●말과 생각에서의 순수성(3:1~4:4)
●계휙을 세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함(4:5~5:6)
●고난과 질병 중에 인내함(5:7~20)

신앙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자신들이 아는 바로 인해 떨기조차 하지만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2:19~20). 구원하는 참된 신앙은 변화된 삶으로 자신을 입증한다. 신앙은 그 열매로 알려진다.


책들을 보라

제 1과에서 신약27권이 주제별로 열거되어 있음을 보라. 가운데 칸은 편지들만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종종 서신서들이라고 불린다(그리스도인이 된 지 수년이 지나서야 나는 서신서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약성경에는 1,051개의 하나님의 명령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서신서들에 있다! 물론 어떤 명령들은 과거 혹은 미래 시제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오늘 우리를 위한 것들이다. 신약성경에서 체험을 다룬 21권은 매일 적용되어야 할 강력한 충고들, 곧 '권고'라는 말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진실로 알고 싶다면, 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의 서신서들을 읽으라! 읽을 때에는 각 명령(Command) 옆의 성경 여백에 크게 "C"자를 기록하라. 또는 감탄부호를 사용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휙은 그것을 읽고 주의하는 모든 이들에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약성경의 역사서 5권을 순서대로 쉽게 기억한다. 그들은 사복음서 다음에 사도행전이 따라옴을 안다. 그러나 서신서들을 순서대로 똑바로 말하기는 힘들다.
서신서들이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첫 13권은 바울이 썼고 8권은 다른 이들이 썼다. 바울 서신은 모두 다 수신자들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디모데전서, 에베소서 등).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는 다 쓴 사람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히브리서는 이 구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유일한 서신이다).

새로운 독서법

옆 페이지에는 신약성경의 열두 시대가 기록되어 있고, 모든 책들이 필자가 생각하는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도표를 연구하다 보면, 신약성경의 서신서 21권이 모두 일곱 시대에 걸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일차 순회 시대부터 일반 기자 시대까지). 열 번째와 열 한 번째 시대에는 각기 7권이 있다. 나머지 7권은 일곱 번째와 아홉 번째 시대 사이에 기록되었다(일곱번째 시대 2권, 여덟번째 시대 2권, 아홉번째 시대 3권).
각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알기 원한다면 네모 안에 기록된 것을 모두 읽으라. 예를 들어, 바울의 삼차 여행기와 연관된 성구들을 연구 하려면 사도행전 19~21장과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그리고 로마서를 읽으라.

바울의 세 차례 여행 기사가 사도행전에서 각각 세 장씩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또한 각 여행의 수와 그것과 연관해서 그가 기록한 서신들의 수가 정확하게 일치한다(첫번째 여행에서 1권, 두번째 여행에서 2권 등등).
성경 읽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 중의 하나는 각 장의 제목을 몇 단어로 정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서 1장은 "최악에 최악을"이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될 것이다.

재미있는 단계는 성경의 장 제목을 정할 때 그 첫글자들로 한 문장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 책을 요약할 한 문장을 찾아내되 각 장 제목의 첫 글자가 바로 그 문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옆 페이지에 나오는 로마서의 경우는 배리 허들스톤(Barry Husddleston)이 만든 것이다. 십대에 그는 정경 66권에 전 대해 이 일을 마쳤고, 그것은 후에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社에서 출판되었다.


2. 서방전도

이차 순회 시대(사도행전 16-18장)
삼차 순회 시대(사도행전 19-21장)

이차 순회 시대 중에 실라, 디모데, 바울은 수리아의 안디옥을 떠나 갈라디아 신자들을 격려하러 갔는데, 그것이 바울의 이차 천도 여행의 시작이었다(행 16~18장).
그때 성령께서 북쪽, 혹은 남쪽으로의 진행을 명백히 금하셨기에, 일행은 에게해 연안의 드로아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갔다. 거기서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도움을 청하는 한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그 응답으로 바울과 그 일행은 처음으로 헬라 반도에 복음을 전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교회가 다 이 여행 중에 세워졌다.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바울은 고린도에 18개월간 머물렀다.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바울과 친해졌다. 인사하기 위해 예루살렘교회에 잠시 들른 후에 선교사들은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지도상으로 이 여행은 대략 땅콩같은 모양으로 그려진다. 옆 페이지에서 이차 순회의 주요 사건들을 주의해 보라.

