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학개 강해

[스크랩] 학개서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0. 1. 20:49




                        학개서 연구

 


*이름의 뜻을 통한 주제 / 축제

*학개서의 주제 / 하나님의 영광의 때를 깨달아 결단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1:8)

*학개서의 주제절 /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


Ⅰ. 예언자 학개

   파사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여 파사제국에 통합하고 정복한 모든 민족에게는 회유 정책을 썼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유의 종교를 믿는 것과 고국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정책은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정치적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이 큰 희망을 안고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었다. 그러나 어려움이 많았다. 15년간이나 성전 재건을 힘썼으나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즉 다리오 왕 제 2년(520년)에 두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바로 학개와 스가랴이다. 에스라서에 의하면 (5:1, 6:14) 이 두 예언자의 활동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번영하였다. 학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짐작컨대 포로시기에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인 것 같다. 만일 이 가정이 옳다면 그는 바벨론에 있을 때 다니엘과 아는 사이었을 것이다.


Ⅱ. 내용과 주요 사상

   본서의 메시지의 중심은 성전 재건이다. 학개는 백성들에게 성전을 수리할 것을 권고하면서 그 재건이 완성되는 날 메시야 시대가 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예언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점들 즉 불의와 죄에 대한 공격이나 꾸중 또는 도덕적 종교적 생활의 충성에 대한 교훈 또 의로운 사회생활에 관한 명령 등이 본서에는 없다.

 

  학개는 오직 성전 건축을 위해서만 책망을 하고 (1:1-11) 격려도 한다(2: -9). 본서에 영적 메시지가 약한 것을 혹평하는 학자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치적으로 미약한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그런 연후에 백성을 영적으로 부흥시키고 민족적 단결과 결속을 꾀하며 선민의 긍지를 가지고 살게 하려고한 본서의 내용을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힘의 원천임을 밝히며 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초점을 성전 건축에 둔 것이다.



Ⅲ. 내용 분해

1. 성전 건축을 위한 호소 1 : 1 - 15

1) 시기상조론과 학개의 답변 1 : 1 - 11

2) 백성들의 반응 1 : 12 - 15

 

2. 성전의 영광 2 : 1 - 9

 

3.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 2 : 10 - 14

 

4. 좋은 시대에 대한 약속 2 : 15 - 19

 

5. 여호와의 종 스룹바벨 2 : 20 - 23




**** 학개서 해설

 

   인간은 자기 일에 빠릅니다. 인간이 자기 일에 빠르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허겁지겁 발버둥치면서 세상 삶을 도모하면서도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신앙이요 죄악입니다. 요즈음의 사람들도 이렇지만 옛날 학개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개는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와서 성전을 건축하던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주전 538년에 바벨론 왕 고레스가 칙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유다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바벨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 사건이었습니다. 이때에 약 5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유대로 돌아 왔습니다. 성전의 기초를 놓고 건축을 시작한 것이 536년입니다. 성전 건축 공사를 시작하자 이미 그 곳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건축을 방해하는 운동을 맹렬히 펼쳤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기초만을 놓고 더 이상 공사를 계속하지 못하고 15년이나 중단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리오 왕 이년 유월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 임했다고 했는데 이때가 바로 공사를 중단한지 16년이 지난 520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서 건축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1:2). 돌아와서 십 수 년이 지나자 처음의 열정도 다 식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사는 일에 열중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집에서 잘 살아 볼까하는 생각으로 골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모으고 사치스런 재목을 외국에서 사들여서 널판을 만들고 그것을 재료로 삼아 집을 지었습니다. 아마도 바닥이나 천장 등은 이 널판으로 덮고 깔았을 것입니다. 혹은 벽도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성경에는 '판벽한 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은 황무하게 버려 둔 채 너희는 판벽한 집에 사는 것이 옳으냐고 하시면서 너희의 하는 짓을 살펴 보라고 하셨습니다(1:4-5).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 건축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8절에 '너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이 얻으실 영광에 대하여는 2장에서 좀 더 잘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의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 하냐"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옛날 솔로몬의 화려했던 성전을 본 사람들에게는 다시 지으려고 하는 성전이 너무나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외국에서 백향목을 가져다가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그냥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짓는 성전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소나무나 아카시아 나무 같은 것들에 해당하는 것을 가지고 짓는 성전입니다. 그러니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초라한 것을 보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격려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고 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렇게 격려하십니까? 2:5절을 보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고 합니다. 하나님이 출애굽 때에 언약한 말이 있고 그 영이 머물러 있는 것을 근거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출애굽 때에 언약한 말과 영이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은 출애굽 때에 언약한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언약한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6-8절에 나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미래에 만국의 보배가 올 것을 말해줍니다. 이 보배가 오면 온 세상이 벌벌 떨 것입니다. 21-22을 보면 진동시킨다는 말이 벌벌 떠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배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자가 각각 그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모습입니다. 만국의 보배는 온 세상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벌벌 떨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성전이 미래에 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만국의 보배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학개 당시 성전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은 미래에 오실 분의 영광으로 채워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학개 당시의 성전은 미래에 오실 만국의 보배를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참 성전은 미래에 오실 만국의 보배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이요 또 여호와의 영이 이루시려고 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 것은 바로 미래에 오실 참 성전을 기다리며 그 것에 희망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전 짓는 자로 택함을 받은 스룹바벨은 미래에 참된 성전을 지을 분을 예표하는 사람입니다(2:23).

 

  이러한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에서 우리는 이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12장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둘 한 곳을 말씀하시고 또 특별한 선지자가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신18:15-19). 그리고 30장 이후부터는 새로운 시대를 말씀하십니다. 이 새로운 시대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망했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시키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죄와 용서를 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의 원수에 대한 심판과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학개는 이러한 말씀대로 미래에 구원자가 오셔서 열국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며 구원하실 것을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여호와가 임재하시는 성전이 세워질 것입니다. 학개의 성전은 바로 이것을 내다보고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학개서는 미래에 올 구원을 성전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보기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현재의 보잘것없음을 보고 낙망하지 말고 미래의 그 분을 기다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를 바라보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세상에서 돈을 벌며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런 일로 인해서 예수님을 가볍게 여기고 신앙을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도 학개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책망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의 평안과 안정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신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