여기 그분이 다시 오시다

바울 일행은 이 여행 기간의 대부분을 마게도냐, 아가야, 헬라에서 보냈다. 아가야(Achaia)의 A는 이 시대의 주제인 출현(Appearing)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바울의 이차 여행이고 회심자들에 대한 그의 이차 출현이다. 이 시대에 바울이 기록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우리의 주이시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출현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어느 때이든지 재림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때 신자들은 더욱 경건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일은 당신의 생애에도 일어날 수 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모으기 위해 오시기 전에 성취되어야 할 예언들은 더이상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의 임박한 재림을 깨어 일하며 기다려야 한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그렇게 되길 바란다!

데살로니가전서-재림 전의 승리

다른 대부분의 서신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위한 감사 기도로 이 편지를 시작한다. 그들은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랑과 선행을 보여 주었다(1장). 바울은 그들이 얼마나 그를 잘 영접해 주었는가를 회상하면서(2장), 왜 그들을 섬기도록 디모데를 보냈는지를 설명했다.(3장).
처음에 몇몇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다 살아 있을 때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랑하던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했다. 바울은 기쁜 소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다. 그분이 돌아오실 때, 그들의 산 영혼은 그분과 함께 돌아올 것이며 그들의 죽은 몸은 살아날 것이다(4장).

그리스도가 오실 때, 살아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홀연히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땅에서 들림을 받아 공중에서 주님과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우리 모두는 주님과 함께 본향으로 가서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 얼마나 놀라운 만남인가!
신자가 죽었을 때,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할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주님의 갑작스런 재림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과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5장을 보라). 각 신자는 그때까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을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재림 전의 환난


핍박의 불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을 때, 몇몇 데살로니가인들은 아마 그들이 주님의 재림을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금 예수께서 말세에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대환난(대환난기는 전쟁, 재난, 핍박의 때이다)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두려워했다(눅21:5~33/살후1:3~10 참조).

바울은 주님이 두 단계로 오실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첫째 그분은 자기 백성을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공중에 오실 것이다. 그리고 난 후 대환난이 지나가면 성도들과 더불어 자기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지상에 오실 것이다. 대환난은 그분의 지상 재림 전에 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이 겪고 있는 핍박이 대환난이 아니라고 안심시켰다(2장).우리도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 시련과 핍박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3장).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런 때에는 기뻐하라고 명령하셨다(요 16:33).

삼차 여행을 시작함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을 세번째로 격려한 후, 바울과 그 일행(이 여행에는 도합 아홉 명이 동행했다)은 에베소를 향해 서쪽으로 갔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도합 삼 년 간이나 머물렀는데, 이는 그의 적극적 사역에 있어 한 곳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경우인 셈이다. 이 기간 동안에 아시아전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마게도냐, 아가야, 헬라를 대략 돌아본 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될 것이라는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순절을 위해 서둘러 그 곳으로 갔다.
바울의 세번째 여행 경로는 뒷 페이지의 지도에서 보다시피 국자 모양 같다. 국자 모양은 미완성 상태인데, 이는 그 여행이 예루살렘에서 중단되기 때문이다.

영적 수학(數學)

세번째 여행 중에 바울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인 에베소(Ephesus)의 E는 복음 전도(Evangelism) 전략을 대표할 수 있다. 바울의 접근법은 명백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 자기의 일을 배가시키려고 노력했다. 바울은 주요 도시 혹은 마을에 가서 교회를 시작하고, 장로들을 훈련시킨 다음, 그 지역의 복음화를 그들에게 맡겼다. 이것은 삼년 동안 열 두 사도를 훈련시키신 후 복음을 그들에게 맡기신 예수님의 접근 방식과 같다.
요한 생존 당시 아시아에 일곱 교회(계 2~3장)가 있었다는 것은 바울의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바울이 이들 일곱 교회 중에서 여섯 교회를 개인적으로 방문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만, 교회들은 에베소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에베소인들은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복음화하는데 열심이었던 것 같다.
만일 신자들이 영적 덧셈만을 사용한다면 세상은 결코 그리스도께 인도될 수 없다. 초대 교회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영적 곱셈을 사용해야 한다. 한 사람의 구령자(Soul-winner)를 훈련시키는 것도 한 영혼을 얻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데,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자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기 때문이다.
세번째 여행(행 19~21장)과 연관해서, 바울은 고린도전후서, 로마서(아마 이 순서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세 서신을 기록했다.

고린도전서-교회 문제의 해결

때때로 사람들은"아, 우리가 초대 교회로 돌아갈 수 있다면..."하면서 "신약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예를 들어 고린도제일교회도 그리 편안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는 이 신약교회 안에 있던 문제들에 관한 편지이다. 그들은 교회 신도들간의 분규, 신도들 사이에 인정되고 있는 근친상간 문제, 교인들끼리의 송사(訟事) 문제, 간음, 이혼, 주의 만찬시의 무질서, 예배방법상의 불일치, 십일조와 헌물 문제 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문제는 여기 기록된 것 외에도 더 있었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바울은 대머리였다고 한다. 고린도 교회는 어떤 목회자건 머리가 다 빠지게 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교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번째 편지의 주조(主調)는 정죄가 아니라 관심과 교정이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 가족, 개인적 문제의 해답을 갖고 계시다.
고린도 교회의 신도들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요소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바울이 말한 바대로 위의 문제들을 푸는 데 사랑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지 생각해 보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꼐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4~8)

고린도후서-바울의 변증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바울의 "참견" 때문에 그의 메세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헐뜯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그 다음 편지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노력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장 자전적(自傳的)인 그의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내심을 드러내 보였다. 논리적인 사도인 바울은 자신도 지극히 감정적으로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새로이 회심한 자들의 신앙을 망치려 한 거짓 교사들에 대한 그의 분노를 우리는 느낀다.
그러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의심 많은 고린도인들을 돌이키기 위해 자애로운 태도로 이유를 제시한다.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내가 정좌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후 7:2~3)고 바울은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그는 고린도인들이 자기 의사에 의해 바른 일을 하기를 바랬다. 고린도의 회심자들이 주님께 대해 참되고, 신앙 가운데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라면 바울은 자기의 모든 개인적인 권리를 기꺼이 제쳐 놓았다.

로마서-하나님의 의

성경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열 세 서신들 중의 제일 첫번째가 로마서이다. 로마서가 그렇게 그런 위치에 놓이는 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복음의 큰 윤곽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구원의 복음에 대한 매우 질서정연한 개요서 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이 피조물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 계시된다고 설명한다. 성경 또한 하나님께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완전한 표준에는 이르지 못하며, 은혜라는 선물로써만 하나님께 합당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는 하나님의 완전한 어린 양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충족되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들을 지키신다는 분명한 예로 바울은 이스라엘을 든다. 그는 메시아가 지상에 재림하실 때 문자 그대로 유대인을 위해 한 나라가 세워질 것을 지적한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삶 가운데서 그분이 무엇을 이루시는지 보여 주는 살아있는 본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바울의 다른 모든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서는 교리와 의무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참 신앙은 매일의 행위에서 그렇지 않은 신앙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구원 받았다.

로마서의 말미에서 바울은 인사를 전하거나 받을 사람들인 서른 한 명의 이름을 언급한다(롬 16:1~23). 그는 아직 로마에 가본 저기 없었지만, 로마 제국 각처에서 이 사람들을 만났었다. 바울은 이들을 한 무리로서 섬기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들을 알고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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